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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10위권 안팎을 오가는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G20정상회의를 개최했다고 호들갑을 떨었고, 미국과 FTA를 체결해 더 많은 수출을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구 중 30억이 넘는 인구가 여전히 빈곤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하루 1.25달러 이하로 생계를 이어가는 계층을 ‘극빈곤층’으로, 2달러 이하를 ‘빈곤층’으로 분류한다. 여기에 따르자면 세계 인구 중 10억 명은 극빈곤층, 20억 명은 빈곤층에 속한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선봉인 세계은행이기 때문에, 당연히 수입에 따라 빈곤층을 나누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을 맡으며,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빈곤을 끝장내려 노력하고 있는 아이린 칸은 이런 계산법에 의문을 제기한다. 세계은행의 말에 따르면 결국 소득수준을 높이는 것이 빈곤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혀! 소득수준이 몰라보게 높아진 국가들에서도 빈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수준의 향상, 이는 한 국가의 노력으로 더 이상 가능치 않다. 그렇다면 결국 세계 경제의 흥망에 따라 빈곤층의 운명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아이린 칸이 빈곤 문제를 ‘인권’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녀는 경제성장이 빈곤을 종식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열쇠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또 다른 해결책에 우리 모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 희생자가 아니라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기 위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힘을 부여하는 일”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경제적 문제 이상의 벽들과 마주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박탈과 불안, 차별과 무기력한 침묵이다. 빈곤층이라는 이유로 시민권을 존중받지 못하고,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에 달한다는 사실. 여기에 물론 대한민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는 아직 용산의 참혹했던 밤을 잊지 못한다. 생존을 위해 옥상으로 올라야 했던 국민들은, 그들이 선출한 대통령에 의해 살해당했다. 용산구와 서울시 나아가 대한민국 경제의 발전을 위해, 그들의 생명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는 사실. 만약 그들이 경제적 강자였다면, 그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죽음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적 약자는 이미 지역사회와 국가의 ‘소수파’로 분류되고 배제된다. 그들은 단지 지원이나 시혜를 받아 연명해야 할 ‘부차적 집단’으로 인식된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지를 권리가 아닌 ‘시혜’라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부유한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빈곤층을 차별과 배척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이젠 무너진 세계 경제 대국 미국에서는 수만 명의 노숙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유럽의 집시사회는 그들이 살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평균 이하의 생활수준을 보여준다. 여기에 권력자들의 부패와 탐욕이 더해져, 1%와 99%의 간극은 점점 벌어진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아래 탐욕스러운 정치가들과 자본가들에 의해 더욱 커져만 간다. 부패는 가난한 이들을 수탈해 국가의 재산을 부자들의 손에 몰아준다. 아이린 칸은 전 세계 빈곤국가를 둘러보며, 빈곤의 원인, 문제, 해결책을 고민한다. 소수를 위해 다수가 굶주려야 하는 아이러니, 그 원인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아울러 인권의 개념으로 빈곤문제를 바라보면 지금보다 더 나은 희망적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호소한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한미FTA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으로 여긴다. 수출로 이만큼 살게 된 우리가 더 많은 수출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을 들이댄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영원한 수출 증대, 영원한 흑자 창출이 가능할까. 지속가능하다는 단어처럼 무책임한 것이 또 있을까. 아니, 백 번 양보하여 한미FTA가 체결되면 우리 경제가 나아진다고 가정하자. 그 창출된 이익이 빈곤층에게까지 전달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과연 전달되기는 할까. 그 사이 무너지는 서민경제와 농어촌 그리고 대다수 중산층의 삶은 누가 살필 수 있을까. 수출 기업의 배를 불려주면 결국 우리에게도 ‘떡고물’이 떨어질 것이란 ‘낙수효과’의 허구성이 진즉에 드러나지 않았나. 한국의 대통령은 미국의 대통령 재선을 위해 미국의 공장에서 미국의 노동자들을 위한 연설을 한다. 미국 국회에서 미국 회사가 만들어준 연설문을 가지고 당당히 연설한다. 기립박수가 나왔다고 흐뭇해한다. 그에게 300일이 넘도록 하늘에서 투쟁한 한국 노동자는 당장 집어넣어야 할 범법자이고, 미국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노동자들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4대강이 자연을 보호하고,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창출한다는 괴담 이전에, 자신이 도덕적으로 역대 최고의 정권을 만들었다는 괴담 이전에, 이명박 대통령은 호언장담한 대로 G20으로 400조 원이 넘는 경제적 이익이 창출됐는지, 정확한 ‘명세서’를 먼저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일단 한미FTA를 비준하면 3개월 안에 재협상하겠다는 거짓말 대신에 말이다. 