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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가 대유행을 하며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전염병은 전염성과 치사율이라는 두 가지 지표로 설명된다. 모든 전염병이 가지는 공통적 특징은 이 두 지표가 서로 상반된 결과치를 갖는다는 점이다. 즉 전염성이 높으면 치사율이 낮고,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의 경우는 전염성이 상대적으로 현저히 낮다. 그런 연유로 인류는 수 없이 많은 새로운 전염병의 발생에도 불구 꿋꿋이 그 종을 유지 확장해 올 수 있었다. 과거 어느 하나라도 이 룰을 심각하게 깨는 전염병이 있었다면, 인류는 지금과는 다른 큰 고비를 맞이해 이미 멸종해 버렸을 수도 있었다. 약 100여년 전만해도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중국 내륙의 후베이성에서 발발했다고 하면,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것만 수십 년, 전 세계로 확산되려면 최소 200년은 걸렸을 거라 한다. 당연히 그 전에 전염병은 숙주를 잃어 소멸했을 터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자연파괴나 환경오염 같이 도덕성을 논할 경우는 아니지만)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전 세계가 단일생활권이 되어버린 문명의 이기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그림자다. 이 책의 주제인 루머 역시 문명의 이기가 증폭시킨 어두운 그림자다. 과거에도 특정인들의 필요에 의해 루머가 양산되고 활용되었지만, 인터넷과 SNS의 발전으로 루머는 전에 없이 거대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인터넷 등이 정보의 비대칭과 여기서 야기된 사회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객관적 사실이 무색하게도 루머는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과 속도가 아니라, 정확성이기 때문이다. 정보를 생산해내는 주체가 불특정 다수로 확장되면서 생산된 정보의 정확성은 현저히 떨어지고, 잘못된 정보 생산에 따르는 도의적 물질적 책임도 거의 사라졌다. 앞뒤도 근거도 없는 루머들이 정보란 미명 하 무분별하게 생산되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확장되며, 결국 비수가 되어 무고한 이들에게 꽂히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일종의 집단심리를 통해 설명한다. 루머의 생산자는 (허풍을 떨기 위해서, 또는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가볍든, (타인에게 가능하면 심각한 피해를 주기 위해) 무겁든 어떤 의도를 가지고 루머를 만들어 낸다. 문제는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이러한 루머들이 많은 이들의 입 소문을 통해 사회적으로 실재인 것처럼 받아들여 진다는 사실이다. 여기엔 집단이 가지는 '사회적 폭포효과'(Social Cascades)와 '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경로가 활용된다. 사회적 폭포효과란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릴 때,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참조(의존)하려는 경향에 의해 유발되는 효과를 말한다. 즉 자기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루머를 믿으면 자기도 그 루머를 믿는 경향을 보이는데, 특히 아는 게 전혀 없는 주제와 관련된 루머를 듣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믿으려고 하는 경향이 더 강해진다. 알아내는 과정의 고충을 믿음을 통해 간단히 떨어내려는 심리적 기재가 발동해서다. 집단 극단화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 그 전보다 더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입증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기가 처음에 가졌던 견해가 다른 사람의 동조를 얻었다는 이유 만으로도 더 극단화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입장에 동조한다는 사실을 안 다음엔 자신감이 상승, 모호하고 자신 없던 견해와 판단이 확신으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가지 경로가 한번 더 증폭되는 이유는, 이러한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주입된 루머가, 마치 자신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 믿어버리는데 있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행동이 사회적 압력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는, 독자적인 정보와 판단에 근거한 것이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이렇게 루머는 믿음이 되어 한 개인을 파괴하고, 멀쩡한 기업을 쓰러트리며, (사회 또는 경제) 시스템을 붕괴시킨다. 루머는 당연히 남의 말에 영향을 잘 받는 사람들을 차례로 접촉했을 때 잘 전파된다. 사회적 네트워크는 극단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루머를 잘 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의 말에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성향일 가능성이 크다. 루머는 이들을 절묘하게 비껴가야만 거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당연히 일정 정도의 영향력을 형성한 루머를 그들은 맨 나중에 접하게 되는 것이다. 루머는 같은 이유로 그 루머가 사실이라고 칠 때, 물질적 · 정신적 혜택을 보는 이들 사이에서 더 잘 전파된다. 이들에게 루머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그 영향과 기대효과만이 중요하다. 분명 표현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거짓 사실도 보호할 필요가 있다. 정직하게 쓴 거짓 사실을 보호해 주는 것은 결과적으로 지나친 '자기검열'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그 거짓이 판을 뒤집거나 반사이익을 기대해 고의로 조장된 것이라면, 시스템 보호를 위해 반드시 통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단순히 의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면책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더 나아가 '과실'(Negligent)과 '부주의'(Reckless) 사이에는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실은 적절한 수준의 주의 의무를 기울이지 않은 것인데 반해, 부주의는 증거 검토를 (고의 또는 필요에 의해) 회피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실제로도 법은 이런 식으로 판단한다. 어느 조직이건 조직 내 목표와 평가가 모호해지고 ‘숟가락 얹기’ 등 무임승차가 용이한 환경이 조성되면, 루머는 언제고 고개를 들고 힘을 과시한다. 