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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조선의 마지막 왕녀라고 했다...학교다니는 내내 배운적도 없고 들어보지도 못한 인물이다...공주도 아니고 옹주라 했다...명성황후의 딸이 아닌 후궁의 딸이라 했다...그러니 기억을 못할수밖에...표지가 너무 처연하고 애처롭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는 생각없이 덜컥 예약판매 신청을 했다...그리고 책이 왔다... 망국의 옹주로 태어나 우리나라도 아닌 타국 일본에서 살아야 했으며 마지막까지 비참한 생을 마쳐야했으니 남겨진 기록도 별로 없고 기억하는 이 또한 없으니 작가가 얼마나 힘들게 책을 써내려 갔을지 짐작이 간다...그래서인지...위인전도 아닌것이 소설도 아닌것이 그냥 교과서의 딱딱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는 책이다...읽는내내 분한맘이 들었다...하지만 그뿐...읽고난뒤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소설속에서만 살아있는 이야기...역사는 역사일 뿐이고 되돌릴수 없으며 이미 알고 있는 일어나버린 것의 결과물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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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일컫는 덕혜옹주(1912~1989).. 사실 난 그녀를 잘 몰랐다. 학창 시절 배운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와 반대로 명성황후 관련된 이야기는 책, 사극, 영화, 뮤지컬등을 통해서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느정도 알고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덕혜옹주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전무한 상태.. 그래서 이 책을 통해서 작게나마 그녀의 비극적인 삶이 오롯이 전달된 느낌이다. 물론, 이 책은 소설이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당시 시대상과 제도, 덕혜옹주의 삶에 대한 묘사는 여러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소설적 개연성을 위해서 재구성 작업이 있었지만 모두 허구로 치부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그녀의 삶은 어떠했을지 정리해서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렇다. 이야기의 서막은 일제 강제 합방(병합)을 앞둔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통해서 당시 시대상을 이야기 한다. 대한제국을 만든 고종은 일본에게 이미 폐위당하고 아들 순종이 즉위한 상태.. 하지만 대한제국의 미래는 없다. 일본의 식민지배로 민중의 삶은 이미 피폐해가고 암약중인 독립군과 일본 앞잡이(극중 갑수역)가 활개치는 세상에 이미 고종 조차도 뒷방 할아버지 신세로 전락한지 오래다. 이런 고종에게 말년에 얻은 막내 딸 덕혜옹주(이하 덕혜)만이 유일한 희망이자 낙이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고종은 1919년 어린 딸을 두고 승하(독살설 제기가 있지만 확실치 않다)하고.. 이러면서 유년 시절 아비의 사랑을 받고 자란 덕혜는 이때부터 아비를 잃은 슬픔에 당차게 일본을 향해 모질찬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망국의 운명앞에 그녀를 포함한 이왕가의 황족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지는 시련을 맞이한다. 그러면서 10대시절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간 덕혜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바로 일본 대마도주 번주의 아들 소 다케유키와 마음에도 없는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뜻하지 않은 결혼과 일본에서 생활은 자신의 고국 조선을 그리워하며 이미 작고한 어머니 양귀인과 아비 고종을 그리워하는데.. 물론 그 중심에는 조선으로 가고 싶다는 열망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그런 가운데 그녀는 점점 피폐해가며 우울증과 함께 정신질환을 않는데.. 혹자는 그녀의 남편 다케유키의 폭압에 그렇다고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도리어 남편은 그녀를 보듬어 주는 따뜻한 남자로 나오며 자신의 부인의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때로는 자상한 남편의 모습이다. 하지만, 덕혜는 딸 정혜(마사에)를 낳고부터 조선인과 일본인의 피를 반반씩 갖은 자신의 딸을 보며 심한 자괴감에 빠지며 자신의 가둬둔 늪에 한없이 빠지고 만다. 그러면서 당시 2차 세계대전 발발과 태평양 전쟁을 통해서 패전이 짙던 일본은 항복하며 국내외 상황이 악화되자.. 이 둘 부부도 위기에 처하고 어느새 훌쩍커버린 딸 정혜는 엄마 덕혜옹주를 가녈차게 몰아붙인다. 그러면 그럴수록 덕혜는 심한 정신적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채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덕혜는 해방 전후로 정신병원에 감금되고 만다. 그러면서 남편 다케유키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딸 정혜의 행방불명까지.. 그녀는 인생의 나락으로 이미 떨어진 상태다. 과연 그녀는 거기서 살아 돌아왔을까.. 물론, 역사적 기록대로 그녀는 김을한 기자의 구명운동으로 환국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는 정신병원 탈출장면에 대한 묘사를 넣으며 소설적 재구성으로 비극적 삶에 대한 발호로 투영시켰다. 