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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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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세계 곳곳에서 죽었던 시체들이 되살아나 걸어다닌다면?? 어느 날 문득, 내 심장이 뛰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멀쩡히 사람들 속에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작가는 그 기발한 상상력으로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그리고 그 경계에 머무른 자들로 얽고 설키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뭐.. 다른 건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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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세계 곳곳에서 죽었던 시체들이 되살아나 걸어다닌다면??

어느 날 문득, 내 심장이 뛰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멀쩡히 사람들 속에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작가는 그 기발한 상상력으로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그리고 그 경계에 머무른 자들로 얽고 설키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뭐.. 다른 건 모르겠고.. 주인공 가족들이 장례식장과 장례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쪽으로 관심이 많이 갔는데, 예전에.. 보았던 <굿바이>라는 일본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 속 주인공이 장의사가 되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아름답게 꾸미는 게 꽤 인상적이여서..

나도 언젠가 죽게 된다면.. 일본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싶다.

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엠마버, 제임스..

 

'엠마밍'

고인을 살아 생전의 모습으로 다시 꾸며서.. 장례식에 오는 지인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게끔 인사를 하게 도와주는 일인데.. 우리의 수의 입힌 모습보다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고인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이나 생전에 좋아했던 옷을 입혀주고, 이쁘게 또는 멋있게 화장해서 보기 좋은 모습으로 인사할 수 있게 하는 게 나는 좀더 나은 것 같다.

 

예전에 아빠 돌아가셨을 때.. 화장터에 가기 전에 수의 입으신 모습을 마지막으로 봤었는데.. 지금도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수의 입고 반듯하게 누워 계신 모습인지라.. 그 모습보다는 아빠가 평상시 입으셨던 옷을 입고 계신 게 낫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도.. <연애소설>에서의 수인이처럼.. 나중 나중에.. 내 장례식을 치를 때는.. 이쁜 옷 입고 관에 들어가서 남은 이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인사를 하고 싶다. 

이쁘게 안녕!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 

 

 

 

 

p.25

그린Grin이라는 남자의 이름은 물론 별명이었다. 사실은 프랜시스 발리콘이라는 지나치게 번듯한 이름이 있지만, 런던의 악동패거리들이 그를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사후경직으로 얼굴이 굳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근육이 풀려 시체는 웃는 얼굴이 된다. 어느 작가는 이를 가리켜 '아이보리 그린'이라고 표현했다. 패거리들은 이 오싹한 표현을 빌려 동양의 피가 섞인 상아색 피부에 조소를 띤 얼굴로 '내가 죽으면'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기묘한 친구를 '그린'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p.147

"그래. 메멘토 모리. 종교용어인데 말이다, '그대 죽어야 할 존재임을 잊지 말라'라는 뜻이란다. 옛날에는 상아로 만든 해골조각 같은 것에 이 문구를 새겨 장식해놓고 늘 죽음을 염두해 두었지."

 

p.309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그러면 죽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살아 있는 놈들도 다들 그렇잖아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죠. 궁전에서 와인을 들이켜는 임금님도,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먹이는 형씨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인간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절망을 잊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거죠. 일이든 스포츠든 놀이든……. 살아 있다는 건 결국 죄다 기분 전환 아니겠어요?"

 

p.636

"우리도 다들 마찬가지일세. 삶과 죽음은 표리일체表裏一體. 삶을 생각하는 일은 죽음을 생각하는 일,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삶을 생각하는 일. 우리도 다들 살아 있는 시체라네. 되살아난 시체들은 중세의 트란지 입상처럼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게야. 삶과 현세에 아무리 집착한들 언젠가는 이렇게 티끌이 되고 만다고 말일세. 이게 바로 20세기의 '메멘토 모리' 아니겠나. 우리 모두 집행유예 중인 시체에 지나지 않는다네."

 

 

 

YES마니아 : 로얄 j*******7 2012.03.05. 신고 공감 3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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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현학적 말솜씨가 빛나는 슬랩스틱 미스테리
"작가의 현학적 말솜씨가 빛나는 슬랩스틱 미스테리" 내용보기
푸하하, 아무리 진지하게 죽음을 고찰한다고 해도 작가는 너무 웃겼다. 원래는 그 책에 포함된게 아니지만 해설이 좋아서 번역판 [쌍두의 악마]에 들어간, 말투를 보고 내심 짐작을 했지만 말이다. 아무리 체셔고양이의 웃는 모습이 들어간 명함이나 엘러리 퀸의 [네럴란드 구두의 비밀]이나 아름다운 부인은 없을지라도, 야마구치 마사야의 재능은 빛난다.   뉴잉글랜드인터라 아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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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 아무리 진지하게 죽음을 고찰한다고 해도 작가는 너무 웃겼다. 원래는 그 책에 포함된게 아니지만 해설이 좋아서 번역판 [쌍두의 악마]에 들어간, 말투를 보고 내심 짐작을 했지만 말이다. 아무리 체셔고양이의 웃는 모습이 들어간 명함이나 엘러리 퀸의 [네럴란드 구두의 비밀]이나 아름다운 부인은 없을지라도, 야마구치 마사야의 재능은 빛난다.

 

뉴잉글랜드인터라 아무래도 청교도의 영향력이 있을만 하지만, 작가가 설득력있게 설명한터라 작가가 만들어놓은 교묘하게 종교의 영향이 부재한듯 하면서도 묘하게 관련 인물들에 의해 남겨진 툼스빌 마을, 영국에서부터 장의사의 피와 재능이 살아있는 발리콘가의 펑크청년 그린 (Grin)은, 임종전인 할아버지 스마일리의 재산을 놓고 그리고 발리콘가문의 향후 방향을 놓고 가족들모두 각기 무언가 전력투구하던가 완전 무관심하던가 하는 가운데 죽고만다. 할아버지에게 선물한 큰아버지의 정부 이사벨라가 사온 초콜렛을 먹고서. 하지만, 개체의 죽음이 종의 멸종을 막는다는 스마일리의 강한 믿음을 비웃기라도 한듯, 전세계적으로 죽은 자는 다시 살아돌아오고, 그린 또한 다시 살아난다.

 

피해자의 사체를 놓고 미세한 증거물이라도 얻어내 범인을 잡기위한 CSI 프로그램이 아니라도, 구두 300켤레 이상이 닳도록 뛰어다닌 경찰이 아니라도, 범인을 잡아 정의를 실현하든 아님 궁금함을 해소하기 위함이라도 '피해자가 살아나 범인이 누구인지 말해준다면 좋을텐데...'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의 입이 무안하게 시리, 다시 살아난 그린은 당최 범인을 잡아낼 수가 없다.

