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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능력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만족을 할까? 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떨까? 자신의 능력이나 하는 일에 만족을 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아마도 난 능력이 좀 부족한 듯 해, 내 한계는 여기까지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좋게 보면 겸손한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까지도 낮게 평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창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당신의 형상을 닮은 하나의 존재로 인간을 만드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길 “보기에 심히 좋구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냥 좋은 것이 아니라 심히 좋으시다는 것이다.
누구도 당신의 동의 없이 당신에게 열등감을 심어줄 수 없다 - 엘리너 루스벨트 살아가면서 이런 말을 한 번쯤 듣거나 혹은 스스로 생각한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넌 안 돼.” “여기까지가 한계야.” “능력이 이것밖에 없어.” 얼마나 상심이 되는 말인가. 정말 나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인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게 되고 위축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말이다. 하지만 절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만드시질 않았다. 하나님을 일컬어 전능하다(omnipotent)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언제나 강하다는 의미이다. ‘항상’을 뜻하는 omni와 ‘힘으로 가득한’을 뜻하는 potent가 합쳐진 옴니포텐트(omnipotent)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하실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세상 모든 만물은 잠재력을 갖고 태어났으며 그 이유는 모든 생명의 뿌리요 근원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잠재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가? 아니면 스스로 열등감 속에 빠져 드는가? 그 어느 누구도 당신의 동의 없이 당신에게 열등감을 심어줄 수 없으며 그것은 우리를 억누르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악한 세력의 농간일 뿐이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일부가 들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그 무한한 잠재력과 능력을 발휘하는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우리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기 위해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며,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듯이 우리의 근원이 하나님께 반드시 속해야 하는 것이다.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불쏘시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졌던 쓸데없는 것들, 가령 나는 안 돼 하는 무력감과 열등감, 혹은 나쁜 습관 등을 모두 버려야 한다. 가지치기를 하면 더욱 풍성하고 좋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에게도 가지치기가 필요한 것이다.
이미 난 실패를 겪었는데 어떡하나, 너무 늦지 않았을까 하고 염려되는가? 절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애프터서비스 정신이 투철하신 하나님은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처음 1장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고쳐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돌아와 그 분 말씀을 따라 살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상태에 달렸다. 우리를 억누르며 무겁게 덮은 뚜껑을 젖혀 버리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백으로 둔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정말 든든하지 않은가?
추종자, 몽상가, 비전가, 행동가 중 어디에 속하는가 남에게 끌려 다니는 추종자, 상상만 하는 몽상가, 상상한 내용을 종이 위에 쓰는 비전가, 비전을 행동으로 옮기는 행동가.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일까?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비전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우리 비전가가 되자. 실패하는 것이 단 한 번도 실천하지 않은 것보다 낫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자. 두려움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달란트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신령한 의무이다.
내가 뭘 잘 하는지 잘 모르겠는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가? 물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제조업자이다. 고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잘 아신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며 내 안에 있는 잠재력을 깨워 보는 것이다. 나 자신도 사실 내가 할 수 있을까 염려되기도 하고, 조금은 위축이 되었는데 이제 두려움은 없다. 나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위축은커녕 오히려 신이 난다. 무엇에 도전할까? 내가 가진 능력으로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을 돌릴까? 우리 모두 하나님 안에서 잠재력, 그 가능성을 마음껏 펼치며 승리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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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향해, 가능성을 찾아 헤매던 적이 있었다.
젊은 날의 오기라고 해도 좋았고, 무모함이라고 불러도 좋았고, 어리석다고해도 좋았다. 하지만 넘어지는 횟수가 많아지며 점점 의심소침해졌고 어느날 문득 영적 방황을 하며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난 단지 가능성을 찾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왜 신앙과 멀어질 수 밖에 없었을까?
