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사람의 인생 서민의 정치를 취하고자 하는 그의 철학이 그의 삶에서 느껴진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숨 가쁘게 살아오다 돌아보니 어느덧 나도 오십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살아갈 세월이 살아온 세월보다 이젠 더 짧은 것이다. " 어느덧이라는 문구에 잠시 멈춘다. 그의 삶에서 고난과 아픔을 보게 된다. 그는 지금도 열정이 꺼지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본다. " 유년 시절, 청장년 시절의 변방 인생이 아직도 내 삶의 존재 방식에 영향을 끼치고 있어 이제 그 고통스러운 변방을 탈피하여 나머지 내 인생을 중심세계로 옮겨 새로운 방식으로 더욱 더 열심히 살아보고자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즉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자신의 정신사를 정리한 책이 바로 변방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고마운 이들을 말하고 있다. 그의 부모들이다. 변방을 읽다보면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할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 가장 고마운 분으로 말하고 있다. 아버지 때문에 유년시절이 불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유년시절을 그의 삶을 지탱하는 초석으로 말하고 있다. 그 시절의 고난이 자신을 이끌 수 있는 힘을 길렀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어머니다. 어머니에게 한없는 애정과 사랑을 보낸다.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도 어머니는 묵묵히 자식과 가정의 평화를 지켜갔다. 그곳에서 인내를 배우게 되었다. 이후 아내, 자식, 주목할 것은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그렇다 . 감사할 줄 아는 자신이 있기에 감사가 빛나는 것이다. 비롯 변방의 인생을 끝날 수 있지만 자신의 고통을 환희로 승화하는 인내와 열정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자신의 열정을 발휘하는 홍 위원장 그러나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혼돈의 시절을 보냈는지 모른다. 무엇하나 잘 나가지(?)못했다. 가정, 학력, 고시, 그의 삶의 방향은 순탄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양심은 항상 신선했다. 정의를 위한 열정 또한 남달랐다. 유신정권, 이 후에의 정치적인 행보는 그의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힘든 세월이었다. 정치는 믿음에서 열매를 맺는다 상생의 모습보다는 당파의 유익과 이익을 앞세운 정치적인 모습에서 그는 다시한번 아픔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변방의 인생이 중심으로의 자리에 있기까지 그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는다. 자신을 지탱하였던 시절에서 그는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였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야기가 많다. 그의 삶의 모습에서 진솔함을 느끼지만 당파와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심화된 시점에서 자신의 합리적인 정치 스토리를 많이 보여준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치에서 정의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국민들이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 또한 한 국민으로써 애국심을 발휘할 것이다. 홍준표의 변방 변방의 인생에서 중심의 인생으로 살아갔던 시절을 잊지 않고 우리에게 다시금 희망의 메세지를 주고자 하는 초심에 감사한다. 중심을 꿈꾸며 살았기에 힘들었던 자리에서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이 우리들에게 지금 필요하다. 그러한 국민의 요구를 알았기에 그는 여러가지 평가속에서도 이 책을 집필하고 편찬했다. 감사한다. 이책에서 정치적인 안목보다는 본인은 삶의 변방을 함께 공유했으며 꿈을 나누며 꿈을 이루고자 하는 그의 모습에 감사를 드린다. |
|
