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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당신은 내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내용보기
히치콕 감독의 미스터리 첩보영화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라는 작품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내용을 살펴봐도 북북서로 진로를 돌리라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의 원제목을 살펴보니 'NORTH BY NORTHWEST'로 되어 있다. 비행기 추격씬에서 북쪽과 북서쪽을 의미하는 내용이 있지만 노스웨스트 항공으로 북쪽으로 가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더 솔깃하게 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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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 감독의 미스터리 첩보영화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라는 작품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내용을 살펴봐도 북북서로 진로를 돌리라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의 원제목을 살펴보니 'NORTH BY NORTHWEST'로 되어 있다. 비행기 추격씬에서 북쪽과 북서쪽을 의미하는 내용이 있지만 노스웨스트 항공으로 북쪽으로 가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더 솔깃하게 들린다. 이 책의 제목인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도 비슷한 혼란을 주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뒤섞여 있는 제목이다. 이럴 땐 또다시 원제목을 보는 것이 좋다. "FIFTY MILES FROM TOMORROW'이다. 원제목을 그대로 직역하였다. 내용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 의미가 이해된다. 이 책은 날짜변경선에서 동쪽으로 80킬로미터(50마일) 떨어진 알래스카의 '코체부에' 만에서 태어난 저자의 이야기를 닮고 있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오늘이 80킬로미터 서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일이니 공간적 배경을 시간적 관념에서 재미있게 표현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책의 제목이 함축적으로 표시하고 있듯이 이 책은 알래스카에서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원주민의 이야기이다. 베링해의 바람과 파도에 의해 형성된,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떨어진 코체부에 만에 살고 있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에겐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전통적으로 수렵, 채취라는 공동생활을 이어온 사람들이다.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고, 가족공동체간에는 긴밀한 협조와 역할 분담을 하여야 한다. 매일매일의 삶은 생명을 건 모험이었고 그들 모두는 그러한 삶의 숨결을 즐겼다. 간간이 죽을 고비를 겪기도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오늘 날씨는 어떨까? 오늘 몇 마리의 뇌조를 잡을 수 있을까? 농어 그물을 들여다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러한 기대감과 설레임을 가지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시작할 뿐이다.

 

이런 원주민들 생활이 알레스카가 미국의 영토로 편입된 이후에 어떻게 변했을까?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미국 본토의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이야기를 통해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은 선교와 교육을 통해 그들의 삶의 본질을 이루었던 겸허함, 협동, 가족애, 고된 노동, 일상생활에서의 유머와 같은 인간적인 가치들을 무시했다. 사유재산제도와 물질문명에 기초를 둔 새로운 가치들을 주입하고 강요했다. 저자도 열다섯 살 때  타의에 의해 에스키모의 때를 깨끗이 씻어내고자 미국 본토에 있는 기숙학교로 가야만 했다고 회상한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속한 민족과 역사를 뺀 나머지 것들을 공부했다. 이처럼 많은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이주민들의 이러한 정책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본토의 아메리칸 인디언에 비해 그들의 권리 일부분을 보상받았다는 측면에서는 좀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것 같다. 알래스카라는 삶의 터전이 막대한 량의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지정학적 중요성은 있지만 백인 미국인들이 직접 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점에서 타협의 가능성이 컸다는 점이 작용했으리라고 본다. 아무튼 이 책의 저자인 젊은 이레이그루크가 주정부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몇 년 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 미국 정부는 10억 달러에 가까운 돈과 17만 8천 제곱킬로미터의 땅을 알래스카 원주민들에게 제공해주기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삶과 권리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현실화했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원주민으로서의 삶과 서구인들의 문명사회를 동시에 경험한 이레이그루크는 자신의 활동기록과 함께 알래스카 정신의 발랄하고 생동하는 힘을 매혹적으로 증언해 주고 있다. 역시 개인이나 민족의 발전에 있어서 공짜는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보면서 물질적 풍요와 생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알레스카인들의 변화과정에서 결국 그들의 전통적 가치와 인간적 모습들을 조금씩 잃어가는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만나게 된다.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떨어져 있던 알래스카의 코체부에도 이젠 점점 내일에 가까와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c******4 2012.02.19. 신고 공감 10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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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것을 '진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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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그러나 한참 지나고 나면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연히 깨닫게 되고, '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구나!'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곤 한다.  그럴 때, 내가 비록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나의 인생 전반을 이끌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서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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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그러나 한참 지나고 나면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연히 깨닫게 되고, '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구나!'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곤 한다.  그럴 때, 내가 비록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나의 인생 전반을 이끌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서늘한 경외감에 휩싸이곤 한다. 

북부 알래스카, 날짜 변경선에서 동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코체부에 해안선에서 태어난 저자 이레이그루크는 어머니를 따라 신흥 도시인 놈에서 빈곤하게 살다가 외가 쪽 친척 집에 양자로 들어가 전통적인 이누피아트 족의 방식에 따라 살기 시작한다.  아사(餓死) 직전에 놓였던 아이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알래스카주의 하원의원이 되었고, 알 수 없는 운명에 이끌려 정신없이 살았던 저자는 자신의 선조들이 1만 년 동안 이룩한 전통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저자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에스키모의 삶과 전통, 그리고 사라져 가는 그들의 얼과 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알래스카의 겨울 속에서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레이그루크는 수탈하는 미국의 도움으로 공부를 계속하고 본토 인디언들의 몰락 과정을 자각하게 된다.  저자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하원의원이 되었다.  저자와 그를 돕는 많은 사람의 부단한 노력으로 알래스카 원주민 토지청구권 타결 법안에 닉슨 대통령이 서명하였다. 한낱 보잘 것 없이 버려졌던 아이가 알래스카 전체 인디언의 삶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는 위대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들의 피를 타고 흐르는 가족간의 사랑과 자연에 대한 경외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만여 년 동안 우리 자신을 다스려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를 위임 통치한 이들은 우리를 고유한 민족으로 만들어준 것들의 정수, 곧 우리의 언어와 이름, 종교, 관습, 가치관을 공격함으로써 우리를 변화시키려 했으며 그런 목적으로 규칙과 법을 만들었다."  (P.201) 

