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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팡당시츄에이션?
이외수님의 사부님이야기의 첫인상은 이랬다. 1983년 출간이후 개정판이 새로 나왔다고 한다. 핸드북사이즈의 두툼한 책이 두 권, 페이지를 술술 넘겨보다가....... "에게... 그림이네? 글은 별로 없네..." 대중매체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책에는 일종의 호기심과 읽어야 할 것 같은 웬지 모를 의무감이 생긴다. 오래도록 모른 체 하던 책이 손에 들어와 기뻤지만 이외수님 특유의 호흡이 긴 입담을 희망했었는데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닌 가 보다.. 각설하고 재빠르게 한 번 읽고 또 한 번 읽었다. 그냥 지나치고 싶다면 한 번만 읽어도 되겠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모른 체했던 미안함때문일까 아니 그냥 한번 읽고는 이해가 안될 것 같아 다시 읽었다. 두 번 읽어도 시간이 그리 오래걸리지 않는 분량이다.
그대여, 만약 그대도 마음의 눈이 뜨여 있다면 인정하리라. 작은 먼지의 입자 하나도 얼마나 거대한 우주인가를.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볼 일이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정말 커질까? 눈알같이 생긴 동그라미, 그 안의 또 동그란 흑점 하나 올챙이 알로 보인다. 나는 그렇게 보이더라. 알에서 태어난 특별한 올챙이, 남들은 다 까만데 지만 하얗다. 바로 얘가 다른 걸 꿈꾼다. 사는 곳, 자그마한 연못, 어쩌면 저수지.. 이 곳과 다른 또 다른 세상은 없는 걸까? 바다라고 곳이 어딘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존재들이 있을까? 같은 말이 다른 의미로 전달되는 세상, 조그마한 연못, 하얀 올챙이가 꼬리를 일만번 저으며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이 특이했는지 까만 올챙이 한 놈이 따라 붙는다. 나도 당신을 따르고 싶어요.하는 속내가 보인다.
갑자기 물속세상의 민물고기들과 양서류의 천적들이 등장하면서 왕년에 붙들고 살았던 "개구리 왕눈이"의 가재랑 도롱뇽도 생각나고 요즘 아이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스폰지 밥"이 사는 물속세상도 머릿속을 거침없이 스쳐간다. 물론 이 책과 관련없음이지만 내 머릿속 이상한 상상력은 이런 세상도 그려지는 것을 어쩌랴.
세상을 몇바퀴 돌려서 비틀어보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다. 웃자고 하는 일을 죽자고 달려들어 진짜 죽고 죽이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는 요즘이다. 너무 진지한 척 하지 마라. 다 거기서 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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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너무 바쁘다.내 주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문명의 병인 일감들..최신기종의 스마트폰,노트북,초고층아파트,수십억대의 외제차을 갖지 못하면 문명에 뒤쳐진 것처럼 신문은 광고로 우리를 유혹한다.그래서 인간들은 자꾸자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그리고 소유하라고 유혹한다.하지만 문명을 쫒아 가려 할수록 우리는 문명의 병에 시달릴 뿐이다.그래서 인간에겐 아무것도 안 할 자유가 있다고 말하는 현자들이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을 발견하고 만들어내지.그리고 자기들이 발견하고 만들어낸 것 때문에 고민하지..그 고민때문에 고민하지.그러다 결국은 자기네들이 만들어낸 것들에 의해서 죽어가지(P44~45)
매일 아무것도 안 하면서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한정치산자나 금치산자가 아닌 한.그래도 잠시 짬을 낼 수는 있다.현대인에게는 짬을 낼 여유가 필요하다.강원도 산골에서 도인처럼 살고 있는 이외수님이 부럽다.<사부님 싸부님>은 잠시 여유를 갖고 읽어보기에 좋은 책이다.아담하고 예쁜 핸드북이라서 아무때나 들고다니며 읽기에 좋겠다.여백의 미가 풍부하고 삽화가 참 재미있다.이외수님의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지만,몇장 살짝 넘겨보자마자 입가에 웃음이 절로난다.