지난 연말 외국에서 온 손님과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외국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는 분이라 자연스레 건강과 태권도가 화제 거리가 되었다. 이야기 도중 홍준표 의원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어릴 적에 대구의 어느 도장에서 동문수학한 후배라 한다. 몇 십년이 흐른 지난 해 어느 태권도 행사장에서 두 분이 조우를 했다 한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 옛일을 떠올리며 추억을 이야기 했다한다. 홍준표 의원은 현재 우리나라 태권도협회장이다. 마침 홍준표 의원이 쓴 『변방』이란 책을 읽고 있던 차라 이 책이 매우 뜻 깊은 책이라는 생각에 이튿날 정동진으로 가는 길에 선물하였다. 정동진(正東津)은 강원도 강릉의 바닷가의 해돋이 명소로 알려져 있다. 정동진이라는 명칭은 한양의 광화문에서 정동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모래시계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나중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하면서 비행기 안에서 그 책을 읽었다는 얘기를 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며칠동안 홍준표와 함께 산 느낌이 들었다. 홍준표라 하면 으레 모래시계, 정동진, 검사, 태권도를 떠올리게 된다. 『변방』은 홍준표의 에세이집으로 형설라이프에서 출판했다. 『변방』은 국회의원인 홍준표의 유년 시절과 청장년 시절, 검사시절 등 홍준표가 살아온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자서전이다. 『변방』은 어렵고 힘들었던 고통과 혼돈의 유년시절, 이 땅에 정의를 심고자하는 열정으로 산 청장년 시절의 검사, 그리고 국민을 위한 열정으로 산 국회의원 시절 등 어렵고 힘든 변방을 빙빙 돌다가 중심세력으로 등장한 이야기를 여과 없이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전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다 그렇듯이 홍준표의원도 고생을 참 많이 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는 국민(초등)학교 6년을 다니면서 다섯 번이나 전학을 했다. 정들만 하면 이사를 해서 초등학교 친구도 없다. 그는 중학교는 대구로 유학(?)을 했다. 일년 전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의 직물공장에 취직한 작은 누나가 있는 내당동의 월세방에 거처를 정했다. 주인아줌마가 얼마나 표독스러웠다 한다.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면서 밤 10시 이전에 불을 끄라고 하여 방문에 홑이불을 걸쳐 놓고 공부를 했다 한다. 당시에는 그 여주인뿐만 아니라 다른 집도 그런 생활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느끼기에는 그 여주인의 전기감시가 유독 심했던 모양이다. 그는 점심시간엔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 한다. 1학기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한 뒤부터 친구가 늘면서 학교생활이 즐거웠다고 한다. 그러한 생활을 하다가 1972년 3월 고려대 법대에 합격하여 입학금을 빚을 내어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고대에 입학하여 가정교사 생활을 했다. 비싼 등록금으로 이게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는 2학년 등록을 포기한다. 이후 그는 사법시험을 준비하기위해 대구근교에 있는 도덕암에서 고시준비를 했다. 하루 15시간 책만 보았지만 만만치 않은 생활이라 그해 여름, 고시생활을 포기하고 시골로 귀향한다. 그런데, 작은 누나가 학비를 대 주겠다며 복학을 권유하여 1974년 3월 복학을 한다. 이후 시골집이 불타 울산으로 이사를 하고 아버지는 현대조선소 임시직 야간 경비원으로, 여동생과 작은 누나도 이 공장에 다니는 것을 보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한다. 1974년은 유신반대 데모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8시간이나 조사받은 일, 하숙집에서 밤낮으로 고시공부에 매달리다 이듬해 1차에 합격했지만 2차에 낙방하면서 이후 6년간 그는 사법시험의 인질이 되어 1982년 사시에 합격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도 어쩔 수 없었는가 보다. 1976년 4월, 국민은행 안암동지점에 근무하는 아가씨에게 프로포즈를 하면서 시작한 연애생활이 재미있다. 1980년 4월, 4급 판정을 받고 방위소집으로 14개월 군복무를 한 생활, 제대후에는 연합철강에 근무하다가 다시 고시 공부를 하여 1982년 사시에 합격하고 고대 교우회관에서 단출한 결혼식과 봉천 7동 지하 단칸방의 꿈같은 신혼생활을 사실대로 그려 내고 있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신으로 근무한 검사생활이 감동적이다. 이후 법무부장관의 사돈을 구속하면서 이후 10년간 그는 승진인사에서 늘 소외되었던 일,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사건 등을 맡아 강단 있게 처리하자 검찰내부에서도 통제불가능이라는 인물로 낙인찍히고, 파친코 수사를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검찰내부에서 그를 왕따시키자 그는 검사직을 내팽개치고 후배 변호사 사무실에서 더부살이로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된다. 96년 1월에 김영삼 대통령 측근의 제의로 여당에 입당하면서 송파갑에서 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과 함께 선량으로 생활을 하게 되었음을 여과 없이 소개하고 있다. 