이렇게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났지만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감내해야 했던 30여년 그녀의 비참한 삶을 이야기한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었다. 바로 옹주의 정혼자였던 박무영(김장한, 고종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이자 양아들로 김을한의 동생)과 그녀를 지근에서 끝까지 지키려했던 '복순'이라는 나인이다. 여기서 박무영은 명성황후를 지키려 했던 호위무사 '무명'처럼 그는 덕혜를 일본에서 어떻해든 구출하려는 구국청년단의 수장이다. 그리고 복순은 바로 덕혜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로 그녀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나인이다. 특히 여기서 복순의 캐릭은 소설 중반이후에 도리어 덕혜옹주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한 느낌이다. 작가는 아마도 복순 그녀를 통해서 일본 식민지 시대의 그들의 광기를 그녀를 통해서 투영시킨 느낌이다. 바로 식민지배로 인한 민중의 피폐와 위안부 문제, 그리고 패전이후의 삶까지.. 복순은 어찌보면 덕혜에게 차마 메스를 못가했던 부분을 가한 그런 처참한 피해자로 그린 것으로 본다. 이렇듯 작가는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소개글로 말문을 연 <덕혜옹주>.. 기존 일본의 번역서에 그치며 지금까지 우리네 손으로 그려지지 않은 그녀의 삶이 오롯이 이렇게 한권의 책으로 태어난 것이다. 책의 큰 얼개인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써 고귀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잊혀져간 덕혜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이야기는.. 나라 잃은 자의 설움과 함께 매 순간마다 조국을 그리워했던 어찌보면 그냥 한 여자의 비극적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황녀였다는 사실.. 더군다나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터치로 그려냈기에 그래서 더욱더 울림이 있지 않나 싶다. 그것이 바로 이런 소설이 주는 맛일 것이다. 직관적인 사료(史料)가 줄 수 없는 그런 감흥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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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라기에, 노출된 몇 개의 리뷰를 읽어보고 괜찮으려니 생각하고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몇 번 헛웃음이 나더군요.
우리 나라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인 덕혜 옹주, 그 분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사진 같은 것들 유심히 보곤 했지요. 안쓰럽고, 안타까운 우리 역사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소설적 재료를 갖고, 글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군요.
문장력이 뛰어난가요? 풀어 놓은 인물들, 이야기 전개가 흥미진진한가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내 책장에 오래 꽂아두고 읽을만한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만한 책이, 글이, 소설이, 이렇게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게 놀라울 뿐이구요.
고군분투 열심히 공부하고 글쓰는 훌륭하고 출중한 작가들에게, 고루 고루 시선이 흩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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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혜옹주를 조국으로 모셔가기 위해 이승만 정부에 귀환을 요청했다. 그러나 왕정복고를 두려워한 이승만은 왕실 재산을 국유화하고 왕족들을 천대했다. 이씨 왕가의 자손들은 해방이 되고도 아무도 돌아도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박정희를 만나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청했다. 박정희가 물었다. '덕혜옹주가 대체 누구요?' 나는 대답했다. '조선의 마지막 왕녀입니다.' 「덕혜옹주를 환국을 주도한 신문기자 김을한의 말 중에서」
역사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던가..? 그 말에는 역사는 항상 유사한 일들이 반복되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거나, 현재의 가치관이 과거 역사의 실재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포장한다는 의미로 주로 쓰여지나, 거울을 통해 자신의 객관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역사를 통해 자신들의 현재 모습을 알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아무리 부끄럽고 남사스러운 것이라 할 지라도 그것이 현재의 우리를 있게한 이유이고 원인이라면, 그 과거의 사실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어떤 연결고리를 통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지를 유추해나가는 작업을 게을리 해서는 아니되지 싶다.
