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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담의 "깃발"을 다시 읽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생전에 홍희담 소설을 '문학적'으로 꽤나 박대 했다지만
여기 실린 다섯편의 글은 젠체하지 않으면서 부끄럼을 깨우쳐준다.
깨달음도 문학의 미덕이라면 '깃발'은 좋은소설 축에 드는 것이다.
(그런걸 보면 글쓴이의 기교와 독자가 받는 감흥은 별시리
인과관계가 없는 것도 같다. 좋은 시인이 반드시 뛰어난 산문가일
수는 없겠지만 최영미의 산문집은 이전의 시집에 비해, 재기발랄한
글빨에 견주어, 너무 시시하다.)
스무해 전, 홍희담 소설이 민중문학의 빛나는 성과로 자리매김한 데는 세대와
좌우의 편애가 크게 작용했다-라는 지적에는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민주화에 관한
평가가 바닥을 기고 민주화세대라는 별칭이 더이상 훈장이 되지 못하는 시대에
이르러 홍희담의 단편들이 처음으로 묶여나오고, 꿋꿋하게 읽혀지고 있는 것을
돌아보면, 그 편애가 정당한 편애였다는 사실 또한 엄연하다. 때때로 역사에 대한
분별있는 판단력은 매끄러운 도식이나 화사한 문체가 가지는 마력 이상의 생명력을
문학에 부여한다. 80년 광주의 핵심을 비교적 정확하게 움켜쥠으로써 "깃발"은,
작품에 드러나는 몇가지 표나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우렁찬 메아리를 얻었고,
다섯개의 단편만을 남긴 과작의 소설가 홍희담의 그림자를 한국 문학사에 길게
드리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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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잘 쓰는 고종석은 홍희담의 『깃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그것도 자신의 두 번째 소설집의 서문에서. “글의 그릇이 삶의 그릇보다 클 수는 없는 노릇이라면, 내 글은 앞으로도 결코 대동세상을 구가하지 못하리라. 그것은 애달픈 일이지만, 어찌하랴, 내 몫이 그 만큼인 것을.” 그렇다. 홍희담의 글은 글보다 훨씬 큰 삶이 글에 담겨 있다. 1980년 5월 광주의 체험이. 이 책에 들어있는 1988년 《창작과비평》에 기고한 처녀작 「깃발」부터 비교적 최근의 소설들은 10여년의 시간차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1980년 5월 광주를 겨냥하고 있다. 그리고 5월은 그의 소설 속에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깃발」은 대학에 막 들어와 ‘광주 민주화 항쟁’을 공부하면서 한 번쯤 들었음직한 내용을 최초로 제기한 소설이다. “광주 민주화 항쟁의 본질은 (시민 항쟁)이 아니라 민중 항쟁이다.”, “광주 민주화 항쟁을 통해 드디어 한국의 진보진영은 미국의 본질을 직시했다.” 이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이 「깃발」에 녹아들어가 있고, 그 덕분에 홍희담은 처녀 소설을 그의 대표작으로 삼게 된 ‘불행한’ 작가가 되었다. 책 뒤에 임규찬도 언급을 했지만, 「깃발」은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도식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노동자ㆍ민중과 학생ㆍ지식인을 명확하게 구분을 한 후,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노동자ㆍ민중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천상 임노동 관계에 편입된 ‘자본의 노예’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다른 양 노동계급의 연대나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에 냉소하는 최근의 세태에서는 ‘시대착오적인 소설’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어쩌랴. 1980년 5월 도청을 마지막으로 사수했던 사람들이 학생ㆍ지식인이 아니라 노동자ㆍ민중이었다는 사실은 명백한 것을. 또 그 때 동지들을 죽음으로서 지켰던 사람들의 대다수가 학생ㆍ지식인이 아니라 노동자ㆍ민중이었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인 것을. 