대우주 안에 소우주.그 안에 자아.그리고 운명이 꼬리처럼 붙어 있다고 보면 어떨는지(P28)
우화형식이기 때문에 책의 분량에 비해 글의 양을 많지않다.읽기에 부담없는 양이다.자투리 시간에 읽기에 좋겠다.그러나 이 책의 내용을 다 소화에 내기에는 상당한 인생의 지혜가 필요하다.쉽고 재미있고 배꼽을 쥐고 웃게 만드는 내용도 있지만 이외수님이 많은 명상 속에서 얻은 깨달음이 담긴 작품이다 보니 한 번에 저자의 생각을 모두 읽어내기에는 내 생각의 그릇이 너무 작다는 것을 느꼈다.
자연을 보고 우주를 볼 줄 아는 그대는 역시 이외수님이시다! 이 우화는 그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다.또한 우리의 이야기다.그가 느낀 세상에 대한 고독,사랑등을 담고 있다.어리석은 인간군상들에 대한 실랄한 비웃음도 담겨있다.자연의 모든 것이 그렇듯 인간도 결국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 순환될 수밖에 없음을.그래서 우리 인간에게 겸손하기를 바란다.그래도 결국은 사람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다.많지않은 분량의 글로 인간사 성찰을 압축시킨 이외수님의 지혜에 감탄이 나온다.그것이 바로 털털한 이외수님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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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우화상자"라고 표현한건 어쩌면 어릴때 보던 이솝우화와 같은 설정이여서인것 같아요. 이솝우화는 아이들에게 쉽고 재밌는 이야기이지만 지나고 보면 교훈이 있잖아요. 이 책은 바다속을 배경으로 한 어른들을 위한 우화라고 보면 되겠네요^^
책표지를 넘기면 친절하게도 이 책을 읽는 방법이 나와요. 길지 않은 그 방법을 숙지하시고 읽어나가신다면 이 책을 현명하게 볼 수 있을것같네요^^ 그리고 이 책으로 인해 느끼거나 깨닫는건 읽는 각자가 다를것이라고 생각되어지네요. 하얀 올챙이가 검은 올챙이에게 가르침을 주고자한것도.. 이 책 중간중간 독자에게 각자의 생각을 가져보라는것도 아마 그런 의도가 아니였을까 하거든요..
심오하지만 심오하지않게 단순하지만 단순하지않게
가 이 책인것같아요!
또 하나 인상적이였던것은 아무렇게나 성의없게 그려진 그림들 같아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생물들의 성격과 감정이 고스란히 표현되어져있다는 점이였구요^^
글이 적고 그림이 많아서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겠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의외로 한페이지마다 눈을 사로잡고 생각을 하게되어 시간을 가지며 읽게되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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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이외수 작가의 독설이 잦아졌다. 독설? 사실 독설이라 할 수도 없다. 비정상적인 세상을 향해 정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뿐이니까. 그럼 이외수 작가는 왜 갑자기 그러는 것일까? 알고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작가는 작품 활동 초기부터 가치판단의 자유를 부르짖어 왔다.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우화집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요즘은 한층 높아진 인기 덕에 그의 말과 글들이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의 초기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우화상자 <사부님 싸부님 1,2>(해냄, 2009년)가 다시 출간되었다. 1983년 초판이 발간된 책이니 25년도 더 지난 책이다. 그러나 그의 글들은 전혀 고루하지 않다. 뛰어난 감수성으로 써내려간 이야기와 직접 그린 그림들이 생동감을 준다. 게다가 점점 더 각박해져가는 사회현실로 인해 더 절실히 가슴에 와 닿는다. 출간 당시에 읽었더라도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도대체 이 사회가 얼마나 더 살기 힘들어진 것인가. <사부님 싸부님>의 사부님은 강원도 두메산골의 한 웅덩이에서 태어난 흰색 올챙이다. 다른 올챙이들과 달리 올챙이 시절부터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해 개구리로 변하지 못하고, 그대로 올챙이가 되었다. 그리고 바다로 가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웅덩이를 과감히 벗어난다. 우화상자의 이야기는 이 사부의 여정을 좇는다. 여행 도중 제자를 받아들이고, 그가 느끼는 세상을 향해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화두를 던진다. 작가는 시작부터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할 것을 주문한다. 흰색 올챙이가 올챙이로 보이기까지도 쉽지만은 않다. 사부의 여정 중 등장하는 다양한 물고기들의 행태는 인간들의 이기적인 모습을 풍자한다. 주어진 환경들은 어지러운 이 세태를 반영한다. 