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별 다섯개를 준 이유) 전기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고흐의 작품과 연관된 이야기를 자신의 주관으로 쓴 것. 귀를 잘라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을 이전의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것. 논리적인 설명보다는 가슴으로 바로 느낄수 있게 만드는 글 때문이다. 책은 미친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 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상에는 사람을 죽이고 몸을 잘라서 보관하고 심지어는 시체의 맛을 음미하는 사람도 있는데 고흐의 행동들을 과연 미쳤다고 볼수 있는것인가? 나또한 고흐를 미쳤다고 보지 않는다. 우선 두가지를 살펴보고 싶다. 첫번째. 나는 분명 친구에게 돈을 빌려 주었지만 친구는 돈을 갚아주지 않는다. (그림료를 지불할 생각이 없다) 직감으로는 돈을 떼먹을 수작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돈을 줄텐데 조바심을 낸다며 신경 과민 환자처럼 취급한다. 귀를 자른 행위를 보고 미쳤다고들 한다.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 손가락을 자른 사람들을 미쳤다고 말하지는 않는 세상인데... 두번째. 고리타분하게 이어져 오던 사실주의를 벗어나서 천재적이고 독창적인 그림을 그려나간다. 그런데, 그를 상담하던 정신병원 의사는 그의 천재성을 시기한다. 왜냐하면 자신도 화가였으니까 (화가 겸 의사 겸 미술작품 수집광) 고흐의 주변에는 그림에 관한 사항을 교류하는 화가들은 있어도 흘러 넘치는 미술적 재능을 제대로 제어하거나 보듬어 줄 사람은 없었던듯 싶다. (상담하는 의사가 오히려 정상이 아니다.) 죽고 나서야 사람들이 알아보고 한국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도 꼽힌 적이 있다는 고흐를 누군가는 그런 삶을 절대로 동경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할지라도 (죽고 나서 잘되면 뭐하나. 이런 말들) 더 이상 창작되지 못한 죽음 뒤의 시간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순수한 열정. 천재적인 감각. 한없이 아름답고 자비롭게 바라보는 아를과 프로방스. 고흐는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자살과 광기에 가리워져있는 점또한... 책은 생각을 완전히 바꿔 주기도 하고 오히려 기존의 생각을 굳히게도 만든다. 고흐에 대해서 여전히 막연한 시각과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며 눈물 흘리고. 고흐를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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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예술가들의 평전과 작품론이 있다. 이 책들의 대부분은 예술가의 삶과 생각과 작품을 다양한 문예이론과 취재를 동원해 쓰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여타의 책들과 특이하게 구별된다. 이 책은 예술과 예술가를 '분석'한 책이 아니고, 예술의 몸으로 들어가, 예술가의 삶 자체인 책이기에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보여지는 '불쌍한 반 고흐'의 여러 작품들은 보다 비장하고, 아름답고, 생동감있게 다가온다. 이런 느낌은 저자 앙토냉 아르토의 생동하는 문장의 힘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예술가 아르토와 고흐를 다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술의 본령'을 힐끗 엿보게 되었다. [인상깊은구절] 반 고흐는 모든 화가들 중에서 가장 깊숙히, 우리의 모근까지 벗겨내는 화가이다. 마치 강박관념을 솎아내려는 듯 샅샅이. (...) 대지가 흐르는 바다의 색깔을 지닐 수 없음에도 반 고흐가 호미질 하듯 툭 내던지는 대지는 정말 흐르는 바다 같다. 또한 연보랏빛 색깔로 그림을 우려내어, 대지는 포도주 냄새를 풍기고, 밀밭의 파도 더미 한 가운데에서 여전히 출렁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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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앙토냉 아르토 부제 : 사회가 자살시킨 사람 반 고흐
