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학의 명저를 읽고 난 지금 속마음은 썩 개운치 않다. 야노마모족에 대하여 비길 데 없이 훌륭한 종합 개설서가 나온지 10년이 훨씬 지났지만, 그들에게 닥친 암울한 운명이 조금도 나아졌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21세기와 같은 ''문명''의 시대에 이런 ''야만적''인 원주민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태도 자체가 어리석인 일이지도 모른다. 아노마모족은 남미의 베네주엘라와 브라질 접경의 오리노코강 유역 오지에 거주하는 원주민 인디오들로, 그 규모에 있어서나 여태 고유의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특징 덕분에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부족이다. 이 책은 1964년 이래 30년 이상 현지조사와 인류학적 연구를 수행하면서, 어느덧 잔인하면서도 뻔뻔스러운 이 부족을 깊이 사랑하게 된 미국의 인류학자 나폴레옹 샤농의 연구성과가 집성된 걸작이다. 물론 연구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에 따라 ''문화적 상황을 바꿔나가기를 원하는 응용인류학자''로 변모하기 이전에, 샤농은 이미 탁월한 사회과학자였음이 분명하다. 비록 전문성을 많이 제거하고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지만, 철저하게 몸으로 때워야 하는 치밀한 인구통계학적 자료수집, 생명을 걸고 셀수 없이 밀림을 누빈 과거[현재] 주거지 조사 등의 과학적 방법론을 인정할 때, 일반인들이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던 ''고귀한 야만인''의 이미지를 돌연 깨뜨려 버린 그의 냉철한 통찰력을 무시해선 안된다. 가령 다음과 같이 상식에서 어긋난 주장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원주민들이 경작지를 3년정도 수확하고 버리는 것은 토양의 양분이 고갈된 때문만은 아니다. (148~149쪽) 야노마모족이 호전적이고 전쟁을 즐기는 이유는 단백질 부족 때문이 아니라, 희소성 있는 자원인 젊은 여성을 차지하고자 하는 성적(性的) 동기가 더 크다. (180 ~ 181쪽) 근친상간은 그것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신분과 권위를 반영하는 일종의 정치적인 행동이다. 즉, 상당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만이 결혼 대상 범위를(사회적으로 용인된 범주를 넘어서) 확대한다. (278 ~ 279쪽) 또한 인구압력으로 인한 환경자원의 고갈과 사회통합의 토대가 되는 혈연관계의 유대 약화로 한 마을의 규모가 최대 300명을 넘을 수 없으며, 생산력이 높은 저지대 부족들이 상대적으로 조밀한 인구밀도 하에서 현재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정치적 동맹과 배신·전쟁을 수행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첫 대면에서 인류학자로 겪은 문화적 충격을 솔직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자연환경과 사회구조·신화와 철학·정치적 생태에 이르기까지 결코 만만치 않은 사회과학적 지식을 유머러스하게 풀어가는 저자의 입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지식의 지평선이 마냥 확장되어감과 동시에, 이 호전적이면서 유쾌한 부족에 대하여 사랑과 존경을 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샤농이 진정으로 주장하고 싶었던 대목은 가장 분량이 많은 마지막 장에서 제시된 야노마모족의 ''미래''이다. 장(章)의 제목으로 ''문화변용''이란 점잖은 표현을 채택하였을 뿐, 본문에서 바로 이것이 ''파국적 변화''가 아닐까 강한 의구심을 감추지 않는다. 1987년 이후 브라질 북부의 골드러쉬(Gold rush)에 따라 무자비하게 원주민 주거지역으로 쳐들어온 떨거지들도 나쁘지만, 부족에 대한 관심의 근본동기가 의심스러운 베네주엘라의 인류학자군(群)·정치사회세력·(특히)카톨릭 선교단체도 야노마모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위험한 존재라고 비난한다. 그 결과 샤농은 부족에 대한 왜곡된 정보나 흘리는 사이비 학자의 오명(汚名)을 뒤집어 쓴 채 1990년대 중반 이후 야노마모족과의 접촉이 금지되고 만다. 현실의 정치적 세계는 이처럼 무자비한 것이다. 누구든 이 책을 읽어 본(또는 그가 애써 제작한 기록영화를 본) 독자라면, 샤농 만큼 야노마모를 (과학적으로) 정확히 이해하고, (심정적으로) 깊이 사랑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찬탄을 금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그는 진리의 과실(果實)을 딴 죄로 이 마지막 에덴 동산에서 일찌감치 먼저 추방 당하고 말았다. 그가 걱정하였던 적절한 의료·보건 서비스와 (생물 다양성이 확보된) 주거지가 보장된다 하더라도, 통일된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고 이를 실현할 수단을 확보하지 못한 야노마모족은 가속적으로 세계자본주의 사회·경제 체제의 주변부에 편입될 것이다. 즉 생물적인 종족보존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살아남은들 호사가인 서방 여행객들에게 그들의 전통 춤이나 보여주고 겨우 생계를 꾸려나갈 관광자원 밖에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우리가 야노마모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장래에 대하여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따듯한 관심을 가지면서도, 또한 그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문화를 선택할 수 있게끔 철저하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딜레마이다. 천진난만한 야노마모족 어린이의 미소를 과연 다음 세대도 볼 수 있을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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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자들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다른 문화에 살고 있는 쉽게 말해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생활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소설같기도 하고 어쩌면 동화같기도 하니까요. 문화인류학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속한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 안에서 겪게되는 모든 것들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합니다. 상대주의적 시각을 가지기도 해야하고요, 비교론적 관점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위험한 순간이 올지도 모릅니다.
