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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스미스(William Smith). 솔직하게 이 평범한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당연하게도 이 인물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어쩌면 이 사람의 이름과 업적은 지금 기준으로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을 만한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인데도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찰스 다윈의 업적을 기리는 정도를 생각하면 이 사람의 업적 정도는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어야 하지 않나 싶다. 찰스 다윈은 너무했다 싶으면, 그의 생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지질학 원리』의 찰스 라이엘은 어떤가? 찰스 라이엘을 앞선 세대의 지질학자로서 윌리엄 스미스가 현재 잊혀진 상황을 보면 조금은 불공평하단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윌리엄 스미스라는 인물은 무슨 일을 했을까? 그가 남긴 것은 영국의 지질도이다. 영국 전역의 지층 분포를 색으로 표현한 지도. 사이먼 윈체스터는 세계 최초의 지질도인 이 지도를 ‘세계를 바꾼 지도’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지도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길래 ‘세계를 바꾼 지도’라고까지 했을까? 우선 윌리엄 스미스가 활동한 시기를 봐야 한다. 1800년 초반이었다. 아직 다윈의 진화론이 세상에 충격을 주기 전이었다. 성경의 기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았지만, 과학적 사고가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던 시기였다. 지질학은 지구의 나이가 성경에서 얘기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학문이었다. 지층의 분포가 규칙적이며, 지층이 생성된 연대가 서로 다르고, 각 지층마다 발견되는 화석이 달라 지층이 언제 생긴 것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지도를 통해 보여준 윌리엄 스미스야말로 바로 그 지질학을 있게 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그는 진화론에 대해서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았지만, 지구라는 존재가 성경에서 얘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진화론이 탄생할 수 있는 바탕을 깔아 주었다는 의미에서 세계를 바꾸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정보는 산업혁명 시대에 광물의 정보를 광범위하고 정확하게 제공함으로써, 산업적인 의미에서도 세계를 바꾸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윌리엄 스미스는 이른바 고상한 신분이 아니었다. 자신의 경험으로 지질학적 지식을 얻었다(‘지질학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신분으로 당시 처음 생긴 (주로 귀족을 비롯한 고상한 신분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지질학회에 회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자신의 업적마저 표절당하기까지 했다. 그런 일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빚에 쪼들리며 채무자 감옥에까지 수십 일 갇히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경우는 해피엔딩이었다. 결국은 그의 업적은 인정받았고, 울러스턴 메달이라는 지질학 분야의 최고상을 최초로 받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과 업적은 거의 잊혀졌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지금은 그렇게 각광받는 학문 분야의 선구자인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과 시대를 복원한 사이먼 윈체스터의 책은 과학이란 그냥 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진짜 선구적인 과학은 그냥 편하기 나오는 것이 아님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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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꾼 지도’는 지질학을 전공하고 지질학자로 활동한 저널리스트 작가 사이먼 윈체스터가 쓴 윌리엄 스미스(1769 - 1839) 전기다. 1815년 세계 최초의 지질도를 만든 스미스는 지질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태어난 시대를 산 인물이다. 그가 타계한 지 20년이 지나서 다윈의 진화론이 나왔다. 다윈을 언급하는 것은 다윈이 지질학에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울러스턴 메달의 주인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울러스턴 메달의 첫 수상자였다. 그 상의 수상자는 노벨상 수상자와 같은 정도의 영예를 누린다.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는 또한 영국 경제가 아주 빠른 속도로 변화해 가던 산업혁명의 시대이기도 했다. 책은 에필로그와 연관되는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두 부분(프롤로그, 에필로그)은 커튼에 가려진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지질도에 의해 연결된다. 지질도는 당연히 스미스가 만든 것이다. 책의 중요 키워드는 실용성 및 상상(想像)의 힘이다. 현장 감각이 탁월했던 기술자 스미스는 홀로 계획하고 착수해 눈에 보이지 않는 영국 국토의 지하 세계를 상상력에 의거해 지도에 그린 인물이다.
