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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국가나 절대주의 국가와는 근본적으로 편성원리가 다른 근대 국민국가에서 문명/문화라는 이데올로기가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 하는 것이다. 왕권과 궁정이라는 권력의 중심을 거부함과 동시에 교회라는 종교적인 통합 장치도 거부하고 백지 위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국민국가는, 그것이 국가인 한 새로운 권력의 중심과 통합이데올리기의 창출에 전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셔널리즘은 공인된 통합 이데올로기이다. 단 국가 주거과 국가 이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데올로기만으로는 국민 통합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동시에 복음서 대신 지고의 가치와 표상을 떠맡을 세속적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루소의 조금 과격한 표현을 빌자면, ‘국민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가리는 꽃장식’이다. 문명과 문화가 관련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이 부분이다. 구제도로부터의 해방을 설파하는 사상은 동시에 억압의 맹아를 감추고 있었다. 51-52쪽 문명에 이르는 일련의 프랑스어의 어원은 라틴어의 civis나 civitas, 곧 시민과 도시국가라는 의미와 이미지가 문명이라는 용어의 탄생과 아울러 부활하는 것은 흥미롭다. 새로운 관념의 탄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 문화의 경우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 라틴어의 cultura에 유래하는 culture는 이미 13세기 말부터 사용되었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새로운 용어는 아니었다. 다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문화 용법이 정착한 것은 문명과 마찬가지로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쳐서였다. … 문화 개념은 특히 독일에서 확장 심화되었다. … 그런데 세계시민주의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거기에서 국가를 틀로 삼는 문명 혹은 문화라는 개념에 의해 국가 에고이즘을 비판하고 국가를 넘어서는 길을 찾고자 하는 18세기 계몽주의자들 공통의 패러독스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코스모톨리타니즘을 칭송하면서 다른 한편 새로운 형태의 국가(국민국가)와 내셔널리즘으로 가는 길을 지향했던 것이다. 63-72쪽
문명과 문화라는 두 개념은 18세기 후반에 마치 쌍생아같이 하나의 모태에서 차례로 탄생했다. 독일에서 사용된 문화라는 용어가 처음에는 문명과 거의 같은 내용이었다는 사실은 문명과 문화의 친근함을 말해준다. 다른 한편 독일에서 문명이 아닌 문화라는 용어가 선택되어 지배적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문명과 문화의 대항적 성격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 용어는 어원부터 대조적이다. 문명은 라틴어 civis(시민)나 civitas(도시)에서 유래한다. 문명이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와 로마제국의 기억을 이어받은 용어이자 관념이었다. 특히 여기서는 도시 생활이 문제이며, 나중에는 궁정의 생활이 모델이 된다. 반면 문화는 같은 라틴어이지만 살다, 경작하다, 지키다, 존경하다는 의미를 갖는 colerer에서 파생된 cultura에서 유래하며, 16세기에 들어서면 오직 경작이나 가축을 돌본다는 의미의 농업과 관련된 말이 된다. 결국 문명이 도시와 결부된 반면 문화는 농경과 결부된 용어였다. 똑같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작용이라고 해도 도시와 농촌 중 무엇을 이상으로 하는가의 차이는 컸다. … 그러나 문명과 문화가 분명한 대항개념으로 의식되고 서로 독자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독일과 프랑스 관계를 축으로 한 근대의 국제적 긴장관계 속에서였다. 독일에서 문화 개념이 문명에 대한 대항 개념으로 의식되고 형성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은 프랑스혁명과 특히 나폴레옹에 의한 독일 점령이었다. 