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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과 중국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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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일기를 읽다/레이 황/ 구범진/ 푸른역사/2009레이황의 서적은 우리나라에도 상당수 번역되어 있으며, 그만큼 중국사학계에서는 유명한 역사학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실제 중국 국민당에 몸담아 항일 전투에 참전했는데 이때의 경험 역시 책에 군데군데 녹아 있습니다. 저 역시 그의 책이 이것으로 네번째 인데요, 중국출신 재미 학자로서 중국에 대한 합리적인 시각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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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일기를 읽다/레이 황/ 구범진/ 푸른역사/2009


레이황의 서적은 우리나라에도 상당수 번역되어 있으며, 그만큼 중국사학계에서는 유명한 역사학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실제 중국 국민당에 몸담아 항일 전투에 참전했는데 이때의 경험 역시 책에 군데군데 녹아 있습니다. 저 역시 그의 책이 이것으로 네번째 인데요, 중국출신 재미 학자로서 중국에 대한 합리적인 시각 속에 담긴 애잔한 마음을 항상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번역자의 말에 따르면 중국인들을 위한 중국어 판과, 미국 등 서방인들을 위한 영어판이 따로 있다고 하는데 각 독자층의 관심도에 따라 내용의 비중이 달라서 번역자는 어느 것을 중점적으로 해야 할지 많은 고충을 겪었다고 하는 군요. 어떻게보면 우리 나라 입장에서는 두가지 모두가 필요하기 때문이지 않는가 싶습니다.
이 책의 상당부분은 중일전쟁에 할애되어 있으며 책을 읽다 보면 사실상 중일 전쟁이 세계 제 2차 대전의 시작이라고 봐야 하지 않냐는 최근의 역사 인식을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그 내용이 상세하고 정밀합니다. 또한 중일 전쟁의 치열함 속에서 고갈된 국민당의 군사력은 결국 일본의 항복 이후 공산당에게 패전하고 타이완으로 도망치게 된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니 다소 안타까운 마음까지도 들더군요.
저 역시 그 동안 장제스와 국민당 군에 대한 고정적인 편견이 있었는데요, 그의 책을 읽다보니 아직 근대사회로 진입조차 하지 못했던 한 거대한 나라를 이끌고 가야만 하는 이의 고충과,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 영국이 미국 등 서방세계의 물질적 도움을 청해야 했을 때 느꼈을 모멸감과 수없이 희생되어간 군인과 백성들을 볼 때 마다 느꼈을 괴로움을 보니 그것 또한 편견 하나의 편견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마오쩌뚱을 승리자로 기억하고 있고, 장제스를 실패자로 낙인 찍었지요. 장제스는 오랜 세월 중국 본토에서 총통 자리를 오르락 내리락했습니다. 역사가들은 장제스가 그 긴 세월동안 수많은 잔인한 결정을 하고 외교적으로 서툴라 오해를 사기도 하고 심각한 실수를 하기도 했으며 정책 기조에 일관적이지 못하기도 했으니 그로 인해 신뢰를 잃음으로써 결국 패퇴했다는 설을 내놓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차관을 유용하여 실제 나라를 위해 쓰지는 않았다고 이러한 위로부터의 국민당 정권의 부패가 패퇴의 근본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망명을 간 상당수의 장제스의 인척들을 사후에 재산 조사를 해 본 결과 생각만큼 부유하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이 부분을 봐도 역시 역사는 승리자의 편인 것 같네요. 하지만 지금 봐서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것은 레이황의 지적대로 그 당시 그 복잡했던 중국의 사정에 대한 우리의 무지함만 드러내는 일이겠지요.

근대적인 의미의 중국은 쑨원으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를 이은 것이 장제스라는 것 다 아시는 이야기겠지요.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이 물밀 듯 들어와 있었지만 그의 나라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고와 생활은 아직도 청나라 그대로였습니다. 또한 끊임없는 외란으로 피폐상태가 지속되어 있었고 장제스 본인이 일으킨 공산당과의 소모전으로 여러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선조들이 500년 동안 겪을 것을 불과 이삼십년만에 다 겪으면서 일찍 조로해 버린 그의 나라는 새로운 기회주의자인 마오쩌뚱에게 넘어가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중국 본토에서는 마오쩌뚱에 대해서 다르게 언급할 수 없을 것이지만 레이황의 시각에서는 어느 누구도 마오쩌뚱이 장제스보다 단점이 적거나 장점이 많다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시대가, 그들을 그렇게 이끄는 것이니까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중일 전쟁에 대한 것도 그렇고, 격동의 시대에 위정자의 모습이라는 것도 그렇구요. 실패했다고 알려진 그러나 사실상 지금의 마오쩌뚱과 중국이 있게 한 장제스. 굳이 그에 대해서 쓴 것은 승리자의 반대편에 서서도 역사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레이 황의 균형잡힌 시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달의 사락 r*******n 2011.07.0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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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권력자의 자기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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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부터 아시아에는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 대륙의 국가 대부분이 스스로 제 역사를 써 내려가는 데 실패했다. 그만큼 서양의 제국주의가 강했고, 이를 흉내 낸 일본의 영향력이 컸다. 세상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제대로 전략을 구사하지 못한 탓이다. 우리 못지않게 중국도 요동쳤다. 막대한 힘을 발휘해온 대륙은 하나의 나라로 불리기에 부끄러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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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부터 아시아에는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 대륙의 국가 대부분이 스스로 제 역사를 써 내려가는 데 실패했다. 그만큼 서양의 제국주의가 강했고, 이를 흉내 낸 일본의 영향력이 컸다. 세상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제대로 전략을 구사하지 못한 탓이다.