사부가 바다로 나아가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굳이 바다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도 되지만, 바다로 나가는 순간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환호한다. 짧은 우리네 인생과 꼭 견주어 읽어야 할 것이다. 조그만 물웅덩이에 갇혀 사는 사람도 많고, 허영과 이기심과 들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삶이 곧 죽음임을 깨닫고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큰 것 속에서 우주를 발견할 수 있지만, 작은 것 속에서도 우주를 발견할 수 있다. 인생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고 살 수 있다면 짧은 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우리 사부를 가끔씩 떠올려봐야겠다. 작은 물웅덩이를 벗어나 큰 뜻을 향해 나아가는 흰색 올챙이처럼 마음을 좀 비우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by 꽃다지, 2010년 1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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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작가. 바로 이외수 님이다. 아마 그의 작품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도 무릎팍도사나 시트콤, 각종 TV프로를 통해서 그의 모습을 보았을테다. 아이들은 그를 해모수라 부르기도 하고, 혹자는 도인의 모습이라 보기도 하지만, 친근하기만 하다. 주로 산문 위주의 글을 통해 이외수님의 글을 만났고, <하악하악>이란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외수님에 대한 평가는 참 극과 극으로 나뉠 때가 많은 거 같다. <하악하악>을 통해서도 그랬다. 나처럼 재미있다, 마음에 와닿는다라며 열렬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있는 반면, 짧은 글과 텅빈 여백을 문제삼아 돈아깝다라는 말을 하는 독자도 있었으니 말이다. 내 생각을 그렇다. 명언 한 줄에도 큰 감명을 받을 수 있듯이, 텅빈 여백 속에 한 줄의 글로도 깨달음을 주었다면 좋은 글이라고.
나에게 이외수님의 글은 그런 느낌이었다. 마치 그의 외모처럼 모든 걸 깨우친 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 특히나 세상일로 한 참 시끄럽고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사회에서 그가 날카롭게 날리는 한 줄의 글은 어떤 말로 꾸미고 설명하는 것보다 마음에 와닿는 힘을 발휘한다. 속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는다고나 할까.
그리고 이번에 <사부님 싸부님>이라는 우화집을 만나게 됐다. 1983년에 발행 되었던 이 책은, 컬러링하고 재편집하여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을 읽는 법! 당신의 닫힌 마음 열기.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읽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름도 없는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그에 따라 생각도 움직인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고정관념.
예를 들어보자. ‘⊙’란 기호를 보고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똑같은 기호임에도 어떤 사람에게는 총구로, 엽전으로, 눈알로, 과녁으로, 문어의 흡반, 단추, 연필 뒤꼭지, 술병 뚜껑.. 그리고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그대가 마음에 가지고 있는 생각대로.. 모든 것을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교만함과 무식함. 자기네 방식대로만 사고하는 인간의 방식을 꼬집는다.
이 책의 주인공은 강원도 두메산골 웅덩이 속에서 태어난 한 무리의 올챙이 중 다른 놈들은 까만데 혼자만 하얀 돌연변이 올챙이이다. 작고 힘없는 올챙이라고 무시하지 마시라. 다른 올챙이와 달리 형이상학적인 이 올챙이. 노인과 동자의 문답소리를 들으며 많은 것을 깨닫고 있었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도 더 이상 발육하지 않아 열등감과 소외감으로 날마다 자살만 생각하던 이 하얀 올챙이는 그 노인을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며 도를 깨달아 갔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의 잔인함, 자신들이 만들어 내고, 발명한 것 때문에 고민하고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까지도 다 깨달은 올챙이였다.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을 발견하고 만들어내지.
그리고 자기들이 발견하고 만들어낸 것 때문에 고민하지.
플라스틱을 만들어내고 플라스틱때문에 고민하고
폭탄을 만들어내고 폭탄 때문에 고민하고
심지어는 고민까지 만들어내어
그 고민 때문에 고민하지.
그러다 결국은 자기네들이
만들어낸 것들에 의해서 죽어가지.
가련하여라 인간이여.
