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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이 뭐 그렇고 그렇지 뭐..편견이라고 할까 아님 '단 한 편의 소설로 전 언론과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한몸에 받으며 무섭게 등장한 신예작가' 라는 극찬에 가까운 소개 덕분이었을까 책을 읽기 전 가진 기대감은 반감되어 있었다는 말이 맞을 거 같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고 너무나 화려한 등장은 오히려 그 감동을 전달하는데 방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읽으면서도 역시나 그렇군! 하는 씁쓸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그런가 보다.
책을 받는 순간 느껴지는 포스는 평온함이었다.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 권의 책을 손에 들고는 이 책을 언제 읽지? 하는 두려움 보다는 먼저 느껴진 것이 편안함이었다. 목가적인 풍경과 소년과 그 옆은 지키는 커다란 개.. 언젠가는 답답하고 전쟁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내 꿈을 표현하기라도 한 것처럼 너른 들판 바람에 흔들리는 초지의 모습이 마음을 끌어당기며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책읽기가 시작되었다.
데이비드 로블레스키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는 『에드거 소텔이야기』는 말을 할 수 없는 아이 에드거와 그 가족들 그리고 평생의 친구인 개 앨먼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별한 개들을 교배하고 훈련시켜 분양하는 일을 가업으로 시골농장에서 아버지 가르와 어머니 트루디와 함께 소박하게 생활하는 에드거는 자신이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자극적이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견공들의 이야기가 1권의 초반에 집중되어 있어 읽는 내내 즐겁다. 그래서 넘어감이 버겁지 않았다. 커다란 개와 작은 꼬맹이들 그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 특성을 파악하는 일들 그리고 함께 하는 훈련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차피 개들과의 대화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다. 에드거가 말을 할 수는 없어도 마음으로 표정으로 행동으로 개들과의 소통을 하고 있다. 강압적이거나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와 사랑과 배려를 통한 대화가 마음에 썩 든다. 그래서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개들의 내면세계 또한 놓칠수 없는 부분이다. 말이 새어나갈 일이 없기에 비밀을 얘기할 수도 있고 모의를 하는데 가장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 주기도 한다. 에드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만 나도 그와 교감을 하는 일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면 조금의 신체적 문제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에드거의 생활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고를 당하면서 변화해 가기 시작한다. 119로 전화를 걸었으나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사고소식을 전할 수 없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을 갖게 되는 에드거... 큰 울타리였던 아버지가 없던 자리를 십대의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컸고 앞으로 전개될 일에 가슴을 졸이게 된다. 이제 평범하고 잔잔했던 에드거의 생활속에 닥쳐올 그 어떤 일들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저자의 문체속에 에드거를 응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평온했던 에드거의 가족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삼촌인 탕아 클로드의 등장과 함께 였다. 아버지 가르가 있을 때 다툼면서 집을 떠나버린 클로드는 가르의 죽음 후 힘겨워하는 가족들의 힘이 되어주기는 커녕 농장의 삶에 관여하며 서로 사랑하던 가족들 사이에 반목이 생기고 의견 충돌을 만들어 낸다. 결국 슬픔과 혼란을 극복하지 못한 에드거는 세마리의 개와 함께 농장을 떠나게 되고 이제 살아남기 위한 생활을 하며 스스로가 자라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 두꺼움에도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어떤 현란한 문장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아님에도 시선을 뗄 수가 없다. 힘들이지 않고 읽으면서도 감각적인 언어에 빠져 에드거와 함께 울고 웃고 힘겨워 하며 여행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놀라게 된다. 풍요롭다는 아마 이 책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내용의 풍성함과 넉넉함 그리고 가슴 가득히 담긴 충만함을 고루 갖춘 이 책.. 한동안 내 책장을 떠나지 못할 거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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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깊은 삶의 교감을 말하는 현대판 고전
얼마 전에 영화 역사상 가장 이례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무명 배우, 저예산, 적막한 스토리, 다큐라는 가장 최악의 조합인 한 영화가 일대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바로 <워낭소리>이다. 산골에서 살고 있는 한 노부부와 그들의 늙은 일소의 우정과 감동을 그린 이 영화는 특별한 스토리 전개도 없고, 대단히 화려한 장면이 없음에도 관객들의 마음속에 오래 잠들어 있는 ‘진정한 인간애’를 자극하였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 영화가 관객들을 울릴 수 있었던 것은, 인간과 동물이라는 관계 속에서 형성될 수 있는 ‘말없는 눈빛 우정’을 정말 제대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먹먹한 가슴을 잠재울 수 없어 울었다. 동물은 아니지만 애니메이션 <월,E>도 그런 맥락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이 영화와 같이 ‘말없는 감동’을 선사해주는 작품이 또 하나 탄생했다. 바로 이 소설인 <에드거 소텔 이야기>이다.
