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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포럼 모임의 주제가 자기 PR법에 관하여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본인이 되고픈 모습을 상상하며 본인을 가장 잘 PR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드는 거였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종의 목표는 다소 추상적이지만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흔히 말하듯이 모든걸 다 가지고도 가진것에 감사할 줄 몰라 불평만을 말하는 이가 있고, 모든걸 다 잃고도 불평을 모르는 행복한 이가 있다. 이걸 두고 차 신부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유지향의 삶을 살면 샹들리에가 걸려 있는 천장만 보며 살지만, 존재지향의 삶을 살면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며 살수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진정한 부는 소유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누리는 자의 것인것이다.
저자는 행복한 여덟가지의 경우를 말하고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 슬퍼하는 자, 온유한 자,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자, 자비로운 자, 마음이 깨끗한 자, 평하를 이루는 자,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자... 마음이 가난한 자가 행복할 것이라는 것은 위의 소유지향보다는 존재지향의 삶을 살면 행복하다고 말하였고, 슬퍼하는 자의 행복 선언은 롱펠로우의 시를 인용하여 말하고 있는데, 나또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흔들림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한 모습입니다. 적당한 소리를 내며 살아야 사람다운 사람이 아닐까요?' 슬픔은 모든 한계인식에서 나온다. 이 한계인식이 인간으로 하여금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고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게 한다. 적당한 흔들림과 적당한 소리가 어우러져야만이 행복하지 않을까.
'온유'와 '자비'라는 말은 비단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에서도 거론되며, 모든 인간관계의 밑바탕이 아닐까 생각한다. 온유라 함은 자신의 뜻 곧 자유의지를 접고 상대방의 뜻을 존중하여 사양하는 마음을 가리키며, 자비는 서로의 고충과 입장과 생각을 공감해 주는 것이다. 측은히 여기는 것이다. 동감과 공감은 다르다. 타인이 울면 나도 슬픈것이 동감이지만, 같이 울어줄 수 있는 것이 공감이다. 동감을 넘어서서 공감을 함께 해주는 것이 진정한 자비이며 행복할 자격이 있다. 또, 온유와 자비는 왠지 나약할것이라 생각한다. 부드러움을 통해서 강함을 드러내는 것. 가장 부드럽운 것이 가장 힘이 있으며, 가장 위대한 자이다. 이것은 바로 21세기가 요구하는 리더십 - 섬기는 리더십,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아닐까? 온유와 자비를 통해서 강함이 흐르게 하는 것. 스스로 강해지기 보다는 자신을 통해 힘이 흐르도록 유연해지는 것이 진짜 강한것임을. 마치 유년시절 읽었던 햇님과 바람처럼~
나에겐 참으로 못된 버릇이 있다. 나의 인바운더리를 너무 강하게 지키는 것이다. 아웃바운더리에는 너무나 냉정하고 관심밖이다. 나와 '다름'은 곧 '틀림'이다라고 단정 짓는 것이다. 나와 다름은 잘못된 것이 아닌데. 그렇게 나와 다른 이들을 미워하고 용서못한다 하여 아프고 병드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인데도. 2009년도 얼마남지 않았는데...그동안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미워했던 이들을 이제는 내 맘에서 비워내는 작업을 해보려한다. 비록 상대방이 퉁명스럽게 나온다 할지라도. 오늘의 내 기분을 상대방 때문에 엉망으로 만들지 말아야 하는 어떤 심리학자의 가르침대로.
서커스 공연을 보면 최고의 서커스는 응당 공중그네이다. 우리의 키를 몇배나 훌쩍 뛰어넘는 공중에서 이쪽 그네에서 저쪽 그네로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하는 이들을 보면, 파트너의 손에 모든것을 믿고 맡긴다. 이쪽 그네에서 저쪽 그네로 건너기 위해서 내가 의지하고 있던 이쪽 그네를 놓아야만이 가능하다. 내가 붙들고 있는 그네줄을 놓아야만이 가능하다. 날기 위해 잡고 있던 그네 줄을 놓아야만이 가능하다. 움켜 쥐고 있던 손을 놓고, 맡김으로써 비상을 해보자. 그러면 내가 선언하지 않아도 행복은 내 그림자가 되어서 따라 오리라.