홍준표의원이 변방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이 변방에서 국가의 중심세력이 되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에서 그는 가난했던 자신의 유년과 청장년 시절을 '변방 인생'으로 규정하면서 "내가 변방에서 중심으로 가기 위해 노력했듯 이젠 내 나라가 변방에서 중심으로 가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할 때"라면서 세계의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나가자고 한다. 이 책의 요지인 '중심국가론'이다. 그의 그러한 정신을 볼 수 있는 대목은 "나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은 선진강국 시대로 보는 것이다. 통일 시대로 가기 위한 전 단계로 선진강국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한국사회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235쪽) 이다. 세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 그는 정치적으로 대립과 투쟁을 탈피하고 공존과 협력의 시대를 열며, 경제적으로는 경제의 세계화 추구, 사회적으로 법치주의 확립, 복지는 일자리 창출과 교육기회의 균등, 외교는 자주외교를 통해 우리도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 국가로 우뚝 설 것을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모래시계 검사라 한다. 자신을 유명인사로 만든 드라마인 '모래시계'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책에서 "그것은 나에겐 멍에와 같다. 이 드라마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나머지 세월도 주인공 캐릭터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설명했다. 어느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대한민국의 군기반장을 하고 싶다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세탁하고 싶다"고 했다. 이 말에서 그는 성격도 강한 것 같고, 할 말을 하는, 까칠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언론은 그를 쓴 소리를 잘하는 의원으로 소개한다. 하지만 그는 바른 말을 하는데 자꾸 언론에서 쓴 소리라고 한다. 그의 생활신조는 화이부동과 유수부쟁선이다. 홍준표 의원은 프로필을 보면 가훈을 화이부동(和而不同), 좌우명을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라 한다. 흥미로운 가훈과 좌우명을 목표로 삼고 살지만 그 정도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나이가 70은 넘어야 할 것이라는 그의 말에 겸손함이 보인다. 홍준표 그는 어려운 가시밭길을 걸어서 현재의 위치까지 그가 말한 대로 도꼬다이로 이루어 냈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걸어온 그에게 찬사를 보낸다. 살기 어렵다고 돌아가고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은 그러한 사람들, 힘들고 자신의 형편을 초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어 본다면 큰 위안과 용기를 줄 것이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다. 이 책을 통해 변방에서 큰 꿈을 실현시켜 나가는 미래에 필요한 시대정신을 배우게 될 것이다. |
|
변방.. 누구나 듣기만 해도 좋은 느낌 보다는 왠지 촌스러운 이미지가 생각나게 하는 단어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변방이라는 단어는 환영 받지 못할것 처럼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홍준표 의원..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국회의원은 태어나서부터 금이야 옥이야 키워지며 손에 물한번 뭍히는 것도 남에 손을 빌려야 될것처럼 태어날때부터 우리와는 다른 세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와는 다른 인생이라고 일반적인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면 이 사람보다 더 고생한 사람은 없을 거라는 말을 내가 대신 해주고 싶을 정도이다. 정말 많은 노력과 많은 고생끝에 현재의 자리에 있고, 그 고생 덕분에 앞으로의 미래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만큼 엄청나게 단단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이다. 어린 시절에 우리가 생각하는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난것도 아니고 정말로 없는 집에서 항상 굶주리는 것을 밥 먹듯이 하고 점심시간만 되면 수돗가에서 물로 배를 채우던 태가 이 사람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이 내가 이제까지 국회의원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편견을 버리게 만들었다. 어려서 부터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그 옛날 힘들고 힘들다던 사법고시를 6년이라는 긴 기간동안 그것도 한 우물만 팠던 것도 아닌 이곳저곳 떠돌다가 자신이 해야 할일을 늦게나마 찾아서 시작한 공부.. 