아마존, 뉴욕 타임즈 종합 베스트 1위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보다가도 단순히 인간과 개에 관한 우정이라고 쉽게 판단해버려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표지 디자인에 민감한 나로서는 표지에 만점을 넉넉히 주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뛰어난 색감에서 오는 감동과 한 남자와 그 옆에 나란히 걸어가는 개의 애틋함은 책에 손이 여러 번, 아니 늘 가지고 다니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조심스럽게 펼치는 순간, 나의 머리와 가슴으로 다가오는 이 놀라운 소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처음엔 속도가 잘 나지 않았다. 마치 들녘에 몰아 붙은 한 어린 시절의 목가적 추억이라 할까. 그런 느낌으로 소텔 가족들을 소개하고, 에드거 탄생을 말하며, 앨먼딘이라는 충실한 개 이야기를 물 흐르듯 읊는다. 정말, 읊는다는 표현이 적합한지도 모르겠다. 나는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씹으면서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소설도 엄청난 두께와 양에 비해, 씹을 거리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만큼 문장력과 문체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뚜렷한 배경묘사는 물론이거니와 삶과 운명에 뒤흔들리는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독자들이 이 한 소설, 아니 ‘에드거 소텔’ 이란 캐릭터에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가도록 만들어 준다. 따뜻하면서도 차갑고, 감동적이면서도 냉정하다. 아, 이러다 정신이 혼미해질지도 모른다.
‘하느님의 비밀’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말 못하는 아이가 된 주인공 에드거와 그의 충견 앨먼딘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인 것 같다. 손으로 표현하는 그만의 세계에서 그는 주변의 모든 것을 깊이 이해하고 탐닉한다. 오히려 그런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에 더 괴롭고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중후반에 갈수록 갑자기 급변하는 전개는 그가 얼마나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이해하기 싫은 휘몰아치는 폭풍 같은 느낌이지만 끝까지 난 그의 편이 되어주었다. 데뷔 소설에서 이런 캐릭터를 창조하다니, 그저 작가의 능력이 탐날 뿐이다.
이 책을 소개할 때 현대판 <햄릿>이란 수식어가 끊임없이 붙어있다. 뭐, 그렇게 볼 수 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저 에드거 소텔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가족과 가족 이상의 우정을 가진 개들이 있다. 인간의 끊임없는 애정의 결핍이 모든 것의 시작이 아닐런가한다. 날카로우면서 치밀한 구성력과 부드럽고 다정한 말투 속에서 오랜 교감의 끝을 맛보았다. 이렇게 깊이 있는 작품들은 우리가 늘 상 찾고 있는 명품 고전들처럼 오래도록 독자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에서 나는 또 다른 깊이를 찾는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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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2권은 말이야. 1권의 종반부에서 시작된 속도를 그대로 이어받았어. 그래서 시작부터 좀 달려주시는 거지. 1권 후반부에서부터 서정적 분위기가 점차 미스테리 분위기로 전환되는 냄새를 풍기는데, 2권부터는 아주 대놓고 호기심을 자극해. 1권 제일 처음에 등장하는 프롤로그에 대한 궁금증까지 생길 정도지. 이게 뭔가 이제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는 사실이 손에 가깝게 와 닿는 거 같거든. 그런데 이 양반 쉽게 안 풀어주네. 아우. 아 참, 내가 얘기 안 했지? 이 소설의 프롤로그 배경이 부산이야. 1952년 부산. 그게 뭐 대단할 건 없지만 그래도 200개국이 넘는 나라의 일개 도시가 어떤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건 좀 나쁘지 않잖아? 게다가 부산이 파리나 베네치아 같은 관광도시도 아니고 말이야. 물론, 작가는 한국 전쟁을 염두에 둔 설정이었겠지만 아무튼 내 애국심은 요럴 때만 발휘되기 때문에 내심 흡족했어. 우린 중요하지 않을 때만 애국심을 발휘하곤 하지. 남 몰래 발휘하는 걸 좋아한다고나 할까?