마지막으로 서양 속담 중에 "행복은 언제나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다. 조심하라 . 불평의 문으로 행복이 새어나간다. 기억하라. 감사의 문으로 행복이 들어온다. 지금 문 밖에 내가 찾던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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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지개원리의 저자인 차동엽 신부님의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성경에 나오는 팔복에 관한 내용을 인용해 행복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데 어떤 상황이나 어려움 중에서도 행복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영국에 한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누가 보아도 행복해 보여 사람들이 물어보았다고 한다. 어르신에게 항상 밝고 즐거우신 비결을 물어보았다고 하는데 그의 대답은 아침마다 눈을 뜨면 행복과 불행 중 한가지를 선택하는데 그는 늘 행복을 선택한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참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누구나 행복을 선택하기를 바래본다. 감사는 그 자체로 행복을 증가시켜 준다. 행복은 결국 감사에 비례한다. 그러기에 각자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 이 말의 에너지가 실제 좋은 일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말 감사할 때 좋은 일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기도생활은 처음에 믿음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 믿음은 온유와 서로 따로 놀 수가 있다. 기도의 초보자는 일단 내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기 쉽다 그러다가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하느님 뜻을 따라서 기도하게 된다. 그리하여 내 뜻과 하느님의 뜻이 완전히 합치될 때 믿음과 온유는 하나가 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 또한 요즘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데 인간이 하느님께 대해 취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교회를 다니면서 팔복에 대해서 많은 설교를 통해 들었었는데 이 책의 행복하면 성공한다는 내용은 행복하고자 하는 나에게 유익한 내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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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애창 찬양 가운데 한 곡이 바로 ’팔복’입니다. 또한 그 의미를 나름대로 알아 보고 남편이랑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하고 의논도 해 봤던 주제였습니다. 그래서 이책을 발견했을 때 내심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팔복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겨서 말입니다. 우선은 프롤로그에서 언급하신 차동엽 신부님의 강력한 행복론이 참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무엇도 내 허락 없이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라는 말로 정의되는 원리입니다. 정말 불행과는 전혀 연관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원리라고나 할까 싶습니다. 불행을 허락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테니 말입니다. 또 그만큼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자신이 있다는 듯이 들렸습니다. 저자가 ’행복 교과서’라고 하는, 예수님이 선언하신 여덟 가지 행복에 관해 한 가지 한 가지를 계속 읽어 나갈 때마다 그 속에 숨겨져 있던 엄청나게 깊은 의미들을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고 ’아하! 그렇구나.’하는 감탄사를 연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주 자주 찬양을 부르고 말씀을 읽었지만 그 말씀의 의미를 정말 전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구나 하는 생각에 그 동안의 무관심을 회개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특히 ’온유한 사람들’에 대한 설명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용이었습니다. ’온유’라는 의미가 이렇게 심오한 내용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새로웠기 때문입니다. ’온유는 자신의 자유 의지를 접고 상대방, 즉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랍니다. 이것이 또한 바로 겸손이라고 합니다. 차동엽 신부님은 바로 이 온유를 인간이 하나님께 대해 취할 수 있는가장 이상적인 태도라고 말씁하십니다. 그 말씀에 참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오늘 아침에 아이들과 이야기 성경을 묵상하면서 아브라함과 롯에 관해 이야기 했었는데, 새삼 아브라함의 순종이 마음에 와 닿기도 했습니다. 정말 바로 이런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싶어서 말입니다. 참 쉬운 어투로 전혀 어렵지 않게 조목조목 잘 설명해 주신 책이었습니다. 차동엽이라는 이름에 거는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게 말입니다. 특히 단어를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의 원어로 따져서 해석하고 설명한 부분이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책 한 권이면 그래도 팔복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아는 것이 상당히 많아질 것을 확신합니다. 행복해지고 싶으시다면 예수님의 여덟 가지 행복에 대해 꼭 알아 보시길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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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라는 두 글자를 거며쥐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들... 그렇다... 그 안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누군가보다 뛰어나야 하고, 누군가보다는 먼저 선행해야만 내가 더 우위에 설 수 있고, 성공자가 되는 것이라고 입력된 우리들의 사고...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만 얻을 수 있는 '성공'이라는 두 글자를 향해서 뛰어가기엔 참 버겁고 가끔은 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못한 것만 같고, 괜시리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자괴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 순간 순간을 즐기면 '행복'인데, 그 결과에 집착하고 무엇인가에 대한 외형을 쫒다보니 내 자신에 대해 가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뛰어도 뛰어도 너무 힘든 여정인 것 같은 내 인생 길에... 행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는 것이고, 누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차동엽 신부님을 처음 책에서 만난 것은 '무지개 원리'였다.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혼란스럽고 힘들었던 인간관계 속에서 이 분께서 쓰신 원리를 통해서 나는 사람에 대한 미움이나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을 선택하지 않고, '용서'와 '포용'이라는 것을 선택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저자의 감동적인 메세지를 접하고 한동안 그 원리 속에서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했지만, 살아가면서 꾸준한 실천력이 뒷받침되지 못하여 내 마음이 다시 흐트러졌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한 번 '행복선언'이라는 책으로 흩어진 내 마음을 다시 한 번 가다듬고, 내 인생을 향해 행복은 선언할 수 있었다.
