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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통 전문가는 TV 강연에서 "여기까지 온다고 수고했다!"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야길 듣고 있던 방청객도 TV를 시청하던 나도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한 조사에서 가족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지금 충분히 잘 하고 있다"는 말이라고 한다. 남에게 인정 받고 싶고 남이 인정 안 해 주면 나라도 나의 수고와 노력과 고생한 부분을 인정해 주라는 말인데, 이 말에 위로 받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바로 우리다. 인간은 이렇듯 "내가 주체가 되는 세상", "내가 없이는 우주도 없다"는 사고 체계에 사로잡혀 나 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로 표현되는 복음이 특정 인간에 자리 잡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욥기서를 보면 "욥과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하나님께 인정받은 욥이 영문도 모른 채 고난을 받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할 리가 있냐는 사탄과 하나님의 내기의 결과다. 욥의 친구들은 끊임없이 네가 뭔가 잘못한 것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이런 재앙을 내리신다고 훈수를 두고, 욥은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주어지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며 괴로워한다. 울부짖는 욥 앞에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신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낯선 고난",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앞으로 예수님께서 당하실 십자가의 고난을 보여주는 계시라는 점이다. 아무 이유 없이 고난 받으신 그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바로 인간의 자기 긍정,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와 존재를 인정 받고 싶어하는 이 근원적인 죄악 때문에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신 바로 그분을 욥의 고난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사정으로 억울함을 품고 살아가지만, 책에 있는 표현을 빌자면 이 세상에 억울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이어야 한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욥의 낯선 고난을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쏟아내고 쥐어 짜내도 욥의 친구들 수준인 것이다. 죄 없이 고난받으신 그 예수님 앞에 인간이 생산해 내는 모든 것은 쓰레기요 배설물에 불과하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의미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3: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