우리가 이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루머의 생산자나 이를 이용하는 무임승차자가 얄미워서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건전한 생각과 태도를 가진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에는 그들의 몸과 마음을 떠나게 하거나 동일하거나 유사한 행태를 지향하도록 전염시키는 것이 진짜 문제다.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목표,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 명확한 역할 및 책임과 권한 부여. 비단 루머를 잠재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조직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도 이런 이상적인 요소들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필요한 것과 갖추는 것 차이에는 엄청난 갭이 존재한다. 물론 이런 요소의 확충은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하나, 그렇다고 쉽게 만들고 지켜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전염병을 예방하는 당위적 방법을 몰라 전염병에 걸리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현실적 해결방법으로 이런 요소를 전제하는 건 무책임한 주장이 될 수 있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거나 늦추는 현실적 대안이 ‘사회적 거리 두기’라면, 조직 내 암세포 같은 루머의 확산을 막기 위해선 비슷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확실하지 않은 갖은 루머와 거리를 두는 것은 물론, 자신이 지닌 ‘감정의 필터’와 ‘정서적 고정관념’과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좋은 사람은 무슨 짓을 해도 사랑스럽고, 미운 사람은 무슨 짓을 해도 꼴 보기 싫고 틀렸다고 느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며 배제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누구라도 (자각증상도 없이) 언제고 루머에 감염될 수 있다.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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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우리사회를 혼란에 빠트린 광우병파동 그리고 금년 천안함 침몰을 두고 나타난 사회현상 가운데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는 진보와 보수 양쪽이 타협없이 대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진보 측에서는 입장을 강화하기 위하여 다양한 주장을 언론과 인터넷 등을 통하여 확산시켜 왔습니다. 이 가운데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그럴 듯하게 포장된 것도 있어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극좌나 극우집단에서는 아주 치밀하게 조직된 사회적 네트워크가 동조화 압력의 도움을 받아서 정치적 반대자들에 관한 치명적인 허위사실들을 수시로 유포한다.”는 선스타인교수의 주장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2008년 광우병파동 때는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는 루머를 차단하기 위하여 그들의 주장의 허구를 밝힐 수 있는 과학적 자료들을 토대로 반론을 만들어 설명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번에 하버드 법대의 캐스 선스타인교수가 쓴 <루머>를 읽으면서 당시에 이해할 수 없었던 사회적 현상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시대에 던지는 新문명비판’이라는 부제를 단 <루머>는 루머가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과정을 파헤치고 또 루머를 차단하는 방법도 요약하고 있습니다.
선스타인교수는 서문에서 “이 책은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쓰여졌다. 첫째는 다음과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놓기 위해서다. 왜 사람들은 거짓 루머와 파괴적인 루머, 심지어 말도 안 되게 황당한 루머를 받아들이는 것일까? 어떤 국가나 단체에서는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치부해 버리는 루머를 왜 다른 어떤 국가와 단체에서는 사실로 받아들이는 걸까? 두 번째 목적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내놓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이러한 거짓 루머의 악영향에 맞서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의 일부는 파괴적인 거짓 루머를 유포하는 자들에 대한 ‘위축효과’가 아주 탁월한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거짓루머에 휩쓸리게 되면 그 후유증이 남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거짓루머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거짓루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전파되며, 어떻게 자리잡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피지기여야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교수는 루머의 정의를 “루머는 일단 사람과 집단, 사건, 단체와 관련해 진실이라고 입증되지 않은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실 광우병의 위험을 부풀리는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 사람들은 왜 과학적 진실을 믿지 못하는가? 말입니다. “특정 루머가 자신들의 이익과 합치되고, 자신들이 사실이라고 믿는 내용과 들어맞기 때문에 이를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이 자신의 이념적 성향과 부합되는 주장을 하기 위하여 과학적 사실 가운데 자신이 믿고 싶은 내용만 인용하는 짓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을 끌어들여 마치 자신들의 주장이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처럼 포장을 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마음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루머의 ‘사회적 폭포효과’와 ‘집단 극단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자기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루머를 믿으면 자기도 그 루머를 믿는 경향을 나타내는 것이 ‘사회적 폭포효과’이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 그 전보다 더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를 ‘집단 극단화’입니다. 얼마전 촛불시위를 돌아보는 모 일간지의 기획기사에서 일부 전문가들의 생각에 변화가 있었다는 고백이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그 직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모여 다시 이견이 없다는 결론을 유도하는 모양새를 연출했습니다.
