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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드리 햅번, 내가 좋아하는 배우다. 영화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반듯하게 살았기 때문에 흠 잡을 데 없는 사람이다.
스탠리 도넌 감독이 1963년에 만든 <샤레이드 Charade>는 즐거우면서도 가슴을 졸이게 되는 영화다. 죽은 사내가 남긴 25만 달러를 빼앗으려 애쓰는 사내들과 죽은 옆지기 때문에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 아내, 그 틈바구니에서 싹트는 사랑과 살짝 비튼 웃음 따위에서 힘든 하루가 눈 녹듯 녹아내린다.
처음 보면 영화 이름을 다시 보게 된다. 어쩐지 007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헨리 맨시니가 만든 가락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 듯 멋지게 나온 바람개비 모습이나, 지방시에서 만든 옷을 입고 나오는 오드리 햅번의 모습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2. 사랑하지 않고 거짓말만 해대는 옆지기와 이젠 헤어지려고 마음 먹은 레지나 램퍼트(오드리 햅번). 그런데 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 씨가 되었는지, 레지나의 옆지기 찰스는 기차에서 떨어져 죽는다.
제가 태어난 미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동시통역사를 하다가 찰스를 만나 같이 살았지만, 한 번도 찰스와 같이 놀러 다닌 적이 없고, 사랑이 없던 사람이라 레지나는 그리 슬프지도 않다. 찰스가 어떻게 살았는지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도 세 사람밖에 없다.
찾아온 경찰은 찰스가 갖고 있던 물건이 든 가방을 레지나한테 준다. 그 속에는 치약과 칫솔, 만날 때와 곳이 적힌 수첩, 아파트 열쇠, 베네수엘라로 가는 배표, 레지나한테 붙이려고 쓴 편지와 우표까지 붙은 편지 봉투가 들어 있다.
미국 대사관에 갔더니, 중앙정보국 요원인 바르톨미유(월터 매튜)가 레지나한테 놀라운 이야기를 해준다. "1944년에 도이칠란트에서 싸울 때 찰스가 금을 갖고 프랑스로 돌아왔어요. 찰스가 집을 떠날 때 모든 물건을 경매에 붙여 25만 달러로 만들어 어딘가에 숨겨 뒀어요. 이 돈은 나라 돈이므로 꼭 찾아서 나라에 바쳐야 합니다." 찰스와 싸움터에 같이 있었던 텍스(제임스 코번), 허먼 스코비(죠지 케네디), 기드온, 다일이 알고 있고, 그들이 찰스가 빼돌린 돈을 노릴 거라는 말까지 한다.
3.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본 적이 없는 돈을 내놓으라니...레지나는 그저 어안이 벙벙하다. 옆지기가 남긴 가방을 아무리 들여다 봐도 경찰서에서 받은 것 뿐이다. 그런데 25만 달러는 어디에 있담?
돈을 찾으려고 눈이 벌개서 돌아다니는, 장례식까지 찾아온 세 사내한테 걸리면 죽는다. 안 죽으려면 돈을 찾아 그들한테 주든지,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달아나야 한다.
집에 있는 물건은 모두 경매로 팔아버렸으니 집안이 텅비었다. 레지나는 걱정이다. '이제 혼자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그런데 지난 번 놀러간 스위스에서 만난 적이 있는 피터 조슈아(캐리 그란트)가 레지나를 도와 준다.
찰스의 돈을 빼앗으려는 험상궂은 세 사내한테 쫓길 때 따뜻하게 맞아주는 조슈아가 마음에 드는데, 허먼 스코비는 레지나한테 조슈아가 저들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라고 넌지시 알려준다. 레지나는 그저 두렵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조슈아마저 돈을 노리고 있으니... 이젠 누굴 믿어야 하나? 아이구 무서워...
4. 실실 웃게 만드는 대목이 곳곳에 깔려 있다. 조슈아와 같이 파리 세느강의 유람선을 타고 구경을 하면서 저녁을 먹으려 한다. 조슈아가 말한다. "레지나, 너무 사랑스럽소" 그러자 레지나가 대뜸 말한다. "그 말을 들으니 밥을 안 먹어도 되겠어요. 배가 불러요..." (사내가 사랑스럽다고 하는 말에 아낙네들이 밥을 안 먹으면, 밥집 하는 사람은 다 굶어 죽을 텐데...)