이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그들에게는 땅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냥 땅은 그곳에 사는 인간과 동식물들이 함께 사용하는 신의 선물 같은 거였다. 그런데 러시아인들과 미국인들이 들어와서 그 땅을 헐값에 사고 팔았고 그 땅이 미국령이 된 이후에는 저자를 비롯한 의식 있는 원주민 공동체가 무려 10여년 동안이나 힘겹게 토지반환청구소송까지 하며 그 땅의 일부를 겨우 찾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 거세게 들이닥친 미국의 화폐 경제와 물질문명 속에서 너무도 많은 원주민들이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잃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거나 가정이 해체되거나 홈리스가 되거나 혹은 자살해 버렸다.  서구 열강의 지배 방식은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물질문명의 달콤함으로 유혹하여 원주민의 욕심을 자극하고 그런 욕심은 그들로 하여금 뿔뿔이 흩어져 태초부터 지녀왔던 공동체 의식을 상실하게 하는가 하면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실시된 사상 개조는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마저 저급한 것, 또는 가치없는 것으로 치부하게 만든다.  원주민들을 이렇게 허수아비와 같은 인간으로 만들면 그들을 영원히 자신들의 지배하에 두는 것은 지극히 쉬운 일이 된다.  이런 지배 방식이 어찌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아프리카에서도, 아시아에서도, 어쩌면 그들의 힘이 미치는 지구 어느 곳에서도 자행되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 아닌가.  독립국가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들의 방식이 여전히 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해 겨울, 놈의 해변에서 나는 강렬한 통찰의 순간을 경험했다.  생전 처음으로 나는 세상에서 존재가 가장 희미한 지역들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의 정신과 영혼 속에서 일어나고 있던 인간 고통의 전모를 한순간에 통찰했다.  생전 처음으로 나는 정체성과 문화와 인간관계의 본질에 관한, 세계 전역의 국가들이 자국내 소수민족들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써먹었던 조직적인 방법들(특히 종교와 교육 과정을 통해서 자기네 것을 주입하는 방법)에 관한 깊은 진실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P.278)

인간에게 안락함이란 마약과 같은 것이다.  물질문명이 주는 안락함에 안주한 사람들은 무가력하고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만다.  그리고 전통으로 내려오는 그 모든 가치들에 대한 집단적 가치부정은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이지, 우리가 의식할 정도로 서서히 진행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수한 외침을 받았던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도 그것은 잘 드러나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서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사고방식이 원주민들이 과거 수천 년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얻어낸 지식을 몰아냈는가 알았다.  옛 지식이 공동체 의식이나 공동의 복지에 대한 헌신 같은 요소들과 더불어 사라지자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사람들은 점차 자기네 언어나 문화와 단절되어가고 가족관계도 날로 약화되어가서 결국은 낱낱이 동떨어진 섬들처럼 살아가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P.321) 

한글보다는 영어로 된 간판이 난무하는 거리.  오렌지보다는 '어린지'를 강요하는 사회.  우리는 그것을 진보라고 부른다.

s*****l 2011.07.27.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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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우리보다 더 알찬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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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북극이 어딘지 모르겠다. 알래스카는 또 어디지? 북극과 남극은 또 뭐가 다른 거였더라? 언젠가 화가 나서 던진 지구본이 박살나서 다음 날 마치 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마트에서 지구본을 찾아 헤매던 때가 있었다. 전기를 꽂으면 불이 오는 꽤 커다란 지구본을 사들고 집에 돌아오면서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즈음 어떤 책 부록으로 달려온 디자인이 예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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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북극이 어딘지 모르겠다. 알래스카는 또 어디지? 북극과 남극은 또 뭐가 다른 거였더라? 언젠가 화가 나서 던진 지구본이 박살나서 다음 날 마치 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마트에서 지구본을 찾아 헤매던 때가 있었다. 전기를 꽂으면 불이 오는 꽤 커다란 지구본을 사들고 집에 돌아오면서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즈음 어떤 책 부록으로 달려온 디자인이 예쁜 세계지도를 벽 한 켠에 붙여두었다. 유럽이든 미국이든 지중해든 남미든 북극이든 여기 아닌 어딘가로 여행을 꿈꾸던 대학 때였다. 눈을 뜨면 자연스레 지도로 눈이 가던 시절, 양면 테이프로 어설프게 붙어있던 지도가 자꾸 떨어지길래 접어 어딘가에 넣어둔 것 같은데 그 이후로 세계지도를 펼쳐본 적은 없었다. 지도도 자꾸자꾸 구석 자리로 밀려났다. 그렇게 꿈도, 세계여행도, 북극도 멀어져간 모양이다.

 

지난해 코펜하겐에서 기후변화회의가 열린 후 내 눈에는 자연스레 환경, 생태 보고를 다룬 책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독서를 꾸준히 하다보면 출판계에도 당연히 유행의 흐름 같은 것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신문을 읽는 것 만큼이나 시각을 넓힐 수 있다. 소설과 자기계발서에서 인문과 과학 도서를 넘나드는 취향을 기르는 게 좀 힘들지만 이번 기회는 내게 반가웠다. 평소 과학이나 환경에는 영 무관심 했는데 비록 환경도서는 아니지만 북극의 기후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일로부터 80킬로부터]는 세계지도 숙지에 미숙한 내게 너무 먼 땅, 알래스카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삶과 생활을 의미있게 다루는 동시에 자신들의 문화가 무조건 옳다고 믿는 이들에게 다른 삶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곧 말로만 지구촌이라고 노래하는 이들의 거짓된 양심에 일침을 가한다.

 

알래스카. 1년의 반은 하루종일 밤이고, 또 반은 하루종일 낮이 계속되는 곳. 얼음과 눈으로 둘러싸인 곳. 그곳을 날짜 변경선에서 동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졌다고 부르는 모양이다. 나는 여기가 왜 날짜 변경선에서 80킬로미터 떨어졌는지도 모르고, 지구본에서 정확히 그 지점을 짚어낼 수도 없지만 이 세상에서 아니 지구상에서 가장 자연과 가까이 사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 본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사람이 원하는 대로 자연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변화에 맞춰 사람이 바뀌어가는 것. 제도와 문명 아래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우리의 인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 알래스카에 사는 이들의 삶은 우리의 모든 신념과 기대를 잠식시킨다. 때론 불안함으로, 때론 찬란함으로.

