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평을 써놓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내 평은 별로 좋은 편이 아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은 이후로 두번째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두권을 같이 샀다. 독자의 평을 보고 "베로니카~"와 이 책, 이렇게 2권을 한꺼번에 구입했다. 물론, 이렇게 한꺼번에 사지 않았더라면, 내가 구입한 서적 리스트에 이 책은 없었을 것이다. 우선 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라는 책은 종교성이 약간 가미되어 있었음에도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고 먼저 언급해두고 싶다. 이 책도 약간의 종교적 내용이 가미되어 있는데, 사실 약간은 거북했다. 또한, 끝까지 책을 붙잡게 만드는 재미 또한 부족했다.. 책을 한번 시작하면 재미있든 없든간에 끝을 보는 성격이라 끝까지 읽긴 했지만, 인내심이 상당히 요구된 책이었다. 그렇다고 분량이 많은 책은 아니다. 일주일간의 일이 책의 전체 내용이며, 솔직히 말하면, 스토리라인도 잔잔하다. 별다른 클라이막스같은 것은 없다.. 사실 이렇게 평을 쓰는 이유는 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같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으므로 나처럼 독자평을 읽고 처음 선택하는 저자의 책을 여러권 구입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만약,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읽은 적이 있고 책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면, 어쩌면, 이 책도 당신 마음에 쏘옥 들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면, 조금 더 고려해 보는 것이 좋을 거 같다. |
| 연금술사를 읽고 파울로 코엘료의 책들을 모두 찾아보았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은 세권.. 연금술사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와 피에트라강가에서 나는울었네..이다. 이책이 발간되자마자 바로 구입했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읽으면 좀 지루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책은 그냥 소설이 아닌 어떤 철학서나 종교서를 읽는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이책은 주인공 남자가 가톨릭교 신학생이라 그런지 그런 느낌을 더 많이 받는다. 하지만 결코 어느 한 종교의 입장에서 쓴 종교서는 아니다. 기본적인 입장은 신은 존재하고 여러가지 모습으로 존재하며, 신을 섬기고 따르는것에는 어떠한 규칙도 규율도 없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필라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느덧 마음을 닫아버리게된다. 어떠한 감정에도 빠지려하지 않고 어떠한 감정의 흔들림에도 흔들리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자신이 어떠한 감정에 빠졌을때 그 이후에 오게될지도 모르는 상처에 대한 두려움때문이다. 그러한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과 같다. 우리는 점점 상처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마음을 닫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이 꿋꿋하고 멋지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가만히 나는 내자신이 어떠한 모습이 되고 싶은가.. 혹은 내 자식이 어떠한 모습을 살아가면 좋을까..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모습은 결코 그런 모습이 아닐것이다. 희망을 가지고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진정으로 원하는 모습이 아닐까?? 우리도 '다른 사람이 되어보기'를 연습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면서 상처받는것은 작가가 서문에서 밝히듯 대부분은 상대보다 내가 더 상대를 사랑하고 있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오는 것일것이다. 내가 만들어 놓은 사랑이라는 기준에 상대방이 맞춰오지 않을때오는 상처.. 그러한 감정의 비교때문에 혼자서 상처받고 혼자서 마음의 문을 서서히 닫게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암튼 이 작가의 책은 한번 읽는 것으로는 제대로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고 두번 이상은 읽어야 될것 같다. 그리고 책을 다읽고 나면 절로 다시 한번 읽고 싶어지게 될 것이다.. |