 

 

...죽은자보다 산자가 우선입니다. 사회는 역시 산자를 위해 존재하고 산자가 자신들의 형편을 수선시하며 죽은 자를 지배하는 구조인 겁니다.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다로 죽어버리면 산 자들의 지배와 평가를 감수해야만 하죠. 죽음이란 죽은자들의 자기 평가를 누르고 산 자들의 관점이 승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산자들은 죽음이 꺼림칙한 패배라는 사실을 알고있어요. ...살아있는 자들은 평소에는 죽은자들을 잊고지내다가 1년중 특별한 날...성묘를 옵니다..휴가를 겸하고 있어요...두려운 죽음을 잊고지내지요....p.108~109

 

 

...우리는 텔레비젼이라는 작은 상자를 통해서 바햐흐로 인류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빈번한 대량의 죽음을 접하고 있지. 하루가 멀다하고 말이야. 이런 상황 아래서 죽음은 점점 허구로 변해가지. 사람들은 '죽음'을 텔레비젼이라는 판도라의 상자 속에 은폐했고, 비참하기 짝이 없는 시쳬와 상큼한 미녀가 광고하는 세계가 마치 같은 제품인 것처럼 감은 화면 속에 나란히 놓이게 되는 게야....반대로 감성이 예민한 사람은 방어태세를 갖출 수 밖에 없지 않게느냐? 즉 그들은 마비되고 마는게야. 그렇게 현대인들은 매일 같이 죽음을 바라보기는 하지만, 죽음은 생각하지는 않게되지...p.150

 

 

맞다. 작가는 이러한 진지한 고찰을 하는 와중에, 등장인물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들을 통해 한번 꼰다. 요즘만큼 TV에서 죽음이 넘쳐나는 적이 있었던가? 거의 많은 미드들은 추리를 다루고, 한편의 에피소드 마다 적어도 하나의 시체는 나오고, 이들은 슬로우건 비트가 강하건 간에 음악이 흐르는 와중에 부검까지 된다.

 

죽은자가 산자의 손아래 남겨지며 오히려 죽음이 부가적인 형태를 띈 현대에서, 작가는 작품 속에서 죽은 자를 살려내 여전히 산자와 죽은자를 괴롭히는 살인사건의 추리를, 평소보다 오버해서 슬랩스틱으로 해간다.

 

...살아있다는 건 결국 죄다 기분전환이지 않겠어요?

 

..스포츠의 어원이 전환하다 (disportare>disport?sports)...p.309

 

 

삶과 죽음이 혼재된 가운데의 유쾌한 코메디가 되는 것이다. 의외로 진지한 고찰을 코메디화함으로써 보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가운데, 작가는 잊지않고있던 본격추리로 끼워넣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당근 누가 죽었다고 해서 용의자에서 제외시키면 안된다. 의외로 제한된 상황에서 가능성이 없는 본격추리물의 추리패턴을 또 한번 꼬는 기발한 모습을 연출한다).

 

 

기발하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k 2010.06.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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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와 데스는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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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추리소설을 읽어본지가 꽤 오래전인 듯 싶다. 그것도 일본작가가 미국을 무대로 전혀 예상치 못한 시체들의 부활이라는 기발한 발상을 소재를 가지고 집필한 것이기에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이 갔다.  야마구치 마사야라는 분은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으로 데뷔햇는데 그때가 1989년이란다. 36살에 쓴 첫작품인데 추리소설 장르라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사색적이고 현학적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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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추리소설을 읽어본지가 꽤 오래전인 듯 싶다. 그것도 일본작가가 미국을 무대로 전혀 예상치 못한 시체들의 부활이라는 기발한 발상을 소재를 가지고 집필한 것이기에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이 갔다.

 야마구치 마사야라는 분은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으로 데뷔햇는데 그때가 1989년이란다. 36살에 쓴 첫작품인데 추리소설 장르라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사색적이고 현학적이면서도 추리요소들이 적시적소에 배치되어서 가히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깁니다.

 

 프롤로그부터 충격적인데 살인사건 현장 피가 낭자하고 살인용의자와 시체들이 보존된 장소에서 경감은 다 잡은 고기인양 거들먹 거리면서 용의자를 심문한다. 그 순간 시체가 살아나고 그 시체가 용의자를 보고 겁먹고 달아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이른바 시체가 부활하는 '시체 부활의 시대'인 것인다. 전국적으로 죽었던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 믿겨지지 않지만 믿을 수 밖에 없는 case들이 늘어나면서 원인규명에 핏대를 올리고 여러 이론들이 난무하고 있다.

 

 발리콘가의 손자 그린(프랜시스 발리콘)과 체셔는 막 여행에서 돌아와 스마일공동묘지로 돌아가는 중이다. 하딩변호사가 긴급소집을 했기때문이다. 그린은 집나온 발리콘가의 아들과 일본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인데 어렸을 적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외할머니 손에 자라다가 외할머니도 돌아가시자 정리하고 영국에서 살았는데 스마일리 할아버지의 유산상속 편지를 받고 미국으로 와서 스마일공동묘지에서 지내고 있는 중이다. 이들이 여행중에 얻은 핑크빛 영구차에는 차체에 '에로스와 데스는 형제'라는 괴이한 문구가 적혀있다. 이 문구는 이소설의 주제를 에우르는 대단히 중요한 문구이다.^^기억해두시길...

