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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출판사가 작년에 내놓은 책 한 권에 몇 가지 '혹평'을 해 두고자 한다. 그러나 책 자체에는 별 네 개를 준다. 읽어야 하는 책이기 때문에.
일단 이미 국내 학술지에 많은 논문이 발표되었고 단행본도 꽤나 나온 임지현 보다는, 사카이 나오키의 사유를 알 수 있었던 것이, 나에게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은 수확이었다. 사카이 나오키는 그간의 일본의 지식인들이 보여줬던 이론의 소화와 비판적 해석, 그리고 당위적인 입장의 제시를 넘어 일본의 전후 문제, 혹은 그와 밀접히 연결된 아시아 공동체라는 논점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실천의 방식을 구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결국 '민족' 혹은 '국민'이라는 동일체 내부에 끊임없이 균열을 내며 단일성의 환상을 깨뜨리는 것이다. 일본 전후 책임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그러한 연장에서, 즉 국민을 단위로 한 집단적 유죄와 집단적 무죄를 넘어서, 그 내부의 가해자들을 가려내고 처벌하기 위한 정치적 실천이라는 문제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미국의 헤게모니와 그것의 '효과'로서, 적대적 입장에서 상호의 존재를 지지하는 일본, 한국의 국민주의에 대한 분석도 계발적이다. 자연발생적인 것처럼 상정되는 국민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그 외부로부터 그것을 바라보는 구조주의적 입장을 사카이는 확고히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출판 기획자의 애초 구상이 얼마나 심도있고 체계적인 것이었던가에 대해서 다소 회의적이다. 적어도 이 정도의 대담과 대담집을 기획하려면 이미 사카이 나오키와 임지현을 비판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수준 정도는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반 위에서라야 서로 깊이있게 논쟁할 수 있는 화두를 제시하고 대담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담 사이사이에 있는 출판 기획 측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들이 사카이와 임을 '학습'하고 '독해'하는 선을 넘어가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아쉽다. (자기들이 잘 모르는데, 꼭 배우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출판 기획보다는 강연회를 여는 편이 낫다.)
무엇보다 내가 실소한 것은 사카이 나오키를 소개함에 있어서 "가라타니 고진과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꼽히는"는 학자 운운하는 표현을 쓴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런 착각을 제발 버려야 일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이른바 근대를 지양하는 지적 기획이라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가라타니와 사카이는 물론 세계적으로 비상한 주목을 받는 학자이지만, 이들을 한국인의 입장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일정한 자기반성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두 사람에게 그러한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그들을 일본 지성의 최고봉에 밀어 올려놓고 싶어하는 우리 스스로의 욕망 때문이 아닌가? 비록 그들이 통속적인 의미의 일본 내 '친한파'는 아니지만, 탈식민, 탈근대를 욕망하는 구 식민지 땅덩어리의 지식인들에게 있어 가라타니나 사카이 등이 발신하는 메시지는 말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에서 그 둘은 철저히 변방의 아웃사이더지 결코 주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탈식민주의 논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일본에서는 둘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을 정도다. 그러니까 요는, 가라타니와 사카이를 읽긴 읽되, 현대 일본을 이해하는 방편으로 거기에 '탐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나 자신에게도 적용해야 하는 말일 것이다.
