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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일기를 읽다/레이 황/ 구범진/ 푸른역사/2009 레이황의 서적은 우리나라에도 상당수 번역되어 있으며, 그만큼 중국사학계에서는 유명한 역사학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실제 중국 국민당에 몸담아 항일 전투에 참전했는데 이때의 경험 역시 책에 군데군데 녹아 있습니다. 저 역시 그의 책이 이것으로 네번째 인데요, 중국출신 재미 학자로서 중국에 대한 합리적인 시각 속에 담긴 애잔한 마음을 항상 엿볼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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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부터 아시아에는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 대륙의 국가 대부분이 스스로 제 역사를 써 내려가는 데 실패했다. 그만큼 서양의 제국주의가 강했고, 이를 흉내 낸 일본의 영향력이 컸다. 세상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제대로 전략을 구사하지 못한 탓이다. 우리 못지않게 중국도 요동쳤다. 막대한 힘을 발휘해온 대륙은 하나의 나라로 불리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힘이 약해졌다.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중국의 운명을 다스리는 세력은 여럿이었다. 여전히 제 지배가 동아시아에 어마어마한 발전을 가져다주었다는 막말(!)을 서슴지 않는 일본이 그 중 하나일 것이요, 제국주의 중에 으뜸이라 볼 수 있는 영국과,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르나 아직까지는 세상의 패권을 쥐고 뒤흔드는 역할을 놓지 않고 있는 미국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혹자가 어느 세력에 빌붙어 제 삶을 유지해볼까 안간힘을 썼다면 다른 이들은 지난날의 위대한 영광을 재현해야만 한다는 막대한 중압감에 시달렸다. 부국강병은커녕 존립자체를 치열하게 고민해야만 했던 그 시점에 쓰여진 것 중 하나가 바로 장제스의 일기다. 장제스가 누구인가? 국민당의 1인자로서 오늘날의 대만을 있게 만든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중국 대륙을 분열시킨 장본인이라는 평을 듣고도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중국과 대만이 펼친 힘의 대결 결과에 따라 엇갈려왔다. 일본의 침공에 대항하기보다 군벌을 이용해 국내 통일을 우선적으로 추진했으며, 쑨원의 사망 이후에는 노골적(?)으로 반공의 기치를 높였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인색한 평가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능하다. 개인적인 기록인 일기에 다른 누구의 의견이 반영되었을 리는 없다. 이 말은 장제스 개인의 입장에 충실한 것이 바로 그의 일기라는 소리다. 하지만 그가 60년 동안 남긴 기록은 오롯이 그 자신만의 기록일 수 없었다. 격동의 시간, 역사의 주인공이길 자처(?)한 그였기 때문이다. 기록은 그가 미국에 상당히 편향적인 시선을 가지지 않았나를 의심케 만든다. 루스벨트를 향한 그의 사랑은 특히 커보였다. 미국의 입장을 철저히 대변하기 마련인 루스벨트가 장제스와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다고는 볼 수 없을 터임에도 그는 전폭적인 신뢰를 끊임없이 보인다. 미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절실했다는 개인적인 판단에서였던지, 아니면 경제력의 차이로부터 비롯된 일종의 종속적인 감정이었던지는 알 길이 없다. 문제는 그의 사랑이 짝사랑이었다는 점에 있다. 장제스가 배제하고자 했던 공산당에 대해 루스벨트는 끌어안길 원했다. 그것이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면서 동시에 미국의 힘을 강화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파악하자면 서로가 서로를 이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중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려 들었다면 장제스 역시 미국의 힘을 빌려 일본으로부터 벗어나고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입지를 다지려 들었다. 장제스의 몰락은 미국과 중국이 결코 이룰 수 없었던 ‘힘의 균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보다 거대한 시각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 장제스의 한계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나름 미국으로부터 자신이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얻어내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중국사회를 이끌었다. 사람들은 그로부터 무자비를 읽어낸다. 실제로 그는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민주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혼란에 빠진 중국에 그는 새로운 질서를 불어넣었다. 과도함이 걱정될 정도의 중앙집권적인 성향, 군대에 어울리는 일사분란한 지휘체계 등 그가 생성한 것들은 분명 중국을 도약케 만드는 주춧돌이었다. 그에게 어떠한 시선을 드리우느냐는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이다. 그가 남긴 일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될 수도 있고 역사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로서 남길 수 있는 변명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외로웠던 듯하다. 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서만이 깊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원래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 클수록 그로 인한 그림자의 색채는 짙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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