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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 자서전’이라고 부제가 붙어 있다. 자서전이 분명하다. 하지만 고리타분하지 않다. ‘그러면 그렇지, 위인은 태어나는 것부터 다르다니까, 거봐 하늘에서 별똥별 떨어지잖아, 내 태몽이 뭐라고 했더라…….’ 이런 푸념(?)하면서 읽던 예전의 위인전은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살아 있는 위인, 우리와 함께 숨 쉬고 먹고 마시는 그들의 이야기에 열광한다. 평범한 영웅, 한승헌 변호사는 분명 그런 분이었다.
400쪽 남짓 되는 책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고 훌쩍 읽어버렸다. 그렇다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여든을 바라보는 한 변호사의 삶이 가벼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가볍기는커녕 책을 읽는 동안 우리나라 현대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있다는 뿌듯함마저 느꼈다. 필자는 에필로그에서 자신은 주인공이기 보다는 화자의 역할에 마음을 썼다고 말한다.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담고 있는 이 글은 한 인간의 자서전이라고 칭하기에는 그 그릇이 작을 지도 모르겠다. 한 변호사는 특유의 시원하면서도 간결하고 그러나 따뜻함을 잃지 않는 문체로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넘어 대한민국의 우울한 젊은 날을 서술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전쟁 통에 학교를 다니고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대통령의 시대를 모두 거쳐 온 그는 살아있는 역사나 다름없다. 하지만 글은 어둡지만은 않다. 문장력이 뛰어난 필자여서인지 실제로도 유머감각이 남다르다는 이유여서인지 글에 힘은 있으나 결코 자신을 미화 시키지는 않는다. 그래서 읽는 동안 마음이 편하다.
“ 세상의 수난에는, 그냥 앉아서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희생(victim)과 불의와 맞서 싸우다가 당하는 희생(sacrifice)이 있다고 한다. 나의 작은 고난이 그 어느 쪽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가 선두의 사람, 즉 앞장서서 일을 꾸미고 이끄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 대열의 어중간한 자리에서나마 결코 이탈하지 않고 꾸준히 따라다녔다고 할 수 있다. ……” p.406
역사는 어는 특정한 인물이 만들어 내는 것인 줄 알았던 적이 있다. 국사 교과서에는 왕이 아니면, 장군이 아니면 그의 이름을 올릴 수 없는 신성한 곳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철이 들고 나서는 임금의 뒤에서, 장군의 뒤에서 그들의 그림자를 묵묵히 지켜주는 많은 무명씨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무명씨다. 내가 백 년을 산다한들 거대한 역사의 빅 북(big book)에 이름 세 글자 세길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 하지만, 내가 없이, 수많은 무명씨 없이 임금도 장군도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 선두에 서지 않아도(내 입장에서는 한 변호사님은 거의 선두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지만), 대열을 이탈하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