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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에 걸쳐서 《우리글 바로쓰기 4》를 읽었다. 앞부분을 볼 때는 괜찮았는데 뒤로 갈수록 조금씩 풀어지고 말았다. 천천히 조금씩 보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늘어지고 말 것이다. 2권, 3권에 나온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이렇게 쓰면 ‘비슷한데 왜 읽을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말은 여러번 듣거나 봐도 모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하기는 해도 이번에는 한자말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것이 더 깊이 있게 씌어있다. 한자를 같이 쓰고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 쪽에서는 동음이어에 대해 말했는데, 보기를 든 말 가운데 우리가 쓰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한글로 써도 알 수 없다면 우리 말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 한자말을 아주 안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모두 아는 말, 우리 말처럼 되어버린 것은 그것을 써도 괜찮다. 써도 되는 것과 쓰지 말아야 할 것을 잘 알아볼 수 있어야 할 텐데.
한자말을 쓰지 말아야 하는 까닭에 대한 글을 볼 때는 정말 그렇다고 느꼈다. 한자말을 쓰다보면 어려운 한문글자를 쓰게 된다. 어떤 때는 한자말을 쓰고 우리 말로 풀이하는 꼴로 쓰기도 한다. 그리고 틀리게 쓰고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나도 그랬던 적 많았을 것이다. 한자말을 쓰면 일본말을 따라 쓰고 만다. 이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일본말을 우리 말로 옮길 때 우리 말로 써야 할 것을 한자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거기에서 가장 많이 쓰는 것이 ‘부른다(불린다)’다. 여기에서 더 괴상하게 쓰는 것은 ‘불리운다’다. ‘부른다’는 바로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불러서, 그 사람을 찾거나, 그 사람한테 어떻게 하라고 말하는 경우와 ‘불러 오도록 한다’(보기 : 의사를 부른다)는 경우에 쓴다. 그밖에는 ‘(라고) 하는’ ‘(라고) 말하는’ ‘(라고) 알려진’ 꼴로 써야 한다. 나는 예전에 이것을 어떻게 썼는지 모르겠다. ‘부른다’ 라고 쓰여 있을 것을 보고 조금 이상하게 여긴 것도 같다. 그렇지만 나도 그렇게 쓴 적이 있을 것이다. 일본말은 정말 한가지 말(한자가 다른 것도 있겠지만)에 여러가지 뜻이 있다. 그것을 우리 말로 옮길 때는 우리가 말하는 대로 옮기도록 애써야 한다고 본다.
이 책에 대한 것을 잘 쓰면 좋을 텐데 조금 어렵다. 그저 ‘이런 책이 있다’는 것밖에 못 쓰겠다. 지난번에는 우리 말을 배우는 외국사람이 이 책을 보면 좋겠다는 말을 썼는데, 역시 다른 나라 사람보다는 우리 나라에서 방송을 하는 사람, 신문을 만드는 사람이 봤으면 한다. 지금까지 본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을 텐데 별로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하긴 나 또한 지금은 이렇게 우리 말을 살려서 써야 한다고 말해도 시간이 흐르면 어떤 것은 잊어버리고 한자말 일본말을 그대로 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쉬운 말로 쓰려고 하는 것은 그대로일 것이다.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그렇기는 하다.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닌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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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소리를 다 적을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우리 한글은, 온갖 모양과 빛깔과 소리와 움직임을, 온갖 느낌과 생각을 나타내는 우리 말을 자세하고 바르게 적어 낼 수 있다. (55쪽)
한자말은 많으면 많을수록 어렵고 어지럽고 어수선할 뿐이지만, 우리 말은 많을수록 누구든지 쉽게 익히면서 우리 마음 우리 느낌을 바르고 자세하게 나타내어 우리 정서와 마음의 세계를 아름답고 참되게 하고 넉넉하게 한다. (119쪽)
우리가 민족을 생각하고, 그래서 아직도 우리 말 우리 글이 우리를 지켜주는 오직 하나 목숨줄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까닭, 우리 말 우리 글을 버리고 민족을 버리고는 절대로 이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느끼고 생각하는 까닭은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학자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어떤 권력자가 이런 생각을 하라고 지시해서 가지게 된 것도 아니고, 서당이나 학교에서 책 따위로 배워 익힌 것도 아니고, 다만 우리 모든 백성들이 그 옛날부터 이 땅에서 땀 흘려 일하면서 살아오는 동안에 저절로 온몸에 배어들게 된 느낌이요 생각인 것이다. (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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