아마존의 눈물이 인기를 끌면서 이제는 다큐멘터리에서 소수민족에 대한 삶에 큰 관심이 우리나라의 저변에 깔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걸 아시나요? 문화인류학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소수자, 약자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들려주려고 합니다. 단순히 먼 이방의 소수민족 뿐만 아니라 우리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를 지닌 이들도 생각하게 되죠.
단순히 이 책을 읽고 베네수엘라의 지역에는 야노마모라는 호전적인 민족이 살고 있구나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문화인류학을 이해하시고 아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한 모습에서 단순히 아우 야만적이야 라기 보다는 왜 그들은 저런 문화습성을 지녔을까? 저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지? 그들의 종교는 그들이 처한 환경에 대한 적응일까? 이러한 시각을 가져보시면 세상을 바라보는데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시각을 가지실 거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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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노마모족은 남아메리카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국경지역의 정글에 살고 있는 족속이다. 석기 시대의 생활상을 유지하고 바퀴도 발명하지 못했으며, 하나, 둘 이상의 숫자는‘많이’라고 하는 지구상의 마지막 원시 부족이다. 남미의 정글에 고립돼 다른 문화와 단절된 탓에 고유의 문화를 유지해온 이들은, 말하자면 살아있는 인류 박물관인 셈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마빈 해리스의 인류학 책 ‘문화의 수수께끼 ’ 찾아보기에 야노마모란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유명해진 것은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종족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호전적인 성격으로 악명 높은 부족”, “모든 것을 폭력으로 해결하며 전쟁을 일삼는 부족”, “남편이 아내를 자주 두들겨 패는 부족”, “철저하게 남성 우월주의적인 사회를 이루고 사는 부족” 등등,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야노마모족의 모습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인류학계에서는 좀 다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반인 사이에서 달려진 모습은 이랬다. 게다가 베일 속에 가려져 있어서, 다른 책에서 소개되더라도 “이런 부족이 있다더라”라고 짧게 언급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이 책은 인류학자 나폴레옹 샤농은 약 30년에 걸쳐 수십 개월 동안 현지 조사를 통해 야노마모족을 연구했고 그 현장 보고서를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그 연구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으로 인류학에서는 이미 고전이 되었으며 많은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여느 전문서와는 달리 읽기 쉽고 재미있다. 그는 책에서 야노마모의 삶에 대한 상세한 기술은 물론, 처음 이들을 대면할 때의 순간을 비롯한 현장의 상황을 사진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이런 책을 대하며 우선 다가드는 것은 학문을 향한 저자의 열정 과 자세다. 모기와 독사가 우글대는 정글에서 원시부족과 생활하며 이들의 언어를 익히고, 온갖 우여곡절 끝에 150년 전으로 거 슬러 올라가는 방대한 가계도를 완성해가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특히 저자가 단 한 차례도 이방인과 접촉한 적이 없는 오지의 부족을 찾아가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하기에 충분하다. 같이 떠난 야노마모 가이드마저 죽음을 두려워해 하나 둘 사라지고, 열두 살짜리 꼬마와 오지의 마을을 찾은 그는 활로 자신을 겨냥한 족 속들에 둘러싸인 채 겁먹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버틴다. 이렇게 생명을 건 모험 끝에 내놓은 보고서이니 호락호락할 리 없다. 저자는 야노마모의 결투와 전쟁, 생활과 경제활동을 상세히 기술한다. 농경을 위주로 하면서도 사냥을 병행하는 이들은 하루 3시간여 노동으로 충분한 먹을 거리를 장만할 만큼 풍족하다. 문자가 없는 탓에 실생활에서는 오히려 풍부할 수도 있는 이들의 언어 생활과 높은 수준의 정신 세계도 흥밋거리다. 책의 핵심 중 하나는 이들이 왜 그토록 호전적인가에 대한 분석이다. 샤농은 “원시족이 단백질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전쟁을 한다”는 마빈 해리스의 이론을 현장 관찰과 조사를 근거로 반박 한다. 저자도 이들을 처음 연구할 때는 이 가설을 바탕으로 계획을 세웠으나, 현장 조사를 거듭한 결과 이들의 충돌 원인은 성적 인 질투심, 간통, 금지된 관계 등 여자를 둘러싼 문제로 인한 것 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해리스는 샤농에게 “야노마모들이 1인당 하루 30g 이상의 단백 질을 섭취하면 목을 내놓겠다”고 큰소리쳤으나, 샤농이 대학원 생들과 함께 체계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단백질을 충실하게 섭취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특히 “문화 상대주의”, 즉 다른 문화의 가치나 규범, 행동 같은 것들을 해당 문화의 관점에서 이해하자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문화를 우리 관점에서 이해해 주기 바란다면, 우리 역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자 할 때 좀더 객관적 관점에서 그들을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 야노마모들 사이에 난무하는 폭력이나 남성 우월주의는 확실히 우리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이른바 “미개인”이라는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볼 게 아니라 우선 그들에 대해 좀더 알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런 모습들도 전과는 조금쯤 달리 보일 것이다. 