 스마일리 할아버지가 젊었을적 본처 로라를 두고 모니카와 결혼을 강행하는 과정에 로라는 자살을 하고 만다. 그리고 모니카의 쌍둥이 아이인 제임스와 제이슨 중에 제이슨은 할로윈날 어떤 놀이로 인해 성적불구가 되고 제이슨은 정신적 질환을 앓게 되며 죽게된다. 여기서 그들의 가계보를 정리해보면 스마일리의 아들은 로라의 아이가 존, 윌리엄-헬렌, 제임스, 딸 제시카가 주된인물이다. 단연 주인공은 그린이다. 그런데 정말 괴기한건 요 주인공이 가족 만찬회를 마치고 스마일리 할아버지에게 선물로 받은 초코릿 두알을 먹고 숨을 거둔다. (뜨악!!!주인공이 죽다니...주인공이 초반에 죽어버리는 허무한 소설도 있나?) 그런데 정말 몇시간 후에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살아난다. (오호~~별일일쎄) 그리고 그린은 자기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 추적하기 시작한다. 스마일리 할아버지가 유언에 수정이 있을거라고 했는데 스마일리 할아버지의 자살(?)타살(?)후 변호사는 수정은 없었다고 가족들에게 알렸다. 변호사가 돌아가기 전 존은 자신의 유언장도 작성하고 싶다고 말한다.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본인의 핏줄을 뱃속에 잉태하고 있는 이사벨라를 상속자로 하고 그 자식을 상속자로 하고 유언장을 작성한다. 이런 와중에 존이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이사벨라가 범인으로 지목받게 되는 과정에 존이 살아나게 된다. 존은 이사벨라의 범행 사실을 부인하고 윌리엄을 지목하나 윌리엄은 부인 헬렌과 함께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그 와중에 존은 차를 타고 도망치고 그린과 형사가 쫒게된다. 그 와중에 인근 주유소에서 흐르는 기름에 불이 붙고 존의 차와 엉뚱하게 폭주족 한명이 죽게 된다. 그 이후 제임스가 지배인을 맡고 범인은 누가일까라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가고 트레이시라는 형사와 허스 박사의 공조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트레이시는 제임스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다.

체포하러 제임스의 집무실에 도착한 트레이시는 제임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헥헥...스토리가 무지 복잡하고 길어서 다 옮길 수가 없다 무려 670p가 넘는 긴 분량이다. 또한 추리 소설의 스토리가 주구장창 나열되면 무슨 재미로 읽나? ㅋㅋ)

 

죽고 죽이고 누가 시체고 누가 살아 있는 사람인가 죽은 자들의 심정은 어떠하며 죽는 과정은 어떤 절차를 밟고 있으며 줄줄이 시체들이 살아나는 현실에서 일부러 힘들여 살인을 저지르는 만행은 무슨 언바러스 인가? 많은 문제점들을 뚫고 우리의 소설계 최초의 시체 주인공(내가 읽은 책에 한해서는 최초이다.) 그린이 거의 모든 퍼즐을 맞히게 됩니다.

 

이책이 굉장히 지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미국의 죽은 자들을 엠바밍하는 과정과 사후처리의 절차들과 그들의 장례문화의 형성 배경,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의 처참한 사체문제들과 잔혹성과 너무나 다양하고 잔혹한 죽음들을 대중매체에서 접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죽음'에 대해 깊이 사유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죽음의 단계는 무엇이고 어떤 마음으로 접근해야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철학적으로 고뇌하게 해준다는 되있다.

 

흔히들 현세에 웬수를 진 사람들이 하늘로 못올라고 구천을 떠도는 귀신들이 된다는데 따지고 보면 같은 논리인 것이다. 현세의 업을 왜 죽어서까지도 짊어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집착을 버리고 죽음을 담대히 받아들이시길...

 

 



YES마니아 : 플래티넘 s*****7 2010.03.24.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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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이 줄 수 있는 모든 즐거움, 총집합!!! -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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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이 났다. 밀실살인 사건이다. 탐정은 무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시신을 확인하고, 주변 사람들을 탐문해 나간다. 사건 현장에 흩어져 있는 물건들 중에 단서를 파악하고, 꼼꼼하게 탐문 수사를 거쳐, 범인이 쳐놓은 2중 3중의 트릭을 거침없이 풀어내고 범인을 지목한다. 범인은 정황증거만으로도 이미 손 쓸 방법이 없지만, 증거를 내놓으라고 뻗댄다. 극적으로 드러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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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이 났다.

밀실살인 사건이다.

탐정은 무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시신을 확인하고, 주변 사람들을 탐문해 나간다.

사건 현장에 흩어져 있는 물건들 중에 단서를 파악하고, 꼼꼼하게 탐문 수사를 거쳐, 범인이 쳐놓은 2중 3중의 트릭을 거침없이 풀어내고 범인을 지목한다. 범인은 정황증거만으로도 이미 손 쓸 방법이 없지만, 증거를 내놓으라고 뻗댄다.

극적으로 드러나는 증거와, 결국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마는 범인.

근데, 순간 살해당한 시신이 벌떡 일어선다.

연극도 아니고, 트릭도 아니다.

말 그대로, 수박처럼 쪼개진 두개골을 목 위에 얹은, 피해자. 시신이 벌떡 일어나는 것이다.

 

이 웃기지도 않은 오프닝으로 시작되는 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은 유머러스한 필치와 얽히고 설킨 등장인물들, 일견 난잡하게도 보일 정도로 아무렇게나 펼쳐져있는 사건들과 정황들이 660여 페이지 동안 그야말로 '정신없이' 펼쳐진다.

미국 뉴잉글랜드주 툼스톤 이라는, 이름부터 '추리물' 스러운 도시의 '스마일 공동묘지' 가 이 작품의 주 무대가 된다.

 

이 긴 이야기의 화자인 '프랜시스 발리콘' 일명 '그린' 은 스마일리 공동묘지의 창립자이자 주인인 '스마일리 발리콘' 의 손자이다.

스마일리 발리콘은 말기 암 환자로, 죽음을 앞두고 유산을 자식들에게 골고루 분배한다는 유서를 작성한다.

일단 죽은 전처인 '로라'라는 부인 사이에서 낳은 '존', '윌리엄', '스티븐'이라는 아들이 있고, 원래부터 정부였고, 로라가 죽은 뒤 정부인이 된 '모니카'와의 사이에서 '제임스'와 '제이슨'이라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다. 이 중 스티븐이라는 아들과 제이슨이라는 아들은 먼저 죽었으니, 남은 자식은 존, 윌리엄, 제임스였다. 그리고 우리의 그린=프랜시스는 바로 스티븐의 아들이었다.

 

열세살에 부모를 다 잃고 외할머니와 함께 영국 런던으로 건너갔지만, 그 외할머니 마저 그린이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에 돌아가시고 만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죽음' 의 습격에 '삶' 이 서서히 황폐해지기 시작한 그린은 영국 런던의 히피족들과 어울리며 마약을 하면서 '죽음' 을 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아예 죽음을 대면하는 '시체 처리 기술- 사화장(死化裝 엠바밍 Embalming)'  을 배우기 위해 미국의 대학으로 진학을 결정한다. 미국의 독특한 장례관습은 '장의사' 라는 직업의 사회적 지위를 격상시켰고, 전문으로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의 학과도 있었던 것이다.