사법고시 합격후에도 어떻게 보면 정말로 편하고 둥글둥글하게 세상을 살아도 되는데.. 자신의 의지와 생각대로 남들에게 이끌리지 않고 고난의 길을 꿋꿋하게 걸었다는 것으로도 박수를 처 주고 싶다. 다른 사람들은 모래시계로만 알던 최민수의 그 오랜 친구 검사 역할을 해서 유명했던 그 인물이다. 이것 만으로도 세상을 조금 편하고 쉽게 잔머리 굴리면서 호위호식하면서 살수도 있건만 어려운 가시밭길을 걸어서 현재의 위치까지 걸어온 그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변방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물의 변두리가 아닌 중심이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변방이 있으므로 해서 중심이 생기듯이 자신의 믿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분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것이 많다고 얘기하고 싶다. 조금 어려우면 돌아가려고 하고.. 포기하려고 하는 요즘 젊은 청춘들에게 이 사람이 살아온 경험과 이 사람의 사고 방식을 배워 보라고 하고 싶을정도로 정도를 걸어온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정치하는 곳에 조금만 있어도 현재의 정치모습은 나타나지 않았을것이다. 국민을 배려하고 국민의 위한 정치가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정치.. 이런 사람들의 힘으로 세상이 조금씩이라도 변하기를 바라면서.. 현재의 자신이 힘들고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다. 이 책을 읽어보면 이제까지 자신들이 겪어던 고생은 아주 작은 고개일 뿐이라는 평정심을 줄 것이다. 이것을 힘으로 자신감으로 잃었던 힘을 찾아서 다시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
이번 대선에서 홍준표 전 경상남도지사는 거의 미치광이 수준으로 욕을 먹었다. 하지만 이는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처럼 PC들의 수작질에 가깝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PC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니까. 모든 언론과 모든 SNS와 여론이 입바른 소리만 하는 곳, 대한민국 그런 곳에서 친이도 친박도 친노도 아닌 홀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 바로 홍준표다. 웃기지도 않는 친일 프레임, 수구꼴통 프레임을 열심히 뒤집어 쓴 홍준표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책이다. 그가 결코 낡은 보수가 아닌 실제로 국민들이 뭘 바라는 지 정확하게 짚어내는데는 다 그 저력이 있다. 그 저력을 알고 싶으면 이 책을 보면 된다. |
|
변방.. 제목 참...가슴아프다... 저자는 홍준표.... 책을 다 보고 나서야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단순히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한 중진 국회의원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홍준표의원이 "변방"으로 책제목을 정한 이유를..
얼마전까지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로 있었던 홍준표위원의 자서전성격의 책이다.
책은 어린시절부터 시작된다. 흔히 말하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홍준표는 물로 점심식사를 대신했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에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생활고 덕(?)에 공부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가난으로 여러 곳으로 이사를 하고 전학을 다녔지만 가는 학교마다 전교1등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도 생기고 먹을 것도 생기고...
흔히 말하는 한량이 아버지와 지고지순한 어머니.. 그리고 공부 잘하는 아들.. 옛 드라마에서 나오는 일을 몸소 겪고 있었다. (물론 후에 드라마 "모래시계"가 제작되지만..)
대구로 중학교를 가고 또 공부도 곧잘 했지만, 가난의 굴례를 벗어날 순 없었다. 학비문제로 육사를 가길 원해서 육사에 합격도 했지만, 아버지의 억울한 경찰서행으로 검사가 되기로 하고 고대 법대에 들어간다. 그리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법고시 합격...그리고 모래시계검사...
고위층의 반대를 무시한 수사와 기소로 평생의 업으로 생각한 검사를 그만두게된 사연.. 그리고 정치를 하게되고 오늘에 이르게된 일들...
마지막 국회위원이 된 후의 일들은 개인위주로 서술하고 바라본 시각이지만 현대사를 압축요약해서 본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자서전을 좋아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보고 배우고 또 리프레쉬할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도 자서전이란 형식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큰 만족을 줄 것이다.