부유하지 못한 어린 시절, 자수성가하신 부모님의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독립적이고 일찍 조숙해졌던 것 같다.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한 삶으로 내 인생에서는 내 부모님대에 겪었던 이 생활에서 꼭 벗어날 거야'하는 생각을 가지고 정말 열심히 살아가며 나 자신을 향해서 채찍을 많이 가하며 살았던 나... 삼십대 중반에 접어든 나의 모습을 보면, 남들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한없이 부족한 것 같기만 하고, 왠지 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지고, 자신있고 당당한 모습과 더불어 그 반대편에 서있다.
'성공'이라는 두 글자에 다가가려고 하니, 자꾸만 '비교'라는 독을 품고 그들보다 앞서나가야만 내가 '성공'했다고 여기는 사고에 나도 젖어있었던 거다. 사람들이 원하는 '성공'이라는 두 글자에 나도 동참하여 나 자신을 괴롭히며 힘들게 하지는 않았던가... 생각해보면, 그 과정 과정에서 난 감사하고 행복함을 누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성공'이라는 두 글자 앞에 그동안 쌓았던 내 행복과 감사함을 무너뜨린 것 같아 내 자신에게 미안했다. 내 스스로 나 자신을 인정해주지 못한 면에 대해서 내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그동안 열심히 뛰느라 고생했던 내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또한 내가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서도 난 행복을 선택하고 감사함을 선택하고, 그 다음 과정에 대해서 계획하고 준비했던 나의 모습에 더 많은 지지를 보내야 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다.
책 속에서 들려오는 행복하라의 메세지 속에서 나는 그동안 내가 힘들어했던 신앙의 문제를 꺼내볼 수 있었다. 영적인 방황을 겪고 있는 나에게 신앙은 회의와 실망과 상처로 얼룩져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하나님은... 내가 알고 있던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나....내가 왜 방황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침묵하며 바라보게 되었다. 신앙공동체에서 나는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자신이 상처를 받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의지하려고 했던 나를 예수님께서 도와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골이 나있었던 거다. 난 열심히 믿었는데, 난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했는데, 난 외로웠고 힘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내게 상처주었던 많은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등지고 화내며 살았던 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내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는데, 읽는 중간중간에 바보같이 펑펑 울고 말았다. '성공'을 위해 적극적이고 열심을 부렸던 내 자신의 힘겨웠던 달음질, 하나님을 떠나서 더 힘들고 외롭게 살아가면서 돌아오기 망설였던 내 모습이 생각나서 눈물이 나왔다. 행복은 항상 내 옆에 있었고, 그 행복을 누리면서도 나는 항상 소위 남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두 글자 앞에 내 자신을 외롭고 힘든 달음질을 시켰고, 남들에 비해 못난 사람으로 만들고 말았던 거다.