실비의 어린 아들인 쟝-레이는 레지나가 찰스와 헤어져 미국에서 살기를 바란다. 아줌마가 미국으로 가면 저도 미국으로 구경갈 수 있을까봐? 아니다. 미국에서 레지나가 실비한테 편지를 보내면 제가 좋아하는 우표 모으기에 도움이 될까봐 그렇다. (녀석 참...우표를 모으려고 어른들이 헤어져 딴 나라에 살기를 바라다니...)
눈덮인 스위스에서 만난 조슈아가 마음에 드는지, 레지나는 작업을 건다. "다른 나라에서 만난 사람은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된다네요...세익스피어가 그랬답니다" 그러자 조슈아는 잘라 말한다. "아닌데요...세익스피어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에이...그냥 받아주지...말을 건넨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고...)
첩보원 흉내를 내는 오드리 햅번이 귀엽다. 조슈아가 못 미더워서 뒤를 캐는 레지나는 검은 안경에다 머리까지 옷으로 덮어쓰고 뒤를 쫓는다. 파리의 길거리에서 조슈아가 멈춰서자, 들키지 않으려고 엉겁결에 길가 카페의 아무 자리에나 앉는다. 혼자 앉아있던 맞은 편 사내가 놀란다. 어여쁜 아낙네가 앉았으니 기쁠 수밖에. "저 아세요?" 들은 척 만 척 하고 후다닥 일어나 다시 조슈아를 따라가는 레지나. '괜히 헛물만 켰네...'
호텔 옆방에 머물던 조슈아한테 레지나가 제 방에서 씻으라며 억지로 끌어들인다. 할 수 없이 조슈아가 샤워기에서 물을 트는데, 옷을 벗지 않고 그냥 씻는다. 옷에다가 비누도 칠하면서 조슈아는 능청스럽게 말한다. "이렇게 해주면 옷도 좋아하죠..."
4. 우리네와 사는 모습이 다른 대목도 보인다. 옆지기의 주검을 살펴보러 간 레지나한테 경찰이 안타까워 묻는다. "그를 사랑했나요?" 레지나는 그냥 무덤덤하게 말한다. "전 너무 추워요" 우리나라 아낙네 같으면 사랑했든 아니든 주검 앞에서 울고불며 한바탕 했을 텐데... "아이고...길동이 아빠...혼자 가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아쉬운 대목은 나이가 조금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찍을 때 오드리 햅번은 서른다섯 살인데, 캐리 그란트는 예순 살이나 되어 짝이 안 맞다. 젊고 아름다운 레지나한테 흰 머리에 늙수그레한 조슈아를 붙이는 게 맞기나 한지... 조슈아가 파리의 지하철에서 레지나를 숨바꼭질 하듯 뒤쫓아갈 때 캐리 그란트는 나이가 있어 그런지 맷 데이먼같이 힘차게 뛰어가지 못한다.
또 하나는 레지나를 뒤쫓던 세 사내와 조슈아가 어떻게 알고 같이 다녔는지에 대해 말이 없다. 다르게 살았고, 레지나한테 가까이 다가간 까닭도 다른데 어떻게 서로 잘 알고 있는지?
5. 조금은 방정 맞지만 사랑을 찾아 푼수끼를 보여주는 오드리 햅번의 모습은 마냥 사랑스럽다. 늙은 티를 조금 보여주지만 레지나한테 온갖 말로 둘러대면서 넘어가는 캐리 그란테의 연기도 맛깔스럽다. 나이가 벌어진 것만 빼면 캐리 그란트와 오드리 햅번은 죽이 착착 잘 맞다.
뒤에는 이름이 났지만 이때는 조연으로 나와 무섭게 보이는 제임스 코번이나, 갈고리 손으로 돈만 빼앗으려 애쓰는 죠지 케네디도 제 노릇에 잘 들어 맞는다. 다른 영화에서 코가 큰 아저씨로 푸근한 모습을 보여주던 월터 매튜도 보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씨아이에이가 항공사 이름이냐"며 묻는 레지나와 이야기할 때는 정말 요원이 맞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탓에 어른들만 보아야 하지만, 요즈음 영화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영화다. 통통 튀는 말들이 싱그러우며, 어떻게 끝이 날지 궁금해서 자리를 뜰 수 없다.
사기가 쉽지 않았던 이 영화 디브이디는 화면이나 소리는 그저 그렇다. 예고편만 있는 보너스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고... 껍데기에는 감독 이름인 스탠리 도넌을 틀리게(DONEN -> DONEY) 써놓아 이런 감독도 있었나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