올챙이의 입장에서 인간을 뒤돌아보면
인간보호캠페인이라도 벌어주고 싶은 심정이라니까. - p.44 ~47
개구리가 되기를 거부하고 바다로 떠날 것을 결심한 하얀 올챙이는 저수지에 당도해 많은 물고기들을 만나 '바다'에 대해 묻는다. 하지만 더 넓은 곳을 생각하지 않고, 현실에만 안주하며, 이기심과 당장의 먹는 것에만 관심있는 다른 물고기들의 모습이 꼭 지금 우리 인간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하얀 올챙이가 꿈꾸는 바다를 알기위해 저수지에서 만난 다양한 생물체와의 대화, 그리고 하얀 올챙이의 행동거지를 쫓아다니며 엿보아온 꼬마 올챙이가 하얀 올챙이를 싸부님으로 모시겠다며 나타난다. 하얀 올챙이의 행동거지를 따라하며 도를 배우려는 꼬마 올챙이의 모습이 꼭 철없는 우리네 모습 같기도 하더라.
누군가는 소설가가 왜 만화를 그리냐고 한 사람들도 있다지만, 가벼운 것 같은 그림 속에서도 인생에 대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교만함에 대해서도.. 한참 말이 많았던 '로봇물고기'에 대한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인간은 과학으로 모든 것이 해결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금도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며 만들어 냈던 많은 발명품들. 하지만 그로인해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고, 또 고민하고 그렇게 반복되는 생활에서,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가? 로봇물고기가 떠다니면 책속에 나왔던 물고기들이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본다.
나는 하얀 올챙이 정도는 되지 않고, 하얀 올챙이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따라하는 꼬마 올챙이 정도 될까? 아니면 꼬마 올챙이가 아니라 바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싸우기만 하는 어떤 물고기만 할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이외수라는 작가에 대해 또 한번 매력을 느꼈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가는지, 소설로써 표현할 만한 능력을 얻지 못해 우화집을 만들어보았다고 하지만, 어떠한 소설보다도 생각하게 하는게 많은 책이었다. 책을 읽고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몫이다. 어떤 사람은 가볍다고 해버릴지 모르나, 누군가에는 많은 깨달음을 주는 책.. 그리고 그대는 나의 싸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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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쌤의 글은 언제나 즐겁다 촌철살인의 기지와 폭소가 숨쉬고 있고 빛나는 유머 감각이 들어 있어 고성능 폭탄처럼 도처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고 매복하고 있다 그 유머감각이란...유머 감각..그래 나는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하루키의 책을 좋아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재미있고 개그콘써트 만큼이나 넘치는 개그 아이템으로 무장한 이외수 선생님의 그 창조적인 글쓰기에 언제나 감탄하면서 양념치킨 뜯듯이 행복한 기분으로 그 분의 글을 읽은지가 이미 꽤 되었다 이번에 나온 사부님 싸부님의 사랑스러운 에세이는 어느 웅덩이에 사는 사뭇 철학적이고 심오한 자아를 가진 흰 올챙이가 주인공이다 벌서 주인공의 등장부터가 심상치 않다 성장을 멈추고 자신의 운명을 거부한 형이상학적인 사고 방식을 견지하는 구도적 올챙이라니 주인공인 흰 올챙이의 여정읅 따라가다 보면 물 속에 사는 갖가지 생물들의 다종다기한 일상들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물 속 생물들의 모습은 마치 거울에 비친 상처럼 우리 인간 세상 속의 군상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즉 이 이야기는 물 속에 비친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인간들의 내면 깊은 곳까지 풍자하고 성찰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우화를 통하여 우리들의 본연의 모습을 들여다 보면서 풍자하고 비판하며 동시에 어떤 것이 우리들 영혼을 고양시키고 우리들 영혼이 당면한 문제인지에 대해 고찰하는 이외수 선생님의 철학우화인 셈이다 이 외수 선생님이 보기에 인간은 먹이를 구하고 그 먹이를 구하려는 욕망에서 치열하고 비열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물 속의 육식 고기와 조금도 다르지 않는 저열하고 동물적인 곳이다 그래서 먹이와 이성에 대한 욕마으로 온몸을 무장한 채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어기찬 전투의지를 불태우면서 가장 중요한 자신의 영혼은 관심에도 없이 내팽겨치고 사는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인 동물의 세계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반성을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아 이렇게도 참을 수 없는 동물의 존재적인 욕망에 사로 잡혀 있었구나 나는 이 우화에 나오는 어떤 동물에 해당할까 가슴에 두 앞발을 얹고 진지하게 성찰...