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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고 여러사정으로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핸드폰으로 여러가지 장난을 하느라 출퇴근 버스안에서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런 나를 일순간 깨우치게 해준 책 작년 여름 휴가때 구입을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작년 초겨울에 잠시 잡았다 이내 놓았다 그러다 이번에 마음 단단히 먹고 잡았다 한동안 책읽는 리듬을 잊어버린 나를 다잡기위해 다시 책읽는 습관을 찾아준 소중한 책이다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 서동진, 돌베개, 2009
이 책은 저자가 2004년 사회학 박사학위 논문을 다듬어 2009년에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처음 이책을 구입한 것은 서평을 보고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이라는 단어에서 마음이 동했다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상당히 유용한 책이라는 생각이들었다 그러나 막상 책을 손에 넣고는 접근이 어려웠었다 그렇지만 책을 손에서 놓은 지금 이 시점에서 본다면 굳이 뒤척일 필요가 없었던 책이 아닌가 싶다
80년대 후반부에 대학을 다니고 90년대를 직장에서 보내면서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본 우리입장에서 뭔가 모르게 힘들어지는 삶 그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 뜬구름 잡아가는 마당에 이 책은 확실한 동아줄을 내려준다 우리사회의 변화의 과정과 그 변화를 통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조건들 그런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 주었으며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미래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한 언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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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경영, 즉 '1인 기업가가 되라'는 주문은 삶의 모든 영역 안에서 개인이 자신을 인식하고 체험할때 요구받는 정체성을 기업가정신을 가진 개인으로 바꾸라(=새로운 주체성 형성)는 것이다. 이 시류는 20년전부터 오늘날까지 '위기와 대안'이라는 형식으로 반복되어왔다. 여기서 위기는 기존 세계와 그 법칙이며, 대안은 언제나 기업가정신이다. 가장 최근의 판본은 위기(새누리당, 이명박근혜)vs.대안(안철수)이라는 대결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류는 또한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통치 담론이기도 하다. 통치 대상으로서의 국민, 주민의 정체성을 '자신을 책임지는 자율적인 주체'로 재구성(개발연대의 수동적 국민에서 지식기반경제의 능동적 시민으로)하는 것이 기획의 실체다. 87년 민주화의 주역인, '반공훈육사회'를 미워했던 자유주의자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자본주의가 노동주체를 (새롭게 착취하기 위해) 새롭게 생산해야 할 필요성과 행복하게 하나가 되었다. 90년대 이후 자유로운 삶을 향한 의지와 자기계발에의 의지를 평행하게 추구하는 신세대들이 생겨났다. 즉 [우리가 추구해온 민주주의 자체가 신자유주의를 지배하는 과정이었다. 자본이 하고 싶은 일을 우리가 대신 해 준 것이다./프레시안 09.12 인터뷰 발췌] * 푸코에 따르면 권력은 주체성을 형성함으로써 주체를 멀리서 지배한다. 자본주의는 개인에게 자유를 주었고, 자본주의 권력은 그 자유를 통해 작동했다. 자유에 대한 열망과 자기계발에 대한 열망이 짝을 지어, 개인이 자유를 추구하면 할수록 부자유스러워지는 아이러니는 안철수 대통령이 나와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서동진 교수의 분석에서, 안철수 대통령 역시 87년의 자유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2013년 벽두에 자기계발에의 의지를 다지는 범부 가운데, 자기계발 구루의 책에서 부르짖는 것처럼 새로운 자유의 (무려)윤리적 주체로 거듭나려는 각오를 가진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구본형은 '행복한 일상적 삶이야말로 자기혁명이 추구하는 비전이다' 라고 말한바 있는데, 행복한 일상이야말로 범부의 제일가는 소망이다. 하지만 여기선 어쩐지 기만의 냄새가 난다. 애당초 자기경영과 행복한 일상이 나란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낯설게 느껴진다. (포도단식하는 공병호를 보라) 자기경영을 통해 무리 중에서 돋보이려고 할수록, 훈육사회의 양떼로부터 홀로 탈출해 '영웅'이 되려고 할수록 (변영주 감독이 12.10.01 인터뷰에서 말했듯) 우리들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우리 공통의 불행을 상상하는 능력을 잃게 되고, '연대'할 수 없게 된다. 자기계발 프로젝트가 '나쁜' 프로젝트인 이유이다. 외톨이 영웅과 그의 고립된 요새 안에서 행복한 일상이 가능한 것일까? 행복한 일상이란 사회 전체, 공동체 전체와 함께 할때만이 가능한게 아니던가? 자유에 대한 의지가 자기계발에 대한 의지와 구별할 수 없이 뒤섞였다고 해서, 우리는 자유에의 의지를 거부해야만 하나? 자유라는 허위에서 벗어나라, 자유를 거부해라고 설파하는 것이 대안일까? 이는 너무 성급한 결론일 것이다. 반성적인 사유의 힘 역시 자유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며, 우리는 강요된 자유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자유를 통째로 적들에게 내주어서는 안된다. 자유가 자본주의에 의해 동원되고 있음을 밝히는 '자유'는 우리의 것이어야만 한다. 우리는 아마도 전연 새로운 자유의 이미지를 고안해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자유의 이미지, 가 결론이라면 이 책은 미완의 상태다. 서동진 교수가 이 책을 내고 4년이 지났다. 출간 당시 인터뷰에서 서 교수는, "사람들이 왜 지배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지는지는 알겠다. 그런데 어떻게 투쟁하는 사람으로 바뀔까?"가 풀리지 않는 의문이라고 답했다. 4년 후 지금 서 교수가 다다른 지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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