또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대운동으로 전개되었던 독일 낭만주의는 확실히 문명에 대한 문화 개념의 형성 발전을 그 특색으로 삼고 있었다. 73-75쪽 탈아론에서 비판의 대상은 조선과 지나의 정부일까, 인민일까? 탈아론 텍스트에서 후쿠자와가 문제 삼는 것은 정부보다 오히려 국민이다. 그리고 그것은 후쿠자와 문명론의 중심적인 과제가 일관적으로 국민의 창출이었다는 점에 대응한다. 물론 구체제 정부는 타도해야 하지만 문제는 주체가 되어야 할 국민의 미성숙이며, 거기에 후쿠자와가 생각하는 불행의 심각함이 있었다. 102쪽 맑스가 영국인에 의한 인도의 식민지화에 일시적으로나마 긍정적이었던 것은 “영국인은 힌두무명보다 뛰어난 문명을 가졌으며, 따라서 힌두문명에 흔들리지 않은 최조의 정복자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낡은 아시아를 멸망시키고 대신 들어설 “서구 사회의 물질적 기초”가 문명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맑스의 이러한 인도론을 유물사관과 문명 개념의 일시적이고 불행한 결혼으로 규정함으로써 후기 맑스를 구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105-106쪽 문명화론자가 식민주의자로 전락한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론자는 제국주의자로 변질되어갔다. 이와쿠라 사절단에게 강한 감명을 주었던 비스마르크 연설에서의 후발국 마키아벨리즘이 새삼스럽게 광범위한 청중을 얻는 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이후 일본에서 문화 개념의 전개는 나치즘에 이르기까지는 대략 독일 문화 개념의 전개를 모방하게 되었다. … 후쿠자와의 문명 개념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받아들였던 문화 개념 자체에 그 맹아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싶다. 실제로 국민 특유의 문화라는 발상에는 순수한 문화를 희구하고(배타성) 나아가 그것을 과거의 오랜 시대와 전통에서 찾는 바람(복고적 성격)이 감추어져 있고, 극히 자연스런 추세로서 국민적 통일의 구심력이 되는 존재(황제나 천황)를 불러내는 일이 고려되기 때문이다. 또 국민 특유의 문화라는 발상은 특히 강력한 국민적 통일이 필요한 위기 상황에서 국민적인 자랑과 자부를 요구하며 그것은 자국 문화의 우월함과 타국 문화에 대한 멸시의 감정으로 쉽게 전화되기 때문이다. 110-111쪽 ① 문명/문화는 18세기 후반에 탄생한 신용어이며, 근대 유럽의 새로운 자의식과 가치관을 표명하고 있다. ② 문명/문화는 근대 국민국가와 함께 태어나 성장한 이데올로기이며, 국민과 국민국가의 존재 이유를 표명하고 있다. ③ 문명/문화는 한 쌍의 대항개념이며 여러 국가 간의 대립과 긴장 속에서 문명은 선진국의, 문화는 후진국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변용되었다. ④ 계몽 사상의 사생아로서 처음에는 해방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던 문명과 문화는 그 자체 속에 마침내 식민주의나 나치즘의 이데올로기로 전화할 가능성을 감추고 있었다. ⑤ 문명/문화는 주권국가의 국가이성(혹은 국익)이라는 냉엄한 에고이즘과 사람들의 국민화 혹은 국민통합이라는 강제를 은폐하는 꽃장식이다. 국민 혹은 내셔널리즘을 제1의 국가이데올로기라고 한다면, 문명/문화는 그것을 지탱하는 제2의 국가이데올로기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⑥ 국민국가는 그 성질상 강력한 국민 통합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하며, 국민이라는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와 문명/문화라는 비정치적인 이데올로기 두 가지를 가려 쓰면서 체제유지를 도모해 왔다. 문명/문화가 국가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국가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이 간파되지 않을 필요가 있다. 일찍이 좋은 원폭과 나쁜 원폭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좋은 내셔널리즘과 나쁜 내셔널리즘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뒤 중국이나 제3세계 신흥국의 역사는 어떤 의도로 어떤 민족에 의해 만들어졌든지 국가는 국가이고 국가로 기능하기 때문에 국가 간에 영속적이고 진정한 연대는 있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후발국의 내셔널리즘은 선진국의 내셔널리즘을 뒤집은 것 혹은 약간 손질한 것으로 결국 똑같은 내셔널리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30년의 세월에 걸쳐 증명해버리고 말았다. 122-123쪽 (다케우치 요시미) 시대적 이데올로기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시대의 눈부신 광원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똑바로 볼 수 없다. 