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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탄생(정범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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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이병주 선생의 마술사를 현대문학을 통해서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마술사를 먼저 읽고 알렉산드리아를 구해서 읽게 되었다. 청소년 때였지만 감동이 깊었다. 문학평론가들이 고백 했던 감동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한국인들은 보통 중, 고등학교 시절에 근 현대 한국문학을 섭렵한다. 대강 다 읽었다고 판단 할 때 세계 문학으로 옮겨 가는데 더러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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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이병주 선생의 마술사를 현대문학을 통해서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마술사를 먼저 읽고 알렉산드리아를 구해서 읽게 되었다. 청소년 때였지만 감동이 깊었다. 문학평론가들이 고백 했던 감동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한국인들은 보통 중, 고등학교 시절에 근 현대 한국문학을 섭렵한다. 대강 다 읽었다고 판단 할 때 세계 문학으로 옮겨 가는데 더러 영민한 학생들은 한국문학과 같이 읽으면서 문학의 시야를 넓히기도 한다. 나는 마술사를 읽기 전에 학교 도서관이나 손위 형제들이 모아 놓은 근현대 한국 문학을 폭 넓게 읽었는데 대체로 한국인들의 한국적 삶을 다룬 것이었고, 이것은 토속적 혹은 토착 문학일 수 있지만 당연히 한국인이 할 수 있는 문학일 것이었다.

 

이병주 선생의 문학은 그 범주를 벗어나 그 문학적 시야는 지구촌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중국 고전에서부터 서구의 문화를 폭 넓게 섭력한 선생의 영민함과 타고난 문학성 그리고 깊은 공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대략 한국문학 100년사에 선생과 같은 지성은 없었다고 본다. 흔히 선생의 지성을 거대한 지리산에 비유하는데 그이 인생행로가 굴절 되지 아니하고 그에게 생활인의 굴레를 벗겨 주었더라면 그의 문학은 실로 위대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다. 척박한 땅. 가난한 조국. 졸렬한 정치가 만들어 낸 민족과 국토의 분단이 선생의 문학성을 내리 눌러 질식 시키고 한을 품고 타계 하시게 했다고 나는 믿는다. 일 필부인 나는 선생의 부음을 듣고 생면부지의 처지였지만 매우 안타까웠다. 그리고 우울하였다. 선생 역시 가혹한 운명의 힘에 패배한 경우였다.

 

60평생 선생의 저서를 거의 읽었던 나는 탁월한 지성인으로서의 선생의 인간적 면모가 매우 궁금하였다. 군사 쿠데타에 의하여 굴절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선생이 또 다른 군사 쿠데타의 주역을 옹호하는 처신의 그 속사정도 알고 싶었다. 평생을 가꾸어온 선생의 사상적 훼절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았던 것이다. 예스 24홈페이지에 정범준 작가의 '작가의 탄생'을 소개한 것을 보고 그의 약력을 읽고 나서 처음 느끼게 되는 것은 저자가 선생의 삶을 다루기에는 너무 젊다는 것이었다. 1970년 생 이면 현실적으로 40대 중반의 중년의 나이라고는 하나 이병주 선생의 시대를 다루기에는 세대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뛰어난 인물들의 자료나 사료를 우습게 여기는 한국의 문화 타성으로서는 이병주 선생의 자료라고 해서 제대로 남아 있을 리 없다. 러시아가 도스또예프스키의 모든 사소한 자료를 모아 두고 후대의 지성들에게 열람 시켜 위대한 작가의 평전을 쓰게 하고 논문을 쓰는데 도움을 주는 현실은 한국의 문화적 수준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60년 전에 죽은 까뮈의 사소한 작가 메모까지 보존하여 후대에 열람시키는 프랑스의 문화 가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은 21세기 프랑스에서도 여전히 문고본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현실의 한국 젊은이들이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찾아서 읽던가? 프랑스 젊은이들이 당연히 '이방인'을 읽듯이 한국의 젊은이들은 당연히 알렉산드리아를 읽어야 한다고 믿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되지도 않는 신경숙의 소설이 200만부나 팔리는 한국적 현실에 나는 아연할 뿐이다.

 

내가 정범준의 저서 '작가의 탄생'을 읽고 실망 했다면 그 원인은 누구보다 작가 정범준이 잘 알고 있으리라 본다. 이 저서가 실패했다면, 무엇보다 한국과 일본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취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족의 도움을 받아 선생이 남기신 모든 자료를 확인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선생과 동시대의 지인들은 이미 타계 했거나 했을 일이지만 그래도 찾으면 생존자를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재희 선생 만 해도 아직 충분히 인터뷰에 응하고 이병주 선생 선생에 대한 회상을 할 수 있는 처지임에도 작가는 이를 실행에 옭기지 않았다. 많은 분량을 선생의 작품에서 인용하는 것으로 책을 채운 것은 책의 쪽수를 채우려는 고육지책 일 수 있었겠지만 최소한 이병주 선생의 독자라면 불필요한 중복일 뿐이었다.

 

독자는 선생의 작품에서 충분히 선생의 사상과 이념 그리고 대강의 삶의 궤적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을 새로운 저서에 중언부언 할 필요성은 없는 것이다.

 

이 저서가 실패 한 책이라면 그 원인은 작가의 무성의가 무엇보다 큰 귀책사유다. 거대한 아나콘다를 찾으려다가 꼬리만 보고는 돌아선 겪이다. 지리산을 탐사 해 보겠다고 나섰다가 초입에서 돌아선 겪이다. 작가의 문학적 지성과 구성력이 이병주 선생의 문학과 삶을 다루기에는 역 부족 이었다. 최초로 선생을 탐구한 저작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이로써 나는 이 나라 문학인들의 지성의 빈곤을 다시 확인 한 셈이다. 이병주 선생이 생전에 남기신 말씀대로; 문학이 빈곤해도, 베토벤, 모차르트의 음악을 안 듣고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 것이지만 그런 나라의 꼴은 한 없이 초라할 수밖에 없다.

f********4 2015.07.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