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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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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으로서의 종교는 나에게는 가장 호감이 가는 분야다. 특히 성경을 기초로 하는 모든 종교가 그렇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절실한 신자가 되거나 종교에 우호적인 태도를 지향하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있어 종교는 오랜 시간 동안을 다양한 고민 속에 빠져 들게 만든 특별한 뭔가가 있었다. 자식이 태어나면서 생명에 대한 신비를 느꼈듯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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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으로서의 종교는 나에게는 가장 호감이 가는 분야다. 특히 성경을 기초로 하는 모든 종교가 그렇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절실한 신자가 되거나 종교에 우호적인 태도를 지향하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있어 종교는 오랜 시간 동안을 다양한 고민 속에 빠져 들게 만든 특별한 뭔가가 있었다. 자식이 태어나면서 생명에 대한 신비를 느꼈듯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종교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나의 심정은 어쩌면 나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20 년에 걸쳐 교회의 신자로 남고자 했던 나의 끈질긴 시도는 결혼과 함께 끝이 났다. 난 아내가 독실한 신자이기를 바라지 않았다. 가정보다 더 무게를 두는 그 어떤 가치도 받아들이지 말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물론 믿음 생활이라는 것이 단순한 양자 택일의 단순함을 훨씬 뛰어 넘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째거나 새로운 삶을 시작함에 있어 난 새롭게 만들어질 나만의 우주에 모든 심혈을 기울이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교회안에서 예배 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었으므로 난 일요일이 따분해 지기 시작했고, 좀 더 생동감 있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자 세상 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마음 속에 자리잡은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을 끈임없이 가져보곤 했다.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가 인류에게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을 생각할 때 그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 자체를 뛰어 넘어 인류가 발전시킨 역사적인 의미로서의 종교나 문화로서의 가치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측면까지 확대해서 조망하려는 깊이 있는 연구도 수행하고 있으며, 앞으로 하나님이라 불리는 존재가 악용 될지도 모르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함께 전하고 있다. 

저자도 진단 했듯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는 단순히 33년의 세월을 살다간 고대의 한 인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독교의 역사와 함께 잘 다듬어진 이른바 교리로서의 이론적 예수가 있다고 전재한다. 사실 우리는 성경을 아무리 주의를 깊게 들여다 보더라도 예수의 생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리 그의 죽음이 주는 의미가 크다고는 하지만, 삶의 과정으로서의 그의 여정은 대단히 짧기도 하려니와 그다지 명료하지도 못하다. 주의 깊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알고 마음 속에 믿는 예수는 오히려 두번째와 같이 오랜 시간을 두고 형상화된 예수가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디를 보든지 혼돈의 구름이 예수의 메시지를 가리고 있다. 그것을 뚫고 나오기 위해 우리는 예수를 말하면서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야만 한다. 한쪽의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로서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또 다른 예수는 기독교 제도에 맞춤된 예수로서 기독교를 이루는 데 적당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세 번째 예수가 있다. 이는 가장 신실한 기독교 신자들조차 그 존재 여부를 짐작하지 못할 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결코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되는 예수다. p-20