| 이 책, 결코 재미있게 볼만한 책은 아니었다. 요즘 가장 있는 코엘류의 책 중에서 첫번째로 본 책이어서 작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책 뒤의 역자 후기 같은 그런 깊이있는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들을 읽어내기는 너무 힘들었다. 나에게는 그냥 그저그런 소설에 불과했다. 만약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종교서적이었다면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을 만한 내용들이 실려 있었다. 성경의 내용에 대한 잘못된 해석들 - 혹은 신의 "여성성" - 에 관한 부분만이 눈에 들어왔음은 내 관심이 주로 그쪽에 실려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카톨릭을 표방하고 있지만 현대적 다원주의에 입각한 종교의 왜곡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있었다. 카톨릭 특유의 "성모숭배"의 영향 말이다. (카톨릭은 중앙 인터넷 사이트에서 기독교와의 비교 설명에 관해서 "칼톨릭은 성모를 첫번째 신도로서 존경할 뿐 숭배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음에도 "성모승천축익", 책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죄없는 잉태 축일" 등 분명한 성모 숭배를 하고 있다) 삼위일체를 성부 성자 성모 라 말하는 이런 잘못된 인식들은 책을 더욱 읽기 힘들게 만들었다. 소설이니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코엘류 라는 이름에대한 큰 실망만 남는 그런 책이었다. 이정도 소설은 정말 많은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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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기독교적 관점으로 서평을 썼음. |
| <연금술사>에서도 여성 캐릭터가 좀 진부하다 싶긴 했지만, 전체 분위기가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볼 때 상징적인 '여성성"을 보여주기 위해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그 희미한 징후가 만개한(-.-;;) 작품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여성 캐릭터는, 위대하고 지혜로운 여성성을 이야기하는데 심각하게 부적절하다. 읽다가도 한숨이 나며 같은 여자라는 것이 수치스러워질 지경... 그런 시각을 갖고 "신의 여성적인 면모"를 말한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코엘료는 자신이 그러한 주제를 다룰 능력이 '조금도' 없음을 명백하게 드러내 보인다. (아아, 이 뻔뻔한 자신감은 <연금술사>의 성공으로 인한 부작용일까?) 주제를 육화된 언어를 말할 수 없으니 계속해서 지루한 설교가 이어진다. (역자의 개신교 성경 풍의 번역어도 그 지루함에 살짝 일조한다) <연금술사> 정도 괜찮은 소설을 쓰고도 이런 책을 써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그의 목에 권총을 들이댄 것일까? (물론 그것은 여자가 아닐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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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은 항상 마무리가 딱 떨어지는 것이 없어서 읽고 나면 파울로 코엘료에게 전화를 걸고 싶게 만든다 물론 이 책 또한 나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드는 책이었다.
주인공이 시간이 흐른뒤 예전에 친했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 남자친구가 신에게 선택 된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그 사람과의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된다 신의 선택을 받은 이 사람과 함께 신에게 자신의 일생을 바치는 상상을
하지만 이 사람이 자기를 선택 함으로써 신에게 받은 힘을 다시 신에게 돌려 준 것을 알고 혼란스러워하며 그의 곁에서 도망친다
자신에게서 도망친 여자르 찾아와 나중에" 우리 둘이서..."라고 하는 남자의 말을 들으니 둘이서 다시 사랑을 하는것 같은데
글쎄 주인공 여자의 사랑에 나는 믿음이 없어져버렸다 그여자는 왜 혼란스러워 한 걸까? 왜 그 안자에게서 도망을 치고 피에트라 강강에서 그렇게 서럽게 울었을까? 그에게 신이 내린 힘이 없다는 것이 왜 그렇게 그녀를 슬프게 한걸까? 자신때문에 그 남자가 불행해졌다고 생각한걸까? 아니면 그 남자가 더이상 특별하지 않아서 자신의 마음도 바뀐걸까?
내가 가장 궁금했던건 그녀가 그를 정말 사랑했을까다 만약 그에게 신이 준 특별한 힘이 없었다면 그녀가 그와 함께 평생을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을까?
지금 우리 또한 사랑을 사랑으로써만 사랑하지 진짜 아무 조건도 보지 않는 사랑을 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생각을 한다 이 여자 또한 특별한 존재로서의 남자를 사랑한것은 아닌지 그렇게 되면 이 남자가 너무 가여워진다
여자를 위해 선택 받은 삶을 포기한 남자와(이렇게 말해도 되나? 포기는 아니고) 남자의 특별한 힘에 온갖 상상과 기대를 하며 자신도 거룩해지는 선택받은 것 같은 생각에 빠지는 여자? (내가 너무 여자를 미워하나?) 이 둘을 보면서 조건을 보며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려고 노력하는 요즘의 나를 반성해본다
물론 코엘료는 이 책을 통해서 신앞에 모든것을 던지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고통과 사랑을 위해 희생과 반성을 하는 인물을 그렸을텐데 나는 왜 이리 세속적인 생각이 드는지 ..
읽어보면 한번쯤 내가 하는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있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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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짐짓 우울 가돌르 달리고 있던 나의 독서 행각 속에 큰 파문으로 다가온 작가가 바로 파울로 코엘료.
일주일.
