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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는 아이 데이비드>의 첫 장면은 수용소다.
수용소에서 ‘그 남자’는 데이비드의 탈출을 준비 해 둔 이야기를 하면서 선택은 ‘네 몫’이라는 말을 한다. 첫 장면을 보면서 ‘데이비드가 왜 수용소에 있는지, 데이비드를 탈출 시키려는 ‘그 남자’는 누구인지지, 시큰둥한 데이비드의 이 반응은 뭐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보게 된다. ‘그 남자’에 의하여 선물처럼 주어진 탈출 기회를 반신반의하며 데이비드는 수용소를 탈출한다. ‘그 남자’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 남자’가 말한 대로 탈출을 시도하고 보니 그 남자가 하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수용소를 나와 바위 아래 동굴에서 며칠을 보낼 때까지만 해도 데이비드는 자신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자유’란 것에 별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오랜 수용소 생활로 자유라는 것의 의미도 잘 몰랐거니와 지금쯤은 추적자가 그를 추적해 올 것이고 그러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데이비드는 너무 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어진 자유에 대하여 거의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비록 도망자로서의 자유를 누리고 있을 지라도 자유를 누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데이비드는 자유를 포기한 생활을 상상 할 수 없다.
카를로를 처음 만났을 때 카를로는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데이비드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카를로의 폭력에 데이비드는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수용소에서 데이비드는 폭력을 무수히 보아왔다. 그리고 그 폭력이란 것이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데 카를로가 폭력을 휘두른다고 맞서서 자신도 폭력을 휘두를 수는 없었다. 자신의 폭력에 대항하지 않는 데이비드에게 카를로는 비겁한 겁쟁이라고 했지만 데이비드는 카를로와 같은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데이비드가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며 수용소에서 지내왔던 자신은 저 아이들처럼 놀아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헛간에 불이 났고 데이비드는 마리아를 구해 내게 되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데이비드는 조반니 저택에 머물게 되는데 처음에는 감사한 마음으로 데이비드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조반니 부인은 데이비드가 집에 머물면서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 하면서 보통의 아이들과 데이비드가 다른 이상한 아이라는 말을 우연히 들은 데이비는 조반니 댁을 떠난다.
데이비드는 자신이 ‘도망자’임을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는 ‘자유와 자유 의지’를 가장 소중하게 여겼다. 데이비드가 조반니 저택의 초대에 응하기에 앞서 ‘떠날 자유’를 먼저 확보하려고 했던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언제 붙잡힐지 모른다는 내면의 불안 속에 주어진 자유는 일반적인 자유보다 훨씬 달콤하다. 훔쳐 먹는 사과가 더 맛있고 몰래 한 사랑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조반니 댁에서 데이비드는 사람들이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았고 가정이 따뜻하고, 평화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반니 저택에서의 경험은 도망자인 데이비드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경험이다. 가질 수 없는 경험을 했다는 것은 행복인 동시에 불행이다. 누구보다도 자유의 소중함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데이비드지만 조반니 댁에서 마리아로부터 사랑의 감정을 배우고 사람이 자유만으로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자신을 쫓는 자가 언제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상황에서 데이비드는 사실 죽거나 말거나 별의미가 없었다. 데이비드가 정말 살고 싶었던 순간은 수용소를 탈출 해 나왔을 딱 그 하루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데이비드는 이제 너무나 많이 자유의 맛을 알았다. 추적자들에 의하여 강제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간다는 것은 상상 하기도 싫고 그렇게 살수도 없다. 데이비드는 이미 예전의 데이비드가 아니다.