여하튼 책으로 돌아가면, 출판 기획상의 불비가 한편으로는 출판사 측에서 대담에 가한 주석에서, 또 한편에서는 대담 자체의 흐름에서 문제로 불거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책의 주석은 두 사람의 대담에서 나온 다소 어려운 학술용어라든가 인물들에 대해서 보충적인 설명을 덧붙인 것인데, 묘하게도 대담과 마찬가지로, 'ㅂ니다"의 경어체로 쓰여있다. 경어체 자체가 묘한 것이 아니라, 왠지 그 맥락에서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 주석을 작성한 사람들은 대담자들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학습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반면에, 주석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그 주석 자체의 충실성(사실적 내용보다는 세간의 평가가 주가 되어있는)과는 관계없이 무언지 모르게 가르치려 하는, 여러운 것을 자상하게 설명해 주려는 듯한 자못 계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담에 대해서 말하자면, "전적으로 동감입니다"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 대담은 처음인 것 같다. 대담자 사이에 긴장이라든가 어떤 사유의 변증법적 전개가 잘 보이지 않으며, 두 사람이 계속 비슷한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면서도 뭔가 답답한 오해의 선이 대담 내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애초 대담자를 선정한 방식 또한 나의 감각으로는 다소 서툴렀다. 임지현을 선정한 다음, 그가 대화하고 싶은 상대를 물어, 임지현이 선택한 상대가 사카이 나오키였다는 것인데, 그런 방식, 즉 임지현을 통해 사카이 나오키로 다가가는 방식은 그야말로 출판 기획 측 자체의 청사진의 결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차라리 임지현에게라면 신용하라는 파트너를 붙이거나, 아니면 '한일대표'라는 형식을 고수하여 이시하라 신타로 같은 사람을 대담 상대자로 섭외했다면 되려 대담집이 볼만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혹은 임-사카이의 듀엣을 유지하더라도 누군가가 질문을 던지고 다른 누군가는 답변하는 방식을 기본적인 대담 포맷으로 잡으면 좋지 않았을까. 대화의 형식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 책을 같이 출판하기로 한 일본의 이와나미 쇼텐에서는 아직 이 책이 나오지 않았다. 동일한 대담을 가지고 편집은 각 출판사의 구상에 따라 자유롭게 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했는데, 이와나미 판에서는 휴머니스트 판과 어떤 식으로 다를지 궁금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 개의 언어로 진행을 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곧 <오만과 편견="">이라는 책은 책 너머 혹은 책 이전, 즉 사카이 나오키와 임지현이 일본어와 한국어라는 이질성을 유지한 상태로 '대화'를 했고 그것이 서너 명의 한일 연구자들의 통역에 이루어졌다는 그 '사건'을 지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분명히 책 이상이다. [인상깊은구절] 미국에서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할 때 영국이나 프랑스의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만, 미국의 교육제도 속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지금 미국의 마이너리티 지식인은 미국 체제가 가진 식민지성을 묵인하는 한도 내에서 자기 민족의 문화를 자랑한다든가, 민족적 동일성에 대한 인지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전 세계에서 저지르고 있는 부정에 대해 묵인하고 자신들이 얼마나 애국적인 모델 마이너리티인지를 보여주고 나서야 비로소 평등이나 자기 인지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중략) 그래서 친일파 지식인이 한 일에 대해 지금 관심이 많은 까닭은 그 문제를 고려한 뒤에 그들이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 어떠한 위험을 무릅쎴는가, 그들의 약한 부분은 무엇이었나 등을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 전에 다시 한 번 검토해 보고 싶어서 입니다.오만과> |
| 임교수와 마찬가지로 역사연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임교수와 달리 한국사를 전공하는 입장에서 볼 때 '민족'이라는 화두는 정체성의 상징이자 뛰어넘어야 할 벽이다. 그점에서는 임교수의 논리에 동의하지만... 저자들은 '민족'과 '근대'가 한국사 및 일본사의 전개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가 부족한 상태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자칫하면 이런 논의는 일본은 조선의 식민통치 및 각종 범죄적 행위에 대해 지성적 면죄부를 주는 격이 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당시 시류가 그러했기 때문이지 일본이 조선에 대해 악의는 없었다'는 변명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역사연구에서 절대 해서는 안될 금기 가운데 한가지,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의 사실에 함부로 가치부여를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어기고 있다. 