이라기보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과연 이 지상의 땅거죽위에서 먹이를 구하고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하루 하루를 그냥 그렇게 되는대로 살아가는 단세포동물이 아닐까 이런 자각 아닌 자각이 내가 느낀 자괴감에 가까운 참담한 인식이었다 나는 그저 먹이를 구하고 세속의 욕망에 몸이 달은 한 마리의 동물이라는 허무한 성찰의 기회를 이 작품을 통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성과였다 작가인 이외수 쌤이 보기에는 아마도 그랬으리라 인간이라는 존재는 가장 우월한 존재인 마냥 동물들을 하찮게 보는 인식의 빈 곳을 통하여 뭔가 가장 큰 물건을 그냥 좌시하는 크나큰 인식의 오류를 하고 있는 중대한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동물들 중에서 진화된 형태의 최정상을 점하고 있는 영장류이지만 사실은 물 속 생물들과는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 일차원적이고 단순한 욕망에 급급한 생활을 하는 자연계의 이단적인 존재이자 쓰레기같은 하등한 종이었다 그리고 그 욕망의 아귀다툼 속에서 윤리도 도덕도 양심도 도외시한채 그저 하루 하루의 향락에만 몸을 맡긴 어쩔 수 없는 동물이었다 심히 반성한다 나는 그랬으니까 돈과 명예와 권력과 출세에 눈이 멀어 입신양명한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그렇지 못한 내 처지를 한탄하며 시기와 질투에 내 영혼을 가학하며 좀 더 많이 가지기 위하여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걸어 다니는 욕망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외수 쌤은 따뜻하고 자애롭게 그리고 지극히 익살맞게 고개를 들어 다른 곳을 보라고 다정하게 옆에서 조언하신다 인생은 그런 것만으로는 이루어진 것이 아닐꺼라는 아주 단순하고도 거대한 가르침을 이 책에서 나는 희미한 예감으로 조우했다 존재는 단지 마음을 바꿔서 생에 대한 시각을 달리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정감 넘치는 그림과 짤막한 글 속에 이외수 선생님은 아니 이외수 싸부님은 설파하고 계셨다 단지 이 땅위에 먹고 배설하고 높은 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피흘리는 분투만이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근원을 돌아보고 자신의 영혼 속의 아름다운 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운명을 자각함으로써 마침내 '바다'에 도달하는 거대한 우주적인 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의 또 다른 분신인 흰 올챙이의 끝없는 구도의 여행 속에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었다 이 이단적 존재인 흰 올챙이의 구도행 속에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음을 고백하고 싶다 일상이 팍팍하고 내 자신이 비루하고 초라해 견딜 수 없을 때 이 작은 우화의 다정한 메시지가 인간은 단지 육신으로만 이루어진 생물적인 존재가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과 존재론적 의미를 가진 형이상학적이고 정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나는 비록 이 지구라는 바다에서 한 마리의 이름없는 물고기일지 모르지만 도의 차원에서 보면 각각의 아름다움을 가진 독립된 우주이고 정신적으로 풍요한 의미와 가치를 가진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을 이외수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우화를 읽으면서 제 마음은 따뜻해졌고 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 저도 모르게 고양된 인식으로 아름다운 철학의 세계에 진입하여 형이상학적이고 정신적인 존재로 도모하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외수 쌤의 그 아름답고 독창적이며 유머러스한 문장과 그림으로 저의 빵꾸난 가슴에 커다란 빛이 스며들어와 저의 영혼은 얼마쯤 풍요로워지고 따뜻하며 여유로워졌습니다 선생님의 그 올곧고 드높은 가르침에 저의 메마른 인식과 가열찬 욕망이 한시름 무거운 짐을 벗고 한동안 자유롭게 하늘을 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도 언젠가는 바다에 도달할 수 있겠지요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바다에 도달하여 그 거대한 평화와 하나가 될 그 순간을 기다리겠습니다 이외수 선생님이야말로 저의 싸부님이십니다 선생님 선생님을 싸부님으로 모셔도 되겠지요??
