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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당한 자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각 장마다 수십번씩 화자를 바꾸며 전체적으로는 살인자를 추적하는 추리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다. 구성적으로는 거의 완벽하다고 생각하는데, 수십번 목소리를 바꿔가며 들려주던 이야기가 셰큐레의 아들 ‘오르한’의 입에서 마치는 것이 맘에 들었다. 일부러 본인 이름과 똑같이 설정한 거겠지? 오르한 파묵 요 익살쟁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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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어보는 아랍권 소설이다. 그래서인지 많이 낯설다. 1권을 끝낼 무렵즈음 익숙해진듯 하다. 각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소설이 진행되며 중간중간 동물이나 사물이 소설을 서술해 나가기도 한다. 많이 보지 못한 아랍식 세밀화에 대한 정보가 없어(표지의 그림을 제외하곤) 사실 잘 상상이 되지는 않는다. 처음엔 많이 낯선 형식과 내용과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적응이 안되었지만... 조금씩 이해해갈수록 재미또한 더해져갔다. 이야기의 전개방식이 최근 소설에비해 많이 더딘 편이라 조금 아쉽다. 보는 내내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떠오르는건 왜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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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알쓸신잡에서 내 이름은 빨강 재밌게 다뤄서 읽어봐야 하던 참에 추천까지 받아서 구매했습니다. 이 책은 역사소설이면서 살인 사건 살인범의 정체를 추적하는 추리 소설입니다. 장마다 화자가 바뀌고 소재가 독특하고 기발한 소설 같아요. 책을 펼치면 초반에 한국의 독자들에게로 시작하는 작가의 짧은 글이 나오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여운이 남아 곱씹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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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읽다가 도저히 진도가 안나가서 포기했던 소설인데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추천한 거 보고 사서 다시 읽게됐어요. 15세기 오스만제국 이야기라 모르는 단어들이 많고 이름도 안외워져서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하지만 진짜 이국적이고 읽으면서 책에 나오는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것 같았어요. 약간 간질간질한 불안감으로 몰아가면서 전개되는데 드라마틱한 줄거리는 없지만 분위기가 무척 묘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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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전개에 작가가 개입하지 않고 등장인물들이 번갈아 화자로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전개방식이 색다르다. 소설 형식의 파괴라고도 하겠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이라고 분류된다고 한다. 도입부터 임팩트가 있다. 나는 죽음 몸이요, 라고 소개하는 화자는 억울하게 살해당해 차가운 우물 물속에 시신으로 누워 있다고 하소연한다. 이자는 왜 죽었을까. 소설의 표면에 복잡한 러브라인이 포착되는데 치정살인인가? 이스탄불 최고 미인 세큐레와 그 주위에 카라, 하산, 에니시테가 등장한다. 세큐레는 얼굴만큼 마음이 착해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교활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에니시테는 그런 딸을 아끼고 감싸고 도는 노인네 아버지이다. 카라와 하산이 살인자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면의 갈등이 또 있다. 터키는 동양과 서양 사이에 위치한다. 오스만 제국이 있던 땅이다. 때는 1591년, 유럽은 르네상스로 화가들의 전성기가 태동하고 있다. 반면에 오스만 제국의 화가들은 쇠락해가는 그들의 화풍을 절감하고 쇠락에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거기에 갈등이 있다. 그것은 피를 몰고 오는 붉은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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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로 유명한 작가의 소설, 알쓸신잡에 나와서 내 리스트에 등재되었다. 어떤 스타일의 소설일지 궁금한 상태로 시작, 일단 노벨상 수상작가의 소설에대한 편견과는 다르게 빠르게 읽혀진다. 다양한 화자의 등장의 효과가 아닐까 싶다. 먼저 읽어본 사람들에 의하면 이 작가의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계속 흥미를 불러일으키면서 흡인력을 놓지 않게한다. 익숙치 않은 오스만 투르크 문화, 예술에 대한 얘기임에도 다음권을 바로 들게 만든다. 전체적인 감상은 2권 이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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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르한 파묵의 작품이 궁금하기도 했고 여러 작품이 있었지만 ‘내 이름은 빨강’ 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동서양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 이스타불을 배경으로 오스만 제국에서 펼쳐지는 음모, 배신, 사랑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었는데 처음에는 배경도 그렇고
역사소설이라 술술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등장인물들이 번갈아가면서 화자로 등장해서 소설이 진행되므로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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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을 읽고, 두번째 읽는 파묵의 작품.
작가의 심연 깊은 곳에 '죽음'이라는 존재가 가시적 형태로 그려져 있는 듯하다. 그것은 터키에서 읽혀오던 수 많은 책들, 그림들 그리고 어떤 사상들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각 꼭지마다 다른 문체로 쓰여진 문장들을 읽다보면 여러사람이 쓴 것같이 느껴질만큼 섬세하고 다른 문체이다. 또한, 읽는 도중 깜짝깜짝 놀라게하는 메타픽션의 형식은 어렵지만 흥미롭게 다가온다. 아주 작은 부분조차 섬세하게 짜여있는 이 소설은 독자를 숨막히게 하지만, 한 조각씩 퍼즐을 맞춰가는 짜릿함을 주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