식민지시기를 논하면서 오늘날 연구자들은 '민족'과 '근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은 타당성을 갖지만, 당시 지식인들의 뇌리에 박힌 '민족'과 '근대'가 갖는 의미를 부인한다면 역사연구가 아니라 '무인시대'같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픽션'이 된다. 이 금기의 경계선은 매우 모호하다. 따라서 역사가들은 평생 사료를 읽으며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그러한 이해에 기반하되 현재의 방법론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 동일한 시기의 역사라도 다시 연구되어야 하고, 타당성을 갖는 방법론이 등장하면 새로 밝혀진 사실이 없더라도 다른 측면에서 재조명되는 것이다. 저자들의 문제제기는 적절하다고 본다. 앞으로 자신들이 전개한 담론을 공고히 하기 위한 실증적 성과를 내어 주길 기대한다. 또한 파쇼를 배격하면서 파쇼적 행태를 보이는 일부 운동가 / 지식인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
| 민족, 인종, 국가, 성 계급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한일간 교수들의 대담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학자란 본시 강의실밖의 사정은 어두운 법이다. 일반대중이 느끼는 정서와는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도 잘 볼수 있기도 하다. 우리가 어느정도 국가주의의 광기에 빠져있음에 대해 비판은 수긍이 갈만하다.... 누구에게라도 추천해줄 만한 책이다. 그러나 내가 일본이라는 편견에 빠져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본교수에 대해 몇몇 불편한 점이 있다. 그에 동조내지는 의의를 달지 않은 학교교수에게도 매 한가지다. 몇몇 근현대사의 역사를 부정내지는 비껴가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듯하다... 친일파에 대한 구절이 있다. 친일이 바쁘다 좋다는 걸 논외로 치더라도 당시 쓰러져가는 국가를 위해 일본을 닮기위해 친일은 한 것에 대해 새로운 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틀린말은 아니다.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는건 사실이다. 그런데 책의 다른 부분에는 팔레스타인의 가족을 몰살시키고도 당당한 이스라엘 병사에 대해 나온다. 그 병사가 그렇게 당당할수 있는건 신의 뜻이라는 생각과 반대편의 상대에게서 받았던 상처들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 이것은 비극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친일행위를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 준 고통과 오욕의 시간들에 대해서는 비극대신에 재평가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위안부할머니에 대해서는 국가주의의 희생자라고 말한다. 위안부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없으면서 이들이 한국이 일본을 압박하는 카드내지는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정치희생양처럼 말하고 있다. 아무래도 속이 불편한걸 어찌할수 없는 노릇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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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대한 리뷰들을 보면 이미 민족주의나 국민국가의 허구성을 또는 국가의 파시즘에대해서 어느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이 책에대해서 그다지 후한 점수를 주지않는 듯하다,
나같이 임지현 교수나 나오키 사카이가 어느한 인물인지 그리고 어떠한 지식인지 모르고 이 책을 접한다면 우리가 어느한 민족주의의 헤게모니 속에 사는지 그 유령을 걷어낼 수 있는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일본에대한 피식민지 국민으로써 우리의 피해의식이나 민국에대한 반미 민족주의 박정희 체제의 반공주의와 김일성의 반미 헤게모니에 기댄 주체사상이나 여성의 페미니즘이 근대국가라는 파시즘에 동원된 경로등 다방면에 민족주의의 허구성을 여실히 들어내는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비록 한국의 근대화를 꿈꾼 친일파 부분이나 일본제국을 위해 성노예로 강제로 동원된 위안부의 부분들이 다소 문제가될 소지가 있더라도,,,
생물학자 최재천와,이문학인 도정일선생이 만난 대담집을 읽고 대담이 이라는 이시리즈를 접하고 이 책을 접하게됐다,
나에게 있어서는 근대의 허구성,한국인으로써 은밀히 내면화된 민족주의 그리고 무의적으로 내재된 일본에대한 반일 감정을 낱낱이 해부하게 된 동기를 부여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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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식민지 통치와 반공주의로 가려진 독재정권의 대물림을 지나 이제야 빛을 보는 한국의 탈근대사회에서 한국의 임지현선생과 일본의 사카이 나오키 선생 사이의 대담은 주목할만하다.
일단, 서문에서 한일축구하면 목숨을 걸만큼 민족의 감점부터 드러내는 한일 컴플렉스의 기제를 사카이 선생은 [식민주의적 죄의식]으로 임지현선생은 [세습적 희생자의식]으로 진단하고 이것을 뛰어넘었을 때 진정한 한일 지식인간의 대화에 물꼬가 트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 본문의 문을 열기도 전에 그 동안 자신의 정체성의 뿌리로 믿고 있는 민족성 그리고 역사에 대한 자기 기만이 양심인양 쳐다보기에 주춤거리게 된다.