|
|
SBS에서 방영하였던 [모래시계]라는 드라마는 정말이지 그 인기가 대단하였다. 나도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 중의 하나였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검사직의 배경이 바로 이 책의 저자 홍준표 의원인 줄은 미처 몰랐다. 실제로 홍준표 의원은 드라마의 유명세로 더욱 유명해 졌다고들 하는데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금시초문이었고, [변방]이란 책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기에 놀라움과 함께 나 자신이 정치에 관심이 없음이 탄로난 것 같은 기분에 창피함이 느껴졌다. |
|
홍준표 그의 삶의 여정을 들여다 본다. 어릴때의 가난한 삶. 부모님의 결혼때 부터다. 어머니의 외가의 경제적 부가 있었지만 그로 인해 아버지는 재산을 받았지만 떠도는 방량기와 한량으로 다니다 재산을 모두 탕진해 버린다. 그로 인해 부모님 누나들 여동생 이렇게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자주 이사를 다녔다.그가 초등학교때는 전학을 다섯번씩이나 했다. 그의 어릴때의 삶이 그랬다. 초등학교때 도시락을 싸갈수 없어서 매번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으로 나와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곤했다.그러면서 정말 할수 있는것은 무얼까 생각하면서 공부를 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를 한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면서 현실의 어려움 경제적인 어려움등으로 학교 또한 못다닐처지가 되었지만 정말 잘할수 있는건 공부뿐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해서 고등학교 대학을 들어간다. 대학에서도 부모님의 어려움을 보며 법대쪽으로 가려고 한다. 그래서 대학을 들어가는데 유신정권 시대에 들어서면서.힘들어진다. 사법고시를 보고 1차는 합격하지만 2차에서 떨어지면서 또다른 진로를 바꿀려하고 그러는 과정중에서 어느덧 시간이 지나면서 2차를 보고 합격의 기쁨을 맛보게 되면서 법조계의 길로 들어선다. 그 즈음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된다. 6년의 연얘를 하고서. 그러나 결혼 또한 힘들었다 . 작은 단칸방을 시작으로 그의 결혼생활이 시작되고. 그가 법조계의 시간들속에서 정의 공평 을 부르짖지만 때론 그걸로 인해 승진이란 단어에서는 밀려난다. 청주 부산 광주 서울 지방거말청 검사를 보내고 한나랑 위원장과 원내대표등 을 거치면서 그의 당당함과 정의로움 으로 그의 삶은 펼쳐져 나간다. 그가 숨가쁘게 살아오는 시간들을 보니까 정말 그가 어릴때의 가난함을 가난함과 불행함으로 불평하지 아니하고 그어려움을 겪어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부모님의 고마움을 그의 부지런한 삶으로 채워갔던거 같다. 가진자가 좀더 양보하는 세상" 가지지 못한 자에게 좀더 기회를 주는 세상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바른세상 세계 중심국가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그의 바램처럼 어느곳에 서 있든지 정의로움과 바른 양심으로 일하는 멋진 사회를 ,행복한 가정과 나라를 만들어 가는 우리네 삶이 되기를 바래 본다. 끝으로 그가 부모님 가족들 그의 자신에게 바른 마음과 사랑과 감사로 자신을 지탱해준 분들에게 감사하면서 이글을 맺었다.
|
|
처음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홍준표라는 정치인에 대해 알고 싶어서이다. 단순히 본인과 같은 홍씨라서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었다. 둘째는 정치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니라의 정치판의 내부 이야기를 알고 싶어서였다. 매일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나오는 것 외에 그 내부 이야기가 궁금한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은 왜 책 제목을 '변방'이라고 했을까 이다. 사실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은 분명 한국 사회에서 최고의 주류들의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예전 어떤 대통령이 강조했던 '난 평범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책의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린 시절 이야기, 검찰 시절 이야기, 나머지 두 장은 정치인 시절 이야기. 홍준표씨의 어린시절은 매우 어려웠던 것 같다. 책에 묘사된 내용들로 봐서는 '매우'라는 단어도 모자랄 정도로 극심하게 어렵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다. 그러한 어려운 역경을 딛고 대학에 입학하여 어렵게 고시를 패스하여 검찰의 길에 들어선다. 오래 전에 모래시계라는 드라마가 유행했었는데(본인은 드라마의 내용을 잘 모르지만..) 