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우리 속의 다문화는 농촌총각에게 시집 온 베트남 아가씨나 동남아시아의 불법체류자들, 한국말을 곧잘하는 공중파의 파란 눈 입니다. 아니면 구멍가게만큼 많은 다국적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 체인점, 미니멀한 일제품, 서구식 주거환경, 외래어, 외국어, 메이드 인 차이나 이기도 합니다. 한민족을 강화하는 역사수업은 우리의 기상을 드높히려는 수고를 아끼지 않지만 실상의 우리는 다문화의 환경 속에 여실히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발 커피는 농촌에서도 최고의 각성제이며, 새벽까지 불을 밝힌 도시의 빵집은 수입밀로 달콤합니다. 몸소 다문화를 느끼고 있지만 다문화를 '알'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 3세계로의 역사탐험이나 외국여행은 상당히 제약적인 일입니다. '우리의 역사 교과서에서 아프리카는 단 한 줄'이라는 방송을 떠올리며 <아프리카-사라져가는 세계부족 문화>를 기꺼워 하며 읽었습니다. <코박사와 함께 떠나는 다문화 여행>에는 이런 내용의 신문기사가 나옵니다.
2008년 보건 복지가족부의 발표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이 15만 가구를 넘어섰다고 한다. ..매년 결혼하는 열쌍 중 한 쌍은 외국인과 결혼한다는 의미이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09년 10월 현재 등록된 외국인은 85만명이다.
한국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다문화가 되어가고 있는지 굳이 통계를 들추지 않아도 알게 되는 일이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다문화에 소외되는 교육을 받습니다. 중국은 한국의 70년대라는 통상적인 말처럼 문화적 소양이나 경제발전이 뒤떨어졌다는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놓고,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면 그건 오로지 선진국에게서라는 공식이 저절로 도출되는 세계화는 왜곡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살아가기 ''더불어 사는 세상'을 외치며 <코박사와 함께 떠나는 다문화 여행>이 마무리된 점은 지당하지만 아이들을 다문화로 이끌기에는 조금 부족한 구호의 순진함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이런 교훈은 책의 말미에만 잠시 등장합니다. 본문의 태국, 베트남, 필리핀, 몽골로의 흔치않는 문화여행은 진지하고 차분합니다. 각 나라를 대표할 만한 동물들을 길잡이 삼아 역사 문화 음식 종교 생활방식 기후 주거 외교 등 한 나라의 흐름을 빠짐없이 다루려고 노력합니다.
그 문화들이 낯설면서도 익숙한 까닭은 서양과 달리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많이 남아있고, 쌀을 주식으로 한다거나 식민지의 아픔이 서려있다는 것, 개인주의와는 거리가 먼 친족 문화가 발달된 점 등이 친밀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과 '다른' 가치와 정신을 확인하는 것 만으로도 다문화 책의 가장 큰 목표는 달성됩니다.
불교가 종교를 넘어 생활 그 자체로 여겨지는, 미소로 인사를 대신하는, 수상가옥이 발달한 태국. 여성이 존중받는, 무더운 날씨 때문에 의복이 발달하지 않은, 1000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은 베트남. 프랑스의 똘레랑스와도 같은 히야, 소수민족이 우대받는, 파인애플과 바나나 경작에 쌀 농지를 빼앗긴 약소국의 실상 필리핀. 세상의 중심이자 신이버린 땅, 어머니인 땅을 달래며 이동하는, 어린이도 큰 일손인 몽골.
다문화를 경험하고 아는 일은 우리를 찾는 일과도 진배없습니다. 선진 문물의 이해에 이런 약소국에 대한 존중이 겸비되는 신선한 바람이 불기를 바래봅니다. 소수의 부족을 인정하는 정책으로 전통을 지키는 제도나 자연의 순화에 몸을 맞추며 살고 있는 유목은 얼마든지 배울만한, 우리가 간직해야할 잃어버린 무엇이기도 하니까요.
<코박사~>/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대교출판//<낫토~>/타가미요코, 이대연/한솔수북
또 하나 독특한 다문화 책이 있습니다. <낫토와 비빔밥>은 지식책의 딱딱함을 줄이고 몰입을 돕는 소설적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인 어머니를 둔 태랑이를 이유없이 싫어하는 같은 반 윤호가 서로 몸이 뒤바뀐 설정은 아무래도 익숙하지만 서로 다른 환경을 이해하고 존중하기에 '내가 너라면'이라는 가정만큼 쓸모 있는 것도 없습니다. 왠만한 충돌이나 괴리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화해는 따놓은 당상입니다.
'이유없이' 싫어 한다는 건 사실 무의미한 단서입니다. 역사가 함부로 잊혀지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걸림돌이 되는 것만큼 무익한 것도 없습니다. 이런 단순한 설정이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나 가치를 알아보기에도 적당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해가는 과정에 참여해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인의 한국살이가 얼마나 뻐근한지, 한국인에게 일본인의 존재가 얼마나 거추장스러운지 서로의 입장을 공평하게 나누어 보여주는 이 책은 판타지이자 아름다운 접점입니다.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근거를 우리가 더 많이 가지고 있다해도, 세계의 교과서에 독도가 다케시마로 오기 되었다고해도, 결국 그들도 다케시마가 자기네 땅이라는 교육을 받았던 순진한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은, 다문화를 영위해야할 아이들에게 소모적인 논쟁만을 물려주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모아집니다. 이를테면 '나쁜'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이유없는' 증오적 대상물을 주는 건 피해야 하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