경인년 흰 호랑이해 싸부님도 복 많이 받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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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다는 건 아직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생각조차 없다는 건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음을 의미한다. 생각의 많고 적음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느냐가 중요할 뿐.
요즘 어떻게 살아야 할 지 흔들린다. 사부님 싸부님~ 우화 속 까만 올챙이가 되어 묻고 싶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책장을 펼치면 넉넉한 여백 속에 하얀 올챙이 한 마리가 등장한다. 대단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올챙이 한 마리는 끊임없이 삶의 깨달음을 찾아 여행한다. 하얀 올챙이는 처음에 작은 웅덩이 속 수많은 올챙이 중 한 마리였지만 이제는 우리 마음의 스승이 되어 다가온다. 이외수 님의 우화상자는 1983년생이다. 나보다 어리고 볼품 없는 하얀 올챙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겨우 나이 몇 살 더 먹었다고,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그게 무슨 자랑이랴. 나이 들어도 철없으면 부끄러워야 마땅하다. 사부님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 책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 한 장, 글 한 줄이면 족하다.
"싸부님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요?" "물론 가장 소중한 것이지." "그럼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론 가장 쓸모없는 것이지." "어째 가르치심이 ......" "내 가르침이 신통치 않은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받을 네 그릇이 부족한 줄은 모르느냐. 너는 지금 맞는 말이라고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걸 배웠느니라."
온갖 좋은 가르침이 많아도 결국 내 그릇만큼 담을 수 밖에 없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하얀 올챙이마냥 작고 하얀 이 책이 진정 나의 사부님이 되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내 그릇은 어느 정도인가? 자기 깜냥도 모른 채 알려달라고 조르는 철딱서니는 아닌지. 한낱 이름 없는 올챙이 두 마리는 저수지를 떠나려 한다. 희망이라는 바다를 향해서. 예전 어떤 소설을 읽으면서 희망이라는 단어가 참 슬프게 느껴진 적이 있다. 희망은 절망 속에 싹트는 씨앗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올챙이가 왜 하필이면 살 수 없는 바다를 찾아 헤매는 것일까? 우리 인생 여정은 작은 웅덩이에서 시작하여 광활한 바다를 향한다. 삶과 죽음은 전혀 다른 말이 아니다. 살면서 왜 사는지 궁금해 하지만 결국 어떻게 죽느냐로 귀결되듯이. 짧은 글은 긴 여백 속에 빛난다. 원래 책을 두 세 번씩 읽는 성격이 아닌데 이 책은 자꾸 읽게 된다. 가장 훌륭한 스승은 침묵하며 말을 아낀다. 말은 수많은 오해와 억측을 낳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화상자가 왜 이렇게 비어있냐고 투덜대지 말자. 이외수 님의 우화상자, 내게는 값진 선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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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텅 비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 이것은 무엇으로 보이는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다. 그리고나서 등장했던 우리들의 싸부님. 물에 비친 달속에 들어앉아 까만 올챙이와 선문답을 주고받던 그 그림. 글은 많지 않으나 글보다 더 많은 의미들이 가득했고, 등장인물이 많지 않으나 그곳에서 머뭇거리던 존재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맨처음 이 책을 보면서 나는 그 여백들이 참 좋았다. 하릴없이 이것저것 채워넣기보다는 나에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주었다는것이 고마웠다는 말이다. 무거운 이야기를 가벼운 그림과 함께 이끌어가고 있는 작가의 그 역량에 압도되기도 했다. 선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어 얼핏 보면 이건 뭐야? 할수도 있겠지만 짤막짤막한 대화속에서 내게 전해져오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책을 열면 바로 들려오는 작가의 한마디, 닫혀있는 당신의 마음부터 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교과서에서 배운 고정관념도 버리십시오.... 어쩌면 당신의 모습이 일그러져 보일수도 있으나 노하지는 마십시오...