그 주인공이 홍준표씨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검찰 시절 불의를 못참고 여러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점차 자신이 말하는 변방의 삶을 살게 된다. 모래시계의 내용도 그러한 사건 중에 하나라는 것 같다. 검찰세계에서 변방의 길에서 벗어나고자 선택한 것이 정치인의 길. 사실 이 책을 통해 정치 내부적인 이야기를 많이 기대했지만 아직 현직 정치인으로서 있는 분이 그 내부를 모두 밝힌다는 것은 매우 힘든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요새 베스트 셀러까지 오르고 있는 노문현 전 대통령의 책들을 읽고 싶어지는 이유는 왜일까. 안타깝게도 이 책에는 노무현 정권 시절의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보수 정권의 입장에서 정치를 바라보는 견해를 다소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한 홍준표씨가 가지고 있는 변방 대한민국에서 세계의 중심의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견해도 공감한다. 훗날 정치계에서 은퇴하게 되신다면 그때는 본인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 책이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 이야기가 중심인 책을 내주시면 흥미로울 것 같다. 또 한 검찰 시절처럼 권력에 맞서 본인의 확고한 의지대로 밀어 붙이는 추진력을 정치계에서도 발휘해 주셨으면 한다. |
|
변방 사실 특정한 정치인들을 빼 놓고선 많은 정치가들에겐 관심이 없다. 홍준표님도 나의 관심 밖이었다. 정치와 정치인들은 나와는 멀었다. 그런데 <변방>이라는 책이 나오자 읽고 싶어졌고 알고 싶어졌다. 이 책은 홍준표님이 어린 시절부터 검사시절, 그리고 국회의원이 된 이야기, 현재까지의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다. 모래시계라는 유명한 드라마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얘기의 주인공이 이 책의 작가님이라는 이야기는 얼핏 들었지만 새겨 놓지는 않았던 터였다. 어려운 시대적 상황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불의에 맞서 싸웠던 검사역을 했던 주인공 얼굴과 홍준표님이 캡쳐가 되었다. 변방. 어렸을 때 정말 가난하였고, 아웃사이더였던 그는 자신의 환경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헤쳐 나가 변방에서 중앙에 진출한 사람이었다. 누구나 사람들은 자신만의 변방에서, 또 스스로 변방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로 사는 사람들도 많다. 젊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 봄으로써 어떤 정치적 색깔 보다는 인간적으로 자신의 노력으로 중앙에까지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엔 열심히 한다는 것만으로 성공하기엔 정말 힘들다.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힘든 세상이라고 한다. 물론 이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환경을 비관하고 일어설 수 없다고 판단해 버리면 지는 것이 되는 것이다. 어느 시대이든 끝까지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외줄타기처럼 바닥으로 떨어질 만큼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지만, 얼마나 내 삶에 발전 지향적인 사고를 가지고 노력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느냐에 따라 힘든 삶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음을 홍준표 의원님은 보여 주셨다. 이제 변방에서 중심에 서 계신 홍준표님이 생각하고 바라시는 대로 우리나라가 세계중심국가로 일어설 수 있도록 큰 힘을 발휘하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
|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실제 모델로 알려지고, DJ 저격수를 자처했던 4선 국회의원인 홍준표, 그의 인생은 정말 파란만장 그 자체이다.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 가며 인생과 정치에 대한 그의 회고를 통해 정의를 향한 갈등과 혼돈의 세월을 어떻게 견디어 왔는지 알아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는 국민학교 6년을 다니며 다섯 번이나 전학 다녔다. 1학년은 고향인 남지에서, 2학년은 대구 신천, 3학년은 대구 신암, 4학년은 창녕, 5 - 6학년은 합천 학남국민학교를 다녔다. 정들만 하면 이사를 해서 친구도 없다. 그의 아버지는 1914년 생으로 시골 서당을 하다가 당시 남지 갑부였던 외갓집에 데릴사위 격으로 맏딸인 어머니와 결혼하여 큰 재산을 물려 받았다. 이후 한량의 길로 접어 들어 그 많던 재산을 유흥비로 다 탕진하고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큰 술꾼이었다. 그러나, 남과 한번도 다툰 적이 없을 정도로 자기절제력이 뛰어난 분이었다.