그랬던 그도 처음에는 지질학회의 논외의 인물이었다. 시골 출신의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이었고 배수(排水)와 측량(測量), 제방(堤防) 건설 같은 지질학의 실용적 기술로 먹고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스미스는 지나친 낭비벽 때문에 떠안은 부채를 갚지 못해 사설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한 인물이기도 했다. 스미스가 지질학회(1807년 결성)에 받아들여진 것은 현대 지질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자 데본기라는 명칭을 제안한 애덤 세지윅이 회장에 오르고나서였다. 세지윅은 4반세기 동안 학회가 스미스에게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은 인물이다.
처음 지질학회는 이론에 치우쳤고 스미스가 암석의 역사를 밝히는 데 유용한 단서로 여겼던 화석도 아름다움의 관점으로 보는데 그쳤다. 스미스는 화석 수집의 세계에서 누구보다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이었다.(149 페이지) 아이러니한 점은 성직자들이 화석을 꾸준히 연구하는 사람들 중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화석을 연구하다 보면 가장 굳건한 종교적 믿음의 대상인 창조론과 홍수론을 공격하게 되기 때문이다.(155 페이지) 성스러운 신의 섭리로 창조된 우주에서는 멸종이란 개념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불가능한 것이었다.(65 페이지) 어떻든 스미스의 발견은 동물의 멸종 및 진화에 관한 논의로 이어졌다.
스미스는 결점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수많은 오류를 범했지만 주의 깊은 관찰과 대범한 사고로 새로운 이론을 이끌어내었다. 지하 세계의 공간 기하학적 특성을 인지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지녔던 그는 지면 위에서 그가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지면 아래의 세계를 유추해냈다.(127 페이지) 그는 암석들에 대한 추론을 통해 논리적이며 놀랄 만큼 아름다운 결론을 이끌어낸 인물이었다.(129 페이지)
그는 두 층의 경계에서 나타나는 부정합(不整合)에 대해서도 인지했다. 즉 위층에는 동물 화석만이 존재하고 아래층에는 식물 화석만이 존재하는 등의 현격한 격차를 보고 그것이 중요한 지질학적 경계인 부정합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는 지하 세계의 역사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암석의 경사라는 사실도 알았다.(227 페이지)
스미스는 노년에 이르러서야 울러스턴 메달 수상, 지질학회 가입 등의 복을 누렸다. 여기에 더해 정부로부터는 남은 생애 동안 연금을 받게 되는 가시의 성과도 얻어냈다. 아이러니한 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영국 지질학의 아버지인 그가 영국 본토의 대학이 아닌 아일랜드의 대학(트리니티칼리지)으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지질학은 근본적으로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설명한다.(359 페이지) 스미스는 너무나 많은 시골 사람들이 탄광 찾기에서 실패를 맛보는 것을 보며 지표면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호기심과 관찰력이 뛰어났던 스미스는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바다 생물이 하나의 특이한 형상으로 암석의 일부가 된 것일까? 어떻게 한 고체가 다른 종류의 고체에 그토록 단단히 들어가 박힐 수 있는가? 바닷가에나 있을 법한 것이 옥스퍼드셔 지방의 깊은 암석층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관찰력이 뛰어났던 스미스는 각각의 석탄층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사실은 물론 어느 탄광에서든 같은 패턴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어느 탄광에서든, 어느 채석장에서든 변함없이 특정 석탄층 간의 상대적 위치가 언제나 동일하다는 점이 관건이었다. 가령 던지드리포트는 언제나 페링크 위에 존재하고, 러지는 언제나 템플 클라우드 위에 있는 식이었다.(106 페이지)
스미스를 통해 우리는 화석의 아름다움보다 자연이 화석을 생성하고 특정 화석을 특정 지층에 배치하는 데 보여준 놀라운 질서와 규칙성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165 페이지) 화석은 지층의 순서를 밝힐 때 핵심적인 요소였다. 즉 화석을 이용해서 지하 지층의 계열을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지층의 순서가 예측 가능하다면 지도 위에 표시되는 것 역시 가능하다는 의미다.(109 페이지)
점토 - 실트 - 사암 - 석회암, 그리고 또다시 점토 - 실트 - 사암 - 석회암의 순서로 쌓이는 층에 대해 알아보자. 그것은 바다 가장자리의 밀물과 썰물에 의해 불가피하게 생기는 순서였다.(235 페이지) 보이지 않는 지하 세계의 복잡성을 나타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던 스미스는 엄격한 교회법과 교리의 단단한 껍질을 깨고 새로운 과학이 날개를 퍼덕이게 했다. 스미스는 미천한 신분 때문에 귀족들을 미워했지만 그의 이론이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상류층과 대귀족의 후원 덕이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스미스는 정신병을 앓는 아내의 남편이었고 부모를 잃은 조카 존 필립스의 양육자이기도 했다. 스미스는 일생을 따라다닌 실망감이라는 감정에 눌려 살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질학회 가입 수락 연설에서 스미스가 한 말은 아주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 말은 아이작 뉴턴 경이 울라이트 지층 위에서 태어났는데 만일 그가 땅 위의 사과 대신 그 아래의 땅에 관심을 가졌다면 지질학이 지금 얼마나 달라졌을까란 말이다.