비단 야노마모족뿐 아니라, 우리와 다른 모든 존재를 바라볼 때 이러한 열린 시각을 갖는 것, 또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진짜 “문명인”의 자세가 아닐까. 이 책이 우리가 문명인의 자세를 갖추는 데 일조하리라 생각한다. 또한 인류학의 시작이 서구 상류층의 기호에서 유래된 것으로, 식민지 확장에 기여한 제국주의 학문이라는 것은 일반의 상식이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쓰인 샤농의 보고서는 인류 문화의 시원과 전개과정, 물질과 인간성과의 관계를 살피며, 우리 문화와 우리의 내면을 아프게 성찰토록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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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국경 밀림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외부 문명과의 접촉이 없었던 종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용의 대부분은 야노마모인들의 성격, 그들의 정치, 전쟁 등등 우리와는 다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읽으면서 인상적인 것은 저자의 유머 섞인 글솜씨이다. 처음 야노마모 마을에 들어가 그들을 만났을 때의 인상 묘사나,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한 내용, 야노마모인과 그의 재밌는 대화 등을 읽으면 지루하기 쉬운 글에 재미를 섞은 저자의 노력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노마모인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글 읽는 내내 느낄 수 있다. 그와 야노마모 친구들 사이의 우정이나 자신의 성격이 야노마모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연구를 목적으로 잠시 머물다 가는 다른 인류학자들과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야노마모인들의 문화를 관찰한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글은 뒷부분에 있다. 개인적인 생각인가, 다른 리뷰에서 그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이 이상하기만 하다. 종교적인 문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마지막장에는 비판적인 그의 생각이 쓰여있다. 비판 대상은 선교사들, 브라질 정부, 금채굴업자들이다. 카톨릭이든 개신교이든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야노마모인들이 권총을 이용해 살인을 한 이야기, 선교사들에 의해 야노마모 고유의 문화가 변질되는 모습, 외부인들과의 접촉으로 전염병이 퍼져 야노마모인들의 사망률이 증가한 문제 등등이 언급된다.
이런 이야기들이 왜 여기 있을까?
저자 나폴레옹 샤뇽과 선교사들은 대립되는 관계이다. 선교 활동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다. 책에는 헛소문과 자료 조작으로 샤뇽과 야노마모인들 사이를 이간질 시키는 몇몇 사건들이 나온다. 저자는 의료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아 사망자를 증가시킨 선교사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책에는 1992년 까지 야노마모인들을 관찰한 내용이 담겨있다. 12년이 지난 지금 저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갈등 문제는? 샤뇽에 대한 소식은 책의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 있다. 안타깝기만 하다.
샤뇽의 글만 보았기 때문에 함부로 누가 나쁘다는 말은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폴레옹 샤뇽은 정교든 금이든 정치문제든 의도적인 접근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애정을 야노마모인들에 대해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야노마모인들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구절] 나로서는 야노마모족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우리의 동정이나 도움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한쪽에서 다른 쪽에 도움을 줄 때에, 그 도움을 주는 쪽에서 가설상의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세워 놓고서 받는 쪽이 그 기준에 어느 정도 근접해 있는지에 따라 도움을 줄지 여부를 결정한다면, 더구나 주는 쪽에서는 정작 그 기준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면, 이건 정말이지 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 어느 신문의 쉽게 읽힌다는 기사에 끌려 이 책을 구입했다. 야노마모족이라는 부족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우리 조상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 나폴레옹 샤농이 펼치는 이야기 보따리는 잠시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처음 원시인을 만나는 과정이나 원시종족끼리 싸우는 과정을 영화나 슬라이드 필름을 보여주듯 묘사하였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재규어 신화를 다룬 부분인데, 마치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서 듣던 호랑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고, 가족관계와 사촌끼리 결혼할 수 있는 것도 놀랍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간간이 보이는 사진인데, 너무 흐려서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점만 빼면 대체로 가벼운 마음으로 탐독할 수 있는 인류학책이라고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