그때 하나님에 대한 나의 감정은 분노였다.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자가 자신의 꿈이 뭉개졌다고 자신을 만든 창조자에게 반항을 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도 몰랐다. 그때 피조물이 창조자에게 취해야 하는 행동이 어떤 것이었는지 말이다. 하나님의 가능성은 이렇게 상처투성이인 나의 이십대를 돌아보게하며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다시 한번 반성하게했다. 그리고 삶 가운데 거의 잊고 살았던 나의 근원자에 대해, 겸손함에 대해 돌아보게 했다.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알기 전에 우리는 자신의 근원에 대해 알아야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식물과 동물을 지으실때 땅을 보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식물과 동물의 근원은 땅이다. 하늘의 별은 우주의 가스가 그 근원이며, 식물과 동물은 땅에서, 별은 우주를 떠나서는 바로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바로 하나님이 근원이시다. 하지만 아담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이 되었고,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부분이 회복되었으며, 또한 성령님을 보내주셔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끔 도와주신다. 우리가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령님과 소통이 매우 절실한 것이다. 날마다 성령님과의 동행함을 사모해야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존귀함과 가능성의 근원이 누구인지 인식하는 것이 바로 가능성과 잠재력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인간의 어리석은 생각과 판단과 계획으로 지금까지 일들과 꿈들이 뭉개지고, 열정을 다할 일을 찾고자 한다면 하나님 앞에 돌이켜 겸손히 무릎을 끓어야한다. 하나님의 가능성.. 얼마나 가슴 뛰게 만드는 말인가!! 우린 하나님 안에서 얼마든지 꿈꿀 수 있으며,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 그의 자녀이다. 긍지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주저 앉아 쉬고 있었던 다리에 힘을 주어 다시 한 번 일어서야겠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을 맘껏 펼치는 멋진 자녀들이 많아지길 소망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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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가능성>은 우리의 잠재력에 대해 말한다. 달란트 비유에 대해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는 달란트 비유를 통해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현재에 만족하지 말라는 말은 불만족하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현재에 안주하지 말라는 말이다.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자는 어리석다.' 머리를 쿵 맞은 느낌이였다. 나도 내 잠재력(미래의 가능성, 성장할 능력)을 다 쓰고 죽어야지. 씨앗을 봐도 숲을 생각할 수 있는 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내 능력을 믿고 다 쓰기 위해 노력해야지. 나는 그 어떤 시련도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의 잠재력은 무한으로 성장한다. 남들의 말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피조물이 아닌 창조주를 보라. 주님이 나를 만드신 의도를 생각하자. 남과 비교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 봐야 나의 진짜 잠재력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았다. ...라고 다짐하고 생각했다.(책이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세상 만물의 목적은 무엇일까?'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생각하라고, '왕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 '풍요로운 사람' 이라는 걸 깨닫고 복을 기대하라고 말한다. 잠재력을 이루는 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라고, 자신의 가치를 믿으라고,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말씀 중 하나가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인데, 나는 그 말씀으로 위로를 삼았으나 진정 믿었는지...; 이런 내 태도에 대해 '모든 일이 가능해지는 것은 우리가 믿을 때이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너희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왜 깨닫지 못하느냐.' 라고 말해 주었고, 이 밖에도 나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는 말들이 많아서 좋았다.
