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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무시하지 말라고 배웠다 ㅡ.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라서 우리는 특별히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살아간다. 생각이 필요 없을 만큼 이미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있는 가르침이지만, 가끔씩 이 가르침을 지워버리고 싶은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무시하고픈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냐고?! 바로, 자기 생각만 절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ㅡ. 아~ 정말 생각만 해도 싫다. 말도 섞기 싫다. 그냥 무시하는 것이 편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봤으리라 생각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ㅡ. 아무리 타협을 위해 애를 써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군” 이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간다. 그래, 정말 무시해버리고 싶다 ㅡ. 이런 사람이 한 두 사람에 그친다면 정말 무시해버리고 말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넘쳐난다는 게 문제다. 물론 나도 예외일수는 없겠지만..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불통이 우리의 미래를 막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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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볼테르의 멋진 말로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는 시작된다 ㅡ. 정관용 ㅡ. 「KBS 생방송 심야토론」의 진행자로 우리에게 익숙한 그가, 소통이 아닌 소탕만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토론현장의 답답함을 생각해서 정리하고, 그것을 책으로 출간했다. 대한민국 내의 소통 부재를 아쉬워하며,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건강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소망하며 쓴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ㅡ.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는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다. 토론의 정의를 이야기하고, 일상토론과 방송토론을 구분 짓고 방송토론을 버리라는 말을 전하는 내용, 전체적으로 토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의 1장‘방송토론 잊어버리기’, 우리는 왜 토론이 안 되고 소통하지 못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2장‘불통공화국 대한민국’,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한국의 토론과 소통을 주도하는 정치, 언론, 보수, 진보 등등의 이야기를 담은 3장 ‘적대적 공존관계에 빠진 한국정치와 언론’, 마지막으로 공존하는 현실, 소통하는 의사결정,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공동체미래에 대한 고민이자 결론이 담긴 4장‘소통하는 대한민국 만들기’와 ‘배우는 토론, 설득의 법칙’이라는 제목으로 정관용의 책속 강의가 담겨져 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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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많은 토론의 진행을 해왔던 경험 때문일까, 그의 생각들이 상당히 균형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렇기에 더더욱 보다 냉철한 관점으로 우리사회를 제대로 진단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한 각각의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는 질문들을 현실 속의 상황과 연결시켜 대답함으로써 보다 쉽고 흥미롭게-당연히 현실이 흥미롭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책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중립적이고 논리적으로, 그리고 솔직하게 풀어나간다 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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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의무를 지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생과 사는 언제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생명의 탄생은 사랑하는 남녀의 정신적 · 육체적 결합에서 이루어지고, 죽음 역시 누군가의 도움과 보살핌 속에서 이루어진다. 한 사람의 탄생은 그 관계 속 구성원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고, 한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이 생을 살면서 만든 수많은 개인적 · 사회적 관계 속 구성원들에게 슬픔과 비통함을 안겨준다. 인생이란 이렇듯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관계라는 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소통이다. 내가 아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나와 다른 생각 · 이념 ·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공존해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 소통 없이는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온전하고 평화로운 삶 내지는 인생 역시 불가능하다.