혹자는 스미스를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우리의 고산자 김정호와 비교하며 김정호는 지표를 보았을 뿐이지만 스미스는 지하 세계를 상상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스미스가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 결과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 영국의 산업적, 상업적 관심이 땅 아래로 향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서 고단하고 힘들었던 스미스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감기가 폐로 침입한 탓이었다. 책은 그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표현했다.
지질 해설을 하는 사람으로서 스미스로부터 배운 바가 있다면 언제나 땅을 파고, 물을 빼고, 물레방아를 건설하고, 물을 끌어올리는 작업에 대해 기술자들과 서신을 교환하고 탄광 깊은 깊은 곳까지 몸소 내려간 그의 부지런함,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여행을 하고, 샘플을 모으고 ,기록하고, 지하 세계에 관한 정보를 머리 속에 집어넣고 밀어넣은 그의 노력이라 하고 싶다.
감탄스러운 점은 스미스가 스승도 없고 참고할 책도 없는 가운데 길을 개척했다는 점이다. 스미스가 아브라함 베르너의 수성론(모든 암석은 바닷 속 물질의 침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이론)을 신봉하지 않았다는 사실 등의 관련 지질 정보도 유용하게 읽히는 책이 세계를 바꾼 지도다. 축융토(縮絨土; Fuller’s earth), 라놀린(lanolin), 윤회층(輪回層; 235 페이지) 같은 생소한 단어를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처음으로 쥐라기의 암모나이트 화석을 발견했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저자는 15년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탐사하고 위대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세부적인 사항을 수집할 무렵 남부 도싯 지방에서 요크셔까지, 해안에서 해안으로 스미스가 다녔던 길을 다시 걸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것은 저자가 단순히 잉글랜드 중부 지방의 지형이나 쥐라기의 암석학 또는 고지리학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윌리엄 스미스라는 사람에 대해 더 잘 알기를 희망한 결과 나타난 노정(路程)이었다.(224 페이지)
일본의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가 다윈 진화론의 산실인 에콰도르령 갈라파고스 제도(諸島)를 탐험하고 쓴 생명해류라는 책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언급했듯 다윈과 윌리엄 스미스가 지질로 연결되었다면 후쿠오카 신이치와 다윈은 생태로 연결된 것이 흥미롭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지질과 생태의 연결점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흥미와 숙제를 동시에 주는 사이먼 윈체스터의 ‘세계를 바꾼 지도’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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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말하는 지도는 보편적으로 우리가 보는 지도가 아니다. 지금 걸어다니는 땅속을 들여다 보는느 지도이다. 그걸 지질학이라 부르며, 지질학은 지금 현재 다양한 곳에서 유용하게 쓰여진다. 거대한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 제일 먼저 시작하는 것이 그곳의 지질 구조파악이다. 책에는 지질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영국 옥스퍼드셔 시골 뜨내기 윌리엄 스미스의 열정과 노력이 나온다. 그가 살았던 옥스퍼드셔는 농업기반 시골이었으며, 자신이 사는 곳에 있는 파운드 스톤은 윌리엄 스미스에게 또다른 궁금증을 가져다 주었다. 돌이지만 독특한 모양을 품고 있는 이 돌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싶었다. 그의 상상력과 추론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새로운 생각이었고,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이 돌이 있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