대학을 알아보기 위해 미국 보스턴에 갔던 그린은 그 곳에서 할아버지 '스마일리 발리콘' 의 호출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게 발리콘가에 입성한 그린은 그 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또래에, 처한 환경마저 비슷한 '체셔' 라는 아가씨를 만나게 된다.

백부인 존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애인인 '이사벨라' 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로, 존에게는 의붓딸이 될 아가씨였다.

역시, 히피기질이 다분했던 체셔와 의기투합하게 된 그린.

 

그 때 쯔음, 미국 전역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시체들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과학적, 의학적으로 완벽하게 사망상태인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죽기 전과 똑같은 인격과 행동양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냥 단지 '죽었다' 는 것 말고는 어떠한 차이점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괴이한 현상은, 앞으로 발리콘가에 일어날 괴이한 사건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될 터였다.

 

 

 

태어난 모든 것은 죽는다. 필멸必滅 의 존재.

기독교에서 죽음은 죄의 삯으로, 인간들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종말이다.

불교에서 죽음은 다음 생을 기약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수많은 철인들과 학자, 작가들은 역시 수만가지 방법으로 인간의 삶을 통찰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그들 중 그 누구도 '죽음' 을 논하지 않고서는 삶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들의 사상과 저서들은 결국 '죽음' 에 대한 것으로 변화했다. '삶의 본질' 을 논하기 전에 '죽음' 에 대해 논해야 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태어남' 보다 '죽음' 을 더욱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신' 도 '죽는다' 고 표현할 정도였으니,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한 절대성을 절실히 느꼈을 터다.

이 작품 또한 [죽은 사람들이 살아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이러한 죽음의 절대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정신없이 겹쳐지는 사건과 사건들 속에서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현상은 사건 자체의 본질을 흐리고 만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사건을 일으켰냐는 점인 것이다.

 

발리콘 일가家가 벌이는 이 정신없는 사건들 속에서 한 인간이 꾸는 꿈과, 그것을 위한 음모는 결국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진리 앞에서는 너무나 작고 미약하기 이를데 없다. 심지어 웃길 정도로 작고 소소해 보일 정도이다. 살아있는 동안 한 사람의 '인간' 이 아등바등거리는 몸짓은 너무 작고, 소소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들이 화자인 '나' 프랜시스= 그린으로 모아지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작고 소소하고 무가치하고 무의미해 보이지만, '나' 라는 한 생명. 한 인간에게는 보다 크고 거대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죽음이란 모든 인간들에게 절대적이지만, 삶이란 나 자신에게만 큰 가치를 지닌다.

어쩌면, 이 단순한 진리가 인간에게 '사랑' 이니 '우정' 이니 '증오' 니 '미움' 이니 하는 것들을 낳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그와 동시에 '죽음' 이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 '종족 번식'의 욕구, 나아가 그를 통한 영속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스마일리 발리콘에서 프랜시스 발리콘. 그리고 이사벨라의 태중에서 자라고 있는 존 발리콘의 아이까지, 3대에 걸친 대 가족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결국 인간은 가족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죽음의 공포로부터 도피한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살아가고, 자식은 또 자신의 자식을 위해 살아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영원한 매듭이 바로 인간이 획득할 수 있는 영속성인 것이다.

 

이런 많은 사색거리들이 숨쉴틈 없이 펼쳐지는 트릭과 미스테리의 향연속에서 먹음직스럽게 빛나고 있다.

트릭과 미스테리거리들 또한 말 그대로 '장난 아니다.'

최근 미스테리들은 소위 '사회파 추리물' 이라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독자들과 함께 숨막히는 머리싸움을 벌이는 정통파 추리물보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트릭이나 미스테리한 요소보다, 휴머니즘이나 사회와 환경 속에서 갖게 되는 인간의 행동원리에 중점을 둔 추리물들이 훨씬 더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실, 정통 추리물은 앨러리 퀸이나 애드가 앨런 포우 등에서 완성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 후대에 나온 작품들은 끊임없이 이제는 고전에 가까울 그런 작품들과 비교당해야 했다. 애거서 크리스티조차 그들에게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패턴이나 내러티브는 그 시절 그때의 작품들이 한번쯤 다 써먹고, 후대의 작품들은 그것들을 얼마나 교묘하고 절묘하게 짜집기 했느냐, 가 관건이 된 것이다.

 

야마구치 마사야는 보다 대담하게 그 '고전에 가까운' 작품들의 패턴과 내러티브들 -이제는 클리셰에 가까운- 을 아예 티나게 들어다 쓴다. 패러디와 리메이크, 풍자와 오마쥬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이 패턴과 내러티브들을 뒤틀고, 꼬고, 뒤섞고, 분리시키고를 자유자재로 하며 시종일관 독자들의 골치를 아프게 만든다. 독자들의 페르소나가 될 트레이시 경감처럼 말이다. 

 

20세기 미스테리물의 총체적 집합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메멘토 모리' 라는 말이 있다.

얼마 전 읽었던 '비밀결사의 세계사' 에서도 등장했던 문장이 이 작품 안에서도 등장한다. 

'나의 죽음을 기억하라'.

인간은 결국 '죽음' 을 통해 '살아간다'. 어찌보면 죽음이란 인간에게 저주보다는 축복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70년이라는 세월도 설렁설렁, 모니터만 들여다 보거나, 앉아서 졸거나, 옆동네로 놀러가는 것 조차 귀찮아 하는게 인간인데.

영원히 산다고 생각해봐라.

의자에서 일어나는데만도 한 10000년쯤 걸리지 않을까?? ㅋㅋㅋㅋㅋ

 

 

머리쓰는걸 좋아하지 않는 독자라면 절대로 비추할만한 작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기리노 가쓰오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 보다는 위에 언급된 고전들, 아서 코난 도일이나 애드거 앨런 포, 앨러리 퀸, 적어도 존 딕슨 카 나 애거서 크리스티 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그 작가들의 소설을 많이 읽었고, 그 패턴이나 트릭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더더욱 초강추이다.

단지 '죽은 사람이 일어난다' 는 설정만으로도 그 패턴이 얼마나 큰 변화를 얻고, 내러티브가 얼마나 풍성해질 수 있는지 경험한다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사랑스러운 그린과 체셔라는 캐릭터도 큰 역할을 한다.

