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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네 권을 쌓아 두고도 손이 가지를 않았다. 오지랖과 잘난척이 섞여서 읽을 수가 없었다. 혹시 유홍준의 책이 시중에 범람하고 있는 '일본은 삼국의 식민지였다. 일본 문화는 삼국이 모두 전해준것이다.'라는 식의 서술이면 어쩌냐 하는 내 어리석은 걱정때문이었다. 1권 부터 읽기 시작하는데 역시 유홍준선생님은 달랐다. 그의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일 교류사에서 우리가 일본에 끼친 문화적 영향은 실로 크다.일본의 고대 문화사와 미술사는 한반도의 영향에 대한 언급없이는 풀어갈 수 없다.~~~~아무리 한반도의 영향이 컸다 하더라도 일본이 영향만 받고 자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반도의 영향을 받아 일본 문화로 만든 것은 엄연한 그들의 문화임을 우리는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문화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이 절대로 중국이 베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창조한 한국문화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아주 오랫동안 우리가 그들에게 영향을 주고 우리도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쌍둥이 같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정권은 자연과 외부세계가 주는 자극에 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다르게 반응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선은 왕권은 다소 약해졌지만 계속 강력한 중앙집권주의적 국가를 유지했다. (이상하게도...) 반면 일본은 천황은 허울만 있고 막부가 정권을 쥐고 있는 봉건주의 국가를 완성하였다. 소빙하기의 시련속에서 두 국가 모두 쇄국이라는 정책을 유지하였다. 조선과 일본 모두 잔뜩 움추린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조금씩 조선과 일본이 갈라서게 된다. 처음에는 아주 미묘한 차이였지만 19세기 말에 이르면 넘어설 수 없는 간격이 되어버렸다. 마치 복리이자를 계산할 때 0.001%의 차이가 백년후에는 엄청난 액수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책을 읽으면서 어디서부터 달라진것인가를 찾았다. 조선이라는 왕조가 수명이 다 되었지만 대안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 일본은 막부 봉건제를 마감하고 천황제라는 중앙집권국가로 돌아섰다. 19세기 중반 조선이 힘이 빠진 상황에서도 국가를 통제할 수 있었던 체제의 힘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중앙 정부가 길을 찾지 못할 때 각 지방의 봉건 다이묘들은 자신들의 길을 찾았다. 그 후 개혁에 성공한 번을 중심으로 일본은 개혁에 성공하고 근대화에 합류한다. 결국 봉건제 붕괴가 근대로 가는 길인가? 우리는 너무 일찍 중앙집권을 이루었던것일까? 조선의 체제가 너무 완성도가 높아 지방의 일탈을 용인하지 않아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일까? * 조선과 일본 모두 백성이 피를 흘린다. 결과는 달라졌지만. * 자본주의 성공은 역시 민중의 피를 먹고 자란다. 21세기에 흘려지고 있는 피는 어떤 체제로 가기 위헤 뿌려지는 것일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