이 책은 그런 고증(?)의 작업을 비교적 부드럽게 진행하였고.. 그래서 누구라도 쉽게 그러한 고증작업에 용기를 내어 접근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100% 사실적인 기록이 아닌 다소 허구의 인물과 심리묘사 들이 가미된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리기는 하였지만, 그것의 한계를 인식의 대중화에 기여한 바와 구지 세밀하게 저울질해볼 것도 없이,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을 것이라는 건, 이러한 작품들이 예전부터 꾸준히 인기를 끌고 인정을 받아온 것 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의 주인공 '덕혜옹주'는 고종의 늦둥이 딸이다. 일제 침략기에 태어난 이 분은 현재 황제의 동생이며, 전 황제의 딸의 신분으로 태어났음에도, 어려서부터 제대로 그 영화를 다 누리지 못했다. 물론 당시 서민들의 고통에 비할 바야 아니었지만, 일국의 옹주(왕녀)로서 왕족 나름대로의 '나라읽은 설움'을 몸에 익히며 자라게 된다. 소녀가 될 때까지 자신의 이름도 갖지 못하다가 나중에서야 일본에 사정하여 겨우 황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그녀는 곧 유학을 빙자한 볼모가 되어 일본행이 결정되고, 어려운 타국생활 중 일본 대마도 백작과 강제로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이후 자존심을 많이 죽이며 지내야했던 결혼생활, 사랑하지 않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국적불명의 딸에 대한 넘치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반 조선인으로 살면서 고통받는 딸의 어머니에 대한 원망 등 격변기의 여성으로서 파란만장한 생애가 소설 전반에 묘사된다. 결국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그녀는 일본의 어느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모두에게 잊혀진 존재로 방치되었다가, 이후 어느 기자의 도움으로 다시 독립한 (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의 땅을 밟게 된다.
일국의 왕녀 신분으로 이웃나라에 나라를 빼앗기고, 다른 나라의 이해관계 속에서 비운의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것은 비단 당사자나 주변인들 뿐 아니라 일반 백성이나, 우리같은 후손들의 생각 속에서도 자존심상하고 억울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것을 넘어 더 중요한 가치, 더 중요한 교훈이어야 하는 무언가를 무심하게 빼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지배하는 자, 권력과 명예를 가진 자, 영향력을 가진 자가 당연히 가져야 하는 소위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문제'이다.
실정으로 나라를 잃는데 적잖이 원인을 제공하였으니, 그것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 당시 사회의 지도층으로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만일 소설에서 묘사된대로 덕혜옹주가 그 당찬 모습과 곧은 품성에도 불구하고 일본 소학교를 다니고, 기모노를 입고, 일본유학을 가고, 일본인과 결혼을 하였다면.. 그것은 그녀가 자신 스스로를 '기구한 운명의 불쌍한 여인'으로 생각하는 '자기연민'을 느꼈을 뿐, 왠지 자신의 신분이 가진 의무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지 싶다. 만일 그녀가 정말로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위치를, 그리고 자신의 의무를 자각하고 있었다면, 하라는 대로 끌려다니며, 백마를 탄 잘생긴 구국청년단이 자신을 구해주기를 꿈꾸거나,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며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기 전에, 그녀는 자신의 나라 조선의 독립을 위해 좀 더 적극적이고 의무감 넘치는 행동을 취해야 하지 않았을까?