"사랑해"
2004.0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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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쯤 전인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한창 베스트셀러였을 때 나도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너도나도 사서 읽을 때였고 다들 감동했다 하고 인생이 바뀌었다 했다. 그런데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줄거리는 알겠고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는지도 알겠는데 전혀 거기에 공감이 안되는 거다. 약간의 오기랄까. 다른 작품들도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때 구입했던 책들 중 3권 세트가 이른바 "영혼 3부작"이다. 그 중 <11분>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이렇게 세트를 구입해놓고 지금까지 읽지 않은 걸 보면 그 뒤 읽은 몇 권이 이렇게 오랫동안 책장에 꽂아두게 했을지 모르겠다.
영혼 3부작 중 어떤 걸 먼저 읽어야 하는지 오래 고민했는데 그냥 함께 엮기 위해 이름을 붙였을 뿐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냥 세트 표지에서 표시된 가장 위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왜 나는 오랫동안 파울로 코엘료를 읽지 않았는가. 이 작가의 은근하지만 꾸준한 "종교"와 "영혼" 이야기가 나를 불편하게 한 것 같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는 좀 더 본격적이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다"로 소설은 시작된다. '필라'라는 여인이 이 강가에 앉아 자신이 겪은 일들을 돌아보고 사랑으로 쏟았던 순간들을 추억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그리고 그녀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릴 적 함께 자란 "그"는 세상을 향해 떠나고 '나'는 안정된, 누구나 원하는 삶을 위해 고향에 남는다. 하지만 그 안정된 삶을 위한 노력도 쉽지가 않다. 어느 날 그에게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보러 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는 지난 시간을 추억하기 위해 네 시간의 여행을 하기로 하고 그를 만나러 간다.
그렇게 시작된 그와 그녀의 만남. 1993년 12월 4일부터 1993년 12월 10일까지 단 일주일 간의 이야기다. 그동안 그들은 만나지 못했던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너무나 달라져버린 삶을 이해하고 그의 오랜 사랑을 담은 고백과 설득으로 채워진다.
이 책은 사랑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전면에는 "모든 사랑 이야기는 닮아 있다"...(21p)라거나 그의 고백과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노력이나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되는 된 후의 기쁨, 그 이후의 고민들을 담고는 있지만 사실 사랑의 탈을 쓴 종교와 영혼에 대한 이야기이다.
난 종교인이 아니기에 예수를 인정하느니 안하느니, 성모 마리아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닌지 같은 건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게 왜 중요한지조차 모르는 사람이라 그쪽은 아예 포기하고 이번엔 "영혼" 쪽에 집중하며 읽었다.
안전을 위해 멈추고 싶을 때, 또다른 내 목소리를 집중해서 들어보는 것. 때론 과감하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시도해 보는 것. 안정감이라는 것이 어쩌면 도태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가끔 잊고 사는 것이라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는 점에서 이번 책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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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료의 1주일 시리즈(싸구려같이 들리지만 이렇게 부르겠다)는
1주일이라는 시간의 단위로 인간의 선과 악, 본질에 대한 고찰(악마와 미스프랭)
삶과 죽음, 그 욕망과 의지에 대해 말했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한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까지-
이렇게 세 권을 1주일 시리즈라고 감히 이름 붙힌다.
코엘료의 연금술사나 오자히르는 많은 독자들 덕분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의 다소 자전적인 소설 덕분이라면
이 세 권의 책은 다소 심심하다고 느낄 지 모르겠다.
하지만 멋진 영화 몇편이 한 감독의 작품임을 알게 되고,
그의 단편 영화들을 찾아서 보는 재미는 쏠쏠하지 않을 수 없다.
코엘료가 자연과 우주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아의 신화를 이루고 사랑을 완성하는 데에 두 권의 베스트셀러에서
그 something을 집대성했다면,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를 비롯한 세 권의 책은
분량은 적지 않지만
마치 단편영화를 찾아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코엘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언제나 숭고하다.
여성을 한 남자가 자아를 발견하고 완성하고 신화를 이루기까지
길잡이, 때로는 등불, 동반자로서 대한 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책에서도 그 사실은 많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랑 이야기는 닮아있다.
고쳐 말하면 다 비슷비슷하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어떤 메타포인가가 아닐까?
두 사람의 영혼이 만나고, 영혼의 처녀성이 깨어지고,
두 사람만의 메타포가 만들어지는
그 사적이고 미묘한 사랑,
그 사랑에 목이 마르다. [인상깊은구절] 모든 사랑 이야기는 닮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