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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과 인터넷으로 무장한 새로운 군중 이야기, 인류사회의 거대한 변화인 IT혁명에 대한 개괄서이다. 네트워크를 활용한 개인의 힘이 증대되는 현상과 이로 인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2000년대 후반에서 IT혁명을 선도하는 상황에 와 있다. 반면, 이 책은 2000년대 초반에서 미래의 IT혁명이 가져올 미래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핸드폰 없는 초등학생이 없고 인터넷 게임에 빠져보지 않은 중고생이 드물고, 인터넷을 통한 선거유세가 일반화되었고, 광화문 촛불시위가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상황까지 경험한 대한민국으로서는 이미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 이야기들이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2000년대 초에 예측했다는 것이 신기롭게 느껴진다.
디지털혁명으로 기존의 방송을 대체할 수 있는 인터넷 방송이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커뮤니티가 온라인상의 정보교환 및 교류의 장의 역할도 수행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개개인의 힘을 결집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경제적 의사결정에도 영향력을 미치기고 한다. 이동통신으로 무장한 일반 군중의 힘은 때때로 국가의 힘을 능가하기도 한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실시간 전달에 따른 역작용도 존재한다. 네트워크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생활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고, 족쇄로도 작용할 수도 있다. 디지털혁명이 우리의 생활에 가져올 역작용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대응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상황이다. '영리한 참여군중'을 '현명한 참여군중'으로 만들기 나가는 것은 우리모두의 몫이다. |
| 현대 사회에는 급속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를 가능케 한 것으로 사람들은 기술의 발달을 꼽는다. 인터넷, 휴대폰 등은 이미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그러한 것에 인류가 그토록 집착하고 열광하게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도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삐삐 라고 하는 것을 접하였다. 그리고 그 삐삐가 휴대폰으로 바뀌기까지 그렇게 짧은 시간이 걸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주변 이들이 하나둘씩 삐삐를 휴대폰으로 대체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나였기에, 기술의 발달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느껴지곤 한다. 특히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이러한 기술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기술에 대한 숭배(?)는 이미 초등학생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다른 여느 나라보다도 우리 나라에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월드컵의 거리응원전,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시작하여, 각종 사회 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를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으로 이야기되어지는 네티즌의 힘, 이 책은 이러한 힘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인 지침서라고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작가는 많은 부분 기술로 인한 영향력을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사이버 민주주의로 대표되어지는 유토피아적 부분, 사이버 내에서도 존재하는 현 사회 계급적 구조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부분으로 이야기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정보 사회를 분석하는 가장 큰 두 개의 줄기일 것이다. 비록 작가가 이들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으려고 노력한 듯 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유토피아적 측면에 보다 많은 초점을 맞춘 듯 해 보였다. 휴대폰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엄지족들에서부터 핀란드의 젊은 층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그들이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문화 속에는 기존 사회에 존재하는 권위주의적 양상이 많이 희석되었다고 보고 있었다. 또한, 죄수의 딜레마 등을 이용하여, 기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협력에 대해서도 고찰하면서, 이러한 협력이 궁극적으로 모든 이들의 사회참여를 촉진시킨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 했다. 작가가 언급하고 있는 사이버 기술에 의한 개인 정보의 유출, 감시 등은 이러한 장점에 비하면 너무도 부수적으로 느껴졌다. 신기술이 대중의 참여를 가능케 했으며, 이로 인해 대중은 집단적인 협력, 영향력 행사가 쉬워졌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기술은 대중을 통제하는 지배 세력 역시도 강화시키며, 제레미 리프킨 등이 이야기하는 노동으로부터의 인간소외 등도 가져올 수 있다. 산업혁명의 시기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에 따라 노동속도를 맞출 수 밖에 없었던 개인의 처참한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기기에 의한 노동의 대체로 이어진다. 인간이 만든 기기에 의하여 속박당하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 작가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듯 했다. 또한, 기술을 이용하기 위한 자본 마련, 비용지출 능력이 없는 이들의 경우 애당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기회를 상실한다. 또한, 기술을 습득치 못한 이들은 자본이 존재할지라도 기술로부터 배제된다는 점 역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우리는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은 몰 계급적이며, 중산층 중심의 부르주아 운동만을 가능케 한다는 한계를 지닌다는 점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나는, 정보의 통제, 기술 소유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정보의 가치, 중요성 등이 결정되는 사회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피플 파워의 창출은 단순히 기술발달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술은 짧은 시간 내에 의사소통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대중에 의한 사회의 개혁, 진보 운동은 대중 내부에 이미 새로운 사회를 향한 열망, 현 사회에 대한 변화 의지가 숨쉬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인터넷, 휴대폰 등의 기술로 인하여 급변해 왔으며, 지난 대선은 이러한 기술을 향유하며 자란 세대의 승리로, 더 나아가 모든 국민이 이루어낸 쾌거로 이야기되어진다. 현 정부는 과거보다 개혁적이며, 참여정부라는 이름으로 대변된다. 하지만 인터넷 기술을 향유하는 이들의 계급적 특성, 이해관계를 고려한다면 지난 대선은 보수에 대한 신흥 중산층의 승리였으며, 현 정부의 정책 역시도 구조조정의 완성 및 신자유주의의 정책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듯 하다. 대중의 기술 활용 능력 이상의 능력을 지배계급은 지니고 있다. 누구에게나 열린 듯한 사이버 공간이 여성, 노동자 등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적대적, 배타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기술은 빠른 속도로 진보하며, 인류가 현재와 같이 생산성 향상을 극도로 중시하는 이상, 이는 계속될 것이다. 인터넷 이상의 기술의 발달은 대중의 또 다른 참여를 불러올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참여 그 자체가 아니다. 참여한 이들이 어떤 성향을 지니며, 어떤 의견을 개진하는지 그리고 실제 의사결정과정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어떠한 결과를 야기했는지를 분석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참여가 진정한 의미의 ‘군중 참여’임을 평가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너무도 이론적으로 치우친 나머지 실제 사례에 대한 고려가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