우리 못지않게 중국도 요동쳤다. 막대한 힘을 발휘해온 대륙은 하나의 나라로 불리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힘이 약해졌다.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중국의 운명을 다스리는 세력은 여럿이었다. 여전히 제 지배가 동아시아에 어마어마한 발전을 가져다주었다는 막말(!)을 서슴지 않는 일본이 그 중 하나일 것이요, 제국주의 중에 으뜸이라 볼 수 있는 영국과,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르나 아직까지는 세상의 패권을 쥐고 뒤흔드는 역할을 놓지 않고 있는 미국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혹자가 어느 세력에 빌붙어 제 삶을 유지해볼까 안간힘을 썼다면 다른 이들은 지난날의 위대한 영광을 재현해야만 한다는 막대한 중압감에 시달렸다. 부국강병은커녕 존립자체를 치열하게 고민해야만 했던 그 시점에 쓰여진 것 중 하나가 바로 장제스의 일기다.

장제스가 누구인가? 국민당의 1인자로서 오늘날의 대만을 있게 만든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중국 대륙을 분열시킨 장본인이라는 평을 듣고도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중국과 대만이 펼친 힘의 대결 결과에 따라 엇갈려왔다. 일본의 침공에 대항하기보다 군벌을 이용해 국내 통일을 우선적으로 추진했으며, 쑨원의 사망 이후에는 노골적(?)으로 반공의 기치를 높였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인색한 평가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능하다. 개인적인 기록인 일기에 다른 누구의 의견이 반영되었을 리는 없다. 이 말은 장제스 개인의 입장에 충실한 것이 바로 그의 일기라는 소리다. 하지만 그가 60년 동안 남긴 기록은 오롯이 그 자신만의 기록일 수 없었다. 격동의 시간, 역사의 주인공이길 자처(?)한 그였기 때문이다.

기록은 그가 미국에 상당히 편향적인 시선을 가지지 않았나를 의심케 만든다. 루스벨트를 향한 그의 사랑은 특히 커보였다. 미국의 입장을 철저히 대변하기 마련인 루스벨트가 장제스와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다고는 볼 수 없을 터임에도 그는 전폭적인 신뢰를 끊임없이 보인다. 미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절실했다는 개인적인 판단에서였던지, 아니면 경제력의 차이로부터 비롯된 일종의 종속적인 감정이었던지는 알 길이 없다. 문제는 그의 사랑이 짝사랑이었다는 점에 있다. 장제스가 배제하고자 했던 공산당에 대해 루스벨트는 끌어안길 원했다. 그것이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면서 동시에 미국의 힘을 강화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파악하자면 서로가 서로를 이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중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려 들었다면 장제스 역시 미국의 힘을 빌려 일본으로부터 벗어나고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입지를 다지려 들었다.

장제스의 몰락은 미국과 중국이 결코 이룰 수 없었던 ‘힘의 균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보다 거대한 시각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 장제스의 한계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나름 미국으로부터 자신이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얻어내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중국사회를 이끌었다. 사람들은 그로부터 무자비를 읽어낸다. 실제로 그는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민주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혼란에 빠진 중국에 그는 새로운 질서를 불어넣었다. 과도함이 걱정될 정도의 중앙집권적인 성향, 군대에 어울리는 일사분란한 지휘체계 등 그가 생성한 것들은 분명 중국을 도약케 만드는 주춧돌이었다.

그에게 어떠한 시선을 드리우느냐는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이다. 그가 남긴 일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될 수도 있고 역사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로서 남길 수 있는 변명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외로웠던 듯하다. 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서만이 깊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원래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 클수록 그로 인한 그림자의 색채는 짙기 마련이다.

 

이달의 사락 q*****2 2013.04.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