 

그 곳에 우리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단지 먹을 것과 쉴 곳을 찾아 하염없이 길을 떠나며 살아가고, 자연 속에서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갈 방법을 강구하고, 위험을 미리 감지한다는 이유로 목숨보다 더욱 소중히 여기며 동행하는 북극개들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이 세상 무엇과도 소통하고 조화되려는 그들의 삶은 새롭다 못해 굉장히 감동적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는 위험천만한 순간 개들을 잡아먹기도 한다는 사실만 빼면.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좀 더 가지기 위해 피투성이가 되어야 하는 우리의 치열한 생존방법에 비하면 그들은 지나치게 태평하고 한가로워 보인다. 하루하루 살기 위해 살아내야 하는 것조차 생존싸움이겠지만 말이다. 지금껏 우리가 접한 알래스카의 모든 이야기는 제 3자의 눈으로 소개되었다. 우리와 별반 다를바 없는 환경에서 산 문명인 즉, 외부 관찰자가 알래스카에 가서 찍어온 다큐를 방 안에 앉아 수없이 보았다. TV는 그런 존재다. 단 며칠을 알래스카에 가서 관찰한다고 그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또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관찰자의 시점으로 쓰인 글이 아닌 것이다. 알래스카 출신이자 알래스카에서 생을 보낸, 여전히 알래스카 사람인 저자가 자신의 삶과 생의 터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는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고. 우린 진정으로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산다고 선뜻 대답할 수가 없겠다. 그건 애초부터 그렇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린 언젠가부터 나와 다른 어떤 것을 인정할 용기 같은 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래스카 사람들의 하루하루 충실한 이야기를 들으면 부끄러운 것이다. 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문명을, 우리의 편리를, 우리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우리의 급박함을 원망하게 된다. 그래봐야 어차피 나는 이 땅에서 살겠지만 이제 여기 아닌 저기에 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들도 지금 우리처럼 행복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지켜주고 싶다. 지구 이 편에 사는 이들의 욕심으로 훼손되는 자연과 기후가 지구 저 편에 사는 평화롭고 행복한 이들의 터전을 빼앗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싶다. 그리고 지켜주고 싶다. 알래스카 사람들도, 알래스카의 눈과 얼음도, 알래스카의 온전한 밤과 낮도, 알래스카의 모든 생명체들도. 그런 생각으로 머릿속을 까맣게 채운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내일로 내일로 잘만 흘러가고 있다. 마치 그들에게 닿기라도 할 것 마냥. 

s*****d 2010.01.27.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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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각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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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회’의 소설을 본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라는 제목이다. 한글이지만 뭔가 어색한 제목이다. 나는 처음에 이 소설을 접하고 차라리 제목을 ‘눈에 대한 느낌’ 이라고 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물론 그건 내가 이 책을 읽기도 전 이다. 두툼한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나는 전에 했던 제목 트집이 참 건방졌다는 ‘감각’을 느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덴마크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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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회’의 소설을 본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라는 제목이다. 한글이지만 뭔가 어색한 제목이다. 나는 처음에 이 소설을 접하고 차라리 제목을 ‘눈에 대한 느낌’ 이라고 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물론 그건 내가 이 책을 읽기도 전 이다. 두툼한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나는 전에 했던 제목 트집이 참 건방졌다는 ‘감각’을 느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덴마크 소설. 나에게도 그렇다. 덴마크라고 하면 그저 학교에서 배운 것만 생각난다. ‘낙농업이 발달한 유럽 국가’.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덴마크라는 나라가 정확히 어디에 붙어있는지 조차 잘 모르겠다. 덴마크는 나에게는 없는 곳이나 마찬가지다.

 

덴마크처럼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눈(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그것)’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 단어로 표현한다고 들어 알고 있다. 워낙 눈이 많은 나라이다 보니, 눈 종류도 여러 가지인 모양이다. 그들에게 눈은 살갗에 닿는 차가운 ‘느낌’이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심오한 ‘감각’이다. 에스키모인들은 더욱 그렇다. 거기 추운 것 이외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곳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는 얼마나 축복받은 동네인가. 신에게 감사기도라도 드려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 생각도 전부 수정되어야 한다.

 

최근에 ‘문학의 숲’에서 펴낸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라는 책을 봤다. 부제목이 ‘알래스카와 참사람들에 대한 기억’이다. 표지에는 당연히 추운지방에 사는 어떤 사람들이 등장한다. 옆에는 썰매를 끄는 개들이 있다. 이들 중 하나는 지금 개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려는 모양이다. 떠날 차비를 하고 있는 남자 옆에 서 있는 여자는 입을 꽉 다문 채로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듯 진중한 표정이다. 먼 곳을 보니 얼음으로 가득한 지평선 한 부분이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다. 해가 뜨려는 것일까? 혹은 해가 막 지고 있는 장면인가? 아니다. 이 그림은 그보다 더 이상한 자연현상을 보여준다. ‘백야(白夜)’다. 지금 이 남자는 밤인지 낮인지 구분도 안 되는 시간에 어딘가로 떠나려 하고 있다. 어쩌면 먹을 것을 사냥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리라. 이런 얼음천지인 땅에서 먹을 것 말고 또 무엇을 위해서 먼길을 떠날 필요가 있단 말인가!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는 알래스카에 사는 이누피아트족인 이레이그루크가 쓴 책이다. 지금까지 알래스카 이누이트들과 함께 생활하거나 탐험을 했던 사람이 쓴 책은 많이 있었지만, 실제로 이누이트의 일원이 쓴 책은 처음 접한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놀랍게도 알래스카 땅이 공식적으로 알래스카 주가 된 것을 불과 오십 년 전 일이라고 한다. 그들은 거기 혹독한 땅에서 만 년이 넘게 살아왔다. 그러니까 그곳은 누가 그들의 땅이라고 말해주지 않더라도 계속 그들의 땅이었던 거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그 땅을 그들의 것이라고 인정해 주어야 그들의 것이 된다. 그렇게 넓을 아량으로 ‘인정’을 보여준 이들은 미국 땅에 들어온 지 고작 몇 백 년 밖에 되지 않은 백인들이다.

 

백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와서 아주 오래 전부터 거기 살고 있던 인디언 원주민들을 내몰았다. 자연과 함께 순박하게 살아 온 그들을 죽이고 노예로 삼았다. 심지어 백인들은 인디오들을 잡아다가 만국박람회에 출품하여 구경거리로 만들기도 하였다. 백인들은 원주민들을 야만인이라고 불렀다. 백인들은 인디오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알래스카에 사는 사람들 역시 야만인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 천 년 이상 그 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아무 문제없이 살아온 원주민들과 총과 칼을 들고 들어와 마구잡이로 인디오들을 살육하는 백인들 중 누가 진짜 야만인일까. ‘야만’이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전 세계 대부분 역사가 원주민들이 이런 야만인들에게 공격을 당해 민족이 사멸당하고 노예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알래스카는 승리자의 역사를 쓰고 있다. 알래스카는 앞서 말했듯이 확실히 자치권을 인정받고 승리한 역사를 이뤘다.(백인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것 자체가 우습긴 하지만.) 그 승리는 참으로 놀랍게도 한 개인이, 그것도 일개 대학원생에 불과한 한 청년이 자기 정체성과 민족에 대해 각성하는 것으로부터 출한한다. 그 청년의 각성은 다른 이누이트들의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킨’ 사건이다. 알래스카와 워싱턴 D.C를 수 백 번이나 오가는 힘겨운 노력 끝에 미국은 알래스카에 10억 달러 가까운 돈을 지원하고 17만 8천 제곱킬로미터되는 그들의 땅을 인정한다. 이것은 실로 9회말 2아웃 상태에서 역전 홈런을 날린 것과 비교할 수 있을 만 한 대 사건이다.