읽으면서, 끊임없이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던 문제는 이 작품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작가는 '황제의 딸로서 고귀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잊혀져버린 그 삶이 너무 아파서..' 라고 하였지만, 나로서는 '고귀한 삶'의 의미가 그저 의무는 쏙 빠져버린 '왕족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에 치우친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을 끝내 지울 수 없었다. 만일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어느 나라의 많은 것을 가졌고, 모든 백성의 사랑을 받던 아주 예쁜 공주가 있었는데, 어느날 온 나라를 덥친 지진으로 백성들의 집과 함께 공주가 살던 아름다운 궁전도 무너졌는데.. 집을 잃은 백성들이 아름다운 궁전이 무너져 더 이상 예쁜 궁전에 살 수 없게된 공주를 불쌍히 여기고 슬퍼한다는 (교훈이라고는 전혀없는) 동화'처럼 다소 '쓴웃음'이 나는 이야기 이상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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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마도에 갔을 때 덕혜옹주 기념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라는 덕혜옹주가 왜 여기서 살았는지 궁금한 차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도 우연히 대마도 여행을 다녀온 직후 이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그녀의 삶을 팩션형식으로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고종황제의 막내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전기로 뒤엉킨 삶을 살기 시작한다. 10대에 일본으로 끌려가 차별과 감시로 점철된 소녀시절을 보내고, 일본 남자와의 강제결혼, 정신병원 감금생활, 딸의 자살 등 파란만장한 비극적인 삶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이국땅에 비참하게 버려져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율적 삶을 살아야 했던 그녀의 죄목은 무엇일까? 지나치게 똑똑하다는 것,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살았다는 것, 조선 마지막 황제의 딸로 태어난 것... 이 세가지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녀의 일생(1912~1989)을 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크게 해방전의 시기와 해방후의 시기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은 물론 해방전 그녀의 기구한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시 나라잃은 국민이 겪은 한과 서러움외에 그녀에게는 황녀라는 신분에 따른 추가적인 제약이 가해졌다.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거와 결혼, 생활의 반경이 결정되었다.
해방후에도 그녀가 조국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는 점도 가슴 아픈 측면이 있다. 이승만 정권의 왕정복고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정치적 측면도 작용했을 수 있다. 오늘날의 다문화가족에 대한 사회적 편견 같은 것이 작용했을 수도, 일본인 아내가 된 사람에 대한 국법적인 대우문제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잊혀져버린 조선의 마지막 황녀의 비극적 삶을 되돌아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부족한 점이 느껴진다. 황녀로서는 나라가 독립이 되면 다시 궁궐생활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지 모르겠다. 따라서 현대의 잣대로 과거의 어두운 시절을 살아온 삶을 평가하는데에는 무리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의 삶이란 측면에서 볼때 조선의 황녀라는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어 보려는 노력과 의지보다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학대만 하는 그녀의 삶이 과연 옳은 것인지? 다문화 가정을 살아가면서 국적불명이 될 수 있는 자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대화의 노력은 불가능했는지, 자신만의 취미나 일거리를 찾아 발전시키는 건 불가능했는지... 지금의 시각에서 재조명해보면 상당히 아쉬움도 많이 묻어나는 그런 삶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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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부끄럽지만 몇시간이 지나도 기억을 해내지 못했다. " 옹주? 