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800여 페이지의 이야기를 읽어온 시점에서 맞이했던, 이 길지도 않은 문장을 읽는 순간, '아! 이거 뭐지?" 정말 무언가 둔탁한 것으로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러나 --- 스스로를 "쿤타 킨테1로부터 일곱 번째 세대"(p822)라 부르고 있는, 작가2 알렉스 헤일리가 써놓은, 이후 30여 페이지에 걸친, 이 한 편의 역사 이야기를3 쓰게 된 계기와 과정을 통해, 앞서의 800여 페이지에 대한 요약 뿐 아니라, 이 두 권으로 되어 있는 작품의 딱 중간쯤 읽었을 때 써놓았던, '이 소설은, 단순히 흑인의 조상 찾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미국 역사에 대한 이야기만도 아니며, 이건 여전히 지금 우리의 일상에서도 보여지는, 어쩌면 인간의 근원적 성질에 관한 이야기일지도...'란 저의 미심쩍었던 예감에 대한 확신 또한 얻을 수 있었었지요. ………………………………………………………………………………………
폴 비티의 소설 제목, 우리말로 '배반'이라 번역되어진 sellout이란 단어의 뜻은 'someone who forgets their roots'이라 사전은4 말해줍니다. 그 단어와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듯한, 제목 「Roots」를 통해 짐작되어지듯 이 작품 속, '쿤타 킨테' 후손들은, 대를 이어가면서도, 자신의 근원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왔지요.5 그리고/그러나 --- '잊지 않으려는' 그와 같은 노력에도 예의, 열 일곱살 때, 노예 상인들에게 붙잡혀 미국으로 건너온 지 십칠 년이 지난 어느 날, 즉 그의 삶이 고향 주푸레에서 살았던 기간과 "흰둥이의 땅"(p326)에서 보낸 기간으로 정확히 양분되는 시점에서 그는 자신이 "아직도 아프리카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부르듯 '검둥개'가 되었나?"(p326)란 의문을 가졌었던 초기 혼란의 시기는 존재했었더랬습니다. 이후,
비록 킨타 쿤테가 상당 기간 동안, "자유의 몸이 되어 아프리카로 가느니 차라리 노예로서 버지니아에 살고 싶어 한다"(p355)와 같은, 말하자면 '이민 2세대' 노예들의 정서에까지는 동화되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6
그 역시,
· · · "이것은 전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8란 구절로 특징지어질 수 있겠는,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가, "과거의 모든 것은 고통 혹은 상실이었다"9라는 메시지에 집중하고 있었다라면, 이 작품 「뿌리」는 스스로 좋은 세상 만들지 않으면, 세상 절대 좋아지는 법 없어요! (p775) 로 대변될 수 있겠는, 그러한 '고통 혹은 상실'을 극복해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에 천착하고 있다라,10 그리고 그러한 극복이 (최소한 일부일 수일지도 모를 흑인들에겐 어쨌든) 실현된 것으로 그려내고 있다라 저는 생각합니다.11 다시 말해, --- "무엇이든 선택해서 사랑할 수 있는 - 욕망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는 - 곳에 도달하는 것"12, 혹은 "아무도 더 이상 너 소유하지 않는다 그런 뜻"(p735)으로, 흑인 작가들에 의해 정의된 '자유'라는 개념, 이 '자유'의 쟁취란 것에 대해선 적어도,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다,란 메시지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읽혀질 소지가, 다분히 있다란 것이죠. 왜 그러냐구요? ………………………………………………………………………………………
물론! 자신들의 처지를 '뼈다귀'로13 표현해야 했던 흑인의 지위가, 이 책에서 보여지듯 그들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상상도 못했던 변화를 맞이한 것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으며, 그 드라마틱했던 변화의 실제 과정을 보여주었다라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엔 더할 나위 없는 찬사를 받을 자격이 주어져야 마땅하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 변화의 성공에 대해 가해지고 있는, "백인처럼 옷을 입고, 백인처럼 말하며, 백인처럼 생각하고 백인 중산층 문화의 가치를 표현"14해가며 이루어낸 약간의 성공이며, 하지만 그 약간의 성공이란 것마저 기실 "자신이 흑인에게 '양보할' 뭔가가 있는 듯한, 또는 흑인이 그들의 흑인 특성을 '극복하도록' 도와줘야할 것 같은"15 백인들의 지니고 있는 일종의 의무감스런 동정으로부터 결과된 것이란 비판을 이겨낼 만한 맷집이, 과연 이 작품 「뿌리」에 있느냐란 질문에, 전 긍정의 답변을 내놓을 수 없다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하여, "정말 듣기 거북하니까, 그 케케묵은 노예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해요!"(p792)라 항변하는 세대도 있겠으나, 아직은 "어떤 일들은 까맣게 잊어버리지만, 또 어떤 일들은 절대 잊지 못하잖니. … 자리가 여전히 거기 남아 있어. … 단지 내 재기억 속에서만이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 말이야"16라 생각하는 세대가 더 많지 않을까, 즉 '극복해내었다'란 성취감보다는, '과거에의 상처'가 아직은 더 크다라는 생각이 있기도, 그리고, 어쩌면 그 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겠는...
미국에서 흑인으로 존재한다/살아간다라는 것이, 위와 같은 관념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느냐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지워낼 수 없다란 것이, 자유에 대한 '쟁취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에, 맘 편히 열광하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 · 어쨌든! --- 이 작품에 5/5의 만족도를 표시하는 것엔, 하등의 주저함도 없었다라는... ※ 함께 읽어보길, 주저함 없이 추천해보는 책들 - 토니 모리슨 : 「빌러비드」 - 폴 비티 : 「배반」 - 존 하워드 그리핀 : 「블랙 라이크 미」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 「자발적 복종」 ...금연 242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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