 

이처럼 한 사람의 각성은 때로 한 민족이 각성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지금 세계 어디라도, 딱히 ‘민족’이라는 거대한 개념을 들지 않더라도 개인적인 성찰이 허무할 정도로 없어지거나 필요치 않은 현실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 담론이 없고 철학이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시대가 젊은이들을 돈의 노예로 만들고 청소년들 가슴에 있는 꿈을 괴멸시킨다. 지금은 매일 매일에 대한 각성이 필요할 만큼 위험한 세상이 되었다. 개인의 각성이 없으면 조직과 사회의 각성도 없다. 각성이 없는 사회는 그냥 거대한 기계, 리바이어던의 세계다. 찰리 채플린이 우스운 몸동작으로 표현했던 ‘모던 타임즈’의 세계가 지금이 아니고 뭔가.

 

얼음과 눈 밖에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알래스카에서 그 거대한 어둠을 단번에 걷어버린 대 각성이 일어났다. 그건 단지 어떤 미개한 원주민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일어난 생각이 아니다. 우리 머릿속에서, 풍요로운 삶에 가려져 보이지 않은 위험한 미래를 바꾸기 위한 각성이 필요하다는 예언과 같은 각성인 것이다.

w***e 2009.12.1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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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내용보기
지구상에서 가장 춥다는 북극의 삶 이 책은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다큐멘터리가 아닌 실제 인간의 삶을 이야기 한다. 외부에서 보여지는 원주민의 삶이 아닌 실제 그들의 이야기 너무나 솔직하고 진솔해서 눈물마저 돌 정도로 솔직한 그들의 이야기이다. 사실 이 책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가 있다. 전반부는 이누피아트 족의 삶이야기 후반부는 작가가 본 이누피아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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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춥다는 북극의 삶 이 책은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다큐멘터리가 아닌 실제 인간의 삶을 이야기 한다. 외부에서 보여지는 원주민의 삶이 아닌 실제 그들의 이야기 너무나 솔직하고 진솔해서 눈물마저 돌 정도로 솔직한 그들의 이야기이다. 사실 이 책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가 있다. 전반부는 이누피아트 족의 삶이야기 후반부는 작가가 본 이누피아트족의 삶으로 크게 나뉜다.

 

 

자연 속에서 살았기에 그 어느 민족보다도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민족이 바로 이투피아트 민족이다. 이들은 자연을 사랑할 줄 알았고, 자연에서 인생을 배우고 먹을 것을 얻었으며 자연을 볼 줄 아는 민족이다. 영하 40도 이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들은 남다른 공동체의식 속에서 살았고, 모두가 한 가족처럼 지내야했다. 실제로 책속에 소개되어지는 개썰매라던지, 한겨울에 오리를 잡는 법이나 물고기를 잡는 모습이 그려지는 장면에서는 자연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듯한 모습이었고, 썩은 치아를 뽑기 위해 목숨을 걸고 병원으로 가야하는 이들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보다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이들처럼 보였다. 너무나 추운지방의 삶이 그렇듯 병과 사고로 인해 많은 이의 목숨을 잃는 과정 때문인지 이누피아트 족 또한 지독한 혈연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하지만 혈연관계에 존속되기 보다는 공동체 의식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삶을 위해 끊임없이 자연과 투쟁해햐는 삶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자연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민족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미국의 식민지로 살아가는 슬픔이 나온다. 원주민이기에 아무것도 모를 거라는 생각 그리고 그들이 미개할거라는 막연한 우월주의 속에 지배하는 민족과 지배당하는 민족이 어떻게 틀리고 어떻한 삶을 살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 나는 성나 있었다. 나는 우리의 가난에, 우리 목숨을 빼앗아가는 질병에, 우리 가운데 만연한 끊임없는 굶주림에, 우리가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단정하고 비행기를 타고 떼거지로 마을에 날아오는 거만한 관료들에게 성나 있었다.

p.193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화가 났다. 이누피아트 족은 절대 무지하지도 않으며, 이들이 절대적으로 불행할 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들이 비록 약이 없어 죽어가는 생명이 있다고 해도 이들은 자연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미개인을 보듯하며 함부로 대하는 미국인의 태도가 그렇게 화가 날수가 없었다.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의 생활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밝고 유머감각이 있으며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누피아트족 이들은 지구상의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자연을 사랑하며 자연에 지배당하고 산다. 자연에 지배당하는 삶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여러분도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책의 질문처럼 과연 나는 내일로부터 어디에 서 있는지 이누피아트족의 말처럼 살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며, 그들의 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너무나 좋은 책이었다.

j****g 2010.01.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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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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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변경선에서 동쪽으로 80킬로미터 그곳에서 살아가는 참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는 알래스카에서 태어난 어린 소년 이레이그루크가 툰드라에서 생활한 일들을 직접 기록한 책이다. 알래스카는 도대체 어떤 곳인가. 알래스카는 북아메리카 북서쪽 끝에 있는 미국의 주이다. 알래스카는 러시아 황제의 의뢰로 덴마크의 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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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변경선에서 동쪽으로 80킬로미터

그곳에서 살아가는 참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는 알래스카에서 태어난 어린 소년 이레이그루크가

툰드라에서 생활한 일들을 직접 기록한 책이다.

알래스카는 도대체 어떤 곳인가.

알래스카는 북아메리카 북서쪽 끝에 있는 미국의 주이다.

알래스카는 러시아 황제의 의뢰로 덴마크의 탐험가 베링이

베링해협의 발견(1728)에 이어서 1741년에 발견하였다.

이후 1867년 재정이 궁핍한 러시아가 720만 달러로 매각, 미국령이 되었다.

면적은 미국에서 최대이고 인구는 아이오밍주에 이어 두 번째로 적다.

