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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인지 거실 책장에서 이 책이 보일 때마다 내용이 궁금했다. 대학교 졸업 때 (형식적인) 졸업 논문을 쓰면서 미셸 푸코가 제시한 학교, 군대, 정신병동, 감옥의 공통점을 공부하고 그 구조의 문제가 일본 오타쿠, 한국 폐인 문화를 야기한다고 주장했던 생각이 났다. 일본 애니 "NHK에 어서오세요"도 생각났다(H= 히키코모리 의 약자). 무엇보다도 영화 "김씨표류기" 여자 김씨가 이 책에서 다룬 은둔형 외톨이와 얼마나 흡사한지 확인했다. 분명 존재하고 있고 더욱 늘어나고 있지만, 표면에 드러나기 어렵고 원인 분석이나 확실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쉽지 않기에 우리가 쉬쉬 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종종 교실에서도 매우 무기력하게 아무 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학교만 겨우 출석하고 있거나, 학교 다니기 싫어하는 학생을 만난다. 그들을 만날 때 학생 본인이나 부모에게 어떤 실질적 조언이나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때마다 막막하다. 저자는 자신도 등교 거부 경험(이 원인은 미셸 푸코 주장처럼 공립학교가 많은 학생들을 한 공간에 때려넣고 자유 없는 통제 교육을 시키는 데 원인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이 있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은둔형 외톨이와는 성격이 또 다르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통신 산업의 발전에 따라 점점 버추얼한 커뮤니케이션이 젊은이들의 가치고나을 형성하는 주류가 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접촉이 탈가치화됨에 따라 젊은 사람들이 대인 관계의 능력이 저하되어 가는 것도 그 하나의 원인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은둔형 외톨이의 증가에 가장 기여하고 있는 중요한 원인은 모자일체화의 폐해입니다... 일밖에 모르는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의 관심은 자식들에게 집중되고, 자식들은 시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모자일체화되어 열심히 공부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모자일체화는 더욱 강화되면서 모자일체화라는 환상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둔형 외톨이의 정신적 자립을 악의 없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구속하고 방해하는 것입니다." 127-128쪽.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저자의 주장대로 일본의 전형적인 가정 형태여서일지도 모르지만) 은둔형 외톨이의 전형적인 가정 환경이 드러난다. 우리가 추측하는 생애 초기 학대 경험 같은 원인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와 모자일체형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장녀가 많다는 점이 인상 깊다. 아버지는 자녀 양육에 그리 참여하지 않고, 어머니는 자녀의 학업 경쟁을 거의 대신 해주며 전전 긍긍하는 상황은 우리도 그리 다르지 않다. 일본이 닥친 현실은 앞으로 우리에게도 닥칠 현실이다. 안 그래도 요즘 경기도교육청 차원에서 5.31(경쟁, 수월성 교육)교육체제를 뒤엎고 4.16 교육체제 담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고심 중이다. 아이들이 방으로 은둔하지 않고 개인 성향과 자유에 맞는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가도록 돕기 위해서라도 교육 방향성과 학교 문화를 '착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집단따돌림, 학교부적응, 은둔형외톨이 각각은 매우 같은 상태가 아니라 구별할 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또한 저자가 세심하게 은둔형외톨이와 경계에 있는 다른 정신질환들(우울증, 분열증, 자폐증, 강한 불안, 강박, 공황 장애 등)과는 또 다른 일종의 '상태'임을 확실하게 지적하고 있어서 인상 깊었다. "A군은 "현재는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라고 종종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이 강한 염세적인 생각이나 허무감에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환각과 망상 등의 정신분열병이 의심되는 증상은 없습니다. 미국정신의학회의 DSM-Ⅳ의 진단 기준에 따라 진단을 붙인다면, '회피성 인격장애'에 해당됩니다. 은둔형 외톨이는 어디까지나 현재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지, 은둔형 외톨이라는 진단명은 없습니다. (좁은 의미의) 은둔형 외톨이는 진단적인 측면에서는 대개가 인격장애에 해당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조금 더 언급을 하고 싶습니다. 인격장애는 인격이 왜곡되어 사회생활이나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장애입니다. 여기서 강조해두고 싶은 것은 인격장애는 결코 정신병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단지 인격이 편향되고 왜곡되어 있는 상태일 뿐입니다. 은둔형 외톨이라고 결론 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정신분열병의 진단 기준에 해당되어서는 안 됩니다." 35쪽. "그 다음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자신의 상태로 인해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런 점 또한 은둔형 외톨이를 다른 질환과 감별할 때 필수적으로 체크해야 하는 사항입니다. 더욱이 은둔형 외톨이가 은둔하고 있을 때는 자신이 왜 밖으로 나갈 수 없는지, 지금 무엇을 하면 좋은지, 전혀 모릅니다. 은둔하고 있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지만, 도저히 그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 은둔형 외톨이의 전형적인 마음입니다." 36쪽. "좁은 의미의 은둔형 외톨이를 위에서 살펴본 내용들에 근거하여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어느 정도의 기간(대체로 6개월 이상) 동안 집에 은둔해 있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 또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최소한의 것만 하는 것. 2. 스스로 '은둔 상태'에 이질감을 느껴서, '은둔 상태'에서 빠져나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 방법을 몰라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3. 은둔형 외톨이라는 증상이 다른 정신질환의 하위 증상이 아닐 것." 37쪽.