저자가 말하는 제 3의 예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는 이 제 3의 예수야말로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를 가르친 혁명적인 스승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전통적인 신앙처럼 예수가 물 위를 걷고 장님의 눈을 뜨게 한 기적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것을 알게 하고 변화를 성취하게 만드는 다른 차원의 신앙에 무게를 둔다. 그것은 곧 우리 곁에서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예수이며, 그가 말하는 과제라는 것도 복잡한 신학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안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밝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 예수에 대한 연구를 접한다. 학자들 간에는 아직도 사막 어딘가에 묻혀 있을 고대 문헌을 통해 예수의 정확한 실상을 밝혀내려는 노력을 계속하고는 있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의 실상과 종교적인 형상간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정확히 밝혀낸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갖는 의미는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저자는 책 말미에 지금 현재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득세를 우려하고 있으며,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요구하는 등의 보수주의를 비판하면서 이와 관련된 다양한 논란이 진행중인 문제들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의 주장은 분명 책 전반에 걸쳐 상당한 설득력이 있어 보이며, 이 시대의 모든 종교인들(비 종교인들까지 포함해서라도)이 귀 담아 들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성경과 예수로 대변되는 기독교 내부의 깊은 곳까지 해부한 이 책은 어떤 면에서는 현대인이 갖춰야 할 종교적 마인드를 설명하고자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오늘날 종교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으로 말미암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하나의 지도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느끼는 희미한 감정은 [제3의 예수]는 한편으로는 상당수의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지는 모르지만, 우리를 새로운 앎의 길로 인도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러한 우려는 비교적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j*****5 2010.02.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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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예수'를 읽고...
"'제3의 예수'를 읽고..." 내용보기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쓰기는 쉽지 않다. 무릇 종교를 꿰뚫고 있는 경지도 아니고, 분명 정통 기독교와는 조금 다른 내용이므로 상당히 조심스럽다.개인적으로는 종교에 편견이나 걸림이 별로 없기에,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에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혹시의 오해를 피해 책 중심으로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저자는 오늘날 숭앙받는 예수가 진정한 역사적
"'제3의 예수'를 읽고..." 내용보기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쓰기는 쉽지 않다. 무릇 종교를 꿰뚫고 있는 경지도 아니고, 분명 정통 기독교와는 조금 다른 내용이므로 상당히 조심스럽다.
개인적으로는 종교에 편견이나 걸림이 별로 없기에,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에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혹시의 오해를 피해 책 중심으로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저자는 오늘날 숭앙받는 예수가 진정한 역사적 예수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하는 예수인지에 대한 회의에서 책을 풀어가고 있다.
"한쪽의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로서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또 다른 예수는 기독교 제도에 맞춤된 예수로서 기독교를 이루는 데 적당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책에서 다루는 세 번째 예수가 있다. 이는 가장 신실한 기독교 신자들조차 그 존재 여부를 짐작하지 못할 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결코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되는 예수다. "(20쪽)는 전제하에, 진짜 예수는 누군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있다.
1. 문자주의자의 주장 : 진짜 예수는 복음서 안에 있다. 따라서 그 이상 더 찾아볼 필요가 없다.
2. 합리주의자의 주장 : 예수에 관한 사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소멸 되었다. 사복음서들도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에대한 증거로 믿을만 하지 않다.
3. 신비주의자의 주장 : 진짜 예수는 결코 물적이지 않고 신성한 영적 존재다.
4. 회의주의자의 주장 : 예수는 없었다. 그는 신학적 상상력의 가공 인물이다.
5. 신-의식을 믿는자들의 주장 : 예수는 신-의식의 수준에 도잘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있다.라고 정의하고 저자는 마지막 주장을 확실히 믿고 있다.

저자는 "나는 진실로 예수가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 아니라- 그 자신이 선언했듯 한 사람의 구원자였음을 말하고 싶다. 예수는 가장 높은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준다"며, "예수는 신-의식에 이르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세상을 구원하려 했다"고 전제한 후, 영지주의자로 알려진 초기의 기독교인에 주목을 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정통 기독교와는 조금 다른 설명, 즉, 예수의 말씀들과 영적 활동을 통해 신-의식으로 가는 영적 여정을 풀어내고 있기에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신과의 합일을 위하여 명상과 묵상을 바탕으로 자신을 깨우려는 것은, 유일신을 의심없이 믿는 것으로 부터 출발하는 현재의 기독신앙으로는 '이단'으로 간주할 염려 때문이다.

 

저자는 예수님의 깨달음에 촛점을 맞추어, 예수님의 지혜를 직접 탐색해가는 방식으로 예수가 말한 핵심 가르침 10가지 주제(사랑과 은총, 믿음, 계시와 구원, 예수와 자아, 명상, 묵상, 기도, 카르마 ― 뿌리고 거두기, 환영일 뿐인 세상, 합일)로 '예수의 의식'을 읽고자 시도한다.

카르마는 기독교인에게는 조금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너희가 뿌린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이 까르마의 근원적인 교의인 "모든 행동은 싹이 터서 열매를 맺는 씨앗처럼 작용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예수는 하나님과 합일된 상태에서 의식으로 존재하므로, 인간적으로는 만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격리된 상태에서 벗어나 합일하려는 모든 방법이 필요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신-의식을 향해가는 15단계 수련은 우리가 사는 방법에서의 변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변화를 유도한다.