아이린 칸은 강력한 시민의 힘 그리고 엄정한 법질서 집행을 통해 빈곤에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원래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은 자랑스러운 보수 세력들의 전매특허다. 그들은 원칙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보수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진정한 보수가 애초부터 없었다. 자기 지역구의 노숙자들은 처리(!)하겠다고 공약한 정치인이 당선되는 현실, 개그맨의 풍자를 ‘국회의원 집단 모독죄’로 고소하는 정치인. 그런 쓰레기들이 설치게 방치해 둔 우리들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더 이상 젊은이들은 조·중·동 쓰레기 조폭 언론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들 자체가 이미 하나의 미디어이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기성세대들은 지겹게 말했다. 요즘 것들은 철이 없다고. 아무 것도 모르고, 나약하고 게으르다고. 미안하지만, 이젠 닥치시라. 당신들이 반세기가 넘도록 하지 못한 일들을 이제 젊은이들이 하고 있다. 당신들이 조·중·동의 쓰레기 철자에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그들은 새로운 정치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 99%를 위한 정치 혁명을 이끌고 있다. 그러니 닥치시라.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라도 있으면, 이제 기성세대는 잠자코 있어야 할 듯하다. 이렇게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나라를 망쳐놓은 죄를 반성하고, 이렇게 대기업, 조폭 언론들이 한국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어지럽히게 한 기성세대들은 닥치고 있어야 하리라. 이제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다. 빈곤 문제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갖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아울러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줄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이 선진국인가 하는 고민 말이다. 세상은 만만치 않다. 기존 수구세력들의 힘 역시 여전히 막강하다. 하지만 긴장하시라.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리고 불의는 언젠가 반드시 정의에 의해 심판받게 된다. 그 형태가 어떻게 되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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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나랏님도 구제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빈곤문제는 절대 권력자인 임금도 어찌할 수 없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빈곤문제에 소홀히 하는 권력자들에 대한 면죄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쪽에서는 다이어트와 음식물 쓰레기로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한 쪽에서는 단 몇 센트의 돈이 없어서 굶어죽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더 이상 빈곤은 체념과 외면으로 미뤄두기에는 너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과연 빈곤은 인류가 영원히 해결하지 못하는 숙제로 치부해야만 하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일까? 지난 2008년 광우병 소고기 반대 촛불 시위에 대한 공권력 남용 문제를 제기해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세게 최대의 인권단체 국제 엠네스티(Amnesty Inter -national)의 사무총장인 아이린 칸은 그녀의 저서 “들리지 않는 진실 - 빈곤과 인권(바오밥, 2009년 11월)”에서 더 이상 빈곤을 이대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빈곤의 종식을 인권존중의 으뜸가는 과제로 설정하여 본격적인 퇴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녀는 빈곤이란 인권에 대한 부정이며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하며 빈곤을 인권이란 관점으로 바로 보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힘을 부여하고 그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성을 부여하는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논의의 중심에 진입하게 되고 자신을 가난하게 만드는 조건들에 맞서 싸울 존엄을 갖게 된다는 뜻이며 인권은 힘을 가진 자들이 선입관과 편견 없이 행동할 의미를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차별과 불평등을 해결한다고 이야기한다. 책에서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고, 빈곤의 원인이자 결과인 차별을 철폐해야 하며, 빈곤 문제를 왜곡하는 여러 논쟁들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통해 왜곡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빈곤과 차별로 수없이 죽어가는 산모들의 의미없는 희생을 하루속히 줄여야 하고, 10 억명이 넘는 도시 슬럼 거주민들에 대한 안전한 주거권과 생활개선, 직접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며. 천연자원 개발로 오히려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더욱 빈곤해지는 주민들에 대한 법적, 경제적 권리 보장이 시급하고. 