염세적이고도 어둡고 암울한 주제에, 머리는 잘 돌아가고, 내뱉는 말은 유머러스한 그린은 남자가 봐도 참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상처를 갖고 있고, 소심한게, 꽤나 똑똑하고 짐짓 강한 척 하는 모습이 귀여운 체셔도 통통 튀는 개성이 매력적이다.

 

작가와의 머리싸움을 즐기고, 책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독자라면 '내 인생에서 제일 즐거웠던 책 베스트' 10 안에 충분히 들어갈 만한 명작임은 자명하다.



f******g 2010.02.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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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산 자는 죽은 자의 기분을 모른다!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산 자는 죽은 자의 기분을 모른다!" 내용보기
한참을 뱀파이어에 홀릭하던 와중, 2pm이 좀비댄스를 선보이며 초월적 존재들에 대한 눈이 확장될 무렵,눈에 들어온 책,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이 오버랩되는 존재, '살아 있는 시체'거기에 더해 그 시체가 또 다시  죽었다니. 이건 무슨 이야기? 이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을 표하고 받아든 책의 두께에 겸허함이 느껴졌던 첫인상의 책이다.   이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산 자는 죽은 자의 기분을 모른다!" 내용보기

한참을 뱀파이어에 홀릭하던 와중, 2pm이 좀비댄스를 선보이며 초월적 존재들에 대한 눈이 확장될 무렵,
눈에 들어온 책,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이 오버랩되는 존재, '살아 있는 시체'
거기에 더해 그 시체가 또 다시  죽었다니. 이건 무슨 이야기?
이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을 표하고 받아든 책의 두께에 겸허함이 느껴졌던 첫인상의 책이다.

 

이 책은 요한복음의 한 구절, '종말의 그날 부활의 때에 되살아나리라"에 모티브를 얻은 듯
죽은 자가 되살아나 버젓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른 바,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회현상을
주축으로 살아있는 시체를 죽인 범인을 파헤쳐 가는 본격 장편추리소설이다.

 

뉴잉글랜드 툼스빌에 위치한 대규모 공동묘지를 운영하는 발리콘 가문.
죽음을 앞둔 노년의 스마일리 발리콘의 유산 상속과 그리고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 속에 벌어지는 살인사건.

단순히 유산상속에 얽힌 살인이라 가정하고 범인을 추적하는 와중 벌어지는
죽은 자들의 부활, 그리고 죽었던 자들이 다시금 살아하는 상황에서 살인 자체에 대한 무의미함으로
머릿 속을 헤짚는 '죽음'에 대해  살아있는 자의 시각이 아닌,
죽은 자들의 현실이란 시각에서  다시금 되짚어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책이다..
 

'그래, 인간도 태어날 때부터 체내에 죽음을 내포하고 있지.
 수명이 있는 인간이 매일매일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매일 조금씩 죽어간다는 뜻이야.'  -265P

 
이른바, 인간은 죽음에 대한 본능을 내재한 채 태어났다는 것이다.
머리카락은 매일 60가닥씩 빠지고 식사를 할 때 장벽에서는 음식물이 통과하면서
7백 억개의 세포가 감소한다. 서른을 넘으면 신경세포 중 평균 1%가 해마다 사라지니까.


방대한 분량의 스토리로 촘촘하게 엮어져 초반에는 전반적인 인물구도나 배경에 대한 할애부분이
다소 졸음을 몰아왔지만, 이윽고 주인공 그린의 죽음과 시작된 스릴감 넘치는 추적본능 스토리는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다음장을 외치게 하는 흥미진지함을 선사했다.
 

이색적인 슈퍼내추럴 스토리를 원츄하시는 분이라면,
혹은 죽음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열어보고 싶으신 분이라면,
여유있게 펼쳐볼 만한 흥미과 진지함을 모두 갖춘 추리소설이라고 평하고 싶다.

f***e 2010.01.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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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 이것이야 말로 괴작 중의 명작
"명불허전. 이것이야 말로 괴작 중의 명작" 내용보기
괴작보다 더 괴작같으면서도 명품의 기운을 풍기는 책. 나는 그런게 기서라고 생각한다.(뭔말인지 알아먹을 수 없는 모모 기서들에 대한 고도의 까대기)그리고 유명작이라고 봐주지 말자고 다짐하며 읽어본 올 해 마지막 대작(?)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은 내 기준에 괴작이자 말이 필요 없는 명작. 즉 기서이다.  사실 대세는 스릴러로 기울어져 가고 있고, 과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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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보다 더 괴작같으면서도 명품의 기운을 풍기는 책. 나는 그런게 기서라고 생각한다.
(뭔말인지 알아먹을 수 없는 모모 기서들에 대한 고도의 까대기)
그리고 유명작이라고 봐주지 말자고 다짐하며 읽어본 올 해 마지막 대작(?)
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은 내 기준에 괴작이자 말이 필요 없는 명작. 즉 기서이다.

 사실 대세는 스릴러로 기울어져 가고 있고, 과거의 트릭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본격의 몸부림은 어느샌가 독자들의 높아진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고 본다.  갖가지 제약 속에서 몇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하는 밀실들과 기상천외한 기계장치,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우기기 식의 설정들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몇작품 안 된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어김없이 동시대의 작품은 물론 과거의 명작의 권위마저도 파괴시킬만한 힘을 갖고 있다.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은 골치 아프게 무대를 한정짓거나 구차하게 속이는 짓은 하지 않고, 대놓고 시체가 되살아 날 수 있다고 우기고 들어간다. 이 우기기가 책의 말미나 중간에 들어간다면 정말로 웃기는 책이 되었겠지만... 너무나 당연한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고우스케라도 등장해서 "저는 사실 시체가 살아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 한다면 정말 재미있겠지. 아무튼.

 시체가 되살아난다.는 설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나면, 놀랍게도 그로 인한 문제들과 던져진 문제에 대한 호기심으로 재미가 풍부해 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현실의 벽을 파괴해 버린 대신 그로 인해 신선한 공기와 (물론 시체 냄새가 조금 섞인) 새로운 도전정신이 뒤섞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덕에 언젠가부터 잃어버린 본격의 묘미, 머리 굴려가면서 범인 쫒기는 시체들과 함께 되살아 나는 것이다. 더불어 죽었다고 해서 용의자가 줄어드는 일은 없기 때문에 최초의 찍기방지용 추리소설이라고 볼수도 있겠다.