민주주의와 언론 · 출판의 자유, 시위 · 집회의 자유. 소통하며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에 필요한 권리 내지는 자유들을 대한민국은 법 중에 으뜸인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으니 참 좋은 국가다. 하지만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낀다. 소통의 부재를 느낀다. 소통을 위해 건네는 말들이 마치 상대방을 소탕하기 위한 것처럼만 느껴진다. 대중에겐 KBS TV 「생방송 심야토론」의 전 진행자로 잘 알려져 있는 정관용은 그의 저서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에서 이 같은 대한민국 소통의 현주소에 대해 고찰한다. 여야당 간에, 노사 간에, 언론과 시민단체들 간에, 아니 대한민국 전체가…… 소통이 부재한다. 불통의 시대다. 서로 자기 할 말만 떠들고 상대방의 의견은 무시한다. 토론이라는 것이 사라졌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더 좋은 대안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의견을 주고받고 합의에 도달하는 토론이 민주국가 대한민국에는 없다. 방송토론으로 대표되는, 서로 의견이 강하게 대립하는 자들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각자의 주장만을 고집하고 필요하다면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는, 이기기 위한 토론 · 투쟁을 위한 토론만 있을 뿐이다. 모두가 마치 입은 있으나 귀는 없는 사람처럼, 말만 하려하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 들으려 하지 않으니 토론의 궁극적 목표인 합의에 도달하거나 공통의 이해기반을 넓힐 수도 없다. 목적지가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만 치닫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같이 불통공화국이 된 이유를 정관용은 ‘고도압축성장을 이룩한 한국 현대사 자체’에서 찾는다. 신분제가 있었고 왕권 통치를 했던 전통사회가 일제침략, 해방, 한국전쟁,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 정보화, 첨단화 등의 수많은 변화를 10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급격하게 겪었기 때문에 탈이 난 것이다. 국민들의 의식구조도 왕권통치―식민지배―독재정치―절차적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정치문화 속에서 매우 이질적인 요소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중첩 결정된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절대권력을 가진 왕의 밑에서 통치를 받던 조선백성, 일제시대의 친일파와 독립투쟁가, 군사정권의 관료들과 민주화운동가들이 동시대에서 살고 있으니 타협하거나 협상하기 어려울 만큼 다른 가치관과 정치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세대별로도 다르다. 농촌 출신이냐, 도시 출신이냐에 따라. 또 교육수준별로도. 우리 사회는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이념, 정치의식을 갖게 되었다. 바야흐로 토론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살고 있으며 서로가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갈 방법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한데 때문에 토론이라는 것이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 변비 걸린 것처럼 꽉 막힌 불통공화국 대한민국이 고속도로처럼 뻥 뚫리기 위해서는 이기기 위한 토론, 투쟁을 위한 토론이 아니라 더 좋은 대안 마련을 위한 진짜 토론이 필요하다. 토론에 대한 기본 인식과 마음가짐의 재정립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정관용의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이 책은 토론을 잘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문화가 왜 토론을 할 수 없는지 그 원인을 먼저 알아보고 방송토론을 비롯한 토론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시각에서 벗어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며 건설적 대립관계를 형성하고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방법. 어찌 보면 경제성장보다도, 교육문제보다도 더 시급한 현안일 수 있는 소통의 문제에 대해 정관용은 방송토론 진행자를 맡았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방법을 모색한다. 누구나 원활한 소통을 하며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대한민국을, 책을 읽다보면 그를 따라 같이 꿈꾸게 된다. 그리고 실천하게 된다.
나 또한 소통에 문제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나와 대립하는 이들의 소리를 귀담아 듣기보다는 내 주장을 더 피력하고 때에 따라서는 논리성과 합리성보다는 정서에 호소하거나 인신공격의 오류에 빠져있었음을 고백한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볼테르가 한 이 말처럼, 말을 할 수 있다는 권리, 내 의견을 주장할 수 있다는 권리는 모두에게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있다는 권리를 가졌다는 것은 동시에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하는 의무 역시도 가진다는 뜻이 아닐까? 권리와 의무는 보수와 진보처럼 언제나 상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볼테르의 말을 이렇게 바꿔본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의무를 지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노력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의 말을 귀담아듣기가 그만큼 어려운 까닭이다. 스스로를 회색인이라 칭하는 정관용. 흐리멍덩하고 주관이 없는 색이라고만 여겼던 회색이 사실은 검은색과 흰색, 두 가지 색깔을 모두를 가진 당당한 하나의 색깔이었다. 어쩌면 검은색과 흰색이 갖는 성질들 중에 좋은 것들만 쏙 뽑아 취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똑똑하고 지혜로운 색, 회색. 나도 회색인이 되고 싶다. 보수와 진보의 날카롭게 대립하는 이념 속에 한 극단에 서지 못하고 중도진보가 되고 싶다 생각을 해왔었는데, 정관용의 말처럼 이념보다 구체적인 정책 하나하나로 살펴보니 어느 것에 대해서는 내 뜻이 보수에 더 가깝고 또 어느 것은 진보에 가까운 것이 있었다. 