시대적 이데올로기는 시대의 맹점이기도 하다. 124쪽 문화 개념은 선진국의 우월적 지배적인 내셔널리즘(프랑스 영국 등의 보편적이고 진보주의적인 문명 개념)에 대한 후발국(독일 폴란드 러시아 등)들의 민족적 자기 주장으로서, 자기의 독자성(개별적인 가치나 정신적 우위)을 강조하고 다른 국민이나 민족과의 공통성보다 차이를 강조하는 배타적인 성격을 내장하고 있다. 그것은 선진국에 의한 지배의 위기에 직면한 후발국의 정당한 권리의 자기 주장을 포함하지만, 국경을 안쪽에서 만들어내거나 지지하는 강력한 국가이데올로기로 작용해왔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은 민족의 논리임과 동시에 문화의 논리였다. 이 문제가 지금도 중요한 것은 이 민족=문화의 논리가 유럽 민족국가 형성의 역사 과정에 머물지 않고 아시아 아프리카 기타 지역으로 전지구적인 문제로 널리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141-142쪽 (문화상대주의) 유럽 우익이 제3세계 문화내셔널리즘의 논리를 차용한 것이다. … 문화상대주의는 고전적 민족=문화 개념을 유지한 채, 학대받는 소수민족이나 미개사회의 문화에 양심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던 것이다. 문화상대주의 역시 폐쇄적 자기완결적 정태적 문화 모델에 입각해 있고, 그 결과 문화의 국경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버리고 만다. 147-148쪽 민족을 객관적 지표 만으로 파악할 수는 없으며, 민족의 특성은 “주관과 객관의 중층적 구성이 복잡하게 착종해 있는 바에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보다 결정적인 것은 주관적 지표-결국 그들에 대한 우리라는 동류의식-이며, 그런 동류 의식이 어떻게 형성되는가가 본질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후쿠이는 “민족이란 원래 허구 위에 성립된 집단”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그 동류의식이 어떤 조건 하에 형성되는지 고찰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음 세가지이다. ① 이와 같은 동류의식(민족의식)은 다른 여러 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② 따라서 그것은 상황에 따라 현재화하거나 소실된다. ③ 민족적인 귀속의식은 일상적인 공속 감각에 의해 육성되는 것으로 민족 고유의 특성에 의한 것이 아니다. 157쪽 이 ‘이름 밝힘’의 실천이 ‘민족’의 분화를 설명함과 동시에, ‘이름’의 의사 물질성을 설명한다. 그리하여 민족의 실체화는 마침내 개인의 죽음을 초월한 민족의 영원한 생명(민족의 신화와 역사)이라는 환상을 탄생시키고, 여기서 민족의 실체화와 개인들의 민족에 대한 동화가 완결된다. 158쪽 전통의 창출 현상의 다수는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 관련되어 있다. 프랑스 혁명이나 메이지 유신의 예가 전형적으로 보여주듯이, 구제도와의 단절에 의해 성립된 국민국가는 중앙집권적 제도를 설립함과 동시에 새로운 정치 공동체의 공백을 메우는 정신적 이데올로기적 통합을 꾀하거나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전통(다양한 국민적 심벌, 국기, 국가, 제전, 국어, 신화, 역사, 지리, 풍경 등 오랜 의장을 걸친 새로운 전통)의 창출에 전념한다. 163쪽 국가간 시스템의 제약 안에서 국가 창출은 직접적(혹은 장기적)인 경제적, 전략적 고려에 의거한 국경선 설정과 빈번한 재설정을 의미했다. … 일단 창출되면 국경이 명확하게 정해진 각 국가를 국민국가로, 즉 문화적으로 동질적이고 문화적으로 배타저인 국가로 변용시키는 압력이 등장한다. 215쪽 근대 국민국가의 목표는 확실히 “문화적으로 동질적이고 문화적으로 배타적인 국가”였다. 216쪽 집단은 그 독자성을 확립할 때 자신들의 역사를 재구축한다. 그 시점에서 적합성이 있는 듯한 연속성을 찾는다-언어, 종교, 철학, 미학, 인종, 지리 등이다. 217쪽 실제로 일본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그 나라의 문화론이나 국민성론을 전개해왔다. 218쪽 여성, 대중, 외국인까지 포함한 보다 넓고 강력한 국민 통합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국가의 유지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경사스러운 일일 것이다. 22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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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카와 나가오 1934년 한국 평안북도 강계 출생. 