예수님을 수행의 안내자로 보고, 보다 높은 차원의 실재를 찾기위해서는 사라진 축복을 새롭게 창조하여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라고 저자는 믿고있다.
그러기 위한 수행방법으로 평화와 고요를 찾아 내면으로 들어가기, 영적인 실마리 따라가기, 영혼의 안내에 주의 집중하기, 자신의 본질 추구하기, 하나님의 현존 발견하기, 방해물과 내 안의 내적저항 없애기, 영혼에 충실하기 등을 제시하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수행방법은 초기경전의 부처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출발하는 '위빠사나'와 무척이나 비슷하다.
하긴 예수님의 말씀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매우 흡사하다는 주장은 여러 책에서 읽은 바 있다. (참고, '불경과 성경 왜 이렇게 같을까', '석가와 만난 예수 예수와 만난 석가', '법화경과 신약성서', '인도에서 예수의 생애' 등등)

사념처 수행이라하여 계정학을 열심히 수행하여 마음을 잘 다스려 고요히 가라앉아 흔들리지 않으며 항상 평정심을 잃지 않는 상태인 사마타의 경지를 넘어,
지관명상을 통하여 분별심이나 아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어떠한 미혹이나 흔들림도 완전히 사라져 모든 번뇌와 집착을 완전히 여윈 공의 상태로 가는 위빠사나의 수행과 많이 닮았다.
수행의 목표를 예수를 통한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영성에 두느냐, 고집멸도 제법공상의 깨달음이냐의 차이 일뿐 정말로 달리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마침내 신-의식에 도달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란 질문에 "영적 여정의 중간은 최종 목적지와 다르다. 낡은 자기와 새로운 자기는 결국 완전히 새로운 자기로 녹아들어야 한다. 죄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풍성해지고 우리의 모든 행동을 이끄실 것이다. 그것은 신-의식을 목적으로 영적 여정에 나선 사람들에게 주는 최소한의 약속이다."라고 하였다. 

 

기존의 기독인이 어떻게 해석할 지 무척이나 궁금하여, 독실한 기독 친구에게 책을 보였더니... 반응을 적고 싶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면의 깨달음으로 진정한 예수의 가르침을 알고 제대로 영적인 길을 걸어가자는 저자의 이러한 해석과 수행이, 수세기 동안 교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민감한 주제들에 대해 새로운 앎을 깨닫도록 인도한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덕분에 오랜만에 예수님의 보석같은 성경말씀을 많이 읽었다.
앞으로 많은 논란이 있거나, 아예 무시해 버리는 책일련지는 몰라도, 내겐 그동안 성경말씀에 느낀 의문을 "신-의식을 향해가는 15단계의 강의와 수련"을 통하여 많이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과연 우리가 예수의 뜻대로 살 수 있을까?"라는 출발에서 "과연 예수의 뜻대로 살고 있는가?"는 반성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근본을 보자는 취지로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진면목을 대하는 듯한 좋은 배움의 시간이 되었다.

 

또 하나! 이 책의 본문에 인용된 성경구절은 "큐티 현대인의 성경"에서 원문을 발췌한 듯 한데, 과거의 성경에 비하여 읽고 생각하기가 매우 편하였다.

그리고 '신-의식'은 God-consciousness의 번역이다.

e***i 2010.01.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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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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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가르침대로 살기란 왜 그처럼 어렵다 못해 불가능한 것일까?]두 가지 예수, 그리고 제3의 예수가 존재한다!’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체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여 세상의 지탄을 받아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외부적인 지탄만큼이나 내부적인 자성의 목소리도 높았다. 지금도 여러 형태의 ’제자 훈련’이 실행되고 있으며, 나름의 삶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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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가르침대로 살기란 왜 그처럼 어렵다 못해 불가능한 것일까?]



두 가지 예수, 그리고 제3의 예수가 존재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체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여 세상의 지탄을 받아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외부적인 지탄만큼이나 내부적인 자성의 목소리도 높았다. 지금도 여러 형태의 ’제자 훈련’이 실행되고 있으며, 나름의 삶의 자리에서 몸부림 치고 있을 것으로 안다. 

