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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만큼 기록문화가 일상화되고 이를 보존, 계승한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이 대표적 기록물로 이해되고 있지만, 이보다 더 많은 분량의 기록을 가진 것이 바로 '승정원일기'이다. 안타깝게도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등으로 소실되어 조선후기의 기록만 남아 있다. 하지만 조선후기 기록의 양은 조선왕조실록의 5배나 된다고 한다. 사초에 근거하여 왕의 사후에 필자의 판단하에 집필한 조선왕조실록에 비해 승정원일기는 그날 그날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적은 말 그대로의 일기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실록이 2차자료라고 한다면 승정원일기는 조선역사에 관한 1차자료라 하겠다.
이 책에서는 승정원일기의 단면들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조선시대 국정의 이모저모를 민낯의 기록으로 들여다 보는 셈이다. 국왕의 하루 일정을 돌아보기도 하고, 중국에서 칙사가 온 풍경을 묘사하기도 한다. 과거 시험장의 어수선한 장면도 있고, 굶주림에 버려지는 아이들의 비참한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 단면을 모아놓은 속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정원일기는 편년체의 일기형식의 책이다.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기본적 형식과 체계는 있다는 뜻이다. 날짜와 날씨에서부터 각종 행사의 참석자, 왕족들에 대한 문안과 처방전, 각종 행정서류 및 상소와 비답, 임금의 거둥과 임금에게 보고되는 각종 서류들이 상세하게 소개된다. 임금과 관련된 사적인 일들은 물론 국정 전반이 총망라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 내용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일기를 쓰는 관서인 승정원이 있는 셈이다.
승정원은 오늘날 대통령비서실에 해당한다.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는 핵심엘리트들이 근무하는 곳이다. 대부분 과거시험에 합격한 유수한 가문의 자재들이 관직에서 출세를 하는데 거쳐가야 할 디딤돌 역할을 하는 곳이다. 학문적 능력과 함께 사회적 배경이 필요한 요직이라고 하겠다. 그런 인재들이 모인 곳에서 일정한 양식에 따라 작성한 것들이라 신뢰가 가고 그 만큼 자료의 가치가 큰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 소통의 기록을 모은 승정원일기의 현대적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현재도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 있지만 조선시대에 비하면 있는 그대로 현실을 기록한 속기록적인 자료는 많지 않은 편이다. 우선 이런 내용들이 풍부하고 자세하게 정리되어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내용에 대한 평가는 후대에서 하면 된다. 둘째로 조선시대 기록인 승정원일기를 현대적 시점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면 좋겠다. 현존하는 승정원일기만 해도 3,245책에 2억 4천여 자가 된다고 한다. 이런 다양한 자료들이 디지털화되고 빅데이터화하여 조선시대의 다양한 모습들을 바로 찾고, 비교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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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19세기의 역사학을 ‘사실의 시대’ 라고 한다. 역사가의 역할을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즉 사실을 탐구하는데 우선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분히 객관적, 실증적 경향을 띠었지만, 20세기 들어서 역사가의 해석을 강조하는 역사학이 등장하면서 주관적 경향을 띄었다. 그 뒤 ‘사실’을 중시할 것인지, ‘해석’을 중시할 것인지는 역사학에서 해묵은 쟁점 가운데 하나가 됐는데, 19세기보다 훨씬 전인 조선시대에 ‘사실’을 최우선하는 객관적인 태도로 서술한 역사 기록물이 있었다. ‘승정원일기’ 가 바로 그것이다. 승정원은 국왕의 명을 들이고 내보내는 것을 맡아서 처리하던 왕명 출납기관으로 요즘으로 치자면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하는 관청이다. 이 승정원에서 처리한 업무 내용을 일지로 작성한 것이 ‘승정원일기’ 인데, ‘승정원일기, 소통의 정치를 논하다’에서는 ‘조선왕조실록’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았던 ‘승정원일기’의 가치를 조목조목 일러주고 있다. 무엇보다 '승정원일기'는 양적인 면에서 다른 기록물을 압도하고 있다. 3,245책에 글자도 무려 2억 4천여 자라니. 그 양이 ‘조선왕조실록’보다 5배가 넘을 정도였다. 그것도 조선 전기의 ‘승정원일기’ 가 소실돼 없어져, 조선의 후반부 288년 동안의 기록만 현전하는데도 그렇게 방대하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양적으로만 방대한 것이 아니라, 승정원에 보고된 결재 사항과 국왕이 하루 동안 진행한 일들, 경연과 신료들 접견, 각종 회의와 지방에서 올라온 상소 등을 격식에 맞게 정리한 것이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그야말로 당시 모든 분야의 현안에 대한 내용을 총망라해 실었다는 것이다. 