빈곤퇴치를 위한 합법적 권한 부여, 국제적인 협조와 함께 그들이 서로 뭉쳐서 행동할 수 있도록 법적 보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녀는 마지막 장에서 이 책을 집필한 목적이 인권문제야 말로 빈곤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중심에 서야 하며, 진정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인권 문제에 대해 참여에 대한 권리, 폭력으로부터의 보호, 차별 철폐와 같은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였다고 밝히고 있다. 책에서 예로 든 수 많은 사례 중 남아공에서 다섯 명의 자녀가 있는 로지라는 여인이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하다가 결국 심하게 맞아 죽고말았는 데 세계 최고 수준의 가정 폭력 보호 법률과 가정폭력 상담소가 있음에도 경찰에 보호를 요청하지 못한 이유가 도움을 요청하러 갈 차비조차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례는 빈곤이 인간으로써 보호받아야 할 권리까지 누리지 못하게 하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책에서는 방글라데시, 중국, 인도, 아프리카 등 인권 후진국가들에 대한 많은 사례가 등장하지만 빈부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경제 성장만이 궁극적으로는 소득 불평등과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실제로 전반적인 경제성장을 경험한 국가에서 오히려 정상적인 삶의 필요조건들이 평등하게 채워지지 않는 경우를 더 자주 볼 수 있다”고 말하며 “성장에만 기댄 정책은 너무 위태롭다. 성장이 멈추고 나면 생활의 안정을 이루었던 수 백만명의 생활이 빠르게 붕괴될 것이며, 가장 취약한 계층이 겪게 될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다. 실제로 IMF와 최근 세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중산층의 붕괴와 빈곤층의 확산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겪었던 우리 상황 그대로이지 않은가. 또한 그렇다면 부자들을 증오하라는 말이냐 하고 묻는 사람들에게 “부자가 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최고의 수준의 학교에 들어가고 최상의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소득 때문에 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권리가 결정되는 현실이 무서운 것이다”라고 답변한다. 그리고 그동안 경제성장을 위해 인권을 제한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존중하는 것과 가난한 사람들이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그들을 억압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발전 전략”이라며 구체적 사례를 들어 그들의 변명을 무색하게 만든다. 한편 용산 참사와 같은 대형 참사를 일으켰던 철거문제에 대해서도 권력자들이 “바로 그들을 범죄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그들의 유권자들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범죄자가 되어버리면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녀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특정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에 바로 해당되는, 어쩌면 그들이 읽으면 영 불편한 그런 이야기를 이 책에는 잔뜩 담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이래저래 국제인권단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촛불시위 당시 과도한 공권력 행사, 용산참사, 대규모 토목 사업, 인터넷 통제 , 방송 권력 장악 저지를 위한 방송사 장기파업에 이르기까지 인권위원회를 독립 기관으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인권 실천국가 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일들로 주목을 받고 있다. 어렵게 쌓아 올린 인권의 탑이 이대로 무너져 수십년 전으로 후퇴할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더 놓이 쌓아가게 될지 국제 단체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길 바란다. 그 어느 나라의 국민보다 민주와 인권의 소중함을 직접 몸으로 느껴온 국민들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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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이것은 세계인권선언문의 첫 번째 문장이며 모든 사람들이 정부나 국적에 관계 없이 편견과 차별 없는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하며. 그렇게 행동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첫번째 여성이며, 동시에 첫 번째 아시아계, 무슬림으로 세계 최대 인권단체 국제 엠네스티 사무총장이된 아이린 칸의 저서 '들리지 않는 진실'을 통해 또다른 시각으로 빈곤을 바라 보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래 연말년시면 어김없이 행하는 자선행사, 명절이나 무슨 때가 되면 모금이나 바자회 등.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기가 괜실히 미안한 맘이 들 때면 습관처럼 돌아보게 되는 소외된 이웃들. 그나마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나 내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제는 방송으로 자주 접하게 되어 처음의 참담하고 놀라움을 대신하여 남의 일처럼 무덤덤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생선을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주어 스스로 자립하도록 하는것이 중요하듯 구호품이나 일시적인 원조같은 산발적이고 부분적인 접근 방법이 아닌 '참여'를 통해 가난한이들 자신이 미래를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전세계적으로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그녀의 설득력 있는 주장과 빈곤이 근본적인 인권문제라고 규정한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빈곤이라는 거대한 늪에 빠져 쉽사리 빠져 나오지못하는 나라들에 대한 그녀의 경험과 전 세계의 사례연구들을 토대로 빈곤종식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 인권은 사치일 뿐일까?