 물론, 몇가지 독자가 알 수 없는 단서로 인한 추리는 안타까움으로 남긴하지만, 그런 점들은 이 책이 주는 재미에 비하면 애교 수준으로 넘길만하고 또 나머지 부분들은 만족스러운 트릭이라고 여겨져서 크게 신경쓰고 싶지 않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리스트를 몇번이고 읽으며 기대하셨던 분들에게도, 이게 도대체 뭔 책이란 말이냐! 하시면서 집어든 분들에게도,

 읽는 재미, 노는 재미, 황당한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좋은 기서라고 부르고 싶다.

5/5

YES마니아 : 로얄 d**7 2009.12.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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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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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1989)   실은 나도 살아 있는 시체예요. 한참 전에 죽고 말았죠.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표지 中    작품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은 작가, '야마구치 마사야'의 대표작으로 그 명성에 걸맞게 1989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8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0년 베스트 1위 등의 상을 받았다. 이 작품이 작가, 미야베 미유케의 작품 '화차'와 베스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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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1989)

 

실은 나도 살아 있는 시체예요.

한참 전에 죽고 말았죠.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표지 中
 
 작품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은 작가, '야마구치 마사야'의 대표작으로 그 명성에 걸맞게 1989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8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0년 베스트 1위 등의 상을 받았다. 이 작품이 작가, 미야베 미유케의 작품 '화차'와 베스트상 1위, 2위를 불꽃 튀기게 경쟁했다는 점을 보아 '화차'가 더 많은 독자들에게 알려진 대한민국에서 간접적으로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본격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에 포함되어 있는 작품,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은 본격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의아할 수 있는 소재를 지니고 있는 특별한 작품이다. 대부분의 추리소설들이 추구하는 '현실성'과 '타당성'이 이 작품에서는 다소 다른 모습을 띄며 존재한다. 가장 큰 특별함은 이 작품의 주인공이 살해당한다는 것에 있다. 즉, 주인공이 죽는 작품이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죽은 주인공이 시체 상태로 살아나서 자신을 방부처리하고 추리를 펼친다는 것이다. 분명, 초 중반의 극전개 동안에는 이 작품이 흡사 '호러 미스터리 소설'이 아닐까,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결말은 결코 실망을 남기지 않을 만큼 철저한 본격 추리 소설이다.
 
 분명, 추리 소설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은자는 말이 없다'의 표어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탐정과 의뢰인, 용의자들의 두뇌 싸움이 이 작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작품 속의 죽은자는 말도 잘하고, 걷기도, 뛰기도 잘한다. 따라서 살해 당한 피해자들이 같이 추리하고, 고발하고 하는 다소 엽기적인 상황이 전개된다. 분명 호러 소설이라고 불리울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과 환경 속에서도 이 작품의 빛은 가려지지 않은채 독자를 현혹시킨다.
 
 대다수의 독자들이 이 작품을 평할 때,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은 재밌다이다. 추리 소설과 호러 소설의 장점들을 섞은 듯한 이런 괴상한 작품이 어째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독자들이 사랑하는 이유는 당연한 듯 싶다. 이 작품들의 등장인물들은 충분히 매력이 있으며 사건 자체도 특수한 환경 속에서 펼쳐지기 때문에 독자들이 더 철저하게 추리를 할 수 있도록 엄청난 복선들과 암시들을 곳곳에 심어두었다. 절대로 갑자기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의 결론을 읽을 때, 그 많은 복선들을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며 날조한 작품이 아닌 철저하게 계획되고 논리적으로 전개한 작품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운도 없고, 심지어 불쌍하게 죽어버린 주인공 그린(프랜시스)와 그의 여자친구 체셔(사가)의 행동이 이 작품을 결코 사건으로 얼룩진 인간의 탐욕적 욕망을 다룬 작품으로 남겨지지 않게 만든다. 그들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이 작품은 결코 지루한 추리 소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은 위치에 존재할 수 있었으며 추리 소설에 코믹함을 수혈 받았다. 또한 그들의 풋풋한 애절함으로 청춘 소설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눈물도 날뻔할 정도로 안타까운 그들의 이야기이다.
 
 현대인들은 살아있는 시체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을 기다리는 집행유예 죄수들이다. 죽음은 결코 먼 존재가 아님을, 작가는 알았던 것일까.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으로 그는 독자들에게 죽음의 근접함을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 이 작품에서의 죽음은 사실, 현실 속에서의 죽음과는 이질적인 부분이 많이 존재하지만 작품 속 세계에서는 죽음은 더이상 신체의 죽음에서 단순하게 완료되는 것이 아닌 이상의 죽음, 영혼의 죽음으로 정의했다. 영혼이 죽었을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생명은 죽음이라는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한 추리 소설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마치 장르 합본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추리 소설, 종교 소설, 청춘 소설, 개그 소설, 호러 소설, 미스터리 소설을 아주 잘 조합해서 만든 하나의 합본같은 느낌이다. 지루하지 않게 전개되는 재미도 있지만 추리의 철저함도 잊지 않았으며 종교와 철학을 제시한 사고의 연장선은 추가 비매품이다. 분량이 다소 부담될 수 있지만 그 재미에 분명히 독자들은 녹아내릴 것이며 반드시 그들은 이 작품을 통하여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지만 무엇인가 자신의 생각을 적어 남기게 될 것이다.
 

47번째 만남

2012. 05. 04 ~ 2012. 05. 11

j*****7 2012.05.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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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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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의 제목을 봤을때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라는 생각을 했었다. 시체라는 것은 당연히 죽었다는 것인데 살아 있는 시체라고 표현했을 뿐아니라, 시체의 죽음이란 도대체 뭐를 말하는것인지 알수가 없어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다. 추리소설을 좋아 하는 나에게는 제목부터가 추리를 연상케하여 책을 읽기도 전에 기대감에 기분좋은 두근거림을 느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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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의 제목을 봤을때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라는 생각을 했었다. 시체라는 것은 당연히 죽었다는 것인데 살아 있는 시체라고 표현했을 뿐아니라, 시체의 죽음이란 도대체 뭐를 말하는것인지 알수가 없어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다. 추리소설을 좋아 하는 나에게는 제목부터가 추리를 연상케하여 책을 읽기도 전에 기대감에 기분좋은 두근거림을 느낄수 있어 좋았다.