교토대학 문학부 및 동 대학원 문학연구과에서 비교사ㆍ비교문화론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리쓰메이칸대학立命館大學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전쟁의 세기를 넘어서-글로벌화시대의 국가ㆍ역사ㆍ민족』(平凡社, 2002), 『증보 국경을 넘는 방법-국민국가론 서설』(平凡社, 2001), 『국민국가론의 사정-또는 ‘국민’이라는 괴물에 대하여』(柏書房, 1998), 공편저로 『글로벌화를 읽는 88개의 키워드』(平凡社, 2003), 『20세기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다언어ㆍ다문화주의를 계기로 해서』(平凡社, 2000) 등이 있다. 그 밖에 공역서로 루이 알튀세르의 『재생산에 대하여-이데올로기와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平凡社, 2005), 린 헌트의 『프랑스 혁명의 가족로망스』(平凡社, 1999)가 있다. [YES24 제공]
불문학자인 저자는 프랑스의 '문명'과 독일의 '문화'개념을 대비시키는 가운데 결국 둘 모두가 국가이데올로기의 형태라는 점을 밝혀낸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일본론과 일본인론을 도출해내는 과정은 과연 아카데믹한 퍼포먼스로, 그 내용을 떠나서라도 박수를 보낼만한 엄정한 형식미를 갖추고 있다. 문명이든, 문화든, 혹은 민족이든, 그것은 국가에 의해서 새롭게 명명되고 해석되는 개념이다. 국가는 물리적인 기구이며 동시에 (맑시스트식으로라면 '그 위에'라고 표현해야할지) 또한 이런 해석의 권리를 이루는 가치의 틀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유하고 관계맺는 방식은 애초에 이런 가치의 틀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되(당신이 반국가주의자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질곡을 극복해나가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니까. 탈국가주의적인 시도는, 민족주의의 테스토스테론이 최고조에 다다른 듯한 중국과, 새롭게 홀몬제라도 맞은 듯 우경화된 일본, 그리고 어차피 민족주의 테스토스테론이라면 누구 못지 않은 것을 자랑하는 한국의 상호관계나, 혈연적인 단일성이란 전혀 없는 것이 확실한 '중화민족'의 형성과정, 그 외에도 세계 곳곳의 국가에 순종하지 않는 여러 집단의 동기와 방향을 짚어보려면 꼭 필요한 디딤돌이다. 동아시아에서는 각자가 국가를 더 강화함으로써 이런 갈등의 해소가 가능하다고 믿고있는 것 같은데, 유럽에서는 오히려 국가를 점진적으로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 같다.
평안북도 강계 출신이라는 점이 말해주듯이, 저자는 국가(민족)이데올로기의 시대를 살아온 경험을 통해서 국가라는 사람들사이의 계약형태를 벗어나는 미래를 추구하는 듯 보인다.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그만두는 방법에 대한 속시원한 대안이 없는 것은 유감이지만, 저자의 다른 저작들과 특히 앞으로의 저작에 대한 관심을 돋우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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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 방법>의 속편으로 나온 책이다. 하지만 따로 읽어도 크게 관계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부제인 국가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과 문화로 책의 내용을 대강 알 수 있을 것이며, 원제는 지구시대의 민족은 문화이론이다.
문명과 문화에 대한 부분이 많이 차지한다. 문명이라는 것이 영어의 Civilization에서 온 외래어이고, 문화라는 것이 영어의 Culture에서 온 외래어인 것이다. 이것을 메이지 유신 당시의 학자들이 중국 고전에서 차용한 것이고, 우리 한국도 이것을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부분 일본의 영향안에 있는 것이 맞다.
문명이라는 말이 좀더 선진국에서 사용된 말이고, 프랑스 혁명 이후의 근대 국가가 진행되면서 나오는 말이다. 원래의 뜻은 인간성의 진보정도로 보이고, 문화라는 말은 독일이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한 이후에 문명의 대항어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뜻의 차이를 보자면 문명은 보편적이고 물질적인 언어이고, 문화는 개별적이고 정신적인 언어이다. 문명이 강자들이 사용하는 언어이고, 문화는 비교적 약자인 서구 후진국이었던 독일에서 사용한 언어였던 것이다.