자, 2권의 초반부에서 말이야.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져. 물론 사건은 계속 있어. 내가 말하는 건 일종의 획이 되는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니까. 그 다음에 한동안 로드 무비같은 장면이 펼쳐지는데 아우, 난 개인적으로 이 시간이 참 좋았다우. [개밥바라기별]이나 [바리데기], [로드]도 그렇고 일본 소설중에 [바보들이 도망간다] 라는 소설도 그렇거든. 음...뭐랄까 그게 도주든 여행이든 뭐가됐든 함께 떠나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응. 맞아. 얘, 에드거가 좀 돌아댕기는 시간이 있어. 그럴 수밖에 없었지. 아무튼 그 덕에 독자인 나는 좋았고. 물론 개들도 같이 돌아다녀. 그 녀석들이야 이 소설에서 늘 한 몫을 하지.
단지 재미의 면만 두고 말하자면 2권이 좀 더 재미있는 것 같아. 앞서 말했듯 호기심 면도 그렇지만 일단 1권보다 동적이지. 액티브하다고나 할까,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숨겨진 비밀에 점차 접근해나가는 듯한 그 느낌이 뭔가 두근두근하잖아. 이 작품에서는 비밀에 다가간다기 보다 그 비밀을 어떻게 하려는 걸까? 하는 호기심이 더 큰 편에 속하겠다. 아무튼 그래. 으흠, 중간 중간 감동적인 부분도 좀 있어. 너무 감동적이어서 돌아버린다거나, 씹던 껌을 그냥 삼킨다거나 그럴 정도는 아니지만 아주 잔잔하고 독특한 감동이 있지. 특히 그런 면에서는 말이야. 다소 느리게 읽으며 그 장면 하나하나를 느긋하게 느껴주는 여유도 약간 필요해. 그래 맞아. 이 작품은 여유와 호기심이 잘 버무려진 거야. 그러니까 괜찮은 거지.
지하철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개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 주인은 이미 죽었는데 계속 같은 장소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개 말이야. 난 들어본 적이 있어. 음...물론 이 책에도 그 이야기가 잠시 나오고 1권 리뷰에서 말했던 앨먼딘이 약간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개로 등장하지. 주인공 에드거와 앨먼딘 사이에 흐르는 묘한 교감은 말이야, 으흠. 괜찮아. 이러나 저러나 다른 건 모두 차치하고라도 말이지, 개 좋아하는 사람은 이 책도 무조건 좋아하게 되어있다고 생각해. 묘사가 손에 잡힐 듯 해서 말이지.
이 책의 결말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게 좋겠어. 그냥 그러지 않는게 좋을 거 같아. 나는 책 소개나 그런 걸 자세히 읽지 않고 봤던 터라, 뭔가 예상치 못한 결말 같은 거였거든. 물론 뭐, 그런 예상치 못하는 결과 이런 게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소설은 아니지만 그래도 뭐랄까, 모르면 좋아.