이탈리아의 바닷가 마을에서 데이비드는 소피 하르트라는 여자를 만난다. 모델을 해 준 대가로 소피 하르트의 집에 머물게 된 데이비는 하르트의 앨범 속에서 사진 한 장을 보게 된다. 그 사진은 소피 하르트 친구의 사진으로 외국에 머물다 불행한 사건에 연루 되어 일가족이 갇혔다가 친구만이 살아남아 덴마크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아귀를 맞춰 본 데이비드는 소피 하르트의 친구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확신했다. ‘그 남자’가 제시했던 탈출 계획에서 시작한 긴 여정, 그리고 만나게 된 데이비드 엄마의 소식이란 장치에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수용소를 나와 엄마의 소식을 듣기까지 데이비드는 수용소 안에서 배우지 못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은 ‘사람은 가족과 함께 살며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산다는 것을 깨달아 온 여정’이었다. 이런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는 그것을 함께 나누고 누릴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엄마 소식을 들은 지금 데이비드는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
폭풍이 몰아치던 날, 데이비드는 탈진한 상태에서 한 농가의 가축우리 문에 부딪혀 쓰러졌다. 농가의 주인은 이제까지 데이비드가 만났던 많은 친절한 사람들과는 달랐다. 데이비드를 도둑으로 몰았고 신고하지 않는 대가로 노동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데이비드에게 허접한 음식을 주었고 가축우리에서 긴 겨울을 지내게 했다. 봄이 오자 데이비드의 꽁짜 노동력이 탐난 농가의 주인은 가축우리 문에 빗장을 질렀다. 가축우리에서 양치기 개 킹을 만나서 그를 친구 삼아 지내던 어느 날 데이비드는 탈출을 했다. 탈출을 하는 데이비드를 따라 오던 킹은 데이비드가 추적자들에 의하여 잡힐 위기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해 데이비드가 도망 칠 수 있는 사간을 벌어주었다. 킹의 희생을 딛고 데이비드는 엄마를 만난다.
책장을 덮으면서 ‘데이비드의 엄마 찾기’ 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결론은 그렇다. 그러나 두 살 때부터 수용소에서 살았던 소년이 수용소를 나와 비로소 삶을 배우고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에 귀 기우려 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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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연령이 원래 낮은 탓인지, 청소년을 위한 도서들도 감명 깊게 읽곤 합니다. 어떤 때에는 일반 서적보다 더욱 울림을 주기도 하죠. 요즘 청소년 도서를 만드는 분들의 수준이 워낙 높아서 그런지, 아님 요즘 청소년들의 수준이 높은 것인지, 암튼 전 아무 무리 없이 청소년 책들을 읽습니다. 《데이비드》는 그런 면에서 역시 아무런 충돌 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읽기에 더없이 편했고, 페이지도 술술 넘길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세상이 어떤 것인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던 아이 데이비드. 데이비드는 수용소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수용소가 그에겐 유일한 세상이었던 것이죠. 그곳에서 그는 자연스레 살아남는 법들을 배웠고, 말하는 법, 생각하는 법, 타인을 대하는 법들을 배워나갔습니다 항상 〈그들〉에게 감사당하는 삶, 조그만 자유도 용납되지 않는 수용소에서 그는 10살이 넘도록 갇혀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는 대화도 나누지 않았던 〈그〉가 탈출을 권유합니다. 탈출을 위한 준비를 미리 해 놓은 〈그〉는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탈리아를 거쳐 덴마크로 가라고 말합니다. 데이비드는 이탈리아가 어디에 있는 곳인지, 덴마크엔 왕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는지 등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결국 탈출합니다. 어차피 죽어도 그만이라는, 어린 아이에겐 좀처럼 볼 수 없는 ‘체념의 마음’이 이미 데이비드에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탈출에 성공합니다. 생전 처음 맛보는 자유. 데이비드는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김을 느낍니다. 살고 싶다, 자유를 계속 누리고 싶다. 사실 그가 바란 자유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주인이 되어 이끌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데이비드는 자유를 찾아 멀고 먼 여정에 오르게 됩니다. 그는 덴마크까지 갈 수 있을까요? 데이비드는 착한 아이입니다. 타인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타인을 기쁘게 하고,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진정 사람 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어린 소년의 마음은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추지 못한 그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에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닌데, 다만 이익이라는 것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생명을 앗아가는 세상. 돈이라는, 권력이라는 헛된 것들로 인해 상처와 고통을 주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세상. 우리는 사실 그런 세상에서 살아간 지 얼마나 오래 되었나요. 