미래의 계획을 글로 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만 하는 것하고 글로 쓰는 것하고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획을 세우면 그 계획을 어떻게 이룰지 알려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할 수 없는 일은 없고, 모든 일에는 방법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 못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오직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답이다.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라. 자신에게 큰 일을 이룰 능력이 있다고 믿어라. 육체의 한계로 잠재력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등등
용기가 필요할 때, 자신감이 필요할 때 읽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읽고 나니, 난 정말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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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가능성 잠재력[潛在力] Potential energy -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에 숨어 있는 힘. (네이버 용어 사전) 우리는 중요한 전제 조건을 하나 내 걸어야 한다. 그것은 나에게는 다른 이에게 존재하지 않는 숨은 힘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잠재력이라 말하며 약하자, 가난한자, 병든 자들을 막론하고 어느 누구에게 존재하는 것이 잠재력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는다. 나는 약한 자이며 나는 가난하자이며 나에게는 일어설 어떠한 힘도 없다고 자학을 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식 혹은 무의식 속에서 이러한 피해 의식을 가지며 살아간다. 나에게는 가능성이 없다고 주문을 외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 그대로 인간을 창조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어느 누구 하나 똑같은 사람이 없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우리는 공장에서 생산 되는 똑같은 제품이 아니라 어느 예술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잊고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신을 평가절하 하고 있다. 최고의 걸작품에 걸맞지 않는 가능성이 없다는 믿음이 아무짝에 쓸모없는 사람으로 변하게 하기 때문이다. 마일즈 먼로의 하나님의 가능성. 평가절하 되고 넘어진 우리의 마음가짐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 원리와 이유를 찾고자 한다. 그저 그렇게 평범한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변화되어지고 그로 인해 얼마나 비범한 인생으로 바뀌어 질 수 있는지 설명한다.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 안에서 그가 원하시는 뜻을 알고 그가 원하시는 가능성이 무엇인지 이 책을 읽어 보면 자세하게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서두르시는 법이 없다. 그래서 그분의 피조물 중 처음부터 완성품으로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P23)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자신이 완벽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교만형 인간. 그리고 자신이 보잘 것 없다고 말하는 좌절형 인간. 우리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가능성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인 가능성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최고의 걸작품이 단 순간에 만들어 지는 경우는 없다. 온 힘과 노력 그리고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 내는 것이 최고의 걸작품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닌 중간 과정의 작품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 자리 그곳에서 실망할 이유가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잠재력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그러한 잠재력을 드러내야 한다. 실제적인 능력을 위해 하나님의 지혜를 쫓아야 하며, 끝없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또한 우리는 교만이라는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항상 하나님 안에 거하는 순종의 자세가 필요하다. 마일즈 먼로는 진정한 잠재력을 풀어 놓는 열쇠로 열 가지를 이야기 한다. 자신의 정체성, 기능, 목적, 자원, 환경, 그리고 잠재력의 사용, 계발, 유지, 나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법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이는 드물다. 그리고 여기서 차이가 발생한다. 결국 승리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잠재력을 굳게 믿고 행동으로 옮기는 자들의 몫이다. 자! 우리는 승리자가 될 것인가 패배자가 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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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가능성<마일즈 먼로>
가능성이란 무엇인가?
간단하다. 될수도 있고, 안될수도 있다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든 상황은 지배적으로 가능성 투성이라는 이야기다.
성경에도 가능성을 의미하는 일말에 사건이 언급된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귀신을 쫒아달라고 제자들에게 요청한다. 그간 나사렛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기대했던 아버지는 예수의 제자를 만났다는 깊은 안도감에 휩싸였다.
"소문대로라면 분명 귀신을 쫒아낼거야!"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이의 귀신들린 것으로 인해 아버지의 심적고통은 물론 이웃들의 수근거림과 모욕도 마저도 참아내야 했다.
그러나 정작 가장 가슴이 아픈 건... 그 누구도 귀신을 쫒아내 줄 능력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도 돈을 퍼준다고 해도 애걸복걸 애원을 해도 불가항력의 벽에 무력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기대와는 달리 보기좋게 제자들은 실패를 한다. 학수고대하며 숨죽이고 희망을 가졌던 아버지는 그만 희망의 끈이 희미해지는 일이었다.
결국 확실한 기대인 "확실성"을 가지고 있었던 아버지는 그만 "가능성"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예수님이 다가갔을 때 깊은 실망에 사로잡혔던 아버지는 예수에게 말한다.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마가복음 9장22절)
"하실수 있거든!!!!!!!"
결국 될수도 있고, 안될수도 있는 상황으로 순식간에 변화되었다.
허나,"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 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장 23절"
간단하다.
세상의 원리는 지극히 가능성에 집중한다.
결국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데 투자하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확실성을 강조한다.
결국 출발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맹목적 믿음이라고 착각한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 그리고 성공의 자리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일관적 행동패턴은
"자신이 이미 성공의 자리에 앉아있다고 생각하며 행동했다"라는 것이다.
그 꿈을 시각화하고 하나씩 하나씩 그려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세상에 산다. 고로 가능성의 지배속에 살아간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 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장 23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