보수냐 진보냐 이념만을 따지는 것은 빨갱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처럼 낣은 구시대적 생각의 산물이다. 이념에 상관없이 구체적인 정책 사안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공감하거나 대립하고 더 좋은 방안을 찾아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소통이고 대한민국의 정치가 나아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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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이 책의 주요 요지는 '불통의 대한민국이 소통의 대한민국으로 변화되었으면 좋겠다.'입니다.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화두이고, 정말로 우리나라가 소통의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온 국민들의 좋은 마음가짐인 것 같고, 좋은 토론 문화인 것 같습니다. 좋은 마음가짐이 좋은 토론을 만들고, 좋은 토론을 해야 서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의 저자인 정관용씨는 토론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습니다. 토론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는 과정입니다. 자신과 상대를 향한 열린 마음이 없다면 토론은 이루어질 수 없고, 격한 싸움만 하게 될 것입니다. 토론에 임하는 쌍방의 마음가짐이 하나같이 상대방의 생각을 바꿔 놓겠다는 쪽이라면 도저히 합의를 이룰 수도, 공통의 이해 기반을 넓힐 수도 없을 것입니다. 쌍방 모두 자기 생각만 옳고 상대방 생각은 틀렸다는 논리에 따라 서로를 공격한다면 그 어떤 수긍이나 양보, 합의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일제히 무너져 내리고, 대신 새로운 전통과 관습은 아직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시 새로운 사회 질서가 세워지며 새로운 가치관이 이식되는 등 감당하기 힘겨운 변화를 겪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졸부 사회가 되었고, 학교나 기업은 토론의 불모지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언론 역시도 우리나라를 불통의 대한민국으로 만드는데 아주 큰 몫을 담당하였습니다. 언론의 기본 기능은 의제 설정입니다. 산적한 이슈들 가운데 해당 시기 그 사회가 가장 집중해서 고민해야 할 주제들을 찾아내 제시하고 접근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입니다. 당연히 언론은 나름의 시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시각이 편파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야 하고, 자신이 던진 의제의 해결 방향이 사회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의식 위에 자신의 시각을 정립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언론은 객관성이나 책임의식을 놓친 채, 편가르기에만 급급한 양상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답답한 마음도 많이 들었지만,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으니 분명한 해결책도 있고, 지금껏 갖은 핍박에도 꿋꿋히 버텨온 우리나라이기에 우리나라의 자생력과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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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싸울 수 있다 .
과연 그럴 수 있나? 하고 자문해 본다. 이 책뿐 아니라 사회 여러 곳에서, 그리고 나의 내면에서도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혀 말 그대로 '소통'이 아닌 '소탕'에만 관심이 있는 경우가 많다. 책을 쓴 시기가 그래도 몇 년이 지나, 지금 상황에 맞지 않는 내용들도 조금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내용은 지금 적용해도 큰 무리가 없거나, 오히려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들이 깊어지지 않았나 싶다. 아마도 그건 지난 몇 년간 몇발짝 후퇴해 버린 민주주의와, 그리고 어쩌면 이번 대선으로 더 후퇴할 것만 같은 상황 때문이 아닐까 싶어 씁쓸하기도 하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당연한 말이 더 이상 '멋있게' 느껴지는 격언 비스무르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식의 사회, 그리고 그 사회 속 한 구성원으로 내가 자리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
바야흐로 불통의 시대입니다. 누구나 다 소통을 강조하지만, 소통의 의미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하라'라는 의미로 변질되어 간지 오래입니다. 대통령 지지율을 보면 지지와 반대가 50% 내외에서 완전히 둘로 쪼개져 있고, 누군가가 말을 하면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말이 자신의 진영에 도움 되지 않는다면 테러도 서슴지 않는, '메신저를 공격하는' 것이 일상이 된 시대입니다. '나는 당신의 말 할 권리를 지지한다'라는 시사평론가로 유명하신 정관용 현 국민대학교 교수님의 저서입니다. 수많은 시사 프로그램에 나와서 토론을 진행하셨고, 무한도전에도 출연하신 바 있으시며, 지금도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라는 방송에서 시사평론을 진행하고 계시죠. 이 책을 쓰신 2009년은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그 뒤 한미 FTA 촛불시위로 극심한 혼란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분위기에서 저자는 '우리의 현실은 서로 '소통'하기는커녕 상대방을 '소탕'하려는 분위기이다'라며, 본인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사회에서 토론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그리고 진정한 토론이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자 책을 썼다고 합니다. 1장에서는 '방송토론 잊어버리기'라는 주제로, 방송토론이 사회에 미친 폐해에 대해 기술합니다. 