진정으로 상대방과 대화도 해보기도 전에, "저 놈은 빨갱이, 저 놈은 일본의 앞장이, 식민주의자, 전라도놈, " 이라고 규정내리게 되는 선입견의 뿌리에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동안 굳게 믿고 있던 국가와 민족의 양 얼굴임을 발견하고 더욱 놀라게 된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인 [오만과 편견]처럼 탈근대의 카오스적 상황에 해묵은 민족주의 담론이 아닌 새로운 탈근대 담론으로(비록 그것이 서양 지식인들의 유산일지더라도 일단 그러한 선후 문제는 재쳐두고라도) 접근하기에 조금은 반감이 생기고 그것은 아니냐 라고 머리속에서 딴지를 걸더라도 신경쓰지 않고 한번 책 속으로 풍덩 빠져봤다.
이 책의 2장이 [민족, 국가-폭력과 배제 그리고 포섭의 담론들]과 [젠더, 인종-차별과 편견을 잉태한 제국의 오만]은 정말로 읽어볼만 했다. 국가의 이데올로기는 이승만이후 전두환에 이르는 독재 정권의 대물림에 [반공주의]가 지금은 사라졌고 힘도 없다고 보겠지만, 루이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의 억압 장치]에서 이제는 [이데올로기의 국가 장치]라는 새로운 기제들(가정, 학교)이 자연스럽게(?) 학습화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구조적 핍박과 어려움 들이 지금의 이혼증가로 나오는데, 그 문제의 해결을 가정의 구조적 시스템에서 찾기 보다 [국가]가 개입해드려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외 인류 초기부터 시작된 [성매매]에서 지금 문제가 되는 [원조교제] 는 그렇다치더라도 [스와핑]에서까지 윤리적 종교적이라는 해묵은 논법으로 국가가 개입해서 한 가정을 평가한다는데 참 어이가 없음을 느낀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억압할 수록 분출의 힘은 커지게 마련이다. 가부장제 사회의 남근의 위기는 곧 성에 대한 아무것도 모르는 청소년과의 성매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쨋든, 여기에 두 지성인들의 대담은 참 꺼내기 힘든(말하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내면화된 두려움의 기저들) 민족주의와 젠더에 대해서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아직 청산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교과서 왜곡까지 감행하는 일본의 극우단체에 대해서나 성노예에 대한 보상에 이르기까지(이것은 정치에서 문화로까지 파급되는 중요한 사안이기에) 첨예한 대립의 문을 두 한일 지성인간의 대담만으로 열어내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편견에 사로잡혀 마음을 닫고 있다고 외면하기 보다 스스로가 새로운 통찰력으로 이해의 기반을 다져나갈 필요는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탈근대사회로 진입할 수록 20세기의 억압적 잔재들이 국가 아닌 시스템으로 탈바꿈되어 스며들지 않도록 준비된 지적 정화를 통해 바로 설 수 있는데, 사카이 선생과 임지현 선생의 대담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인상깊은구절] 바꿔말하면 신체에 각인된 국민국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국민국가의 지배 헤게모니가 아무런 마찰이나 갈등 없이,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지배하지 않는 듯한 외향을 갖추면서 지배를 내면화하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파시즘이라는 것은 근대를 욕망한 권력이 대중 민주주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근대를 욕망하는 길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
| 임지현 교수와 사카이 교수간의 대담을 통해 이시대에 존재하기 시작한 민족,국가주의속에 숨어 있는 절대 권력의 힘과 지배에 대한 철저한 해부의 노력이 돋보이는 글이다. 임지현교수는 유럽사와 동양사간의 지식 구조를 바탕으로 동양과 서양의 양분화된 문화적 이질감도 결코 절대적 기준이 있는것이 아니라 상대적 비교 우위의 조건일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의 동서양의 기준에 비추어 빈곤한 동유럽국가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일본의 물질문명이 어찌보면 서양문물로 인식이 될 수 있다는 상대성이다. 이와같은 역사적 줄기속에 이시대를 살아가는 인류가 과연 민족,국민주의의 편협된 역사적 굴레속에 갇혀 살아가는것이 옳은것인가 생각하게 해준다. 특히 9.11이후 세계 경찰국가를 공공연히 내세워 인류의 적이라고 명명하면서 전쟁의 희생으로 삶는 행위를 서슴치 않고 있는 지금의 상화에 비추어 깊게 우려할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