원하나와 선하나로 만들어져 온 우주를 표현해내고 있는 하얀 올챙이가 바다를 꿈꾼다. 강원도 어느 산골의 작은 웅덩이에서부터 시작되는 우주. 어느 청개구리 부부 사이에서 513남 41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돌연변이 하얀 올챙이. 시작부터 범상치가 않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도 특별할 것 없이 태어난 우리의 하얀 올챙이일수도 있겠다. 그가 바다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예사롭지가 않다. 바다를 아십니까? 물으며 길을 가는 하얀 올챙이가 만나는 존재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현실, 눈앞의 삶에만 전전긍긍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누구나 하얀 올챙이처럼 꿈을 꾸고 있지만 누구나 하얀 올챙이처럼 꿈을 찾아 길을 떠나지는 못한다. 그러고보면 하얀 올챙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꿈에 대한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라고 숙제를 내주시는 것 같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힘겹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냐고.
하얀 올챙이 한마리의 시선과 생각을 통해 우리에게 투영되어지는 삶의 모습은 정말 처절하다. 넘기는 책속에서 환영처럼 보여지는 수많은 인간군상들.. 바늘로 찌르듯이 콕콕 와닿는다. 어려운듯하면서도 어렵지않게 들려주는 작가와의 선문답. 우습게 생각되어질 수도 있는 한 장면을 생각해보자면 이렇다. 어느날 갑짜기 나타난 까만올챙이 한마리가 싸부님! 하고 부르는 그 장면이다. 왜 사람들은 아이들을 경망스럽게 키우려고 들까요? 짱구, 새우깡, 꼬깔콘, 꿀꽈배기, 쌍쌍바, 짜장면, 빼빼로... 애들이 먹는 것들이 모두 경망스러운 된소리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던 그 장면... 작가는 거기에 이렇게 마음을 달아놓았다. 언어는 마음의 거울이니라. 마음이 각박하면 자연히 되고 거센 발음을 자주 내뱉게 되지. 너는 부디 네 나이에 어울리는 말씨를 쓰도록 하여라..네, 싸부님! (-251-252쪽) 어쩌면 일그러진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크고 높아서 우리도 어쩌지 못하는 도 (도(刀) 는 칼이다!) 를 마음속에 품으려고 하기 이전에 우리자신을 한번 더 돌아보면 안되는거냐고 그렇게 묻고 있는 것만 같다.
1편과 2편으로 나뉘어져 있어 2편에 대해 내심 기대감이 부풀었다. ○... 텅 비어 있다고 말하지 말라 ●... 텅 비어 있는 것은 곧 가득 차 있는 것이다. ⊙... 그대 스스로 이 안으로 들어가보라. 견고한 관념의 갑옷부터 벗어던지고... 철저하게 버리라한다. 우리들의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을. 무엇이고 애초에 이름지어진 것은 없는데 인간이 이름을 지어 그것의 틀을 만들고 그것의 범위를 정하였다고. 달팽이의 느림을 비웃지 말며,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보다 못한 것이 인간이 아니겠느냐고. 불신(不信)시대와 불신(不神)시대를 살아가고 있어 모두 다 믿을 수 없다는 작가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는 불만투성이 물고기와 한심이, 못난이, 옥떨메, 얼간이, 바보라고 못생긴 자신의 모습을 탓하는 모든 물고기들에게 맞는 말이니 웃음으로 화답해줄 수 밖에 없지 않느냐던 뚝지의 대답을 들으며 한번 더 나를 생각해보게 된다.