'행복'은 내가 성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내가 '성공'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내 눈을 적시고 가슴을 끓어오르게 했다. 그 반대로 살았던 내 자신으로 인해 외롭고 힘들었던 내면의 나에게 용서를 구해야 겠다. 순간 순간 행복하고, 감사했던 시간들, 그리고 앞으로도 내게 펼쳐질 행복함과 감사의 제목들을 생각하니 세상에서 이미 나는 '성공'한 사람이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행복할 내 삶을 주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진정한 '행복'을 누리면서 나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믿고, 소망하며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어본다. 마지막으로 가장 포근한 엄마의 품 안에 있는 아기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내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차동엽 신부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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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도 내 허락 없이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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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공의 지혜를 안내하는 대표적 책을 꼽으라면 ‘탈무드’가 단연 선택된다. 최근들어 자기개발서류의 출판이 늘다보니 기존의 몇몇 책들과 닮아있는것을 느낀다. 전체적인 내용은 여러 자기 개발서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책 『행복선언』만의 차별화된 부분이라면 예수의 2000년 전 가르침을 21세기의 언어로 풀어 행복을 전한다는 점으로 이를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는 점이다.
차동엽 신부님을 알게 된것은 전작인 '무지개 원리'였다. 1981년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후 가슴에 품은 뜻이 있어, 서울 가톨릭대학교 신학부에 입학 후 사제로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는 인천교구 기획관으로 봉사하는 신부이다. 그는 하는 일마다 잘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행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는 것, 누리는 것이다." 예수가 전한 행복에 이르는 8가지 길을 소개하고 있다.
1. 소유하지말고 누려라. 자기의 가진 것에 감사하고 마음껏 누려라. 2. 내 안의 감정을 숨기지 말고 발산하라. 슬품에는 울음이 명약이다. 3. 온유를 통해 힘이 흐르게 하라. 4. 고상한 가치를 추구해라. 따뜻한 가슴으로 의를 추구하라. 5. 자비심으로 가진 것 나누고 용서해라. 선행하면 행복하다. 6. 속에 품은대로 이루어진다. 7. 현재 자신이 누리는 평화보다 더 높은 차원의 평화를 구하라. 8. 고통에 사랑을 담아 바쳐라. 열정을 갖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갈망한다. 또 성공을 추구한다. 이로 인해 각종 처세술 관련 책들이 넘쳐나고 또 베스트셀러 대열에도 심심찮게 포함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성공과 행복을 얻는 방법 중 일부분의 이론과 실천을 담아내는 수준에 머문다. 차신부는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는 우선 전인적인 자기계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바로 전인적인 자기 계발을 위한 지침서라고 평하고 싶다. 진리와 함께 행복의 근본적인 부분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실천하고 행복의 근원을 찾기 원한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것으로 생각되는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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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선언 행복이 만연한 곳, 그 곳으로의 안내 <무지개원리>의 저자 차동엽 신부의 행복안내서.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법은 모두 다르다, 행복이라 여기는 것도 다르다. 하지만 행복이란 감정을 느낀다. 우린 모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모두 다르게 만드셨다. 그래서 서로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이 책은 하느님의 말씀을 저자는 우리에게 알려주면서 행복을 전파하고 있다. 보고 있으면 왠지 난 무척이나 행복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지상 낙원에 산책을 다녀온 기분이다. 돈, 명예, 권력,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는 모두 다르다. 부자가 되야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사람들에게 신망과 유명세가 있어야 행복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막강한 파워를 가진 권력의 중심에 서 있어야 비로소 성공하는 것이며,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정답은 없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고, 결정하며, 삶을 살아간다. 돈만 추구한다고 그 사람을 비하하고 폄하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는 당신과 다른 사람이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행복은 무엇인가요? 행복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저자는 “ 행복하여라 ” 라고 말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외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외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세상 모든 사람들은 행복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으로 인해 행복을 얻는다. 