방송토론으로 특정 주제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졌지만, 토론에 임하는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화려한 기술로 상대를 짓밟는 것을 좋은 토론이라 생각하고, 지지층도 그런 '사이다'를 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경청은 없어지고 공허하고 강렬한 문구로 상대방을 짓밟고 자기 지지층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2장 '불통 공화국 대한민국'에서는 우리 사회가 이런 불신과 불통으로 뒤덮이게 된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저자는 이 이유를 너무나 빠른 변화 그 자체에서 봅니다. 친일인명사전 명단,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태도, 국민연금제도 개혁에 대한 정책토론이라는 세 가지 사례를 통해 나름의 이유를 정합니다. 토론하고자 하는 지점까지 도달하기 위해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라고, 어떤 주제로 토론이 시작되더라도 결국에는 현대사 전체를 되짚어나가지 않으면 논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문제로 듭니다. 또한 너무나 빠른 사회 변화와 발전의 결과물로 너무 많은, 해결되지 않은 토론거리를 남겨서 토론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의 토론 문화도 문제가 됩니다. 학교에서의 토론은 마치 논술시험 대비 수업인 양 이루어지고 있고, 각종 토론대회에서는 이기고 지는 승패 게임에만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잘 말하고 잘 듣는 실력을 키우기 위한 대회가, 상대를 꺾고 설득시켜야만 승리하는 문화가 되면서 토론 문화가 더욱 왜곡된다는 것이죠. 상명하복의 기업 문화, 취약한 공론장 등도 문제로 꼽힙니다. 3장 '적대적 공존관계에 빠진 한국 정치와 언론'에서는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다가섭니다. 보수와 중도, 진보로 정치가 갈라져 있고, 언론도 갈라져 있는 현 상태, 그리고 신념으로 무장한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정의라고 주장하며 기초적인 사실마저 거리낌 없이 왜곡시키는 현실을 개탄합니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대중이 점점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고 엽기적인 것에 클릭을 늘리고, 이로 인해 정치적 판단마저 정서적으로 흐르며 확고한 쓸림 현상이 지나치게 나타나고, 정치는 이에 맞춰서 포퓰리즘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도 우려합니다. 저자는 대중이 무지하기 때문에 부화뇌동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저자의 생각보다 더더욱 확고하게 양쪽 극단으로 흘러가고, 정치도 자신의 편만 바라보는 정치로 쭉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서글픈 현실입니다. 4장 '소통하는 대한민국 만들기'에서는 소통법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나와 다른 주장, 나와 다른 행동도 공존할 수 있다는 것부터 인정하자'라고 하지만, 갈수록 이 말이 공허하게 들려옵니다. 그래도 저자는 2005년 경주 방폐장 선정을 예로 들며, 절차, 단계, 과정, 순서를 갖춰가며 이해 당사자 모두를 두루두루 살피는 소통의 자세, 대화와 토론을 거쳐 각자의 입장을 반영시킬 절차, 절차에 따라 내려진 결론에 대한 존중을 갖추자는 것입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3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첫째, 상호 존중까지는 아니더라도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상호 공존의 현실만큼은 인정하자. 둘째, 강경파와 과격파를 무시하자. 그들의 활동 공간을 축소하자. 온건파와 전문가가 중심에 서서 정책 중심의 토론문화를 만들어 가자. 셋째, 빨리 결론을 내리려 서두르지 말고 세심한 준비를 거쳐 절차와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가자. 저자는 회색 지대에서 미래를 찾고자 합니다. 침묵을 강요당하는,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 힘을 얻어 싸움판을 만들고 확대하고 조장하는 사람들을 압도하여 공동체의 미래를 찾기를 바랍니다. 책을 읽고 현재를 되돌아봅니다. 설사 자기편이더라도 다른 이야기를 하면 공격당하고, 중립에 서고자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풍조는 너무나 많습니다. 사실 '중립 기어에 놓고 이야기하겠다'라고 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중간에 서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모 아니면 도의 반응 속에서, 말하기조차 질려버린 사람은 입을 닫고 귀를 막고 말하기를 포기합니다. 자기 세상인 것처럼 득세하며 기세 등등한 사람들, 그리고 반대편에 서서 그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커져있는 세상, 여기서 '당신의 말 할 권리를 지지한다'라고 부르짖고 싶어 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공허하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저자가 생각하는 세상이 만들어지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책 뒷 페이지에는 몇몇 유명인의 추천사가 실려있습니다. 지금도 굉장히 유명하거나 높은 위치에 계신 분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이 분들이 정말 책을 읽었는지 의심스럽네요. 그들이 원했던 소통도 결국 자신이 듣고싶은 말만 듣고 싶었던 소통이었었나 봅니다. 10년이 지나 다시 이 책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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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딱 두 단어로 정리하겠다. 바로 소통,토론이다! 한국사회에 언제부터인가 토론이라는 말이 회자 되었는데 대부분 방송토론이라는 빛과 그림자에 노출되어 제대로 된 토론에 대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정관용교수(이하 정교수)의 이 책은 토론에 대한 기본을 점검하고 그에 대한 주변적인 상황을 알게하는 귀한 지침이 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kbs심야토론을 진행할 때 정교수를 직접 본 일이 있는데 강한 카리스마의 매력은 아니지만 잔잔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물씬 풍겨나는 그래서 시청자발언을 할때도 편안한 상태로 발언했던 기억이 있다.