원주민은 남부의 인디언, 북부의 에스키모, 알류샨의 알류트족으로

총수 약 2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알래스카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무래도 미국내 아메리카 원주민이 떠오른다.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을 하기 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에 갇혀 급격한 인구 감소와 문화의 파괴로

미국내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은 기후와 지형에 따라 부족, 음식, 의복, 주거, 예술 등이 매우 다양했다.

하지만 현재는 높은 실업률과 의욕상실, 알콜과 마약중독, 도박문제 등을 일으키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이 책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는 북부 알래스카, 날짜 변경선에서 동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코체부에 해안선에서 태어난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살점이 떨어져나갈 만큼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이누피아트 족만의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레이그루크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과 함께 소통하고 거기에서 삶의 지혜를 얻으며

살아가는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 행성의 맨 꼭대기 부근 지역에 널리 퍼져나가

인간이 살기 어려운 혹독한 기후 속에서도 만여 년간 생존하고 번성해온

자기 민족의 삶의 방식을 배우고, 또 그에 따라 살았다.  

이레이그루크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때,

자신들의 고향이 외지인들에 의해 빼앗길 운명에 놓인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고향을 구하기로 결심하고

'우리 땅을 되찾고 우리 삶을 되찾자'는 취지의 운동을 이끌었다.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삶과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운동이 있었기에

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갈 수 있었다.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는 바로 이렇게 혹독한 추위조차 뜨거운 열정으로 녹여버릴

알래스카 원주민으로서의 뜨거운 삶과 열정에 관한 기록이다.

 

 

 

 

 

 

 

i*****8 2010.01.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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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삶과 지혜 [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
"[서평]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삶과 지혜 [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 내용보기
법정스님의 스무 번째 추천도서..   한 달 전쯤 주말 저녁에 혼자 <빅 미라클(Big Miracle)>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알래스카 얼음 구덩이에 고립되어 갖힌 회색고래를 환경단체와 원주민, 정부, 소련까지 함께 노력하여 구출했던 1984년 실화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제작한 영화였다(켄 콰피스 감독, 드류 배리모어 주연). 영화 속에서는 당시 알래스카 상황을 묘사해 놓았으니
"[서평]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삶과 지혜 [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 내용보기

법정스님의 스무 번째 추천도서..

 

한 달 전쯤 주말 저녁에 혼자 <빅 미라클(Big Miracle)>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알래스카 얼음 구덩이에 고립되어 갖힌 회색고래를 환경단체와 원주민, 정부, 소련까지 함께 노력하여 구출했던 1984년 실화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제작한 영화였다(켄 콰피스 감독, 드류 배리모어 주연). 영화 속에서는 당시 알래스카 상황을 묘사해 놓았으니 21세기인 지금과 많이 다르겠지만, 혹한의 겨울이라는 이미지는 동일하게 남아있다는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개 썰매를 모는 개들이 컹컹 짖고 영하 40도가 넘는 추위로 휴대용 발전기가 멈춰버리는 장면을 그 영화 속에서 떠올릴 수 있었다.

 

책 제목인 '내일'은 날짜변경선을 말한다. 날짜변경선에서 동쪽으로 불과 8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알래스카 코체부. 이 책은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이누피아트 원주민의 이야기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자연을 경외하며 함께 힘을 모아 살아가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삶이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로 점철된 현대인에게 진정한 삶의 숨결로 다가온다. 지난 1960~70년대 미국 정부의 극심한 통제가 만연한 현실 속에서 원주민들의 토지권을 보장 운동을 주도해 나갔던 저자의 이야기는, 단지 한 개인의 일대기가 아닌 원주민 고유의 삶과 문화를 지켜내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간직한 이누피아트, 그들 모두에 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알래스카에는 '일만 번의 여름과 겨울'이 왔다가 갔다고 한다. 즉 알래스카에 사람이 발을 디딘 지 1만년 정도 된 것이다.
그곳 사람들은 매년 가을까지 또 한 번의 겨울을 위한 준비를 마친다. 연어를 말려 훈제하고, 물범기름을 정제하고, 사냥한 북미순록고기들을 말리고, 풍성한 베리 열매의 수확을 기대하면서. 이누피아트 족(백인들이 흔히 에스키모라고도 부르는 이누이트가 극북지역에 사는 모든 이를 총칭하는 말인 반면, ‘참된 사람들’을 뜻하는 이누피아트는 알래스카 북부의 이누이트 사람들을 뜻한다)이 사는 알래스카 북부의 겨울은 아홉 달이나 계속된다. 그리고 한겨울이면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밤만 계속된다. 기운 없는 싸늘한 태양은 지평선 위로 고개도 제대로 내밀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버리고 만다. 겨울철에는 거센 바람이 자주 불어 밖에 나갈 엄두도 낼 수 없는 날이 많다. 이누피아트 족은 그런 날을 ‘이트랄리크’라 부르는데, 그건 ‘살점이 떨어져나갈 만큼 혹독한 추위’를 뜻한다.
알래스카 땅이 공식적으로 알래스카 주가 된 것은 불과 오십 년 전의 일. 그러나 누가 자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든 상관없이 그 땅은 늘 얼음으로 뒤덮인 광대한 자연 속에 뭇 생명을 품어왔다.