디팩 초프라의 <제3의 예수>도 거기서 출발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무엇이었나를 묻고, 과연 교회가 그 가르침의 원형을 간직한 조직체인가에 의문을 던지며 정당성을 제고한다. 물론, 그가 이러한 도전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원래의 예수를 믿기 좋게 변형시켰다는 혐의를 부과한다. 현재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지 않아도 훌륭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고 조롱한다.

디팩 초프라는 현재 우리에게는 두 가지 측면의 예수 그리스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피와 살을 지닌 ’역사 속의 예수’요, 다른 하나는 생존한 적이 없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기독교 교리로 다듬어진 ’이론적 예수’이다. 그런데 이 두 예수 뒤에 ’제3의 예수’가 존재한다. 


예수는 완전히 새로운 인간 본성을 일러주었다.

먼저, 예수는 누구이고, 그는 어떤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었는가? 디팩 초프라는 예수가 행한 가르침은 실제로 더 혁명적이고 동시에 오묘하다고 말한다. 예수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도 따르려고 하면, 예수가 남긴 유명한 말씀 대부분은 인간의 본성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황금율을 문자 그대로 따른다면? 새계명을 문자 그대로 따른다면?

그렇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지나치게 혁신적이어서 따르기 힘든데, 과연 이것이 예수의 의도였는가? 디팩 초프라는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이 변하지 않는 한, 예수가 한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예수는 새 시각으로 완전히 새로운 인간 본성에 대해 일러주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세상이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원했고, 인간의 본성이 혁명적으로 바뀔 수 있는 유일하고도 신비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신-의식(God-Consciousness)’을 지닌 제3의 예수

디팩 초프라가 말하는 제3의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를 가르친 혁명적인 스승이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왕국에 속해 있었고, 하나님과 예수 사이의 친밀함은 의식의 차원에서 더욱 완전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예수는 구름 위 하나님의 거처에서 내려온 적이 없으며 또 권좌의 오른편에 앉기 위해 그리로 돌아가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디팩 초프라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든 것은 ’신-의식(God-Consciousness)’이었다고 말한다. ’신-의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 하나님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이 바라는 행동과 같음을 알고 있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스승인가? 구세주인가? 

디팩 초프라는 예수를 ’스승’으로 만들었다. ’신-의식’을 지닌 제3의 예수는 ’신-의식’의 경지에 도달한 성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제자로서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 디팩 초프라는 그런 예수의 제자라 자처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교회가 예수의 가르침을 타협적으로 수용하고, 의도적으로 감추었다고 비난한다. 기독교는 불가능해 보이는 ’인간 본성의 완전한 탈바꿈’을 적절히 바꾸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에 알려지고, 세상이 알고 있는 통속적인 예수는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이 땅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가르칠 스승으로 왔는가? 예수는 인간이 어떠한 행위와 삶으로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가장 명백한 증거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오늘도 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맞다. 그러나 내일 다시 시도할 것이고, 노력할 것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도달해야 할 목표를 준 일이 없다. 우리를 해방했을 뿐이다. 그리고 동행을 약속하셨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예수를 스승이 아닌, 구세주로 먼저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를 구세주로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예수의 가르침이 그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했다. 예수의 가르침은 오직 예수를 구세주로 만난 그리스도인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다. 

<제3의 예수>, 그를 따른다면 예수가 말한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그대도 실천하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가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았는가 보다 먼저 예수가 누군인가를 분명히 알기 원할 것이다.


<제3의 예수>의 가치

교회의 역사와 함께 도그마화 되어온 예수를 제거하고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은 계속 되어오고 있다. 분명히 역사에 존재하며, 함께 숨 쉬는 인간으로 존재하며, 갈릴리 바닷가를 함께 거닐며 가르침을 주었던 랍비 예수! 그 생생한 예수의 역사를 이 책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교회의 전통에 갇히지 않고, 절충되기 전의 그 가르침의 원형을 탐구하는 시도가 신선한다. 예수를 ’한 사람’의 구도자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우리가 따라야 할 가르침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신학을 전혀 모르는 성도들이나 비신앙인들은 비판적으로 읽기 힘든 서적이지만, 특별히 성경적 가르침을 전하는 최일선에 있는 현장 목회자들은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c***1 2010.01.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