특별히 은둔형 외톨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진료와 면담을 해나가고 있는 저자가 들려주는 임상 경험에 의한 분석이 충분히 의미 있어보인다. 정신과적 접근이 아니라 은둔형 외톨이 특유의 심리 상태에 공감, 인정해주면서 접근했을 때 그들 중 몇 몇이 마음을 열기도 하고 그 상태에서 빠져나가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면담자는 전문가답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부모는 불안하겠지만 마음을 여유롭게 먹고 일단 자신의 인생을 살며 자녀가 은둔 상태를 빠져나오기를 기다리고 타이밍에 맞게 적절한 지원을 해야한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발굴해보면 꽤나 많을 은둔형 외톨이 가정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과정 자체가 '나만 어려워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힘을 낼 수 있게 돕는다. 아직 정신과 전문의들 조차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고, 지역사회에서도 서로 연계해서 적절한 지원을 해주어야 하지만 미비한 상황이라고 한다. 이 책을 번역한 저자 역시 정신과 전문의이고 실제 한국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나 관련 연구가 미비한 상황이라 절박한 심정으로 본인 스스로 이 책을 번역해 소개하고 있다고 한다.
단순히 잠시 일을 쉬고 심리적으로 편안한 공간인 집에서 '여유로운 취미 생활'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부터 영화 "김씨표류기"의 여자 김씨처럼 몇 년 동안 방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인터넷으로만 겨우 외부와 소통하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좁은 의미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은둔형 외톨이까지 발굴해보면 꽤나 많은 사람이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테다.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상태에 대한 보상 심리로 본인이 이 생활을 '통해' 앞으로 엄청난 사람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도 많다고 하는데, 그러한 인과 관계가 필연적이리라는 보장은 없는 만큼 그러한 상태를 극복하고 특별한 경험을 기반 삼아 건강하고 의미 있는 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이 상태에 대한 이해와 지원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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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엔 바람이 있다.
보기엔 댓잎 하나 까딱 않는 갠 날도 대나무엔 바람이 있다.
대밭에 들면 서늘 사늘한 것이 곧 바람이 있음을 말해준다.
댓잎 하나하나의 부채질이 서늘하고 시원한 바람이어라.
잎 새에 이는 잔잔한 그 바람을 보지 못할 뿐이다 비가 오나 눈서리 내려 댓잎이 무거워도 대나무 바람은 잎 새에 있다.
대숲 지나는 바람은 바람의 선율을 대나무에 남기고 간다.
바람가는 대 숲 가운데 서면 나도 그만 대가 되어져 바람 스친 선율을 느낀다.
빽빽하고 무성한 가지를 중동까지 쳐내면 툭 터져 죽죽 곧게 뻗어난 대나무의 위용이
더욱 돋아나서 시원스러운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집 뒤로 도열하듯 늘어선 대 수풀을 보면 마치 호위장군들처럼 늠름해 보인 것이
사시사철 마음을 청한하게 해준다.
사시에 푸른 竹林은 그 風致만으로도 雅趣하고 雅正함이 있어 그만 마음을 빼앗길 정도이다.
산비탈 비켜 햇살 터오는 아침 대숲의 디테일한 빛깔 분위기는 가히 환상적이기도 하다.
새순 나는 봄 녘의 대숲은 마치 분단장한 여인처럼 화사단아하기 그지없다. 짙푸른 여름날의 대숲그늘은 눈바람을 방불케 청정하며,
스산한 늦가을 보름달 뜨는 초저녁의 반딧불 나르는 대숲은 누구라도 그만 절로 詩心을
돋구게 한다.
묵상한 채 댓잎에 흰 눈(雪)을 인 雪竹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만
냉철하고 장쾌한 겨울추위를 온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하늘 향해 쭉~! 뻗어 솟은 기상이 나무 중에 빼어나다. 비록 속이 비어 虛하나 강단진 매듭이 있어 되레 야무지다.
외로운 한그루는 담담한 孤竹의 멋이 있어 좋고,
두세 그루 어울리면 바람이 함께 하여 또 좋다.
수천군단의 숲을 이룬 竹林은 바람파도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가을 달은 창호에 사군자의 하나인 대를 그려내는 멋을 부린다. 대는 달을 벗해 문창호에 影을 드리워 획(劃) 따라 그리던 묵화(墨畵)
의 本이었다.
대숲에 드는 비바람소리 방안까지 드는 것이 이제 立秋 문턱 넘어드니
막바지 더위만 식혀주면 올 여름 더위도 저만큼 뒷전으로 나 앉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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