행복의 마음을 얻는다. 솔직히 난 행복하다고 할 수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적어도 난 내 일을 할 때와 가족들과,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있을때 행복하다. 하지만 난 불행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생활해야한다는 것,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다는 사실, 어떤 일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기에.. 난 불행하다고도 말 할수 있다.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그 순간순간을 잘 넘기기만 하면되고, 그 시간을 잘 참아내면 더 큰 기쁨으로 돌아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리광을 차동엽 신부님은 모두 받아주신다. 우리의 하느님은 모두 받아주신다. 한국인은 모두 불안불감증에 시달린다. 국지정 평화의 균열,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어떠한가? 여기서 신부님이 말하시고 예수님께서 말하신 뜻을 알 수 있다. 책에서 말한 8가지 행복 중에서 가난, 슬퍼함, 온유. 모두가 믿음의 에너지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나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무게가 옮겨감을 말한다고 한다. ‘가난’은 자신 안에서 찾았던 풍요를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지혜이다.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 모두 믿음으로 든든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본문중에서 행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는 것이고, 누리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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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 마 5:3~ 10
주일학교 시절부터 외우고 외웠던 문구가 예수님이 산에 올라 말씀하셨다는, 산상수훈, 팔복에 관한 말씀이였다. 이 긴 문구를 외우면 사탕을 하나 주셨고, 그 재미로 동생 손을 꼭 잡고 예배당에 가서 8복을 작은 입으로 외웠었다. 그뜻도 모르고, 사탕 하나에 외우고 또 외우고. 어떤것이 애통하는 것인지, 심령이 가난하고, 의에 주린것인지조차 모른체, 그렇게 외우던 문구들이 어느날 부터 내게 다가왔다. 목놓아 하나님을 찾아 울면서 이것이 애통하는것이구나, 그래서 주님이 위로를 해주시는구나를 알았고, 너무나 주님이 보고픈, 그 심령이 가난함으로 천국이 보이는것을 알았다. 그 시간이 어른시절 사탕 하나로 부터 시작이 되었는지, 아님, 어른이 되어 삶을 돌아보면서 알게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렵고 어려운 이야기. 산상수훈. 언제나 들어도 가슴으로 와닿을듯 힘든 말씀들. 이 8복을 <행복선언>에서 다루고 있다. 천주교인이 아니라, 읽으면서 기독교와 다른 이름과, 처음 접하는 외경으로 인해서 갸우뚱 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진리가 아니었던가. 그 진리의 말씀을 찾는 재미가 솔솔하다. 어쩜 이렇게 8가지의 8복을 가지고 이야기 해주실것이 많은지... 그러니 신부님이시겠지만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쓴 글이다. 왜 그런지, 초등학교때 알수 없었던 그 이야기들을 차동엽 신부님은 풀어주고 계신다. 하나하나의 복을 이야기하면서 원전의 어원을 이야기해주고 있고, 그 어원을 통한 복의 근원을 이야기해주고 계시고, 복의 영성과 함께, 매일의 행복공감을 통해서 다시한번 8복을 이야기해주고 계시다.
Happen이 어원이라는 Happiness.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는 것이고 누리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 작은 이야기들 하나 하나가 내 마움을 울린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이야기뿐 아니라, 간디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 자신을 다스려본다. 너무나 위대한 멘토이신 예수님을 뵈면서 말이다.
"성경 속에 있는 예수는 두고, 당신들이 만든 예수만 가져가시오. 내가 볼때 당신들이 말하는 예수는 당신들이 만든 예수지. 성경 속의 예수가 아니오."
오로지 성경속 예수님.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길 원한다. 나의 유일하신 멘토, 우리 주님을 통해서 주님이 말씀하신 팔복이 내게 임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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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愛)으로 희열의 행복을 누리라.
뿌리깊은 희망과 무지개원리를 통해서 차동엽신부를 알게 되었다. 난 종교가 없지만 좋은 책이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책이어서 읽게 되었고 좋은 가르침도 받았다. 행복선언 역시나 행복하면 성공하게 되고 행복하지 않다면 긍정적인 생각으로 항상 행복할수 있는 바람을 가질수 있기를...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려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기 때문에 소유하려 하지 말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라. 진정한 부는 소유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누리는 자의 것이기 때문에 아등바등하며 인생을 허비하며 살 필요가 있을까?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등 입에 달고 살리라.
인생은 호강만 하고 고생을 모르면 삶의 진짜 기쁨을 알지 못할 것이며 희망도 모를 것이다. 역경이나 고통속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진취적으로 도전한다면 새로운 삶의 희망속에서 기쁨을 찾을수 있으리라.