| 19세기 영국 사회를 살펴보면 빅토리아 여왕시대(1819 ~ 1901)의 식민지 건설과 산업혁명으로 세계 최고의 국가로서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다. 아이작 뉴턴이후 거의 모든 과학분야에서도 영국은 탁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다. 학문 연구의 기본틀로서 옥스포드와 캠브리지라는 대학의 연구활동이 활성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귀족들의 지적 호기심은 사회 전체적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로 가득 찬 시대였다. 물론 이 시대는 아직 성경적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던 때였다. 다윈의 진화론은 아직 발표되기 이전이었지만 여러 과학의 연구 결과로 말미암아 신의 영역이 파괴되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성경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윌리엄 스미스의 업적은 이 보수적 사회를 뿌리부터 뒤흔들게 되고 이러한 바탕 위에 찰스 다아윈은 진화론의 싹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대에 화석(fossil)을 보는 견해를 살펴보자면 화석의 존재 이유는 단 한가지 인류의 집단적 의식속에 신의 전능하심과 상상력 넘치는 자비를 더욱 강하게 각인 시키기 위한 것이다. 즉 노아의 홍수로 인해 화석이 생겨났다고 하는 것이 그 시대의 세계관이었다. 세계 과학사의 입장에서 볼 때 지구의 속이 어떤 물체로 구성되어 있나에 대한 연구는 지구의 표면과 천문 우주의 연구보다도 늦었다. 사실 우주에 대한 연구와 지표면이나 지도에 대해서는 기원전부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지구 속에 대해서는 19세기가 되어서야 유명하지도 않은 천재에 의하여 시작이 되었다. 그는 그 시대의 주류인 귀족이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갖고 있거나 혹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를 일찍 잃고 삼촌에 의해서 길러진, 변변찮은 학벌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탄광에서 일하고 또 석탄 운반을 위한 운하 건설 현장에서 측량사로 일을 하면서 땅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업무 속에서 생겨나는 커다란 의문을 풀기 위해 평생에 걸쳐서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망치로 화석을 찾아내고 그림을 그려가며 그의 연구를 수행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욕심과 탐욕은 같은 모양이다. 남의 연구물을 자신의 것인양 가로채는 좀도둑도 있고, 또한 그의 학벌과 낮은 신분으로 인한 차별로 그는 많은 곡절(채무로 형무소에 가고, 업적을 전혀 인정 받지 못함 등)에도 불구하고 그는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말년에 그는 걸친 노고로 말미암아 드디어는 사회적인 인정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진정으로 세계를 바꾸게 된다. 그가 이 책의 주인공인 윌리엄 스미스(William Smith, 1769 ~ 1839)이다. 그는 지금까지도 지질학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가 다윈에게 진화론의 영감을 주었다면 윌리엄 스미스는 럭본(Rugborne)에서 지질학을 탄생시켰으며 먼스핏(Mearns Pit)이라 불리우는 탄광을 지리학의 요람으로 만들었다. 윌리엄 스미스에 시작이 된 지질학(Geology)은 다윈의 진화론에 커다란 밑바탕이 된다. 다윈의 불독이라 불릴 정도로 다윈의 옹호자였던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는 “생물학에서 시간 개념은 지질학에서 가져왔다.”고 할 정도로 지질학의 위치는 근현대 과학의 중요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지질학에 의해 지하에 있는 지질과 자원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되었으며 20세기로 넘어가서는 대륙이동설의 근거가 되었고 또한 46억년이나 된 지구의 나이(지구의 나이를 안다는 것은 만물의 순서와 그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아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우리가 지금 왜 여기에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밑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다)를 알게 해주었다. 양장본인 이 책의 표지는 접혀져 있는데 다 펼칠 경우 커다란 지도가 된다. 그 지도는 윌리엄 스미스가 그린 영국 지질도 이다. 실제 크기는 가로 세로가 2미터 X 3미터에 달하는 아름다운 이 지질도는 지금은 런던의 벌링턴 하우스(Burlington House)에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영웅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같이 보면 좋은 책 : 데이팅 게임 / 체리 루이스저 조숙경역 / 바다출판사 / 2002년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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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지질학은 엄격한 과학의 한 분야라기보다는 신화와 신비의 영역에 속한 것이었다(p.51). 