데이비드는 타인의 물건에 욕심을 내거나, 타인을 괴롭히는 행위가 결코 옳은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동으로 실천합니다. 아주 단순히. 저는 데이비드의 그 단순한 행위가 사실 얼마나 숭고하고 어려운 일인지 느끼게 됩니다. 오직 나만, 내 가족만, 내 주위 사람들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런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나만 잘 되면 이 사회가, 이 세상이, 이웃들 모두가 고통에 빠져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까요. 그건 절대 아니겠죠. 데이비드와 같이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을 알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 그것이 바로 천국이고 극락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울한 뉴스들이 이어지는 지금, 남북이 또 다시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려는 지금. 상식을 갖추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든 지금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숨져간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전쟁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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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는 아이 데이비드"는 '데이비드'라는 소년이 수용소에서 탈출하여, 태어나 처음 마주하는 새로운 세계 속에서 자유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누리고 있는 것들을, 데이비드는 이제서야 하나씩 발견하고 그때마다 신께 감사를 드린다. 이 소설에서는 이렇게 욕심없고 겸손한 데이비드의 모습들이 잘 나와있다. 여기서 저자는 지금 현재 나의 생활에 불만이 많고 욕심 많은 이들이, 반성하고, 작고 소박한 것에서 행복을 찾아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달으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데이비드는 어릴 때부터 수용소에서만 자란 까닭에 한번도 바깥 세상을 구경해 본 적이 없다. 그는 탈출하고 몇일 후, 처음 보는 멋진 풍경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나온다. "이토록 해맑은 색은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산 중턱에서 꼼짝하지않고 그저 주위만 바라본 것이 벌써 몇시간이나 흘렀는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신비롭고 희미한 빛으로 변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나는 이 아름다운 광경을 눈물이 가리지 않도록 화난 듯 눈물을 훔친다. 더는 죽거나, 어떻게 하고 싶지 않다. 살아남고 싶어..." 탈출할 때부터 자신의 죽음에 대해 무신경한 태도를 모였던 그였는데,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으면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우린, 흉한 수용소 안에서 죄다 흐리고 창백한 반짝임만 보던 데이비드와 달리, 아침에 눈을 뜨고 학교에 등교하는 길에서부터 세상의 여러가지 색깔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늘도 푸르른 하늘과 황금색의 포근함을 품은 따스한 태양을 볼 수 있음에 감사를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그는 또 화재 속에서 위험에 빠진 한 소녀를 구해주기도 하는데, 자신이 구한 그 소녀가 웃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미소를 짓게 된다. 그때 그는 이 소녀에게서 미소 짓는 법을 배운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장면에서 '즐거움'과 '행복'의 비교를 통해 '미소'를 설명하였다. 사람은 즐겁기에 웃는다. 아니면 행복하기때문인가? 두가지가 다르다. 즐거움은 스쳐지나가지만 행복은 완전히 사라지지않는다. 행복의 자취는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기위해 언제까지고 기억에 남아있다.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언제까지나 기억에 남아있을 행복이었다.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순간이지만, 행복(예를 들어 미소)은 그 자취가 기억에 남아있기때문에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이다. 미소를 짓는 것,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우리가 지겹다고 하는 이 일상생활들을 꿈처럼 바라만 보거나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작은 일들도 다 큰 축복이라고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된다. 또 이러한 깨달음을 얻을 뿐만 아니라, 점점 자신을 수용소에서 풀어준 감시인과 가족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에서는 스릴을 느끼고, 처음 나온 사회에서 소년 혼자 역경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는 그의 용감함, 확고한 가치관, 정중한 태도, 실력있는 언어력 등을 보며 나이답지 않은 성숙한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길을 찾는 아이 데이비드"는 제대로 쉴 틈없이 바쁜 학교, 학원생활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잠시 쉬어가며 삶에 대해 돌이켜보는 시간, 평소 불평, 불만이 많은 아이들에게는 반성의 시간이 되도록 하며,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