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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 요시모토 바나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유명세에 비해서는 작품을 한 번도 읽어보질 못했다. 그 이름이 주는 느낌 때문이었는지 ... 그리고 사실 내가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된 때만 해도 일본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던 때이기도 하다. 겨우겨우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니 하는 이름들에 더 눈길이 가던 그런 시절이었는지 모르겠다.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은 제법 최근의 문학작품들 중에 클래식이란 이름으로 불릴만한 문학 작품을 나름 엄선하는데 노벨 문학상 작품들도 보이고 여러 나라의 문학 작품들을 마치 내게 엄선하여 보여주는 컬렉션 같단 느낌이 드는 그 안에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이 들어 있어 이번에 읽어봐야지 하고 고르게 되었다. 키친. 아마도 제일 처음 나온 작품집이라 그런지 나도 아주 오래전부터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으로 오래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나 보다. 아주 작은 책임에 그 안에는 세 가지의 이야기들이 아주 작고 소박하며 소중하게 담겨 있었다. 스무 살 무렵의 이야기들. 책을 읽으며 만약 내가 이 책을 삼십 년 전 그러니까 1988년쯤 이 책이 세상에 나올 무렵에 만나게 되었더라면 나는 어떤 느낌을 받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소설 속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은 80년대 중반쯤의 이십 대 사람들이었으며 나와 비슷한 시기의 사람들이었기에 더더욱 그 시절에, 그러니까 내가 스무 살 무렵에 이 소설집을 읽게 되었다면 얼마나 오래 가슴으로 아파하며 얼마나 오래 이 환상적이면서 아물지 않는 상처를 핥는 쓰라림을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어 했을지를 ... 더듬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시점에 따라 분명 그 사람들이 그 상실의 아픔과 슬픔을 받아들임이 다를 것이다. 일본의 문학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 순수함에 환상적인 시선과 분위기를 담기를 했었나 보다. 여전히 많은 일본의 소설 작품들에는 판타지적인 요소들을 가미하여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주곤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또 맑고 깨끗한 영혼을 지닌 인간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그렇고 철도원이 그렇고 편지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그렇다.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순수 문학들에서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어떤 이야기의 연결로 많이 사용되고는 하는데 그것이 어떤 일본 문학의 특색은 아닐까 싶은 ... 그런 생각도 듣다. 만화의 제국이란 그런 것인지 ... 간혹 이런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추억은 방울방울이나 귀를 기울이면에서 느꼈던 그 아련함들을 문장으로 만나는 그런 기분이 든다. 너무나 오래전 삼십 년 전, 작가가 스무 살 무렵에 느꼈던 그 팔십 년 대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나도 그 시절에 느꼈던 아픔의 크기를 지금도 그대로 느끼진 못할 것이다. 요즘 작가는 상실의 아픔을 어떤 모양새로 느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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