공주도 아닌 옹주를 소재로 책이 다 나왔네? " 내 첫 반응은 이렇게도 무지렁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이였다. "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해도 나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였다. " (396쪽) 자그맣게 제목 <덕혜옹주> 위에 씌여진 조선의 마지막 황녀 라는 문구를 보고서야 예전에 비행기에서 내리던 노년의 황족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조선의 마지막 하면 언제나 명성황후만을 떠올렸었는데, 일본에의해 무참히 짓밟히던 그때에 명성황후뿐만이 아니라 고종을 비롯하여 덕혜옹주 그리고 여러 황족들이 일본의 만행에 온갖 모욕을 당하며 나라 잃은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본으로 끌려가 가족과 조국을 떠나보내야 했으며, 조선의 황녀이면서 일본의 백작과 결혼을 해야하는 굴욕감을 느꼈던 덕혜옹주. 그런 그녀가 온갖 멸시를 받아가며 일본에서 온전한 정신상태를 누릴수 있었던 것일까?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내버린 그의 남편의 모습이 <덕혜옹주>에서는 부드럽게 표현되어있지만, 실제는 어땠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부담감을 안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 취한 결혼이였을텐데, 과연 소설에서처럼 그는 덕혜옹주를 감싸안고자 노력을 했었을까 싶다. 또한 마지막 옮긴이의 말을 보면서 나는 경악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조선이 독립을 한 후에도 덕혜옹주가 쉬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으며, 그것을 우리 조선이 막았다는 사실이 나는 정말.....부끄러웠다. 우리가 먼저 찾아모셨어야 하는 우리의 핏줄을 우리가 먼저 내친것도 모자라 버려버렸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러나 왜 우리의 역사는 이들의 아픔을 보여주지 않는 것일까?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서에 이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역사 선생님은 단 한분도 없었음을 기억해내며,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먼저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너무나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무관심 속에 버려진 독립운동가나, 구국청년들 그리고 잊혀져간 조선의 왕족에 대해서도 우리는 지속적인 관심을 보임으로써 다음세대에게도 그 역사적 아픔을 알려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사람의 마음을 아지락하게 하는 그 말이 귓가에 맴돌고 있다. "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 (40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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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숙제를 끝낸 듯하다. 지난해 말부터 올 상반기 내내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책이라 꼭 읽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마치지 못한 숙제처럼 무겁게 짓눌렀었기 때문이었다. 책 표지 등 디자인에 예민한 편이기에 내 눈에는 가볍게만 보이는 표지 여인의 삽화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쉽게 읽힐 소설일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또, 일찌감치 지인에게 빌려놓았던 책이었으면서도 쉬이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랬던 것을 드디어, 마지막 장을 덮었다. 덕혜옹주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본 연극에서 처음 만났다. 조선의 마지막 황실에 대한 이슈도 없었던 시대였고 마지막 황실이야기는 전근대적인 역사와 맞물리는 주제이기에 민주화로 바쁜 현대사 소용돌이 속에서 잊혀 질 수밖에 없었던 이름이 덕혜옹주였다. 그런 내게 덕혜옹주라는 새 역사를 만나 게 해주신 분은 국어선생님이셨다. 국어선생님이 꿈이었던 내게 중학교 3년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올라와서 다시 만나 그 국어선생님을 ‘존경’이라는 감정에 앞서 편안한 언니 같아(신규선생님이셨다) 좋아했을 뿐이었다. 그런 나의 호감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이 선생님께서는 어느 날 나에게 연극을 같이 보러 가자 하셨고 선생님은 시골의 여고에 다니던 내게 소도시로 잠시나마 탈출할 수 있는 기회와 연극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나겠끔 일석 이조의 선물을 해주신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덕혜옹주 역을 맡았던 윤석화씨의 열연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었는지 책으로 만난 덕혜옹주가 검은 무대 속에서 스러질 듯 혼신의 연기로 역을 소화해내던 윤석화의 모습이 작은 움직임에도 뿌옇게 피어오르는 진흙탕 물처럼 떠오르는 것이었다.