띠지에 좋은 문장 써있네. <살면서 해야 하는 '선택', '운명'에 관한 거부할 수 없는 이야기.> 그런 얘기야. 이제 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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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마음이... 심란하다. 너무너무 재미있다는 열화와 같은 다른 이들의 서평만큼 흡인력이 뛰어났던 것이 아니어서일 수도 있고...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특히 개와 소년의 교감이 이 이야기의 다일거라고 생각했다.)일거라고 기대했던 예상과는 달리, 음모와 배신, 죽음이 잇따라 등장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해피엔딩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결국은 끝까지 클로드가 왜 가르를 죽였는지 알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재미 없게 읽은 것도 아니고, 감동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조금 두꺼운 이 두 권의 책을 2주도 넘게 들고 읽었고 잠시 내려놨다가 다시 들 때마다 심란했다. 이 책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1권을 읽고 있을 땐... <가을의 전설>이라는 오래된 영화가 생각났다가, 2권 중반을 들어서니 왜 이 책을 <햄릿>에 비하는지 갑자기 이해가 되기도 한다. 처음 시작은... 소텔가의 붕괴를 예고라도 하듯, 어떤 한 남자가 독성을 지닌 어떤 물질을 구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 장소가 1952년, 한국 부산의 어느 골목이라는 것부터가 참... 마음에 안 든다. 왜? 보통 그런 약품들은 중국 아닌가? 어쨌든... <<에드거 소텔 이야기>>는 소텔견이라는 새로운 견종을 만들어낸 소텔가의 소년 에드거의 이야기이다. 에드거의 할아버지서부터 만들어진 이 소텔견들은 아버지를 거치며 더욱 탄탄해지고 에드거는 이 대에서 대로 물려지는 소텔견들의 훈련과 이들의 정신을 물려받는다. 소텔견들은 사람들의 완벽한 반려견으로서 훈련받고 개량된 개들을 말한다. 주인의 눈빛과 작은 몸짓에도 반응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개들을 만들려는 게 그 목적이었지만, 에드거는 많은 경험을 겪으며 그들에게 해 오던 "명령"을 해제하고 그들 나름대로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해 준다. 작가가 바란 반려견이란 그러한 관계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런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각자의 의지로 소통하는 그런 관계 말이다. 에드거 소텔과 엘먼딘을 비롯한 소텔견들과의 교감이 한 축을 이룬다면... 또다른 축은 에드거의 아빠 가르와 클로드의 관계이다. 아주 오랜 부재 끝에 클로드가 소텔가에 돌아오면서 어느날 갑자기 가르는 죽고, 소텔가는 조금씩 파국으로 치닫는다. 가르의 죽음에서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은 기운을 깨닫는 에드거가 그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도망친다. 하지만 그 도망 중에 에드거는 몸도, 마음도 자라고 그 도망 끝에야 비로소 에드거는 자신을, 아버지의 죽음을, 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에드거가 자신의 강아지들을 교육시켜 어떤 죽음을 연상케하는 장면은 <햄릿>의 연극 부분과 매우 닮아 있다. 하지만, <햄릿>에서처럼 결론은 쉽게 나지 않는다. 에드거는 그 연극을 통해 밝혀졌음에도 망설이고 도망친다. "에드거에게, 자신이 하려던 일은 지혜와 어리석음의 문제도, 용기와 만용의 문제도, 통찰과 무지의 문제도 아니었다. 소년이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분리할 수 없을 따름이었다. 피할 수 없는 의무 중에서 선택할 수가 없었다. 부활할 것인가 복수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돌아설 것인가."...2권 431p 에드거는 돌아와 그만의 방법으로 맞서지만 결과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끝을 맺는다. 그래서 아쉽다. 언제나 예측 가능한 결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시원스런 결말이 아닌것만 같다. 클로드는 그냥 오랜 애증의 관계를 견디다 못해 가르를 죽인 것인지, 트로디는 결국 진실을 알아냈을 것인지, 에세이는 앞으로 어떤 선택들을 할 것인지.... 