저자 '이레이그루크'는 북부 알래스카, 날짜 변경선에서 동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코체부에' 해안선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따라 신흥 도시인 '놈'에서 빈곤하게 살다가 외가 쪽 친척 집에 양자로 들어가 전통적인 이누피아트 족의 방식에 따라 살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의 원주민 조상들이 수천 년간 영위해온 반유목민적인 생활로, 추위와 끊임없는 노동이 수반된 삶이었지만 이레이그루크와 가족들은 자연이 제공해주는 풍성한 산물을 누리며 살아간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알래스카의 겨울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이레이그루크는 자연이 지닌 힘들을 경외해야 함을, 낭비가 큰 적임을 배운다. 더불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꼭 필요한 일임을, 오로지 더불어 일함으로써만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그 곳에서 나날의 삶은 모험이었고 우리 모두는 아니그니크, 곧 삶의 숨결을 즐겼다. 많은 이들이 간간이 죽을 고비를 겪기는 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큰 기대감을 갖고서 하루를 맞았다. 오늘 날씨는 어떨까? 몇 마리의 뇌조를 집 안에 들여놓을 수 있을까? 운 좋게 몇 마리를 쉽고도 빠르게 잡을 수 있을까? 여우가 덫에 걸렸을까? 농어 그물을 다시 들여다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누가 개들을 데리고 가서 가문비나무 단을 실어 오는 일을 맡을까? 양식과 생필품을 들여놓기 위해 마을에 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알래스카 원주민 소년이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에 모처럼 흠뻑 젖어들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지금까지 알래스카와 그곳 원주민들에 대한 책이 나온 적은 있었지만 그조차도 하나같이 외지인들, 곧 개척자들이 썼다. 또는 여행의 관점에서 쓴 책뿐이어서 이누피아트의 어린 소년 이레이그루크가 툰드라에서 생활한 일들의 직접적 기록은 우리에게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시각과 감동을 전해준다.
그가 태어날 무렵, 그곳에는 삼백 명 가량의 주민이 살았으며, 대부분은 이누피아트였다. 소수의 ‘날로우르미트’도 섞여 살았는데, 그들은 백인들을 그렇게 불렀다. 물범을 뜻하는 날로우크의 상앗빛 피부를 연상시키는 피부색을 지닌 사람들. 그들 대부분은 선교사, 교사, 정부 관리, 장사꾼들이었다.
알래스카는 빙하로 뒤덮인 광막한 자연환경으로 사람들을 감싸 안는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곳에 펼쳐진 원초의 청정한 강들과 호수, 삼림, 빙하,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광활한 대지에 매료된다. 그 땅덩어리의 넓이는 3억 6천5백만 에이커(약 150만 제곱킬로미터)로 텍사스 주 넓이의 두 배가 넘는다. 어떤 이들은 그곳의 엄청난 자원, 곧 믿을 수 없으리만치 풍부한 아연, 금, 목재, 야생동물, 어류, 석유 같은 것들에 끌린다. 하지만 이레이그루크에게 알래스카는 본질이자 본향이요, 삶의 이유이자 목적에 해당하는 장소이다.

"나는 사향뒤쥐와 늑대 가죽들로 만든 모피 파카 대신에 고어텍스가, 물범가죽 장화 대신에 스노부츠가, 우리가 물고기를 낚기 위해 1.5미터 두께의 얼음장을 뚫을 때 사용했던 재래식 투우크 대신에 휘발유 동력 드릴이 등장하기 전 시대에 그곳에서 살았다. 나는 스노머신이 등장하기 전, 에스키모개들이 썰매를 끌고 싶어 안달이 나서 허공을 향해 길게 울부짖곤 하던 시절에 그곳에서 살았다. 나는 보트 외부에 장착하는 외장 엔진이 등장하기 전에 카약과 우미아크(가죽배)가 수면 위를 고요히 미끄러져 가곤 하던 시대에, 양초와 콜맨랜턴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빛을 제공해주던 시절에 그곳에서 살았다. 나는 사람들이 겨울철이면 매서운 추위와 강풍을 막아주는 60센티미터 두께의 뗏장과 흙바닥으로 이루어진 뗏집에서, 여름철이면 우리를 나른한 잠의 유혹으로 끌어들이는 단조로운 파도 소리와 아비(물새의 일종)나 갈매기 울음소리가 얇은 벽을 타고 자유로이 넘나드는 텐트 속에서 지내곤 했을 때 그곳에서 살았다. 나는 전화기가 등장하기 전이라 사람들이 직접 만나고서야 비로소 자기네의 삶과 꿈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시절에, 텔레비전이란 게 생겨나 사람들이 가족들의 연대기와 전설들을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걸 방해하기 전 시절에 그곳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 태어날 즈음 알래스카 문화는 이미, 그들이 ‘바깥세상’이라 불렀던 곳에서 알래스카의 매력과 흡인력에 이끌린 사람들이 몰고 온 파괴적인 영향력을 목격하고 있었다. 외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여러 가지 전염병도 따라 들어왔고 그 때문에 원주민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외지인들이 대규모로 펼친 고래 사냥은 고래들 덕에 먹고살았던 원주민들을 어려운 처지로 내몰았다.
알래스카에 이주해 온 외지인들은 땅과 자원을 장악하면서 또 다른 부담도 함께 들여왔다. 그것은 바로 원주민들의 삶에 대한 정부의 과중한 통제였다. 외지 사람들의 지배와 더불어 그들의 강제적 요구도 따라 들어온 것이다 저자와 식구들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사유재산에 대한 아주 색다른 개념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공동체 사회를 자본주의와 개인적 이익 추구, 개인의 선택에 기반을 둔 사회에 맞춰 나가야만 했다.
알래스카가 주가 되기 이전에도 이미 기독교 선교사들과 미국 정부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을 올바른 ‘미국인’들로 변화시키기 위해 합심해서 노력했다. 열다섯 살 때 저자는 타의에 의해 에스키모의 때를 깨끗이 씻어내고 미국 본토에 있는 기숙학교로 가야 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속한 민족과 역사를 뺀 나머지 것들을 공부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저자가 열다섯 살이 되어 더 많은 교육을 받도록 테네시로 보내졌을 때 그는 거기서 과거 수천 년 동안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차지해왔고 사실상 소유해왔던 땅이 강탈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이런 움직임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연어처럼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와 원주민 종족들의 대표가 합심하여 몇 년 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 1971년, 미국 정부는 10억 달러에 가까운 돈과 17만 8천 제곱킬로미터의 땅을 알래스카 원주민들에게 제공해주기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미국 본토의 원주민들과는 달리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운명을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그런 놀라운 결정이 하룻밤 사이에, 그리고 어느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삶과 권리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현실화한 이는 바로 이 책을 쓴 이레이그루크였다. 이 책은 그 생생한 기록을 전하고 있다.(하지만 미국 본토의 아메리카 원주민에 비하면 알래스카 원주민은 괜찮은 경우라 할 수 있다. 본토의 인디언들은 17~18세기에 걸쳐 90% 이상이 영국,프랑스 등 유럽의 침략자들로부터 학살당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도 겹쳐졌다. 알래스카는 19세기 중 미국 본토의 백인들이 잔출하여 상업등을 영위하다가 1867년 미국에 합병되었다. 1890년부터는 원주민 언어를 학교와 공용어에서 금지시켰다. 기간이 오래 경과되었지만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100년도 넘는 백인들의 침략과 식민지화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전통문화와 생활을 면면히 이어오다가 결국 1971년에 미국정부로부터 자율권과 토지,배상금을 획득하였다. 물론 원주민 언어와 역사도 지역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한국은 비록 민족국가로서 독립(분단)은 달성했지만 단일 언어를 제외한 전통과 문화, 생활양식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아예 송두리채 뼛속까지 미국식, 서구식으로 사고와 행동과 생활을 바꾸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협동보다 경쟁이, 정신보다 물질이, 소통보다 단절이, 나눔보다 독점이, 놀이보다 향락이 우선시되고 있다. 반대로 지금 돌이켜보면 100년 전 선조들의 의식과 문화, 생활양식 중에서 소중하고 긍정적인 것이 적지 않았을 텐데도... 그 결과 현재 한국에서 연대의식과 공동체는 거의 파괴되었고 인간과 문화의 가치보다 돈과 자존심만 남아 황폐해져가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서구의 가치와 문화만으로 우리사회의 행복과 인간됨과 공동체를 복구할 수 있을까 싶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후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꿈과 희망을? 아니면 좌절과 절망을?

