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7.0
  • 50대 7.0
리뷰 총점 종이책
카발라의 13가지 게임의 법칙
"카발라의 13가지 게임의 법칙" 내용보기
카발라를 통해 심리적 정서적 차원의 변화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찰스 폰즈의 <<카발라>> 부터 먼저 읽기 시작하였으나 카발라의 역사에서 부터 시작하는 찰스폰즈의 <<카발라>> 도입부분에서 그만 읽기를 포기하고, 카발라에 대한 다른 서적을 선택한 것이 바로 본서다. 무겁지 않고 동화를 써내려가듯 쉽고도 따스한 어투로 일러주는 카발라 철
"카발라의 13가지 게임의 법칙" 내용보기

 

카발라를 통해 심리적 정서적 차원의 변화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찰스 폰즈의 <<카발라>> 부터 먼저 읽기 시작하였으나 카발라의 역사에서 부터 시작하는 찰스폰즈의 <<카발라>> 도입부분에서 그만 읽기를 포기하고, 카발라에 대한 다른 서적을 선택한 것이 바로 본서다.
무겁지 않고 동화를 써내려가듯 쉽고도 따스한 어투로 일러주는 카발라 철학을 통한 내적 성찰과 성장에 이르는 이야기... 정말이지 한편의 동화,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읽어내려가는 기분으로 보고 있자면 한번쯤 주위 어른들로 부터나 친구들로부터 들어본 듯한 뻔한 충고들이 어쩌면 진정한 진화로 이끄는 길이 아니었나 싶기 까지 하다.
13은 사실 마법과 신비주의에서 중시하는 숫자로 창조를 위해서는 새롭게 거듭나야함을 상징하는 숫자라고 한다. (<<수와 신비주의>>나 <<타로카드 100배 즐기기>>류의 책들에서 보자면...)
이 책에서는 장막이 드리워지며 빛과 어둠의 세계로 세계가 나뉘게 되었고, 장막 한 켠에 신이 있다면 다른 편에는 신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장막으로 인하여 어둠이 지배하는 1%의 세계와 빛이 지배하는 99%의 세계로 나뉘는데 우리는 1%의 어둠의 세계만을 현실이라 전부라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니 반응성 행동들을 통제하여 99%의 세계로 이르러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러기 위한 방편으로서 제시하는 것이 "카발라의 13가지 게임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즉, 이 마법의 숫자 <13 >이 의미하듯 진정한 세계인 빛의 세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거듭나야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반응성 행동들을 그쳐 (창조된 것들을 그저 향유하는)받는 자가 아닌 (결과가 아닌 원인이 되고자)창조자가 되려는 것이 우리의 내면 깊은 곳의 본능이라는 대목은 무명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라거나 見性成佛 등을 말하는 불가의 가르침과 같다고 여겨진다.

반응성 행동을 그치고자 하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는 위빠사나 또는 마하무드라 등의 수행을 이름이 아닌가? 또한 창조자가 된다는 말은 진정한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간다는 말로 우리의 본성 자체를 부처라 보는 불성론과 여래장사상에 다름 아닌 것이다.

영지주의 복음서의 "네 안의 것을 네가 낳으면, 네가 낳은 것이 너를 구할 것이다. 네 안에 있는 것을 네가 낳지 못하면 네가 낳지 못한 것이 너를 파멸 시킬 것이다." 라는 예수님 말씀 또한 이와 같다고 여겨진다.

진정한 우리의 본성('네 안의 것'; 낳아야 할 대상)을 (일상의 한정적 존재로서의 )우리(아직 낳는 존재론적 변화를 거치지 않은, 장막 한쪽의 어둠이 지배하는 1%의 세계에 속한)가 깨달으면(즉, 낳으면) 그것이 바로 (장막 반대쪽 99%의 빛의 세계에 속하게 되는)진정한 구원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라 여겨졌다.  여기서 낳는다고 표현한 깨달음의 도상이 카발라에서 말하는 반응성 행동을 그치는 것일테고 우리가 낳은 것(깨달음의 경지)이 우리를 구원한다(깨달음 그 자체, 해탈)는 것이 바로 창조자(깨달은 이, 해탈자)가 되어(신과의 합일을 의미) 1%라는 (현실 )세계를 떠나 99%의 (진정한 )세계로 향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카발라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또 신비주의에 막 관심이 일어 신비주의 서적들을 탐독하고자 욕심을 내시는 분들이라면 카발라철학은 이 책부터 시작하라 권해 드리고 싶다. 그리고 나서 찰스폰즈의 <<카발라>>나, 조하선님의 명저 <<베일벗은 천부경>>을 읽으신다면 카발라에 대한 기본으로서는 충분하지 않을까?


k****t 2006.01.01. 신고 공감 5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이 책을 믿지 말라. 그리고 반응하지도 말라.
"이 책을 믿지 말라. 그리고 반응하지도 말라." 내용보기
신비주의라는 게 으레 초월적 '경험'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그러한 경험을 강조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책은 그것보다 카발라의 실천적인 차원을 강조한 카발라 실천 지침서 같은 것이었다. 즉 신비적 경험의 일상화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행위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 이 책의 역할이란 말이다. 그것이 결국 이 책이 내세우는 13가지 법칙과 관
"이 책을 믿지 말라. 그리고 반응하지도 말라." 내용보기

신비주의라는 게 으레 초월적 '경험'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그러한 경험을 강조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책은 그것보다 카발라의 실천적인 차원을 강조한 카발라 실천 지침서 같은 것이었다.

즉 신비적 경험의 일상화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행위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 이 책의 역할이란 말이다.

그것이 결국 이 책이 내세우는 13가지 법칙과 관련된다.

그런데 그 첫 번째 원칙이라는 게 바로 "당신이 읽은 것을 한 마디도 믿지 말라!"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책을 산 사람에게 왠 싸가지 없는 소리......

 

하지만 이런 불쾌함은 책을 조금만 읽으면 해소된다.

이 책을 다 읽고 기억에 남는 한 가지 말은 '반응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응하지 말라는 것과 이 책을 읽은 것을 믿지 말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책의 내용에 감동을 받아 이 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반응이 최종적으로 이 책의 내용을 믿는 것이라면, 결국 이 책은 자신의 내면의 빛(초월적인 것)을 밝힐 수 있는 소위 '수행'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결국 이러한 내면의 빛을 밝히기 위해 가장 큰 두 가지 법칙을 이렇게 조화를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반되는 두 원리의 조화는 이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내면의 빛을 밝힐 수 있는 행위 지침을 내리는 것이며, 자신만의 빛을 밝힐 수 있도록 첫 걸음을 떼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기존의 전통적 카발라의 지식을 전달하고, 그 빛이 어떤 것었고, 그 빛을 어떻게 밝히는 것인지를 전달해주는 카발라 전문서적과는 달리 이 책은 카발라의 정신을 실천하는 방도를 알려주고 있다.

 

반응하지 않고 내면의 빛을 밝힌다는 것은 카발라를 실천하는 사람들 모두 각기 차이나는 다른, 그러나 아름다움 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각기 자신의 내면을 통찰하고 우주와 하나가 됨으로써 내는 아름다운 빛의 조화는 결국 인류와 자연 그리고 우주 삼라만상이 En-sof(무한자)로 상승(anabasis)함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따라서 이 책을 단순히 읽고 그 행동요령을 따라 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 속 어둠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며, 카발라의 실천적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해우이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을 믿지말라. 반응하지도 말라.

이 글도 믿지말라. 반응하지도 말라.

t******3 2007.12.05.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