“반 고흐야말로 분명 모든 화가 중에서 가장 진정한 화가이다. 그는 이 독보적인 자연의 재현을 통해 내면으로부터 뿌리째 뽑아낸 소용돌이치는 힘의 분출을 목적으로 하는 회화를 성취한 절대적으로 유일한 화가이다.“ -앙토냉 아르토 “아르토는 시니피앙의 벽을 타파한 문학의 절대적 깊이를 달성한 문학의 완성이며 살아 있는 신체와 이 신체의 놀라운 언어를 발견한 유일한 작가이다.“ -질 들뢰즈 “절망과 좌절, 고독 속에서 예술의 불꽃을 사르다 간 반 고흐와 잔혹극의 선구자 앙토냉 아르토. 그들은 비극적 인생만큼이나 예술적, 정신적으로 교감을 이루고 있다. 아르토는 반 고흐를 내면 깊숙이 이해하고 그의 입장에 서서 그를 대변해주었던, 시대와 장르를 뛰어넘은 정신적 동반자였다. 아르토의 이 책은 그 자신과 같은 위치에 서 있는 반 고흐의 세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 광기의 권리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이가림 “아르토는 ‘진정한 고통이란 사유가 그 사람 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르토가 말하는 사유의 고통은 우리가 읽기에는 종종 고통스럽다. … 진정으로 치유할 수 없는 그의 의식의 고통이란 바로 정신을 살덩이의 조건과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제 아르토의 작품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유용한 것이 되었다.” -수잔 손택 1947년 1월부터 3월까지 파리의 오랑쥬리관에서 반 고흐 그림 전시회가 열리는 중에, 1월31일 주간지 《Arts》에 정신과 의사인 베르와 르르와가 『반 고흐의 악마성』이라는 저작 출간 소식을 전하면서 그 가운데 「그의 광기」라는 글을 발췌하였다. 그 책에서 의사는 반 고흐의 작품을 미친 상태의 광기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혹평한다. 아르토의 미술비평서,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는 그 기사를 읽고 2월 2일 직접 파리의 오랑쥬리관을 방문해 고흐의 작품을 감상한 뒤 순식간에 써내려 간 것이다. 그해 12월 출간되었으며, 이듬해 심사위원회 만장일치로 생 뵈브 비평상을 수상했다. 나는 앙토냉 아르토라는 비운의 천재적 예술가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우연이라는 것은 강남의 예스24 중고점에서 호기심에 집어든 책 『내 남자의 책』 때문인데, 처음 들어본 함정임 작가의 작품은 마지막까지 읽어내기가 곤혹스러울 정도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 책을 통해서는 단 하나, 잔혹극의 창시자라고 일컬어지는 “앙토냉 아르토”라는 작자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그 책은 예술비평 기자가 “앙토냉 아르토”를 쫓아가는 여정을 뒤쫓는 1인칭 소설인데, “앙토냉 아르토”가 누구였는지 아무런 정보도 없었던 나로서는 흥미를 느끼기 지극히 어려운 책이었다.
어쨌든 그 책은 그래도 내게 “앙토냉 아르토”라는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주었고, 그 길로 앙토냉 아르토의 책 한 권을 주문해 읽도록 만들었으니 어마어마한 성공이라고 봐야겠다.
아르토에 대하여 관심을 많이 가지만, 아직 예술적 단계가 초보에 불과하고, 잔혹극의 창시자라는 다소 독특하고 무서워보이는 별명이 주저하게 한다. 게다가 그의 애인이 모아 펴낸 전집이 스물몇 권에 달한다고 하니, 쉽게 달려들 작가는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작품으로 반 고흐에 대한 그의 비평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딱딱하고 어려운 비평서가 아니라, 아르토의 내면적 울분이 고스란히 활자를 통해서 전해진다. 뜨겁고 끈적한 외침이 얇은 책 가득 고흐의 그림과 함께 박혀 있다.