요즘 사람들은 강하지만 난 온유한 편에 속한다. 강한 자가 되는 길만이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며 자신을 통해 힘이 흐르도록 유연해지도록 온유를 통해서 강함을 흐르게 하는 것이야 말로 강한자가 될수 있으리라.
요즘 자신의 몫을 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의’의 기준도 사람의 인식수준과 이해력, 문화의 발달에 따라서 업그레이드 되어가고 있다. 나 스스로 의로움을 추구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리라.
자비는 ‘남을 심판하지 말고, 용서하며, 아낌없이 주어라’라는 말을 의미하며 마음이 생각한 대로 행동하여야 하며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베풀어서는 안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조건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적선이 아니며 어느 입장에서건 ‘공감’할수 있는 행동이어야 할 것이다.
‘냅둬. 이왕 베린 몸 나는 이대로 살텨!’ 체념이나 넋두리의 한마디 쯤으로 생각되며 들어본적이 있으리라. 사람이 아무리 깨끗하다 하더라도 순수 앞에서는 절대 깨끗하지 않다고 하니 침묵 고요 집중속에서 영으로의 깨끗함이 무엇인지 알아보리라.
자신 안에서 찾았던 풍요를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지혜인 “가난”과 자신에게서 찾았던 위로를 하느님 품에서 발견하려는 부르짖음은 “슬퍼함”이며, 자신의 뜻을 이루려 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려는 맡김은 “온유” 이 세가지는 믿음의 에너지라 한다. ‘의’에 주리고 목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추구하고 갈망하는 기운이며, '자비‘를 베푸는 것도 적극적인 성취의 태도이며, ’마음의 깨끗함‘도 부단히 갈고 닦는 노력을 요하는 일이며, ’평화‘를 이루는 것도 현장에로의 투신을 요구하는 소망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수 있다.
사랑을 품으라. 어떤 허물도 덮어주고 어떤 상처도 치유하고 어떤 난관도 이겨 낸다. 사랑는 포기를 모른다. 이것이 사랑(愛)의 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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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
「 무지개원리 」, 「 행복선언 」의 저자이다 서울대 공과대학을 졸업, 서울 가톨릭 대학을 나와, 현재 인천가톨릭 대학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행복선언에서는 8가지 행복의 원리를 담고 있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
이 책은 가볍기도 해서 읽기에 정말 편할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예화들도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할 것들이 참 많아진 것 같았다
도대체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단순히 성공한다고만 해서 행복해 지는 것일까?? 행복뒤에는 무수히 많은 슬픔들이 존재하고 있기 마련일텐데 말이다 사람들에게 당신은 행복하세요?라고 물어보았을 때 "난 정말 행복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이 책은 성경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책을 별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가난은 절대적 극빈상태라고 정의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주님께 의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 시 62:1~2 이 성경구절은 다윗이 고백한 노래중의 한 부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중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 행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는 것이고 누리는 것이다 " 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 이 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롬 8:26
이렇듯이 우리의 주님은 우리가 슬프고, 외로워도 항상 우리 곁에 함께 하시고 위로해 주신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온유라는 뜻이 무엇인지 아는 가? 나도 솔직히 온유라는 뜻을 잘 알지도 못했고 온유한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도 잘 몰랐었다 온유 = 하나님의 뜻, 계획, 섭리를 받아 들이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마 11:28~29
마음이 깨끗한 사람 =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한다 깨끗한 것들을 가질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일단 자신의 죄들을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평화, 샬롬이라고도 불리운다 샬롬이라는 것은 그냥 환영한다는 의미로만 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뜻이 숨어 있었다 죄나 허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 환경적인 안전, 태평성대를 등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이라고 한다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 눅 2:14 이 성경말씀을 기억하는 가?? 모든 것에 평화가 깃들면 모든 것이 자유로울텐데 말이다
언제나 행복함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8가지 행복의 원리를 통해 주님이 말씀하신 성경구절을 통해서 다시한번 깨닫게 된 것 같았으며 힘들고 어려운 일 이 있을 때 마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이 써서 그런지 우리가 알고 있던 성경구절과는 많이 다른 점도 있어서 그것을 직접 찾아야만 했다 언제나 행복함을 누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