"망아지는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한양으로 보낸다"는 말이 있듯이, 그도 중학교는 대구로 유학갔다. 일년 전 국민학교를 졸업하자 대구의 직물공장에 취직한 작은 누나의 내당동 월세방에 거처를 정했다. 표독스런 주인 아줌마의 전기사용 감시탓에 방문에 홑이불을 걸쳐 놓고 공부해야만 했다. 전기세 많이 나온다면 밤 10시 이전에 소등하라는 엄명때문이었다. 그는 점심시간엔 늘 수돗가에서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 1학기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자 친구가 늘면서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1972년 3월 고려대 법대에 합격하여 빚낸 돈을 들고 야간열차편으로 추풍령을 넘어 서울로 갔다. 그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가기 위해 대구로 갔고, 이젠 대한민국 중심으로 가고 있다. 입학후 가정교사로 학비를 벌었다. 워낙 생활고가 심한지라 이게 길이 아니다란 생각이 들어 그는 2학년 등록을 포기하고 사법시험 준비용 책을 구입하여 대구근교 도덕암으로 거처를 옮겨 고시준비에 정진했다. 하루 15시간 책만 보았다. 무척 대고 하는 공부가 만만치 않았다. 그해 여름, 그는 산사에서 철수하고 시골로 귀향했다. 농사일도 돕고, 아버지 뱃사공 일도 보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작은 누나가 학비를 자신이 부담하겠다며 복학을 권유했다. 1974년 3월 복학했다.
한편, 시골집은 뒷 집 큰 아들의 방화로 전소되는 통에 울산으로 이사했다. 울산 복산동 산골짜기 단칸 월세방을 얻어 힘겨운 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현대조선소 임시직 야간 경비원으로, 여동생과 작은 누나도 이 공장에 취직했다. 한번은 집에 들렀다가 추운 날씨에 야간 경비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숨어서 보고는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1974년은 유신반대 데모로 어수선한 시절이었다. 그해 8월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10월 교내가 또 술렁거렸다. 총단의 지하유인물 작성을 돕게 되었다. 이후 필체가 탄로나면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8시간이나 조사받고 풀려났다. 1975년 봄, 개강하자 데모 열풍이 더 거세졌다. 긴급조치 7호가 발동되던 날, 성북서로 끌려가자 하숙집 아줌마의 재치로 풀려났다. 바로 그는 도덕암으로 몸을 숨겼다. 그해 가을 하숙집에서 밤낮으로 고시공부에 매달렸다. 이듬해 1차에 합격했지만 2차에 낙방하면서 이후 6년간 그는 사법시험의 인질이 되고 말았다.
1976년 4월, 국민은행 안암동지점에 돈 찾으러 들렀다가 창구에서 달덩이같은 사람을 발견했다. 훗날 그의 아내이다. 이후 고대 앞 라면가게에서 호기좋게 프로포즈했다. "혹시 내가 좋거든 다음주 수요일까지 중앙도서관 4층 법대 도서관으로 온나" 그런데, 화답이 빨리 왔다. 월요일에 찾아 온 것이다. 둘의 연애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고시생의 연애는 고달프다. 주말마다 극장에 갔다. 그의 애인은 고맙고 착하게도 그를 대신해 울산에 계신 어머니를 매월 월급날 주말에 찾아가 주었다.
1980년 4월, 4급 판정을 받고 방위소집으로 14개월 군복무를 했다. 제대후 그해 연말까지 연합철강에 근무하다가 다시 고시병이 도졌다. 1982년 1월 퇴직하고 고대 앞 하숙집에서 친구와 함께 다시 고시를 준비했다. 시험을 치뤘지만 자신이 없었다. 나이도 있고해서 낙방을 대비해 한라자원에 응시하여 입사통지를 받았다. 파푸아뉴기니에 간다는 조건으로 9월 3일에 입사한다. 그런데, 하루전에 발표한 사시합격자에 그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해 12월 23일 고대 교우회관에서 단출한 결혼식을 가졌다. 76년에 만나 6년만에 맨손으로 결혼하여 봉천 7동 지하 단칸방에서 꿈같은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抑强扶弱"의 정신으로 검사의 길을 걸었다. 첫 부임지인 청주지방검찰청에서 법무부장관의 사돈을 구속하면서 이후 10년간 그는 승진인사에서 늘 소외되었다. 이후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사건 등을 맡아 강단있게 처리하자 검찰내부에서도 통제불가능 인물이라는 낙인을 붙여 공안부, 특수부 근처에는 얼씬 못하게 했다.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하고 전북 부안이 고향인 아내의 격려로 전라도 광주에서 검사생활을 했다. 이 지역은 조직폭력배의 두목급을 검찰, 경찰, 안기부, 보안대 등이 비호하고 있었고, 그들도 건설업자 또는 다른 사업가로 위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광주 전남지역 건설업체들은 조폭간부를 업무상무로 고용하여 위협조의 담합입찰을 주도하고 있었다. 