창조론의 관점에서는 지구가 과거 한 시점에 모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본다. 지금은 당연히 해저 퇴적암이 융기한 것으로 보는 '산꼭대기의 조개껍질'도, 창조론에서는 노아의 홍수 때 휩쓸려 올라간 것이라고 본다. 당시 노아야 말로 모든 문으로 통하는 만능열쇠였다.(p.66) 이러한 창조론의 관점에서는, 지구의 역사가 수십억 년이고, 여러 외적, 내적 작용에 의해 지표면이 형성되고 변화한다는 것이 오히려 사이비 관점이었을 것이다. 스미스는 이러한 중세적인 사고를 깨뜨리고 근대적 과학의 한 분야로서 지질학을 정립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이렇게 지질학의 대부로 여겨지는 스미스의 일대기를 그렸다. 그런데 스미스가 이 책의 초기 서술처럼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일까? 스미스가 재능이 있고 열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 스미스 이전에는 과학이 전혀 없었고 스미스가 지질학을 완전 창조한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의 역사가 6000년 전 창조된 것이 아니라, 몇천만, 아니 몇억년이 넘는 유구한 세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은 이들이 어렴풋이 해 왔고, 이러한 생각들이 조금씩 발표되는 분위기였을 것이다. 실제로 스미스는 여러 서점과 도서관 문헌에서 지층과 관련한 내용을 습득하기도 하고(p.133), '시간을 발견한 사람'인 허턴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대목도 있다(p.101) 이처럼 스미스는 창조론을 단독으로 배격하고 지질학을 완전히 '창조'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스미스를 폄하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스미스는 지질학을 학문적 영역으로 정립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사람인 건 사실이다.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스미스의 가장 큰 공헌은 두 가지로 생각된다. 첫째, 사람들이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던 지층 누중의 법칙을 실증한것, 둘째, 이러한 지질학적 사고를 지도로 표현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어렴풋이 가정했겠지만, 그것을 확신을 가지고 선언하고 종이 위에 입증해 보인 것은 스미스 뿐이었다(p.241) 첫째 공헌인 지층 누중의 법칙은, 스미스의 직업적 배경과 통찰력이 함께 작용했다. 탁자에 앉아서 학문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스미스는 직접 측량을 하고 탄광을 드나드는 직업을 가졌었다. 게다가 흔한 광부처럼 그저 탄광을 드나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층의 배열과 그 질서에 관심을 보였다. 이 질서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이를 넓게 비교하고 검증할 기회를 운하건설 과정에서 얻었다. 이를 행운으로 보기도 한다는데, 누구에게나 오는 기회를 스미스는 그의 통찰력으로 잡아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다른 학자들 연구결과) 비교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그러한 관찰로부터 얻은 어떠한 추론도 정당화될 수 없다.(p.135) 특히 둘째 공헌인 지도로 표현한 것, 즉 지질학적 사고의 지도화라는 점이 스미스의 가장 큰 공헌이 아닐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학술적인 담론을 대중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매체가 시각적인 지도이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이렇게 지도의 "의사소통 매체"라는 수단을 잘 인지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또, 스미스는 지도화, 시각화의 재능도 풍부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도 본인이 순수하게 창안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아이디어를 조합하고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인쇄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컬러로 제작해야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지하세계의 복잡성을 나타내는 데에는 여러가지 색깔은 필수요소라고 그는 생각했다. (p.172) 단순히 눈에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를 처음 보는 사람들조차도 누구나 명백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스미스는 빌링슬리와 데이비스가 사용한 기술을 채택했다. 