아르토는 반 고흐가 자살이 아니라 분명히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직접 자신을 죽였지만, 그 원인 제공자는 정신병원의 의사였다고 공공연히 밝힌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흐의 그림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펼쳐 보인다. 책 가득 펼쳐지는 황금색 붓질을 보니, 나 역시, 고흐는 자살이 아니라 타살임이 분명하다고, 아르토의 주장에 맞장구를 친다. 자살이냐 타살이냐는 고흐의 행동이 아니라 그의 그림이 말해주는 것이다. “나는 극단적인 죽음의 순간에는 항상 누군가 배후에 있어 우리 스스로의 삶을 박탈한다고 믿는다.“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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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토냉 아르토의 고흐(추모)론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지극히 주관적인 비평이 때론 더 많은 걸 전달해주기도 한다는 걸 보여준다. 아르토의 일생도 고흐와 비슷했다. 1896년에 태어나 일생을 정신병원을 오가며 실험적인 문화로 가득했던 벨 에포크 시대에 예술(시, 잡지 기고, 연극과 영화) 활동을 하고 약물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1948년 52세에 요양원 침실에서 요절한 내력을 보면 아르토가 고흐에게 동병상련을 많이 느꼈으리라 생각되었다. 이 책은 1947년 1월~3월까지 프랑스 오랑쥬리관에 있었던 반 고흐 전시회를 다녀온 후 완성한 책이다. 그즈음 베르(Beer) & 르르와(Edgar Leroy)라는 두 명의 의사가 쓴 책 『반 고흐의 악마성』의 기사를 보고 반론을 펴려던 동기도 있었다. 예술가로서의 고립감과 의사들과의 소통 부재를 그도 통렬히 느꼈던 터라 이 책의 초반부터 고흐가 미치광이 화가로 평가된 것에 격노하며 글을 펼쳐나갔다. 아르토는 고흐의 정신과 의사이자 취미 화가이기도 했던 가셰가 질투에 찬 냉혹한 살인자라고 몇 번을 강조했다.
고흐의 죽음에 대한 아르토의 글은 미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이 사회의 당신들이라는 지적과 함께 자신의 죽음도 그렇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유언 같기도 했다. "반 고흐 이후 나는 어떤 그림도 묘사하지 않으리라"고 썼는데 1947년 12월에 이 책을 낸 뒤 이듬해 사망해서 정말 그렇게 되었다.
고흐의 붓질을 잘 볼 수 있게 그림 프린트가 잘 되어 있어 참 좋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감의 두툼한 터치 효과와 강렬한 인상은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도 못지않다 생각하고 아르토 작품의 모티프(잔혹함의 재현)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베이컨에 더 동류의식을 느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점이다. 두 사람 간의 관계성은 차후 찾아봐야 할 숙제거리이다. 아르토는 반 고흐가 "자연과 오브제의 모든 형태를 쉬지 않고 때린다"라고 말하며 선과 형태가 아니라 자연을 온통 격동하듯 그린 것에 경외감 가득한 찬사를 바친다.
아르토의 반 고흐 자화상 분석도 좋은 관점이었다. 반 고흐는 자화상을 많이 남긴 화가로도 유명한데 말년 특히 1887년이 정점이었다. "약 38점에 달하는 자화상 중에서 왼쪽을 바라보는 프로필이 18점, 오른쪽을 바라보는 프로필이 18점, 정면을 바라보는 것은 상대적으로 적은 2점"(옮긴이 주석)이다. 고흐 자화상의 흐름을 살펴보며 아르토는 정면 초상화에서 고흐가 누구보다 명징하게 자신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아르토의 과도한 자기 투사와 몰입이 담긴 이 책은 오해와 독단이 뒤섞인 독설가의 수사로도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냉정한 분석 글만이 언제나 좋은 글이 아니란 걸 나는 안다. 죽은 뒤에 이토록 사랑받는 일은 당사자에게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지만 아르토의 절절한 추모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가 그린 의자, 촛불, 밀짚, 건초, 해바라기, 별, 강가, 그것들은 평범하고 덧없이 흩어지는 것들. 고흐의 삶과 그림은 우리 마음속 원형을 건드리고 우리를 흔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예술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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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다’ 의 반대는 ‘비범하다’이다. 세상은 비범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다수의 표준이 평범함인데, 그 평범함에서 벗어날 정도로 훌륭하니 비범한 것이지.
평범한 사람들은 비범한 사람들의 세계를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상식과 편견이라는 틀 속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이유를 결코 자신이 어리석은 게 아니라고 위안한다. 그 세계가 이상(異常)한 것이라고. 이해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러나 평범함은 정상(正常)이라는 말과 결코 같은 뜻이 아니다. 오랫동안 흐르지 않고 고여 있어, 썩어버린 호수가 정상이 아니듯이 말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반 고흐라는 자에 대해서 그저 정신병력을 가졌던 미술가로 생각했었다. 정신발작으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귀를 자르게 되었고, 결국 자살을 하게 된 화가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술가를 비롯한 예술가라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정신적인 결함을 갖고 있는 것으로 편견까지 갖고 있었다. 그의 그림은 훌륭하지만, 그러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자라고...