중요한 것이 문명과 문화의 차이가 아니라, 국가이데올로기로서 국민이라는(이것도 메이지 번역어로 중요한 단어이다) 단어가 차지하는 것이 1차적이라면, 문명이나 문화는 국가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는데 2차적으로 숨어서 작동하면서 뜻이 너무 좋게 치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메이지 초기에는 문명이라는 단어를 더 잘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흔히 "서세동점"이라는 단어로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 이 책에서 "문명동점"이라는 단어로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놀랐다. 최소한 후쿠자와 유키치는 서양을 보는 시각이 긍정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조선이 망해서 러시아나 영국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 낫다는 것의 기원을 알 수 있었다. 오리엔탈리즘이 다시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후 일본이 독일과의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문화라는 말이 더 익숙한 단어가 되어 사용되어지고 있고, 2차대전 이후 문화라는 말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
민족이라는 것의 개념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거의 허구에 가까우며, 민족의 특징이나 장점이라는 것이 후세에 조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국민이라는 것도 근대 국가의 개념이며, 민족도 근대의 개념이고 일본이 만든 개념에 가깝다는 것이다. 결론으로 문화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문화는 국가이데올로기이며 민족도 국가이데올로기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현재 일본의 문화론과 일본인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특별히 일본 내에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일본의 문화의 장점을 말하는 것이나, 한국의 문화의 장점을 말하는 것이 비슷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단어들이 메이지 유신이후의 도입된 일본 한자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그 프레임안에서 사고하고 있는 느낌이다.
저자는 민족과 국가이데올로기인 근대 국민국가 시대를 또 하나의 광기의 시대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몇백년 몇천년후에 이 시대를 허구의 민족과 국민을 바탕으로 하는 광기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는 국민으로 살아야 하는가? (나는 예전에 박노자 선생의 책을 읽고 난 후 세계인 선언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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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흔히 ‘문화’라고 하면 정치나 무력, 경제적인 요소로부터 자유로운, 좀 더 평화적이고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만한 무엇 정도로 느끼곤 한다. ‘민족’이라는 단어 역시 막연히 어떤 혈통을 따라 정의되는 한 무리의 사람들 정도의 ‘매우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니시카와 나가오는 이 두 가지 개념이 왕정 이후의 국민국가를 수립하는 가운데 그 구성원들을 통합시킬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창안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문화와 문명, 민족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발전해 온 역사적인 과정을 추적한다.
2. 감상평 。。。。。。。
문화나 문명이라는 개념, 나아가 민족이라는 개념까지도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이 새롭다. 이제까지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꽤나 합리적인 증거와 논리로 뒷받침 된 채) 부정될 때 느껴지는 당혹감이랄까.
하지만 책 전체를 두고 보면, 이 간단한 주장은 너무 일찍 나와 버린 반면, 그것을 보충하고 주석하는 과정은 좀 길고 산만하다는 느낌이다. 저자 자신이 일본인인지라 일본에서 나온 저작들과 저자들이 자주 인용되는 것이야 어느 정도 감안하더라도 이 책은 확실히 일본 국내 독자들을 향해 있다 싶을 정도로 그런 부분이 많은 느낌. 일본 역사나 사상계에 관한 조예가 부족한 나 같은 독자들에겐 좀 와 닿지 않는 부분들이다.
물론 저자의 주장을 통해서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일본의 팽창주의나 안하무인적인 태도 등의 원인을 짐작해 볼 수도 있었다. 자국의 문화와 민족이 아시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지극히 유아독존적인 사고방식은, 전후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의 사이클 속의 조증(躁症)의 시기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또 울증(鬱症)으로 변할지도..
국민국가로 전환된 이후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국민’이니 ‘민족’이니 하는 개념들을 강조해왔다. 오늘날 민족주의 성향을 지닌 세력들이 대부분 보수나 우파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민족’이라는 게 어디 무 자르듯 금을 그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생각하면 애국심이란 건 보수 우파가 손쉽게 자기들의 권력구조를 강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다. (입만 열면 반만년 단일민족 어쩌구 하지만, 우리가 정말 단일민족인가? 고대 국가 시절만 해도 북방계와 남방계가 확연히 구분되고, 역사상 수많은 주변 민족들과 교류와 통혼을 해 왔을 게 분명한데.)
요즘은 문화, 민족문화라는 것이 예전의 ‘민족’의 자리를 보완, 대체해내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역시 정확히 정의하기도, 구분하기도 어려운 개념임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김치가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의 한 모습이라고 할 때,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김치를 사랑하고 많이 먹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다. ‘우리의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인가? 그런 식으로 나가는 극단이 일본의 극우파들, 군국주의자들, 전범추종세력들 아니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게 맞다. 이 책의 제목처럼 어쩌면 ‘국민을 그만두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책 속에서는 이 부분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다. 현상을 분석하기는 했지만 좀처럼 어떤 미래의 주장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달까.
핵심적인 개념, 주장만 포착하면 굳이 모든 내용을 정독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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