가난한들은 힘이 없기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을 획득할 수 없고, 안전을 확보할 수도,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도 없다. 인권존중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하여, 권력자들로부터 가난한 사람이 처한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살아있다면 국가에서는 잘못된 정책이 시행될 때 그것을 막아낼 힘이 그들에게 있음을 여타의 나라들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이 운명의 주인이 되기위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 할수 있도록 그들에게 힘을 보태주어야만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난한 이들에게 삶은 불안과 매일의 투쟁이다. 질병과 굶주림만이 아닌 범죄와 잔인한 경찰, 가정폭력, 무장충돌 등에 노출된 채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산다.
또한 지역간의 분쟁이 일으킨 내전은 상상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여 가난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인권문제에는 국경이 없다. 선진국이나 제3세계 여성들은 똑같이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아이들은 굶주림에서 벗어나 사랑안에 성장해야 하며,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살이야 한다. 지구촌에 사는 우리에겐 사람들이 처한 빈곤과 공포, 차별과 소외, 불안정과 침묵으로부터 함께 맞서 싸울 책임이 있다. 인권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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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빈곤의 문제는 나에게 멀리 있다고 생각하기만 했다. 어느 정도 현재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이기적인 걸까. 아니면 나와는 동떨어진 생각이라고 여겨지는 것뿐일까. 가끔씩 텔레비전에서 보는 아프리카 오지의 아이들의 굶주림과 빈곤을 볼때면, 답답한 생각이 들다가도, 그것이 우리나라의 일도 아니고,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단지 그 화면을 볼때만 그들에게 동정심이 일었을 뿐이다. 아니다. 내가 그들을 도와줄 형편이 안되서 그들을 무시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주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작은 도움도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텐데 말이다.
이 책의 빈곤에 대해 읽으면서도 나는 내내 담담했다. 그래. 그렇구나. 라고. 그러나 저자인, 아이린 칸 이라는 이분의 빈곤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그녀의 열정은 알겠다. 글 한글자 한글자에도 그녀의 열정이 느껴졌다. 세계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의 큰소리를 내고 있는가? 그들이 인간의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를 얻기 위해, 노력을 해본적이 있는가. 에 대해서. 저자는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인권 존중이다. 라고 설명한다.
물론 일부 정치가들은(대개의 정치가들인지도 모르겠지만) 빈곤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경제가 성장해야 하고, 돈이 가장 최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들을 도와주기 위한. 그러나, 아이린 칸이 말하고 있는 점은, 그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인권존중도 무시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카스트 제도는 태어날 때부터 한번 정해지면 죽을 때까지 가는 지위를 가진 제도였다. 최하위층이 타인으로부터 어떤 사회적 존중을 받는지는 너무도 다른 책을 통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우선은 돈이 아니라, 그들에게 인권을 존중할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법 개정도 좋지만, 사회적. 그리고 보편적인 가치를 사람들이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해왔던 것들을 바꾸긴 쉽지 않을 것이니까.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들의 예들과 여성.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녀가 좀 더 빈곤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었다. 이 책에는 또한 한국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경제성장률과 생활수준의 향상 때문에 자유를 억압했던 나라라고.. 쉽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은 아니었지만, 아이린 칸의 열정이 돋보였던 책이고, 빈곤과 인권존중의 관계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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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국제엠네스티 사무총장인 아이린 칸이 쓴 책이다. 엠네스티는 세계 각국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국제적인 단체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부제는 ‘빈곤과 인권’이다. 이 책은 빈곤의 원인을 인권의 차원에서 바라보며 그 원인을 찾아보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보는 책이다. 인권의 차원에서 바라봤다고 했지만 단순히 인권의 차원이 아닌, 사회 시스템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 하고 있다. 아이린 칸은 어릴 적부터 사회적 모순을 접하면서 사회시스템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자신과 가까운 친구가 자신과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왜 그렇게 됐는지 예를 들면서 이 책은 시작한다. 또한, 엠네스티 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 모습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살게 됐는지 과정을 이야기 하면서 사회 모순을 이야기 하고 있다.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서 인권을 신장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가 제시하고 있는 여러 방법 중에 하나는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들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대응을 하는지에 대해 잘 알아야 대응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녀가 제시하고 있는 방법 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아직도 많은 국가가 정보 접근에 대해 제한을 하고 있다. 그녀는 여기서 자신의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해선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고 하고 있다. 어찌 보면 힘든 이야기 이지만, 외부의 영향을 통해 성장한다면 결코 자기 것이 안 되기 때문 아닐까 많은 나라가 경제 성장을 위해선 인권 침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경제성장 후 벌어진 인권의 차이를 매우기 위해선 더 큰 재원이 추입되기 때문에 결코 정석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