반 고흐는 비범했다. 평범함을 벗어나려 했기에 천재였다. 그는 풍경을, 사물을, 인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한 인물이 아니다. 거기서 받은 영감을 그리고자 했다.
「반 고흐는 자연과 오브제의 모든 형태를 쉬지 않고 때린다. 반 고흐라는 대못으로 꽁꽁 엉겼던 올이 펴진 풍경들은 찢겨진 복부 사이로 역정을 내며 자신의 적대적인 살덩이를 드러내고 있지만,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이 풍경을 변화시키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p.28
「반 고흐가 그린 마지막 그림의 색조는 가장 비장하고, 정욕적이고, 정열적인 엘리자베스 시대 연극처럼 돌발적이고, 야수적인 음색을 상기시킨다.」p.35
「그는 회화의 재현 아래, 대기를 땅에서 솟아나게 했고, 그 재현 속에 신경을 잡아두었다. 자연에는 없는, 그러나 사실로서의 자연보다 훨씬 진실한 본성과 모습을 한 대기와 신경을.」p.73
「인류는 항상 그저 존재하는 것에 만족하는 쪽을 훨씬 사랑했다. 생명은 습관적으로 예술가의 천분 속으로 생명을 찾아 나선다. 그러므로 한 손을 그을린 반 고흐는 살기 위해, 즉, 존재한다는 관념으로 산다는 사실을 벗어 던지기 위해 결코 투쟁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p.89
하지만, 반 고흐는 자신의 그림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였다. 생전에 팔았던 그림이 한 장이라고 하지 않던가.
사회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정상이란 것으로 그의 혼의 근원을 수정하도록 했다.
「가셰 의사는 반 고흐의 사유의 스위치를 봉해버렸다.」p.43
그렇다. 반 고흐는 자신의 세계가 무너져 내려가는 것을 스스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나씩 무너져 내려가면서, 그는 괴로워했다.
귀를 자르게 된 경위도 그렇지 않을까? 정신병의 발작으로 귀를 자른 게 아닐 것이다.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고통을 결코 참지 못했을 것이다. 고통에 못 이겨 귀를 자르게 되고, 자신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느꼈을 때, 그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그리고 자살을 하게 된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결국 사후에 유명해진 작가이다. 생전에는 결코 이해받지를 못하였다. 사람들의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정상이 아니라고, 평범한 게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나중에 그 가치를 이해받고 다시 그것들을 포함하여 정상이 되는 것이겠지.
우리는 한 단계 높은 차원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의 자극이 필요하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책을 덮고 나서도 아직 해답과 그 해답을 찾기 위한 방법을 아직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안다. 그 해답이란 것은 결국 빈센트 반 고흐라는 존재와 비슷한 것일 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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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은 수전 손택의 '우울한 열정' 속에 나온 인물들을 차례로 만나보겠단 야심찬 계획 하에 집어 든 책은, 좋아하는 화가 고흐에 관한 이야기에 굵기까지 얇아 가쁜한 마음이었건만 하필이면 앙토냉 아르토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그녀의 책 속에서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가장 긴 글에 해당되었던 그래서 불행히도 내가 더더더더욱 심각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예술가다. 오예~
평생 정신병을 앓았고 9년간 정신병원에 억류된 경험에 아편 중독 상태였었다는 앙토냉 아르토의 화려한 이력만큼 그는 단 한 순간도 광기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나는 열광자이지, 미치광이가 아니오'라며, 단순히 미쳤다고 치부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예술 활동과 글을 썼다. 하지만 집단적 열광이 아닌 혼자만의 열광을 사회에서 '광기'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의 주장들과 작품들은 그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해서 외면당한 앙토넹 아르토의 광기를 읽어가는데는 특별한 끈기, 특별한 감수성 그리고 특별한 요령이 필요하다고 수전 손택조차 조언했었다. 그런데 나는 '특별한' 어떤 것도 갖추지 못한 상태로 그를 집어든 것이다. 하.하.하.