 

앞의 부분을 조금만 읽어도 '아아'라는 말이 입에서 자연스레 나온다. 책의 제목을 두고 시작부터 씨름아닌 씨름을 했던 나이기에 당연하게 알았다는 의미로의 감탄사가 나온것이다. 시체가 살아서 욺직인다. 숨을 쉬지 않고 죽었기에 몸은 점점 자신의 할일을 잊어버리고 썩어감이 눈으로도 보이는데 살아 있는 사람처럼 움직이며 말을 하며 생각도 한다. 움직이는 시체는 자신의 몸이 썩어 부서지고 없어지므로써 또한번의 죽을을 맞이 하게되는데 아마도 그런 의미인듯하네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책을 마지막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앞에서 내가 생각한 뜻외에 또다른 의미를 찾게된다.

 

미국 북동부의 시골마을인 툼스빌 일명 묘지마을이라고 알려진 작은 마을이 배경이 되어진다. 이 툼스빌은 묘지마을이라고 말했듯이 발리콘가가 이곳에서 장례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오랜 옛날부터 유서깊게 이어온 장례회사의 유산 문제로 이 책의 주인공 펑크족인 그린이 자신도 모르던 집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초콜릿을 먹고 이 책의 주인공은 어이없게도 200페이지도 넘기기도 전에 죽어버린다. 죽었으나 되살아나는 현상으로 인해 그린또한 죽었지만 되살아 나게 되고, 자신의 몸이 조금이라도 섞지 않도록 방부처리를 하고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숨기며 진실을 찾아내는 추리소설이다.

 

이 책은 오랜시간동안 일본 미스터리 독자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는 작품으로 야마구치 마사야의 데뷔작이라고 한다. 야마구치 마사야는 일보내의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참신한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을 처음 본 나로써도 고개가 끄덕끄덕 거릴 정도이다. 그럼 이 책의 재미를 한 번 찾아 보자! 첫번째는 역시나 시체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통해 범인에 시체도 자연스레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용의자가 많아지기 때문에 용의자를 찾아 내는데 좀더 머리를 써야했고, 마지막까지 나 자신은 누가 범인인지 알아 맞추지 못했기에 끝까지 추리하는 재미가 있었다. 

 

두번째는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에 있다. 사람들의 얼굴은 비슷비슷하지만 자기만의 특징과 개성을 가지고 있듯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한명 한명마다의 개성이 뚜렷하게 표현되어 인물에 대한 이해도 쉬웠지만 그들을 하나 하나 지켜보는 즐거움 또한 존재했다. 참신한 소재로 인한 추리소설이라 색다르다라는 느낌도 받고, 인물 한명 한명에게 살아 있는 개성을 부여하여 놀라움까지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즐거움과 다르게 어둠은 존재한다. 추리소설이면 당연히 그렇듯이 사람들이 한명씩 한명씩 죽어가기에 어둠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지만, 이 책은 좀더 깊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다루고 있다.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닌 죽었기 때문에 완벽한 자신이 된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고 소리치고 싶기도 했지만, 말로 설명할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아 그런거구나라는 느낌을 약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흥미위주의 책과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나에게는 약간 무거운 이야기지만 그만큼의 즐거움을 느낄수 있어 좋았었던 그야말로 양면의 모습을 본 책이였다.

h******a 2009.12.23.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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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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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펼치기 전 제목을 보고 매우 의아해했다.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난 처음 이 책을 접하고 난 뒤 제목의 모호성에 의아해했다. 시체가 살아있다니.. 게다가 그 시체가 다시 죽어? 이건 대체 무슨 말이야? 이러면서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또한 죽음을 다루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 책은 분위기가 어두침침하고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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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펼치기 전 제목을 보고 매우 의아해했다.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난 처음 이 책을 접하고 난 뒤 제목의 모호성에 의아해했다. 시체가 살아있다니.. 게다가 그 시체가 다시 죽어? 이건 대체 무슨 말이야? 이러면서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또한 죽음을 다루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 책은 분위기가 어두침침하고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우리가 좀 더 근접하기 쉽게 유쾌함을 선물해주고 있다.

 

 

발리콘 가가 운영하는 ‘스마일리 공동묘지’가 위치해있는 미국 북동부 시골 마을 툼스빌에 스마일리의 손자인 그린은 유산을 받기 위해 찾아오게 되는데 그 곳에서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그린은 200페이지도 못넘어가서 할아버지가 먹게 될 초콜렛을 먹게 되고 사망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아 뭐지? 주인공이 죽으면 이야기가 끝난건가? 그런데 남은 책 분량은 왜 이렇게 두꺼워? 아님 다른 시점으로 넘어가는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그린은 다시 소생한다. 그는 점점 더 부패해져가는 몸을 방부 처리하여 죽음을 숨기고, 자신이 왜 죽었는지에 대해 진실을 파헤치던 중 발리콘 가 사람들이 연이어 살해당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살아난 시체가 이끌어가는 또 다른 진실!

 

책을 읽은지 300p쯤 되었을 때 등장인물을 너무 많이 등장시킴과 함께 장황하고 이야기를 다 풀어헤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작가는 이 도저히 풀 수 없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려고 이렇게 다 풀어헤쳐놓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작가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아 그랬구나, 그런거였어?’라는 생각이 들며 실뭉치가 한올한올 풀리는 그런 명쾌한 기분을 맛보았다.

 

 

난 이 책을 다 읽고 ‘새벽의 황당한 저주’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이 영화 역시 시체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점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점은 영화에서 살아난 시체들은 좀비가 되어 살아있는 사람들을 공격하지만, 책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되살아난 시체들은 숨만 쉬지 못할 뿐 살아있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는 나중에 주인공이 친구와 게임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그 친구는 살아있는 시체이다. 또한 다른 살아있는 시체들은 일을 하는 장면들이 뉴스를 통해 보도된다. 그것이 정말로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는 작가의 죽음에 대한 철학적 생각들이 가미되어 있어서 작가를 이해하며 읽을 수 있던 책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또한, 나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한번 더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소재로 책을 읽기엔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을 읽을 정도는 아니지만, 우선 자신은 죽음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한 생각을 충분하게 한 다음 자신에게 작가의 생각을 주입시키려 하지 말고 그 생각들을 자신의 생각에 조금씩 가미시켜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삶과 죽음이란 모호한 경계선 안에서 작가는 삶과 죽음은 겉과 속을 구별할 수 없는 뫼비우스 띠와 같은 위상적 공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우리가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틈을 던져주고 있는 것 같다고 난 생각한다.