[2012년 3월 25일]
c****n 2012.03.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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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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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작은 지역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다. 내일로부터라니 무슨뜻인지 모르겠다고? 내일이라는 것은 날짜변경선을 말한다. 그곳에는 혹독한 추위와 함께 이누피아트들이 살고있다.   이레이루크, 저자의 이름이다. 그러나 저자는 또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바로 윌리엄 헨슬리라는 이름이다. 우리에게는 영어식 이름인 윌리엄이 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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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작은 지역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다.

내일로부터라니 무슨뜻인지 모르겠다고?

내일이라는 것은 날짜변경선을 말한다.

그곳에는 혹독한 추위와 함께 이누피아트들이 살고있다.

 

이레이루크, 저자의 이름이다.

그러나 저자는 또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바로 윌리엄 헨슬리라는 이름이다.

우리에게는 영어식 이름인 윌리엄이 훨씬 친근하고 다정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렇게 두 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불리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껴지는가?

이레이루크는 그 지방 고유의 방식의 이름이고, 윌리엄은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면서 영어식 이름을 선사한데에 대한 결과물이다.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강 머리에 떠오르는데로 붙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개종자들은 이렇게 얻은 영어식 이름과 자신들 고유의 이누피아크 이름을 함께 사용한다.

이것이 이들이 두 가지의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이다.

 

이누피아트의 세계에서는 가족이 정말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알래스카에서는 다른 지역 사람과의 접촉이 극히 제한적이기때문에 부족들끼리의 결속력도 강했다.

다른 동네 사람들은 적으로 간주되고 피흘리는 전투를 벌여도 가족은 한 울타리 속에서 따듯한 존재였다.

저자는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없었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이 점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아팠던 부분은 원주민과 유럽인들의 나라에 대한 '권리' 부분이었다.

유럽인들은 알래스카를 발견한 대가로 그 소유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원주민들의 권리는 어디로 갔는가?

알래스카가 주로 승격되면서 원주민들의 권리는 더욱 사라졌다.

 

원주민들의 땅을 자신의 땅으로 점령하고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도 모순이었지만, 현재 원주민들은 깊은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가슴아팠다.

우리나라도 일제 통치기를 거쳤기 때문에 더 와닿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내일은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다고 한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환한 태양이 떠오르는 이들의 삶 이야기를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더 깊은 잔잔함과 애잔함이 뭍어있는 책이다.

추천합니다~!!

 

아아리가아 이누우루니! 나쿠우루크 마니누나!

(살아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여기는 좋은 곳이야!)

8*****i 2010.01.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내일로부터 8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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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레이 그루크라는 미국의 하원의원이자, 알래스카에서 자라고 공부한 한 청년이 그들의 땅 알래스카를 되살리고 찾기 위한 감동적인 기록이다. 어떻게 그가 알래스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지.. 인간이 자신이 나고 자란 땅을 이렇게 하염없이 사랑하며 일생을 오직 그 하나를 위해 살았다는 것은 흡사 우리 나라의 순국 지사들의 일대기를 읽는 것 처럼 감동적이었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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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레이 그루크라는 미국의 하원의원이자, 알래스카에서 자라고 공부한 한 청년이 그들의 땅 알래스카를 되살리고 찾기 위한 감동적인 기록이다. 어떻게 그가 알래스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지.. 인간이 자신이 나고 자란 땅을 이렇게 하염없이 사랑하며 일생을 오직 그 하나를 위해 살았다는 것은 흡사 우리 나라의 순국 지사들의 일대기를 읽는 것 처럼 감동적이었다. 우리로 치자면 우리의 실정에 아무 관심도 없고 오직 자기들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선진국들을 상대로 거래를 하고, 그들을 설득시키고,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자기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열사들같다. 이 책의 제목, 내일. 이라는 말도 다 읽고 나니 또 다른 내일로서 감동이 밀려온다. 지구의 맨 꼭대기 알래스카에 살면서 날짜 변경선으로 부터 80km 불과 떨어진 곳에 사는 그들의 땅 자체 만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내일, 희망과 꿈이 있는 내일로부터 80km밖에 남지 않았다고 외치는 듯 하다. 그들의 투쟁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우리의 독립 투쟁을 수많은 미국인들이 몰랐던 것 처럼, 그리고 수많은 일본인에 의해 압박 당했던 것 처럼, 이들의 투쟁도 누군가에겐 감동이고, 누군가에겐 억눌러야 할 대상이었다.

 

그들은 현재 미국내 한 개의 주를 차지하고 있고, 모두 알다 시피 빙하로 뒤덮인 광막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외지인들에게는 그곳에 펼쳐진 원초의 강들과 호수, 삼림, 빙하들이 모두 꿈꾸는 경외의 대상이다.

누군가에겐 삶이지만, 누군가에겐 시로 찬미하는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곳은 믿을 수 없이 엄청난 자원의 보고였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것 처럼, 미국이 그 시절 헐값에 사들인 이 땅이 아연, 금, 목재, 야생동물, 어류, 석유 등의 자원으로 가득한 보물창고였다는 사실.. 외부인인 내가 아는 사실은 이 정도이다.

 

하지만 그 곳에 삶을 꾸리고 있던 이누피아트 족은 갑자기 찾아든 백인들로 인해 많은 인디언 문화가 꺠어졌다.

백인들이 에스키모라고 부르는 이누이트가 극북지역에 사는 모든 이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참된 사람들을 뜻하는 이누피아트는 알래스카 북부의 이누이트 사람들을 뜻한다고 한다. 이들은 정직함을 교육받고, 자기 자랑을 하지 않으며, 과묵한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고 했다. 언젠가 티비에서 보았던 이들의 모습이 저자가 묘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이들은 미국인들에 의해 거주지를 옮기고,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살게 하고, 거대한 대륙의 한 귀퉁이만 차지한 채 살아가도록 했지만 결코 고유의 정체성과 문화를 잃지 않았다. 책이 아닌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전승되는 그들의 문화적 가치는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그들의 영혼과, 그들 영혼에 대한 스스로의 자부심은 정말 대단했다. 이 정도라면 포카혼타스가 나올 법도 하다고 느껴졌다.