많은 것들이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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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북클럽이 선택한 소설. 에드거 소텔의 할아버지는, 위스콘신의 시골에서, 자신만의 소신과 안목으로 골라낸 개들을 교배해서 인간을 배려하는 마음이 특출난 명품견을 만들어낸다. 에드거는 청각을 포함한 다른 부분은 모두 정상이나 태어날때부터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화로 부모님이나 개들과 의사소통을 해오고 있다. 가업을 이은 아버지와 트레이닝을 담당하는 어머니에게 사랑받으며 평화롭게 살아 왔지만, 아버지의 남동생인 클로드가 갑자기 돌아오고 나서부터 조용하던 집안의 평화가 깨지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급사하고 나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약해져버린 모자의 생활속으로 클로드가 비집고 들어온다. 에드거는 삼촌인 클로드가 아버지의 죽음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의심하지만, 그것을 폭로하려던 계획이 실패하고 비극을 낳게 된다. 에드거는 충성스러운 세마리의 개와 함께 도망자가 된다. 더 이상 상세하게 설명하면 내용을 다 이야기하게 되므로 그만두지만, 70년대의 미국이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문호들의 작품이나 햄릿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책이다. 때때로 문학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부분도 있고, 마음을 빼앗길듯한 디테일한 풍경의 묘사도 있다. 특히 인간과 개와의 교감이나, 명견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는 부분을 보면 작가가 소텔가의 명품견들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준비와 구상을 해왔음을 엿볼수 있다. 이 가상의 혈통을 이어받은 개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인간과 개와의 교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만, 스토리, 문장, 감동적인 묘사등 훌륭한 부분이 많고 개의 성격 묘사 쪽이 뛰어나 감정이입하기 쉬웠던 데 반해서는, 등장 인물이 이면적이어서 그다지 매력이 느끼지 않는 다. 그리고 결말을 포함한 수많은 사건의 필연성을 완전히 납득시켜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초대형 작품이 되는 요소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면에서는 조금은 욕구불만이 남는다. 훗날 도스토예프스키, 셰익스피어, 카미유, 카프카등의 대문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위대한 책이라는 인상은 강하게 남는다.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엔터테인먼트로서는 어떨런지, 흥미로운 소텔가의 개들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스토리를 단단히 조였으면 더 좋았을거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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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소텔 이야기]
스티븐 킹은 이 책을 읽고 한동안 다른 책을 읽을 수 없다고 평가했으며 인간의 내면에 관한 소설이며,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가 알면서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신비에 관한 소설이다라고 했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라 평했으며 마크 도티는 이 책에 대해서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뛰어난 하이브리드 소설이다. 미국판 '햄릿'이자 유령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멜로드라마이고, 성장소설이며 땅에 대한 찬가이다. 그리고 이 모두의 한가운데에는 결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개들의 내면세계에 대한 최고의 필력이 담겨 있다. 야성적이고 독특하며, 충격적이도록 참신하고 가슴 벅차게 만드는 힘이 있다라고 말을 했다.