옛기억을 더듬어 책을 직접구매하여 정교수의 고민과 생각 그리고 내공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지금 보다 조금 어릴때는 '확신범'이라는 말에 대단히 만족해하고 즐거워했는데 그릇된 확신범,이그러진 확신범들을 요 몇 년사이 목도한 것이 영향을 끼쳐 정교수가 강조한 '확신'보다는 '의심'에 무게중심을 싣고 매력을 느끼는 가운데 정교수의 이 책은 내 가치관에 대단히 유효하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하겠다.
토론에 대해 알고싶고 관심있는 사람은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 그래야 토론하면 방송토론이라는 틀에 갇혀 더 이상 진일보 할 수 없는 상황을 알게 될 것이고 그래야 상황을 벗어나 참다운 토론에 한발짝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책 내용을 소개하고프나 이것은 다음사람이 직접 읽어보길 권하는 마음에서 자세히 적는 것은 생략하고
정교수가 말하고 지향하는 회색인에 대해 워낙 한국사회에 회색인을 자처하며 나중에 이중행동을 보인 일명 '철새','기회주의자','견기주의자'들 때문에 쉽게 모습이 연상되기는 어렵지만 내가 이해하는 선에서는 건강하고 이성적 그리고 합리적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두터워지는 정도의 이해를 요한다...아니면 등소평이 말한 '흑묘백묘'의 긍정적 의미 정도로 이해해야하는지...
정교수의 '회색인'에 대해 지금까지 걸어 온 일관성 그리고 자신의 분야에서 소유한 전문성 등을 미루어 볼때 고유한 자리에는 신뢰를 보내고 싶다. 책 뒷장에 신영복선생님께서 짧은 추천사를 쓰셨는데 나 또한 정교수의 시사토론 진행이 그립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나중에 복귀했으면 바람이다. 얼마전 안 사실인데 라디오방송토론에 복귀한 모양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짬짬이 정교수의 감각을 배울겸 듣고싶은 마음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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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정관용 시사평론가를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다. 시사토론에 대해 주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익숙치 않은 토론방송매체에서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정국의 핫이슈가 생길때 TV매체를 통해서 한번 쯤 들어본 "생방송 심야토론"의 방송이 기억난다. 대통령이나 국회문제에서나 시민단체에서의 반발적인 요소와 더불어 해결의 중재가 필요할 때마다 토론이 많이 열린 것 같다. 하지만 토론에서의 방청객과의 질문요소에 대해서도 뽀족한 답변보다는 대책마련의 필요성과 그에대한 호응정도로 말미를 장식하곤 했던 방송으로 기억하는 것도 있던것 같다. 손석희씨도 라디오 방송이나 토론방송에서 유명해서 그 방송을 들을때 나라의 핫이슈나 국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방송 토론은 양 당사자가 대표로 나와서 주장과 토론을 벌이는데 격한 경우도 봐왔으며 해결이 미비해지는 결과도 보면서 안타까운 적도 있었다. 이렇게 문제도 어려운 내용들을 가지고 각 전문가들과 대표자들과 중재자 역할을 대행하면서 사회자로서의 면모를 정말 강직하게 지켜온 정관용씨의 책을 보면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깊이 존경을 한다. 우리나라는 대화와 타협에 있어 소통하는데 부족함이 많은 나라같다. 대중적인 입장에서 고려하기보다 항상 상위권자의 통보나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시행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국민들이 사랑해주는 나라가 되는 진정한 소통국가로서의 발전이 기대되고 소망되는 마음이 생긴다. 역사와 흐름과 시대적 상황을 읽을 수 있는 관심을 많이 가지는 나라일 수록 더 소통이 원활하게 흘러갈것 같다. 열린사회가 더 많이 정착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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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성신여대 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손석희 님'과 한 때 방송토론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로서 쌍벽을 이루었던 '정관용 님'의 사회 비평 에세이이다.