이를 밝혀 폭력배를 건설업계에서 추방시켜 버렸다. 이후 92년 8월 서울지검 강력부로 발령되었다. 정권이 바뀐 93년 4월 파친코 수사를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그러자, 검찰내부에서 그를 왕따시켰다. 이후 일년 동안 출입기자들과 내기 바둑으로 소일했다. 검사에게 법령 손질이나 하라며 법무부로 발령나자, 그는 95년 9월 검사직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한달 뒤 11월 초, 후배 변호사 사무실 반쪽을 얻어 변호사 개업을 했다. 일선에서 물러나자 그에게 협박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내 가족의 보호가 시급함을 인지하고 제도권 복귀를 위해 정치계의 문을 노크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민주당을 뒤로 하고 김영삼 대통령 측근의 제의로 96년 1월 여당에 입당했다. 잠실 서민아파트 지역인 송파갑에 출마하여 그해 5월 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좋은 일 뒤엔 궂은 일이 생긴다. 그의 어머니는 당선후 14일만에 노환으로 사망했다. 위독했던 어머니는 자식의 선거에 지장을 준다며 아픈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지극한 모성애를 보였던 것이다.
김대중 정권의 한나라당 와해공작으로 당시 무혐의였던 선거법 위반사건의 대법원 판결 하루 전날인 99년 3월 2일, 그는 의원직 사퇴 신상발언을 하고 국회를 떠났다. 이는 사법적 책임이 아닌 관리적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였다. 다음날, 중앙일보 김상택 만평에 "DJ 저격수 가다" 라고 이 내용이 실렸다. 99년 5월초 워싱턴 국제전략문제연구소 객원 연구원 자리로 미국에서 잠시 체류했다. 이후 이회창 총재의 요청으로 동대문구 보궐선거에 나섰다. "DJ정권 심판하는 대한민국 특별검사"란 선거구호로 압승을 거두고 2001년 10월 국회로 복귀했다. 당의 요구로 저격수로 재출발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의 비리사건을 파헤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판세가 유리하게 돌아가자 이회창 총재가 김 대통령의 화해 요구를 거부하면서 병풍악몽이 되살아나게 되었다. 결국 한나라당은 병풍에 갇힌 꼴이 되고 이총재는 대선패배로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탄핵파동을 빚어면서 2004년 총선은 이상하게 돌아갔다. 선거를 한달 앞두고 방송매체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탄핵부당성을 며칠동안 집중적으로 18시간씩 편파 보도했다. 국민 여론은 한나라당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위기의 한나라당을 구원하기 위해 박근혜 대표가 나섰다. 서울 동북부 17개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이 16석을 차지하고 한나라당은 유일하게 그만 3선으로 당선했다. 17대 국회의원은 386세력이 대거 등장하면서 국회문화도 바뀌었다. 의원 전용 출입문과 전용 엘리베이터를 없엤다.
한나라당 대선 주자 경선에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3인의 후보가 나섰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박 양강체제로 굳어지자 손학규 후보가 2007년 2월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고 막히면 돌아가는 법인데 손 후보의 선택은 옳지 않아 보였다. 그도 6월 13일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다. 그는 이, 박 후보자들의 비난에 대해 서로를 감싸주는 피스메이커 역할에 충실했다. 경선에서 승리한 이명박후보가 대선에서 530만 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새로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나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은 선진강국 시대로 보는 것이다. 통일 시대로 가기 위한 전 단계로 선진강국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한국사회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235쪽) 고 말하는 그는 정치적으로는 대립과 투쟁을 탈피하고 공존과 협력의 시대를 열며, 경제적으론 경제의 세계화를 추구하고, 사회적으론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복지면에선 일자리 창출과 교육기회의 균등을, 외교면에선 자주외교를 추구하여 이젠 변방에서 벗어나 우리도 세계의 중심국가로 우뚝서자고 주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