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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우리는 친구일 수 없는가 -토마스 브루시히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11월에 가장 먼저 상기되는 역사적 사건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년도 지나지 않아서 독일이 통일되었고, 그 이듬해 구소련이 와해되면서 동․서 냉전은 막을 내렸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역사'이다. 역사는 시대를 기록하고 기억하는데 유용하지만 보통인 존재들의 개별적인 삶을 증언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증언과 성찰은 문학의 몫으로 남는다.
구(舊) 동독에서 성장했던 독일 작가 토마스 브루시히의 소설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문학과 지성, 2009)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직전인 1989년 8월부터 1990년 가을을 무대로 펼쳐진다. 7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소설 속에는 뚜렷한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1989년을 살아가는 수십 명의 독일인이다. 소설은 1989년 여름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 탈출하는 동독인들의 물결을 그리면서 시작된다. 동독인들은 "무력감과 불행의 감정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정치적이 되어"(27쪽)갔고, 그해 11월 장벽의 붕괴는 호네커 정권의 퇴진으로 이어지며 혼란이 가속화된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마치 놀이동산의 개장"(161쪽)과 같았다. 서독의 쇼핑몰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의 향락은 동독인들을 놀라게 한다. 또한 통제가 풀린 언론을 통해서 속속 밝혀지는 슈타지(동독 첩보기관)의 감시활동과 비리들은 인민들을 극도로 흥분시켰다. 브루시히는 이 시기를 배경으로 시인, 사진작가, 물리치료사, 사기꾼, 검사, 형사, 슈타지의 외화벌이꾼, 잡지기자, 평범한 주부 등 통일을 목전에 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보여준다.
통일 이후를 걱정하는 검사와 경찰, 정치인들은 서독의 정당과 연계하기 위하여 뛰어다니고, 평범한 물리치료사였던 레나는 시위대 앞에서 부른 노래로 인하여 '혁명의 아이콘'으로 부상한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호텔의 관리자 분추바이트는 통일 이후에도 살아남기 위하여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지만 애송이 사기꾼인 베르너 슈니델에게 이용당한다. 서독의 기자 라트케는 특종을 기획하고 동독의 맹인환자를 찾아다닌다. 기사의 제목은 <영원한 밤으로부터의 해방>. 서독의 자유와 돈, 그리고 기술이 동독이라는 '장님'에게 빛을 선사하다! 얼마나 근사한 기사인가.
장벽 붕괴 이후에 전개된 총선은 서독과 연대한 정당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극단적인 두 체제는 코카콜라를 나눠 마시며 통일을 향해 질주한다. 그러나 빛을 본 맹인 환자는 빛에 적응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았던 시기의 느린 삶을 그리워한다. 계산을 배운 인간들은 더 이상 평등한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 토마스 브루시히는 우연히 찾아온 변화를 겪는 독일의 다양한 인간들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되묻는다. 우연에 의해 지배받는, 개별적인 삶들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통일은 '빛'이 아니라 건설업계와 부동산업자들, 일부 권력자들을 위한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하지 않았느냐고.
이 질문을 관통하며 독일 사회는 지금 앓는 중이다. 나는 독일이 겪는 이 진통이 오히려 부럽다. 이 부러움은 다른 질문으로 확장된다. 효율과 이윤추구의 목소리만이 가득한 우리 사회는 통일을 빛으로 만들 수 있을까. 토건에 목숨 걸고, 용산 철거민, 감원에 항의하는 비정규직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이 정부가 과연 북한 주민들을 어떻게 취급할까? 물을 필요도 없는 우문이다.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사는 우리에게 독일의 진통은 많은 성찰을 제공한다.
"역사란 얼마나 욕심덩어리 이기주의자인 것인지. 역사는 가장 평범한 진리를 가르쳐주는 대가로 가장 가혹한 일들을 겪게 해준다. 문득 인생의 시간을 잘못된 곳에서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251쪽)
우연이 조금만 반짝인다면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지만 지난해 같은 경우를 봐. 나한테만 많은 일이 일어난 게 아니고 다른 사람 모두가 그랬어. 그러면 빛이 나는 거야. 그리고 그 빛은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아주 밝은 빛이 될 거야. (7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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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이야기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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