대중적으로 읽힐 수 있는 소설로 덕혜옹주가 재탄생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점에서 이 책에 대해 일단 후한 점수를 주고 출발하고 싶다. 표지를 보며 갖고 있었던 이 소설에 대한 일방적인 우려는 괜한 것이었다. 생각보다 덕혜옹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 노력한 것 같아 애잔한 마음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오직 덕혜옹주에 초점을 맞춘 소설이었기에 구한말의 복잡하고 급격한 변화상을 고스란히 담은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면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역사성이 부족하다며 가벼운 소설로 폄하하고 실망했었을 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는 아마도 국민들에게 쉽게 다가가 한 사람에게라도 더 읽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쓰지 않았을까 싶다. 입시에 시달리는 학생들, 바쁜 직장인, 또는 책을 즐겨 하지 않는 사람도 재미있게, 또 쉽게 읽을 수 있을만한 책이라 지금껏 베스트셀러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왕정에서 민주정으로 넘어가는 관도기라 할 수 있는 일제식민치하 시절 덕분에 황실의 마지막 핏줄들도 잊혀 져야 했고 잊혀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왕손’이라는 것이 주는 위엄과 조선의 얼굴이라는 책임만이 덕혜옹주의 삶을 짓누르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한 여자로서, 한 사람의 조선인으로서 그 시대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처지에 촛점을 두고, 인간 덕혜의 모습, 엄마 덕혜, 아내 덕혜, 딸 덕혜의 모습과 상처를 부각시키려 노력한다. 한 나라를 짓밟는 무례를 고스란히 황족의 피를 이어 인형처럼 살고 있는 영친왕, 의친왕, 덕혜옹주에게도 범한다. 비록 배고픔을 면하고 잠잘 곳이 있다는 것에서 조선의 일반 백성보다야 나은 삶은 아니었느냐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까.(있겠지..ㅎㅎ)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책이라 내가 쓴 독후감이 참으로 식상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은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기대를 안하니 안한만큼 괜찮았다는 것. 특히 내가 책 읽는 중심이 깊이보다 대중성에도 큰 점수를 주는 편이어서인지 남녀노소 쉽게 읽힐 수 있고 읽히는 만큼 우리 역사에 대해, 승리의 역사만이 축적되어 있는 자료들에 그나마 소외된 부분을 대변해주는 소설책인 것 같아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문학성의 측면보다 대중소설로써는 정말 안성맞춤인 소설이다. 그것도, 우리의 역사가 아닌가. 여자여서, 패자여서 기억해내려는 사람도 없었고 자연스레 잊혀져 가던 역사가 새천년에 와서야 불쑥 소재거리가 되었다는 것에서 그저 큰 박수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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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 폭력성은 내적 분열증을 야기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적 침탈은 조선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았다. 고종황제의 막내딸 덕혜옹주(1912-1989)가 조발성치매라는 병을 앓게 되고 결국 정신병동에서 고독하고 불우한 일생을 마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서 덕혜는 황족이라는 사명의식과 조선인이라는 민족주의를 죽을 때까지 떨쳐버릴 수 없었던 시대의 희생양이었다. 그녀의 한 많은 삶은 단 5줄로 요약된다.
1912년 5월 25일, 고종의 막내딸로 덕수궁에서 출생. 1925년 3월, 일본 학습원으로 강제 연행. 1931년 5월, 대마도 백작과 강제 정략결혼. 1956년 8월, 외동딸의 자살, 계속되는 정신병동 감금생활과 조국의 외면. 1962년 1월, 37년동안의 유랑생활 끝에 드디어 대한민국 귀환.
작가는 덕혜와 그녀의 딸 정혜를 통해 정체성의 갈등 문제를 제기하지만 필력과 구성력에서 역부족이었다. 덕혜옹주가 일본제국주의자와 친일파 고관들의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내부에서 부글부글 끓던 한과 애환을 세부적으로 구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딸에게 버림을 받는 어머니로서의 상실감도 묘사력이 빈약했다. 딸이 '마사에'와 '정혜'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번민하는 모습 또한 매우 상식적인 차원에서 서술될 뿐 정혜의 내적고백을 통해 드러나지 않아 밋밋했다. 저자는 이 책이 덕혜옹주를 위한 진혼곡이라고 미화하지만 구천에 있는 덕혜옹주가 과연 그리 여길지 의문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인물의 형상화와 이야기 전개방식이 한마디로 형편없다. 인물들이 모두 '죽은 생선 토막' 같다. 허구적 인물인 독립투사 허승의 딸 허복순이 그나마 '소설적 형상화'라는 말에 다소 부합하는 것 같다. 하지만 덕혜옹주와 다케유키 백작 그리고 이들의 딸 정혜는 주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생동감 있는 구현에는 실패했다. 또한 덕혜의 '호위무사'라 할 수 있는 구국청년단 박무영(김장한)의 이야기도 다케유키의 경우와 대비하여 감칠맛있게 묘사될 수 있는 매력적인 인물인데 작가는 막상 이런 잠재력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구국청년단의 일원인 기수와 그의 형 갑수의 이야기는 '애국이냐 매국이냐'를 놓고 본 매우 도식적인 설정이어서 설득력이 없었다. 차라리 기수와 갑수 등 초점을 벗어난 에피소드들을 과감히 생략하고 주요인물들의 세부적인 내면묘사에 힘을 기울였다면 좀더 나은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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