신(神)이 마음안에 있듯 성전도 마음 안에 있을 뿐이라던 작가의 말씀에 공감한다. 인간이 지어낸 이름으로 구분되어질 수 없는 창조주는 이미 우리안에 있었던 것이다. ○●... 텅 비어 있다고 말하지 말라 텅 비어 있는 것은 곧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가득 차 있다고 말하지 말라 가득 차 있는 것은 텅 비어 있는 것이다. ⊙... 다른 듯 보이지만 본디 하나인 것을... 이름앞에 금(金)자가 붙어 있다고 제가 무엇이라도 되는양 부푼 탐욕과 툭 불거진 이기심과 아부근성을 감추지 못하고 항상 꼬리를 흔들어대며 우쭐거리는 금붕어는 되지 말지어다. 아주 흔한것들속에서 아주 귀한 것을 발견할 줄 아는 것도, 아주 작은 것들속에서 아주 큰 것을 발견할 줄 아는 것도 모두가 내 안에 있음이다. 눈 앞의 현실에 집착하는 우리의 모습을 하얀 올챙이 한마리와 물고기들이 나누었던 대화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이며 작가 역시 비움의 철학을 우리에게 말하며 끝을 맺는다. 마음을 비우라고, 그래서 삶의 여정을 편하게 가야한다고...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은 것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멀어지면 다시 만날 수 없는 것들도 많다. 내게 있어서 이 책은 정말이지 다시 만나 좋은 것중 으뜸이라고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벌써 십년도 넘었을텐데 다시 나온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설레임을 어찌 말로 다할까 싶기도 하고... 그 옛날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작은 책도 아니었었다. 아이들 동화책처럼 커다란 크기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서점에서 이 책을 고르던 내게 뭐 그런 책을 다 사냐고 했던 지인의 말이 떠올라 피식거리며 웃어보기도 했다. 그랬던 책을 누군가에게 빌려주었는데 아마도 내게 돌아오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로 간직하고 싶었던 책을 빌려주고 돌아오지 않았던 때의 그 상실감이라니... 그래서일까? 생긴모양에서 옛 맛을 찾을 수는 없었어도 나를 반겨주었던 올챙이 사부님의 말씀은 여전하게 나를 감동시킨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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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 >는 격언이 있건만.. 여기 그 격언을 한방에 부정해 줄 올챙이가 탄생했으니...!! 여기에 균형잡히지 않은 -뒷다리가 나오면서 배가 튀어나오는 - 몸매를 거부하는 한 마리 올챙이가 있다.
흰 종이에 점 하나 찍어도 여백을 꽉 채울 만한 울림을 전해주는 몇 마디. 그게 이외수씨의 저력이 아닐까 한다.
지난해 국민의 베스트셀러 하악 하악을 펴내시고 두 번 째 맞는 물고기(?) 이야기이다. 사실 하악 하악은 서점가에서 펼쳐보지도 못하게 꽉 둘러매져있는 책을 보면서 이게 만화책, 단행본인가? 이렇게 비닐 포장을 해 놓고 사람이 보지도 못하게 하고..하는 서운한 생각이 들어 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에겐 이 책이 이외수씨가 펴낸 첫 물고기 책이다. 물론 물고기라 해도 예삿 물고기가 아님은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수긍할 것이다. 사유하는 올챙이, 작은 올챙이의 싸부님 하얀 올챙이.. 처음 봤을 땐 그저 하얀 종이 위에 덩그러니 놓여진 올챙이 알이었을 뿐인 그 하얀 올챙이가 책을 읽으면서 정이가는 귀여운 녀석으로 둔갑한다.
이 책은 잘 의인화 된 에세이집 같은 느낌이다. 우화라는 말 자체에는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인생의 교훈을 전해준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 읽어도 어린이들의 시선과 어른들의 시선이 다르다. 어렸을 때는 재밌었지만 어른이 되어 읽으면 그 이야기에 담긴 교훈에 무서워지는 수가 있다. 둘 다 동물이 등장하는 겉으로 봐선 귀여운 이야기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글씨와 글이 적고 여백이 많은 책장이 잘 넘어가는 책이지만, 올챙이는 선문답을 하듯이 인생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옮겨준다. 한줄 두줄 되는 글씨 사이로 무한한 우주의 여백이 느껴진다.
이외수씨의 글을 읽으면 문득 이외수씨의 삶이 존경스러웠다. 우리 사회는 현재 살아계시는 분들 중 언론에 널리 알려진 존경하고 본받아야 할 어른상이 부족한 편이다. 주변 어른 중에서 멘토를 찾기도 하늘의 별 따기라고 생각한다. 이외수씨는 그런 점에서 아직 올챙이인, 혹은 올챙이에서 개구리가 되기를 거부하는, 혹은 이미 개구리가 되어 버린, 또 혹은 개구리 말고 뱀장어나 지렁이 등등의 역할(소설 속 의미는 동물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을 수행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삶의 모범을 보여준다. 그들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사유를 하게 한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이외수씨의 거침없는 필력을 즐기를 것도 기뻤고,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