'소통 중재자'로 돌아온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책을 펼쳤다.
'소통' 이란 무엇인가? 1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사전적인 의미는 알다시피 저런 뜻이다. 막히지 아니하는 것. 그래서 서로 잘 통하는 것. 상호간의 뜻이 잘 맞는 것.
가족간의 관계이든, 친구간, 사회에서 중간의 입장에 서 있는다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실제 일어난 상황의 중간에서 중재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어느 의견에도 치우치지 않아야 하고,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의무가 있으며 둘의 의견이 합치점을 찾도록 도와주어야한다. 실제로 토론 혹은 대화에 있어서 의견차이는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 의견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관건인데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대화 혹은 토론을 한다면 일방적인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느끼고 살아간다. '소통'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지 않아서 그렇지 대화를 하는 흐름이 잘 흐르고 흐르지 않고를 느끼며 살아간다. 갈등이 없이 원만한 대화의 흐름. 이것이 바로 '소통'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갈등이 발생되기 마련이다. 무조건 합치점을 찾는다면 우리 사회는 소통이 원활한 것이리라. 하지만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의견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그 갈등 혹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대화 혹은 토론을 하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충돌하고 합치점을 찾는 생활을 하고 있다. 점심메뉴를 고른다던가 친구 선물을 산다거나 하나의 주제를 놓고 어떤 것이 더 좋을 것인가 상의한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토론이다. 저자는 올바른 토론문화가 정착되면 소통이 쉬워질 것이라 얘기한다. 하지만 '토론'하면 '방송 토론'을 떠올린다. 정치판의 싸움, 난장판. 다들 자신이 잘났다고 큰 목소리를 낸다. 이것은 싸울려고 얼굴을 맞대고만 있는 것같다. 토론 주제에는 관심이 없고 싸움구경만 하게 된다. 뉴스를 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토론장의 난투극을 볼 때마다 한숨만 절로 나온다. 이제는 하도 그러니까 채널을 돌리게 되더라. '방송 토론'은 서로 다른 두 상대편이 만나 커다란 주제를 놓고 끊임없는 경쟁 공방을 펼친다. 하지만 의견합치를 보기 위한 토론이 아니라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방송'에 나오는 토론. 카메라와 대중을 의식한 발언을 하는 그런 토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거나 상대방의 이야기에서의 장점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너무 급격한 사회변화로 처리해야 될 문제들이 산더미이다. 일제 잔재의 청산이나 남북 통일 등 이슈가 되는 것들은 참 많은데 정확하게 자신이 보수인지, 진보인지 중립인지 우왕좌왕한채 서로의 목소리만 높이고 자신들 편에서 칭찬받고 상대는 이기고 짓밟아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보니 토론이 잘 될리 만무하다. 저자는 진정한 토론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서로 배우기 위해서 입장차를 좁히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방송 토론'은 잊어버리라고 얘기한다. 진정한 토론문화가 정착되는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리라도 '소통'의 참 뜻을 이해하고 진정한 토론문화를 정착시키기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 서로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대화로 바로 푸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화'가 난다. 분명히 상대방이 잘못이 있더라도 대화로써 풀어야 하는데 '화'가 나면 'win-win' 상대의 잘못을 상대가 다치지 않고 나의 의사를 전달하는게 힘이 든다. 그래서 화법의 연습이 필요하다. 저자가 든 예시를 살짝 줄여 설명해보겠다.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중요한 통화를 하는 중에 옆 사람이 말을 걸어서 대화를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경우 '화'가 날 수 있다. 그래서 불쑥 "당신 때문에 중요한 통화내용을 다 놓쳐버렸잖아." 보다는 "제가 지금 중요한 통화중이었는데 당황스러웠습니다. 갑자기 말씀을 하셔서 대화내용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번에 혹시 급하게 전할 말씀이 있으시면 통화가 끝난 후거나 메모로 전달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 이처럼 '아'다르고 '어' 다르다고, 앞의 내용은 정말 버럭 '화'를 내버려 자신의 말을 제어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말을 건 사람이 고의가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상황 설명을 해주었어야 서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뒤의 내용처럼 상대방의 잘못을 열거하되 이렇게 해주었으면 서로 합치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해주면, 상대방도 조심하게 될 것이다. 무턱대고 잘못을 나무라면 대화는 단절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인정해야만 하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답답함을 호소했고,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한 불확실성을 느꼈다. 인생 삼모작을 하라고 말한다. 인생을 세 번 살 준비를 해야한다고 말이다. 30-20-40 이 무엇일까? 서른까지 학문에 몰두하고, 50까지 일하고 40년을 살아야된다는 것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정년퇴직도 빨라지고 한가지 일로는 90세까지 살 수 없다. 뭔가를 준비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이다. 자식에게 부양받는 시대도 지났고, 수명은 계속 늘어만 간다. 불투명한 미래로 인해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도 요즘은 너무 많다. 그만큼 살아남기 힘든 것이다. 저자는 '성공신화'에서 벗어나 '행복신화'로 가자고 말한다. 선진국에서 정착되어 가고 있는 '복지국가'이다. 남을 밟고 자기자신만 잘 살면 된다는, 돈만 있으면 성공이라는 이런 신화말고, 서로 도우면서 '소통'하는 사회가 진정한 성공한 국가라는 것이다.