에세이이자 산문시의 분위기를 풍기는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는 특이한 출간 경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1947년 1월에서 3월까지 파리의 오랑쥬리관에서 반 고흐의 그림 전시회가 개최되려고 할 때, 정신과 의사인 베르와 르르와가 '반 고흐의 악마성'이라는 두툼한 책을 출간했다. 그 책에서 그들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반 고흐를 광인으로 단정하고, '천재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불안정한 사람이자 일관성 없는 온갖 행동으로 미루어보아 미친 사람이 분명하다'고 결론지었다. 당시 아르토의 친구인 피에르 뢰브가 그 글을 아르토에게 보여주었고, 이에 격앙한 아르토가 정신과 의사들을 반박하는 초고를 작성하여 이 책이 신속하게 출간된 것이다.
그래서 아르토는 이 책에서 사회의 지속적인 몰이해 속에서 탄생된 불운한 고흐의 천재적 작품들에 집중했다. 밤마다 풍경을 앞에 놓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열두 개의 초를 모자에 매단 채 산보하는 고흐를 정신병자로 치부하는 사회에 혹은 정신과 의사들에게 '사회가 그를 자살시켰다'고 비통해 하며, 회화 역사의 한 사건이 아닌 역사의 한 사건이었던 반 고흐의 그림들을 큰소리로 묘사했다. 고흐의 원색적이면서 강렬하게 움직이는 터치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지독하게 감성적이면서도 단숨에 내뱉는 힘찬 아르토의 언어들, 그 두 예술가는 그렇게 만났다. 사지에 몰렸어도 숨길 수 없는, 자연을 온통 격동하듯 그린 색상의 '광기'와 고통을 통해 발언할 권리를 획득한 언어의 '광기'가 운명처럼 말이다.
출처 : 네이버 미술 정보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비상한 투시력의 반 고흐가 그린 이 불그스름한 푸줏간장이의 얼굴은 우리를 감시하고, 우리를 찬찬히 뜯어보고, 흘겨보는 듯한 눈길로 우리를 탐색하고 있다. 나는 이처럼 압도적인 힘으로 인간의 얼굴을 탐색하고, 반박할 수 없는 인간의 심리학마저 도마 위에 올려놓듯 해부할 줄 알 정신병 의사를 전혀 알지 못한다. 반 고흐의 눈은 대천재의 것이다.
나는 마치 그림의 저 깊숙한 곳에서 그가 불쑥 뛰쳐나와 나를 해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내가 그의 내부에 있음을 느끼는 이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화가의 천분이 아닌, 일생 동안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철학자의 천분이다. 그렇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시선을 지니지 않았다. 반 고흐 이전에는 불행했던 니체가 유일하게 이런 시선을 지녔었다. 정신의 속임수 없이 영혼에 입혀진 옷을 벗기고, 영혼의 굴레에서 육체를 해방시키고, 마침내 인간의 육체까지도 훌러덩 벗겨내는 시선.(p.107)
반 고흐의 시선은 허공에 있고, 한껏 죄어져 있다. 그것은 평범하지 않은 그의 눈꺼풀, 가늘고 주름 하나 없는 그의 눈썹 너머로 유리처럼 투명하다. 그것은 곧장 꽂히는 시선이다. 각지게 잘 쳐낸 나무처럼 이 투박하게 생긴 얼굴의 꿰뚫는 시선. 그러나 반 고흐는 눈동자가 허공 속에 빠지려는 순간을 포착했다. 유성의 폭발처럼 우리에게 달려드는 이 시선은 허공의, 그리고 허공을 채우는 부동의 흐릿한 색깔을 띠고 있다. 이토록 위대한 반 고흐는 세상의 어느 정신병 의사보다 훌륭하게 자신의 병을 정확하게 감지하고 있었다.(p.108)
고흐의 작품 하나하나를 놓고 이토록 예리하고 절묘하게 표현하는 아르토의 감성적이면서도 사실적인 글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만든다. 비록 아르토가 고안한 고유한 의미는 물론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 음절로 간간이 탄성을 지를 때면, '그가 정말 미쳤구나'라며 웃음 짓기도 하지만, 고흐의 그림 속 열정을 이해하고 공감하여 격정에 휩싸인 채 표현하는 그의 언어들 만큼은 상당히 매혹적이라 뿌리치기 힘들다. 책 속에 선별된 고흐의 여러 작품들을 자세히 감상하는 즐거움에 하나 더! 나의 영혼을 흔드는 멋진 표현들까지~ 그래서 이 천재적 광기를 가진 그러면서 불운했던 두 예술가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