 

 

 

 

 

책 속 밑줄긋기

 

'산 자들은 죽은 자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합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은 자들이 살아 있었을 때의 추억은 사랑하고 언제까지나 기억에 남기려 하지만,

싸늘하게 썩어가는 시체는 두려워하고 잊으려 합니다.'

- 108p

 

"우리도 다들 마찬가지일세. 삶과 죽음은 표리일체. 삶을 생각하는 일은 죽음을 생각하는 일.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삶을 생각하는 일.

우리도 다들 살아 있는 시체라네. 되살아나나 시체들은 중세의 트란지 입상처럼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게야.

삶과 현세에 아무리 집착한들 언젠가는 이렇게 티끌이 되고 만다고 말일세.

이게 바로 20세기의 '메멘토 모리'아니겠나. 우리 모두 집행유예 중인 시체에 지나지 않는다네."

 

- 636p

 

 

 

b*******h 2009.12.2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죽은 자는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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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고 먼저 떠올린 건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란 영화였다. 제목 자체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하나 더 연상되는 건 <새벽의 저주>나 <28일 후> 같은 좀비 영화였다. 보통 좀비라고 하면 시체가 부활한 것을 의미하며, 그들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징후는 모두 사라진채 동물적 본능(특히 식욕)만이 남아 있다. 게다가 비틀비틀 걸으며 제대로 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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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먼저 떠올린 건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란 영화였다. 제목 자체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하나 더 연상되는 건 <새벽의 저주>나 <28일 후> 같은 좀비 영화였다. 보통 좀비라고 하면 시체가 부활한 것을 의미하며, 그들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징후는 모두 사라진채 동물적 본능(특히 식욕)만이 남아 있다. 게다가 비틀비틀 걸으며 제대로 죽이지 않으면 죽지도 않는 그런 이미지랄까.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살아 있는 시체는 그것과는 좀 다르다. 좀비와는 다른 특징을 보이기 때문이다. 사고 능력도 정신 능력도 살아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르지 않다. 다만 시체인지라 몸이 썩어 들어가지만, 생전의 육체적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 준다.

솔직히 말해서 시체가 살아 나서 돌아다니는 것도 무서운데, 사고 능력을 갖추고 있다니 이건 기절초풍할 일이다. 게다가 본인이 숨기면 주위 사람은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 죽은 자의 부활이란 설정을 갖고 있지만, 기존의 좀비와는 다른 살아 있는 시체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좀비 퇴치라는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솔직히 이 책의 도입부는 좀 지겨운 편이었다. 이런 저런 설명이 계속 이어져 도대체 언제쯤 본문에 들어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하지만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전에 주인공이 죽어 버렸다!? 그리고 부활했다. 살아 있는 시체로.

그리고 시작되는 의문의 사건들.
장례업을 업으로 삼고 있는 발리콘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그 속에 깊숙히 감춰져 있던 진실은?

이 소설은 살아 있는 시체가 탐정이 되어 이 사건을 풀어 나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물론 형사가 등장하긴 하지만, 형사는 오히려 우왕좌왕하는 캐릭터로 이 소설에 있어서는 양념과 같은 캐릭터이다. 적재적소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어 주는.

이정도로 보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시체가 살아 나고, 그 살아난 시체가 탐정이 된다는 설정도 이상한데, 코믹한 요소까지 겹쳤다!?

사실, 죽음이나 살인과 같은 것은 무겁고 음침한 소재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죽음 뒤에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만, 사람은 불멸의 존재도 불사의 존재도 아닌다. 따라서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소설은 그러한 죽음의 무겁고 억압된 이미지를 벗어나 죽음 자체에 대해 숙고하게 하는 책이다. 코믹한 요소가 뒤섞였다고 해서 죽음 자체를 가벼이 다루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죽음을 어떻게 보느냐에 중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재미있는 것들이 눈에 많이 띈다. 본문의 소제목은 책이나 음악의 노래 가사에서 따온 구절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죽음에 관한 것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 크림슨 크림의 <에피타프>란 노래의 가사가 나와 오랜만에 참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또한 본문 내용 중에는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 살인 사건> 이야기가 에둘러 표현되기도 하고. 영화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도 언급된다. 여기서는 제임스의 죽은 쌍둥이 동생 제이슨이 할로윈에 살아나 살인극을 벌이는 것처럼 소문이 퍼져 있지만...(아름이 똑같다)
여기까지는 '음...이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주문 많은 요리점>의 제목을 패러디한 <주문 많은 장의점 - 동부편>을 보고는 뒤집어지게 웃었다.

또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차량 추격전 장면에서도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시체가 운전하는 영구차와 또 다른 시체가 운전하는 핑크색 영구차, 그것을 뒤쫓는 경찰과 폭주족이라... 왠지 시체가 운전하는 영구차라 생각하면 무척 섬뜩할 것 같지만, 반대로 뒤집어서 생각하면 엄청 코믹한 요소가 된다.

이런 코믹한 요소와 더불어 발리콘 일족에게 닥친 죽음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이 적절하게 혼재되어 비록 700페이지 가까운 두꺼운 책일지라도 금세 읽힌다. (물론 도입부는 좀 지겹다) 게다가 사상 유례없는 살아 있는 시체 탐정이라니! 이런 특수성이 있기에 무척 즐겁게 읽히는 엔터테인먼트 소설같기도 하지만, 그 저변에는 죽음이란 것에 대한 고찰과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본성과 숨겨진 두려움이 바탕으로 깔려 있다. 가벼운 터치로 진행되는 듯 보여도 절대 가벼울 수 없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코믹함  + 추리라는 장르로 절묘하게 엮어낸 저자의 필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저자가 참고했을 방대한 양의 자료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가장 놀라운 것은 이것이 저자의 데뷔작이란 것이었다.

데뷔작답지 않은 탄탄한 스토리와 개성 강한 인물들, 그리고 독특한 설정은 이 책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란 것은 또다시 새로운 생과 이어지는 순환을 반복하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에는 살아 있으면서도 삶의 의욕을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살아 있는 시체들이 많다. 죽어서도 삶에 집착하는 진짜 살아 있는 시체들과 살아 있으면서도 삶에 의욕을 갖지 않는 살아 있는 시체들, 당신은 어느 쪽의 살아 있는 시체인가. 


y*****5 2010.02.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