요즘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사람을 의심하고 얼굴만 맞대면 으르렁. 잘못된 성공이 부른 사회분위기이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분위기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서로 믿고 도우는 세상이 조금씩 보여지고 자리잡을 때 '소통'이 원활한 사회가 될 것이다. '소탕'이 아닌 '소통'하는 사회를 위해 내가 먼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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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토론'을 '소통'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불통 공화국이라 칭한다. 과연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의문점의 답을 담고 있다.
하지만, 결코 명쾌하거나 완벽한 모범답안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단지 '제시'를 할 뿐이다.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만의 '모범답안'을 만들 수 있도록 유도한다.
토론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토론의 결론은 없다. 토론은 결론을 향해 갈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토론의 참가자들이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유도를 해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의 '사회자'의 위치는 절대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또한, 이 책에서는 TV 속 토론에 대해서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한 보여지기 위한 토론'이라 표현한다. 매스컴과 여론의 의견이 상당히 힘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TV 속 토론'의 모습을 여과없이 리얼리티하게 다루기는 쉽지 않다. 바로 이러한 TV 속 토론의 한계를 이 책에서는 꼬집고 있다.
책을 접하는 사람 모두 이 책을 어렵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제목과 두께만으로 이미 자신의 시아에서 이 책을 멀리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서두를 넘기는 순간부터 '공감'이란 공간 안에서 마지막 장을 넘기는 그 순간까지 '소통의 토론'이란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자신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한민국의 토론의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는가? 이 책은 그러한 당신의 답답함을 시원스럽게 해결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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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말할권리를 지지한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토론 방식의 문제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목에서부터 글쓴이의 주장을 느낄 수 있는데요, 현재 우리나라의 토론문화는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는 일명 ‘깍아내리기 식’의 토론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글쓴이가 지적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상대방을 ‘소탕’하려는 태도입니다. 우리 사회가 왜 소통이 안 되는지, 왜 소통을 못하는지 그 이유가 이 책에 나와 있습니다. 글쓴이는 방송토론의 문제점으론 토론을 이기고 지는 관계로 규정하는 것, 상대방을 꺾어 눌러야 토론을 잘하는 것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것, 가시 돋친 독설이 난무할수록 활기찬 토론이었다고 평가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토론할 때 상대방 생각을 바꿔놓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왜 이런 토론문화가 나오는지 생각을 해봤습니다. 기초부터 생각을 하면서 올라왔는데요. 우리나라는 어렸을 때 받은 교육도 한 몫을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한민국은 일제감정기를 지나서 급속도로 발전을 이뤄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데요. 급하고 빠르게 성장을 하려는 탓인지, 교육환경도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만 하는 교육으로 이뤄져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토론’을 해본 적이 없는 상태로 자라게 된 것이지요. 토론에 익숙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성인이 된 다음. 토론을 하려니 연습도 돼있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주장’만 강조하게 되고, 상대방을 적으로 인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지않고 서로 ‘소통’하면서 의견을 공유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입장만 고수하지 말고, 상대방의 의견도 충분히 들어보면서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맞춰간다면 멋진 토론의 장이 되지 않을까요? 한국대학생인재협회 : www.katzon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