직관만을 따라 자네가 추구하는 탁월성을 찾는다고 하세. '탁월성'이라는 걸 과학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건 일단 차치하고 탁월성을 만났을 때 그걸 어떻게 알아보려나? 어떤 사람들은 어떤 동물 집단의 행동을 몇 가지 단순하고 분할할 수 없는 특징으로 축소할 수 있다고, 그런 특징들이 결합하는 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복합성이라는 환상을 창출한다고 생각하지. 자네가 견종 집단의 행동에서 수십 가지로 달라질 수 있는 작은 변화를 만난다고 생각해 보게. 그걸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걸 어떻게 다시 이룰 수 있지? 걸작을 한 점 창조한 후에 다시는 그리지 못하는 화가가 적지 않아. 자네가 성공을 거둔다면 그건 단발에 그칠 가능성이 많아. 자넨 그걸로 만족할 수 있겠나, 존?(328p)
타고난 이야기꾼 데이비드 로블레스키 작가의 이력은 참 독특했다. 1959년 위스콘신 태생인 그는 3살 때 그의 아버지가 작고 허름한 농장을 사서 운영하고 어머니가 개를 키우기 시작해서 어린 시절부터 그는 개와 함께 보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늑대에 대한 이야기로 단편소설 상을 수상했고, 위스콘신에 있는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해 배우를 꿈꾸기도 했고 졸업 후 실용적인 학문을 연구하고자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고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을 했으며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웹사이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도 했다. 또한 흑백사진 작가로서의 활동과 위렌 윌슨 문예창작 MFA과정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은 그의 이력은 소설 속의 개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 어떻게 나왔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처럼 이 소설은 신진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로블레스키의 대단한 필력에 대한 소설에 대한 극찬의 글들이 이 책의 뒷면에 가득 채워져 있다. 벙어리 소년 에드거 소텔과 반려견의 교감을 통해 보는 한 가족의 일생을 그린 [에드거 소텔 이야기]. 부드러운 성장소설이자 멜로드라마이며 문학적인 오싹함이 겸비된 미스터리이자 땅에 대한 찬가이다. 그리고 다른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개들의 내면세계에 대한 저자의 최고의 필력이 담겨 있다.
저자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 살면서 해야 하는 선택에 맞닥뜨리는 에드거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담한 필체로 묘사하고 있다. 북쪽 지방의 숲, 계절의 변화, 미국의 상징이 된 헛간, 쏟아지는 빗속에서 운명적인 삶을 살게 된 반려견과 인간의 삶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할 것이다. 정말 하느님이 들려준 비밀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잃고 태어난 것인지 소리를 낼 수 없었던 소년은 어려서부터 관찰하고 사유하고 내면화하는 데 익숙했고, 바로 그 때문에 진실을 보게 되며, 갈등하고 미워하고,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먼길을 떠난다. 그리고 소년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수호자인 앨먼딘과의 우정도 만나게 된다.
갈등하고 미워하고 사랑, 배신, 악, 살인, 그리고 깊은 공허함까지 모두 녹아져 있는 [에드거 소텔 이야기].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먼 길을 떠난 벙어리 소년 에드거 소텔과 반려견 앨먼딘. 그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생에 관한 통찰력을 맛볼 수 있다. 진실은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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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에드거는 트루디와 말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어느 날 이상한 방문자를 보고서야 사업에 대한 어떤 구상이 두 사람(클로드와 트루디)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미리 생각해 뒀던 훈련받은 개들의 시범을 통하여 주사기를 이용한 살해를 보여줌으로써 클로드의 의심을 사게 됩니다. 트루디는 화가 나서 아들에게 뭐라고 하고 누군가가 옅보는 것을 알고 클로드라 생각한 에드거는 문을 심하게 밀게 되는데 떨어져 죽은 사람은 엉뚱하게도 파피노 박사입니다. 트루디는 에드거에게 달아나라고 한 다음 증언을 통하여 같은 장소에서 두 사람(아버지와 파피노 박사)이 죽는 것을 보아 충격을 받고 가출했다는 정황을 만들어 냅니다. 클로드는 파피노 박사의 아들 글렌 보안관에게 트루디가 사실을 말했으며 파피노를 죽인 것 같다는 그러나 이런 저런 관계상 너의 처분만 바란다는 식으로 말을 흘려 글렌으로 하여금 두 달 만에 돌아온 에드거를 납치하도록 합니다. 몸싸움 와중에 휘발된 에테르가 전구에 닿아 불이 일어나고 에드거는 개들의 족보에 대한 자료를 빼내던 중 클로드에 의해 독으로 피살됩니다. 클로드도 불에 갖혀 죽습니다. 한편 에드거와 함께 가출을 했던 에세이는 유일하게 돌아온 개인데(다른 두 마리 틴더와 바부는 헨리 램이란 사내에게 신세를 지고 헤어질 때 주인으로 선택한 것을 보고 줘버립니다) 남아 있는 다른 개들을 데리고 떠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