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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영화나 소설을 이야기할 때면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들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는 이 영화 '왼편 마지막 집'은 그러한 우연으로 사건이 이루어
지고 끝이난다는 점에서 분명 잘만들지 못한 영화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면 의외로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보다 훨씬 많
은 부분에서 우리의 삶은 우연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필연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서, 그러한 개연성이라는 것에 의
해서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우리가 일어나 밥을 먹고,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세상은 우연에 우연이 더해져서 우리의 주변에 갖가지 사건들과 일들
을 만들어내고 그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우리는 쉽게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바로 그 우연이라는 공간에 우
리가 완벽하게 동화되어서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 '왼편 마지막 집'은
그러한 우연에 의해서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의 해결 또한 우연이라는 이름의
무엇인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그러한 우연에 우연
이 겹쳐지는 일들은 결국 필연으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너무나 뜬구름 잡는 종교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무엇인가 절대 선이
라거나 절대 악이라 단순하게 규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어떤 일이 그렇게 흘러가게 하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어쩌면 그것은 보통 크게
이야기하는 역사의 흐름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의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모여서 만
들어내는 큰 흐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사람들은 기본적
으로 옳은 쪽으로의 이동을 의식하지 않는다 해도 일단은 그러한 모든 결정의 시작
은 바로 그러한 옳음으로의 이동이기에 세상은 그러한 큰 흐름 속에서 존재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큰 흐름이 하나의 사건에 작용했고, 그러한 작용을
너무나 잘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영화 '왼편 마지막 집'일지도 모른다.
악의에 의해서 악으로 행동한 누군가의 행동이, 결국 그 악인이 도움을 받은 이들
에 행해진 악업이었고, 결국은 타인에게 선의를 갖고 대했던 이들에 의해서 단죄되
어지는 것은 조금은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분명 큰 흐름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
상의 큰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큰 흐름이 우연에 우연을 더해
서 필연으로 그들을 이끌어 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을 결코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 영화
의 악당들 보다 훨씬 질이 나쁜 악당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우연에 우연
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필연처럼 그들에게도 그 우연이라는 이름의 필연이 결코 그
냥 지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바로 우리가 '왼편 마지막 집'에서 볼 수 있지 않을
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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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가열찬 부성애를 중심으로 응징이 펼쳐지니 바로 <왼편 마지막 집>은 지극히 평범한 가족의 복수극이다. 여기서 주인공 딸은 처절하게 강간 살해됐지만 간신히 살아나고 만신창이가 된 딸을 살리기 위한 남편과 부인의 처절한 복수극이다. 이것이 바로 시놉시스(아래)이자 주제다.
1년 전, 아들을 잃은 후 홀로 남은 딸 메리에게 모든 애정을 쏟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던 콜린우드 부부. 평범한 행복을 누리던 그들은 새로운 출발을 위해 산장으로 휴가를 떠난다. 그리고 그 날 오후 산장 근처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나간 딸 메리에게서 연락이 두절이 되고, 그 날 밤 두 부부만 남아있는 외딴 산장에 폭우로 길을 잃은 4명의 낯선 방문객이 찾아오는데…
그런데, 이 영화는 어떤 액션배우를 써서 아니면 <데이큰>처럼 전직 특수 요원의 응징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남자의 복수이다. 제대로 싸울 줄은 모르지만 그 상황에서는 누구나 저렇게 아니 자신이 살기 위해서 그들을 죽여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