 

요즘처럼 물질과 겉보기식 수박햝기로 타인과 자신을 구별하는 도덕이 발달하는 시대에..

이러한 이누이트 족들의 영혼은 눈처럼 영롱하고 순수했고, 손이 번쩍 시리고 귀가 떨어질만큼 추운 그 곳의 날씨처럼 감히 범접하기 힘들었다. 머리가 복잡해질 때 이 책을 읽는 것 만으로 영혼의 시원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영화의 주인공같은 알래스카를 위한 헌신이 감동적인 책이다.

c*****1 2010.01.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삶과 지혜에 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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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온도는 영하 15도였고 체감 온도는 그보다 더 낮았다. 더욱이 엄청난 폭설로 인해 차가 다니지 못했고, 지하철은 만원 사례였다. 눈을 치우고 치워도 끝 없이 쏟아지는 눈발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거리를 돌아다니면 곳곳에 녹지 않는 눈이 많이 쌓여 있고, 치웠다 할지라도 검은 먼지가 묻은 눈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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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가장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온도는 영하 15도였고 체감 온도는 그보다 더 낮았다. 더욱이 엄청난 폭설로 인해 차가 다니지 못했고, 지하철은 만원 사례였다. 눈을 치우고 치워도 끝 없이 쏟아지는 눈발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거리를 돌아다니면 곳곳에 녹지 않는 눈이 많이 쌓여 있고, 치웠다 할지라도 검은 먼지가 묻은 눈은 자칫 공사중인 파편마냥 산처럼 쌓아져 있었다. 볼이 얼얼하고, 손끝이 저릴 정도로 시렸던 날씨를 체감하며 절로 알레스카의 이누피아트 족의 생활이 생각났다.

 

추운 날씨에 몸을 웅크리며 있었더니 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 갑자기 왼쪽 어깨가 아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처음엔 잠을 잘 못 자서 그런가 했는데, 어제는 잘 때 고개를 가눌수가 없어 조금만 움직여도 눈물이 핑 돌았다. 옆에서 엄마가 1시간 가까이 주무르고 나서 까무룩히 잠이 들었다. 겨울에 춥다고 웅크리고 들어앉아 있다보니 몸이 경직되서 근육통을 일으키다보니 새삼 이레이그루크가 쓴 알래스카에 살고 있는 이누피아트 족의 사람들이 생각났다.

 

움직이는 것조차 아파 엎드리지 못하고 앉아서 보다가 누워서 보다가 천천히 보기는 했지만 너무 아파 이레이그루크가 쓴 이누피아트 족의 생활 속에 푸욱 빠져 들지는 못했다. 서울의 한파가 매서웠던 것 보다 훨씬 더 추운 알래스카의 겨울은 아홉 달이나 계속 된다고 한다. 한 겨울이면 24시간 내내 밤이 계속되며, 태양이 지평선 위로 고개를 들지 못한다고 한다. 거센 바람이 자주 벌어 밖에 나갈  엄두도 낼 수 없는 날이며 그들은 이트랄리크라고 부르는데 '살점이 떨어져나갈 만큼 혹독한 추위'라고 하니 상상도 못할 추위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에스키모인이라고 부르는 에스키모는 사실 서양에서 부르는 말이다. 원래 이름은 이누피아트 족. 날짜 변경선 동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해안에서 태어난 저자 이에이그루크의 성장기와 더불어 알래스카에 사는 이누피아트 족을 알 수 있는 최초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전통적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가장 혹독한 환경들 중의 하나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을 배우고 익혔다. 우리 친척들 대부분은 설사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해도 기껏해야 초등학교 과정에서 배운 게 전부였다. 초등학교를 다녔다 해도 사오 학년 과정 이상을 다닌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보다 더 나이 든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히 몸이 튼튼한 남자아이들은 사냥하고 덫을 놓고 물고기를 낚고 개썰매를 끄는 일을 거들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관례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 p. 114

미국의 역사에 관심도 많지만 그들이 미국을 세우기 이전, 원주민들의 역사에도 관심이 많은 나는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가 서양인의 시선이 아닌 원주민인 이레이그루크의 시선을 통해 느껴보고 싶었다. '에스키모'라는 말도 나는 원래 원주민의 이름이 그렇게 불려진지 알았는데 이 책을 읽고서야 서양인이 그들을 보고 지은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40년대에 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원래 인디언들을 미국인들의 삶에 동화시킬 목적으로 설계된 인디언 사무국의 교육 시스템은 원주민들의 전통적인 정체성과 지식의 모든 흔적을 아주 효과적으로 말살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원주민들이 이제는 미국들의 삶에 어떤 위협을 가하지 않는데도 선교사들은 원주민 아이들을 전통의 뿌리와 단절시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아이들을 자기네 문화로부터 분리시키고 과거의 생활 방식으로부터도 단절시켜 옛 세계와 새 세계 사이의 어느 지점인가에 고립시키자는 것이었다.

 

1890년대 말부터 20세기가 한참 지날 때까지 원주민 학생들은 학교에서 자기네 모국어를 사용해서는 안 되었으며, 심지어는 학교 밖에서조차도 쓰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생략) 그러는 한편 수업을 진행할 때는 원주민들의 역사, 유서 깊은 음악과 미술과 참에 관한 내용은 의도적으로 전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 - p.116

새롭게 개척된 땅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나라의 주권이 개입되고 그들의 생활 방식을 바꿔 놓는다. 다른 나라의 식민지를 개척하듯 미국 또한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문화를 단절시켰다. 미국의 연방 정부나 주정부에게 빼앗길 위기해 처 있을 때, 저자가 신문기사를 보고 놀라 동분서주한 기록들이 함께 담겨져 있어 더욱더 실감나게 그들의 삶을 알 수 있었다. 함께 나누고, 협동하면서도 극강의 추위 속에서 살아가는 강인하면서도 지혜로운 이누피아트 족의 지혜와 순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성장기를 통해 양부모님과 형제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좀 더 세밀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가 어떻게 커왔고, 어떤 것을 배웠으며 알래스카에 살아가는 원주민이 아무것도 모르고 땅을 빼앗길 무렵 그는 원주민의 대표로 나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내용과 함께 사진이나 그림을 통해 도구나, 집, 그들의 사진과 함께 주정부를 통해 어떻게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사진을 함께 볼 수 있었다면 더욱더 알찬 책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l****9 2010.01.20.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