그는 자신이 그려넣은 각기 다른 모양을 서로 다른 색으로 손수 색칠했다. 울라이트 노출부는 풍부한 색조의 노랑색으로, <중략> 이러한 관행은 오늘날까지도 대부분의 지질학 지도에서 그대로 따르고 있다 (p.174) 지질학의 측면에서 스미스의 공헌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드라마틱한 스미스의 삶도 주목할 만 했다. 스미스의 삶이 실제로 기구한 일이 많이 일어나기도 했고, 저자가 글을 극적으로 잘 쓰기도 했다고 생각된다. 자칫 학술논문같이 될 수 있는 주제인데도 한 사람의 일대기를 극적으로 잘 풀어냈다.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보잘것 없는 가문의 젊은이, 하지만 호기심이 많고 자연에 관심이 많은데.. 우연한 계기로 측량에 발을 들였는데 천부적 소질을 보임. 탄광을 드나들면서 특유의 관찰력으로 지층과 화석의 관계 포착, 운하건설 사업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가설을 검증함, 불안한 신분에서도 끈기와 열정으로 전국 지질도 제작. 하지만 그의 태생적 한계를 시기하는 이들에 의해 저평가, 채무로 투옥, 결국 풀려나서 방랑하다가 말년에 명예회복으로 해피엔딩... 그의 태생적 한계를 시기하는 이들은 정말 얄미웠다. 아직 민주주의 사고가 발달하지 않았던 신분사회의 19세기 영국에서는, 지질협회에 귀족, 부유층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최초의 주목할 만한 문화적 딜레탕트였다(p.294)고 표현할 정도로, 당시 지질학은 그저 귀족들이 화석 수집하고 그것을 정리, 배열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평범한 계층 출신의 스미스가 엄청난 학문적 성과를 내보내자, 시기하려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결국 지도 표절이라는 사태까지 일어난다. 주인공의 시련은 결국 투옥까지 가고, 다행히 말년에 스미스는 명예회복이 되었다. 해피엔딩이어서 다행이다. 대륙이동설의 베게너는 결국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학설이 공인되지 못하였기도 했으니.. 어쨌든 이 책은 지질학, 지도학적 측면을 보기 위해 책을 집어든 나에게 신선했다. 마치 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단편소설을 읽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지질도에 대해 단상을 하나 추가한다. 스미스의 지질도의 제작동기는 아마도 순수한 자연과학에 대한 탐구심,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미스의 지질도를 보고 있자면, 한편으로는 마치 영국땅이 발가벗겨진 채로 대중들에게 전시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정육점에 걸려 있는 고기라고 해야 하나? 스미스가 활약한 19세기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침탈이 가속화되던 시기였고, 영국은 그 중에서도 가장 선도적인 국가였다. 제3세계 국가들의 자연자원을 약탈하여 욕심을 챙기기 위해 눈에 불을 켜던 이들에게는, "지질도"라는 아이디어는 정말 효과적인 수단이었을 것이다. 지질도를 통해 대상국가의 지하자원 분포를 보여주면서, 어디부터 침략해야 하면 좋을지를 의논했을 것이다. 본문에서도 이를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그들(석탄업자)에게는 안내자가 필요했다. 지도 비슷한 것 말이다. 지표면 아래에 무엇이 있을지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던 것이다(p.75) 그리고 지질도를 비롯한 여러 지도는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이들에게, 자연자원을 상품화하고 인간이 자연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재현하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마치 발가벗겨 진채로 무기력하게 걸려있는 정육점의 고기처럼 말이다. 제국주의 침탈의 희생양이었던 국가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지질도"를 덮어두고 찬양하기에는 한편으로 찝찝한 것도 사실이다. 일제의 여러 첩자들은 조선 강제병합 이전이었던 19세기 말부터 이러한 지도제작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한반도를 샅샅이 누볐다고 한다. (참고도서 <일제의 한반도 측량침략사>-남영우 저) 이러한 이유로, 역자후기에 스미스를 김정호에 비교하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용납이 안된다. 어떤 점에서 두 사람은 비슷할지 몰라도 결코 김정호와 스미스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김정호의 왜곡된 일대기를 바로잡을 참고도서는 <평민 김정호의 꿈>, <근대를 들어올린 거인, 김정호>-이기봉 저 두 책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