양과 질적인 면에서 모두 찬란한 조선 기록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승정원 일기’는 국정 현장에서 일어나는 대화 내용, 임금에게 올려진 상소 등을 거르지 않고 현장에서 그대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속기록이라 할 수 있다. 왕의 대화 내용에는 왕의 표정까지 표현돼 있을 정도라 그 자리의 분위기나 생생한 현장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또 기록하는 이가 자신의 주관을 배제한 채 들리고 보이는 사실 그대로 현장에서 직접 붓으로 쓴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조선왕조실록’ 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사관들이 제출한 사초를 골라서 편찬했고, 또 사관의 평이 실려 있고, 인쇄본이었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직필을 추구했던 춘추필법에 입각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사관의 해석과 편찬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조선왕조 실록’ 은 사고에 보관됐고, 철저하게 비공개돼 그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기록이었다. 반면 ‘사실’ 위주로 기록된 ‘승정원일기’는 편찬자나 사관의 해석이라는 주관을 걷어낼 필요 없는, 객관적인 1차 사료로써 무궁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공개된 자료였다. 관리들이 임무를 수행할 때,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승정원일기’를 보면서 참고할 수 있었다. 당대에도 매뉴얼이 되고, 전범(典範)의 역할을 하는 기록으로 활용가치가 지니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조선왕조가 5백년 이상 존속할 수 있었던 그 비결이 무엇인지가 눈에 들어왔다. ‘승정원일기’를 기록하고 남길 정도의 정치 시스템이라면, 왕과 사대부 그 어느 쪽도 권력을 독점하지 못했던 것이다. 왕과 관료들이 끊임없이 논의와 합의를 거쳐 정치를 했고, 후기로 갈수록 특정 당파의 일당 독재와 세도 정치로 빛이 바랬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조선의 왕과 사대부들이 투명하고, 공개된 정치를 해나갔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승정원일기’처럼 왕의 언행을 후세에 남기는 조선의 철저한 기록문화는 왕권을 견제하는 강력한 무기이자 신하들과 소통하는 장치가 됐던 것이다. ‘승정원일기, 소통 정치를 논하다’는 ‘승정원일기’의 가치를 말하는 동시에 또다른 중요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바로 ‘승정원일기’ 가 갖는 역사적 기록물의 정신적, 문화적 가치와 함께 디지털시대에 걸맞는, 다양한 활용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 예나,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이 영화나 소설로 재탄생되는 등 문화적 영감을 제공해주는 보고가 된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조선왕조실록’은 그 내용과 가치가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인식됐다. 그런 것처럼 그 어느 기록물보다 풍부한 양과 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승정원 일기’ 역시 학자들만의 전유물이나, 국보급 문화재로 경외의 대상으로 가둬두지 말아야 한다. 충실한 번역과 데이타 베이스화 하는 작업을 통해 학자들의 진지한 연구와 함께, 대중들에게 그 내용과 가치를 알리는 작업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원석, ‘승정원일기’는 인문학의 기반과 디지털 최첨단 기술의 결합을 통해, 대중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컨텐츠로 전환돼야 하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역사기록물은 효용만점의 가치를 지닌 컨텐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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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극을 보면, 임금 옆에서 책상하나 놓고 뭔가 열심히 적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사관이고 그 사람이 쓰고 있는 것이 국보 303호이면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승정원 일기'이다.
가치에 비해서 관련된 서적이 전무한 현실에서 이런 책이 나와서 반가왔고, 앞으로도 계속 나왔으면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읽었다.
승정원 일기에 대한 이야기, 승정원 일기에 쓰여진 이야기, 승정원 일기의 가치에 대해서 쓰여져 있다.
이 승정원 일기는 조선시대 정치의 이야기이다. 왕의 일상속에서, 왕이 어떻게 백성들과 소통을 하고, 인사 문제, 국제 외교 문제를 어떻게 풀어 냈는지, 왕과 신하들, 그리고 신하들끼리, 백성들과 관계에서 어떤 갈등이 있었고, 이런 갈등을 어떻게 풀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후에 각색된 내용이 아니라, 속기록처럼 그 순간 순간을 바로 기록해서 엮어 놓은 것이라서 더 현실감이 있고, 박진감이 넘친다.
시대적 한계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승정원 일기를 통해서, 정치라는 것이 힘있는 권력자가 독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서 갈등을 풀어내는 것임을 느낄 수 있다.
PS. 결국 조선 시대의 왕은 독재자가 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