나는 이 무거운 홍희담의 소설을 ‘관계’에 대한 소설로 독해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항상 1980년 5월에 맺었던 ‘관계’들 때문에 버거운 삶을 살아간다. 심지어 소설 속 어떤 이는 자기가 광주를 피해 남편과 피신한 후 5ㆍ18 베이비를 임신했을 때, 광주에서 총에 맞아 죽은 임산부의 무게에 평생 짓눌려 자기가 낳은 아들을 증오하고 결국 암으로 목숨을 잃는다. 단지 사진으로만 만난 그 임산부와의 ‘관계’ 때문에 말이다. 나는 문학의 기능이 일종의 ‘계몽’과 ‘정화’에 있다고 믿는다. (누구는 이런 나를 보고 너무 ‘근대적’이라고 할 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현재의 많은 소설과 시들은 단지 삶의 겉모습만 피상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삶의 이면에 있는 질서의 본질을 꿰뚫고 더 나아가 그 질서의 전복을 추동하는 힘이 사라진 ‘겉도는 문학’만 범람하고 있다. 겉도는 관계에, 겉도는 삶에, 겉도는 문학이라니. 홍희담의 소설은 무엇보다도 이 겉도는 세상살이에서, 겉돌지 않는 관계가 무엇인지를 진실한 목소리로 보여준다. 더구나 그 목소리는 결코 약해 빠지지도 않았다. 궁극적으로는 그 겉돌지 않은 관계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슬펐다. 이 땅에 살아가는 과반수의 사람들이 ‘광주’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실이 슬펐고, 그렇게 잊혀져갈 ‘광주’가 슬펐다. |
| 김형중은 “88년에 이 소설이 처음 독자들을 만났을 때, 그 영향력은 대단했다. 항쟁 주체의 문제(지식인 학생이 아니라 기층 민중), 미국의 개입 문제, 민중적 예술의 문제, 리얼리즘과 계급적 당파성의 문제 등등, 이 길지 않은 중편 소설 하나가 당대의 문학계에 제기하지 않은 문제는 거의 없었다. 그리하여 〈깃발〉은 오월소설의 이정표이자, 모델이 되었고, 바로 이 작품의 그늘에 가려 많은 다른 소설들(가령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와 같은 걸작을 포함해서)이 광주항쟁 주변만 맴돈다고 호된 비판들을 받았었다.”고 술회하면서, 그러나 정작 다시 읽는 감회는 무미건조하다고 솔직히 털어 놓는다. 그는 그 까닭에 대해 “이제 읽어보니 〈깃발〉은 예술이 아니었던 듯만 싶다. 그것은 사회학적 사실들의 문학적 번안물이 아니었을까? 고발정신과, 계급의식의 고취, 그리고 역사적 자리매김을 제외하고 나면 〈깃발〉에서 남는 건 사실 ‘신파’ 뿐이다. ‘예술’을 제외하고 〈깃발〉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예술’이 없었으므로 오래 읽히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고 쓴다. 물론 홍희담은 “〈깃발〉은 기록의 나열이 아니라 문학이다. 광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서라면 소설을 읽겠는가. 소설을 읽는다면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작가가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가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러한 지점을 주목하면 할수록 실망스러워지는 것이 사실. 아무래도 차라리 논픽션이었으면 생명력 있는 작품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솔직히 그런 식의 익숙한 비판은 왠지 송구스런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경외스러움은 분명히 있다. 고종석은 《깃발》을 읽으며 “글의 그릇이 삶의 그릇보다 클 수는 없는 노릇이라면, 내 글은 앞으로도 결코 대동세상을 구가하지 못하리라. 그것은 애달픈 일이지만, 어찌하랴, 내 몫이 그 만큼인 것을.”이라고 탄식한다. 그러나 당연히 나는 전혀 애달프지 않다. 고종석만큼 삶의 가녀림을 무참해하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내게 광주는 기억도 못하는 유아기 때 일이었고, 그것을 본격적으로 알게 될 때는 이미 온갖 문헌이 넘쳐 흐르고, 심지어 TV 드라마에서까지 착취하는 역사적 풍경이 되어 버렸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