사실 2008년에도 광우병에 대한 위험성이 제기되면서 열렸던 몇 차례 토론회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충분한 근거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인용하는 매체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위험을 부풀렸습니다. 이번에도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논의하는 토론회에는 아무도 나서지 못하여 토론회가 무산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끼리만 모여 위험하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루머가 쉽게 확산되는 것처럼 진실도 쉽게 확산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균형잡힌 정보와 틀린 내용을 확실하게 바로 잡아주면 거짓 루머를 물리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거짓루머가 유포될 때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답니다.
블로그 커뮤니티에서 간혹 일어나는 견해의 차이로 인하여 시작된 갈등이 때로는 법정으로까지 비화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새겨두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옮겨 보겠습니다. “일반인과 관련한 사적인 사실 보도 문제를 다루는 경우 표현의 자유 원칙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 블로거나 사진기자가 여러분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경우, 다시 말해 거짓은 아니지만 매우 개인적인 사실을 공개하는 경우 헌법에 따라 법원은 손해배상 조치를 금지하지 않는다. 인터넷은 통제하기가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특히 익명의 필자가 너무도 많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실을 공개하는 경우, 그 사람들이 공적인 인물이 아닌 한 그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한신대 철학과의 윤평중교수는 “한국사회 ‘촛불’의 비밀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을 부제로 하여 “통렬한 루머의 사회심리학”이라는 해제를 읽고서 눈초 역시 꼭 같은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마쳤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2008년 제2차 광우병사태를 인용하여 선스타인 교수의 루머의 이론을 증명해보고 싶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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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연예인, 기업체 등에 대한 비방 흑색 선전, 각종 음모론 괴담 등 거짓 루머는 어떻게 생성되고 퍼지는가, 우리는 왜 이런 이런 거짓 루머를 믿는걸까, 그리고 그 해결책에 대한 내용의 책입니다. 루머는 사회적 폭포현상과 집단극단화 현상으로 생긴다고 합니다. 사회적 폭포현상은 다시 정보폭포현상과 동조화 폭포현상으로 나뉘는데 정보폭포현상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루머를 믿고 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믿는데 틀릴 수 있겠냐며 자기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생각에 따라 스스로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P51) 우리 속담에 안 땐 굴뚝에 연기나랴? 는 것이죠. 그러나 루머에 대한 정보는 많이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입니다. 정보가 부족하니 이 책에서 말하는 “수용문턱” 이 낮고 남들 말에 휘둘리기 쉬운거죠. 또 하나는 스스로 자기검열을 통해 자신이 다수와 뜻을 같이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동조화폭포현상입니다.(P58) 다수의 사람들이 보이는 확고한 견해앞에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해 거짓으로 말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자기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의문을 억누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집단화 행동을 같이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듣고 싶어하는 심리로 동조화현상이 나타나게된다는 것이죠. 이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루머와 다른 내용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침묵해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또 남들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알게되면 자기입장을 조금이라도 바꾸어서 많은 이들이 따르는 주류의 방향으로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죠.(P80) 이것은 집단극단화 현상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집단극단화 현상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면 이전 성향과 같은 방향을 유지하되 더 극단적인 입장을 갖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P67) 그러니까 합리적인 방향을 모색해보자느니 좀 더 중용의 방법을 찾아보자느니 하는 명목은 별 소용이 없고 도리어 기존 성격만 더 극단화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더 고약한 문제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 주려는 노력이 기존 인식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오히려 더 강화시켜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보를 중립적인 방법으로 처리하지 않고 정보에 반응할 때 그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이 영향을 미치며 이는 “편향동화” 현상으로서 자신이 이미 알고있는 편향된 정보에 맞추어서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에 균형잡힌 정보가 사람들로 하여금 루머에 대해 더 강한 믿음을 갖도록 유도한다는 것이죠. “인지부조화”를 줄이고 싶어하는 심리 때문에 들어서 기분좋은 즉, 자기의 기존 입장과 방향을 같이하는 정보는 일부러 찾아서 듣고, 들어서 기분 나쁜 정보는 일부러 회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불인정편향” 이라 부르는 현상으로 자기가 믿고 있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주장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는 동기가 매우 강하다는 것을 말합니다.(P98) 그러면 해결책은 없는걸까?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사람들의 편견을 바로잡고 거짓 루머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전통적으로 “생각의 시장” 개념이 모범답안으로 알려져 있으나 저자는 여기에 대해서도 경계하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왜 조심해야 하는지 전통적 모범답안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는지에 대한 설명도 저자의 혜안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참고로 이 책의 저자 캐스 선스타인의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함께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