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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지 위에 평화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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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독서수업을 위해 추천도서목록에서 찾아 선택한 책이다. 어느덧 불혹이 되다보니 사람들이 이룩한 성공의 관점보다도,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어떤 목표나 꿈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뒤늦게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가 학창시절때는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면 너무 늦은것일까?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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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독서수업을 위해 추천도서목록에서 찾아 선택한 책이다. 어느덧 불혹이 되다보니 사람들이 이룩한 성공의 관점보다도,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어떤 목표나 꿈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뒤늦게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가 학창시절때는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면 너무 늦은것일까?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부분이기에, 어쩌면 돈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기에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세계의 작곡가 윤이상. 세계의 작곡가라는 수식어가 붙은 윤이상이라는 분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의 열정에 놀라고, 나라를 사랑했고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음악의 영감을 불어넣어준 통영을 그리워하면서도 타국에서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사실을 보면서 안타까움도 동시에 느꼈다.

 

음악은 그에게 하늘이 내린 천명과도 같은 것이었을까? 일본 학교를 반대하던 그의 아버지께서 마음을 바꾸셔서 일본학교로 아들을 인도하셨을때 그곳에서 처음으로 윤이상은 풍금이라는 악기 소리에 매료된다. 세 살 때 통영으로 이사를 가는데, 바다가 들려주는 파도 소리, 물새 소리, 뱃고동 소리를 음악처럼 듣고 자랄 수 있었던 것 또한 그가 음악가의 길로 가라고 해주는 귀한 원천이 된다.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를 꺽고 가출까지 하면서 바이올린과 작곡을 놓지 않아 결국엔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또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눈 앞에 닥친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어린 동생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신다. 그는 집안의 가장으로써 가정을 책임져야 했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나이 마흔이 되어 더 공부가 필요하겠다 결단한 윤이상님은 부인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유럽 유학길에 올라 세계 음악가의 대열에 오른다.

 

그런 그의 삶에 또 하나의 어려운 일이 다가오는데, 바로 북한에 <사신도>를 보러 갔던 일이 문제가 되어 한국으로 강제로 끌려와 모진 고문으로 2년간 고문을 당한다. 카라얀, 크렘페러 같은 동료 예술가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독일 정부까지 나서게되어 감옥에서 풀려난다. 독일로 돌아가 작곡과 공연을 계속하며 통일과 대한민국의 민주화, 우리 음악을 세계에 알리는데 평생을 바치다 1995년 베를린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되어진 모습만 가지고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자리이리라. 세계적인 음악가.

하지만 그가 그 자리에 서기까지 헤쳐나가야했던 길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열정과 지치지 않는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작은 어려움앞에 안절부절한 하루를 살아가면서 고단함을 쉬 느끼기에 오늘 더욱 윤이상 작곡가의 삶을 떠올려본다.

g*******s 2012.03.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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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위대한 음악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토록 위대한 음악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용보기
윤이상을 알게 된 때는 그가 타계하기 전이었다. 모 시사주간지에서 그가 죽기 전에 고향을 방문하고 싶어한다는 기사와 함께 그에 대한 개략적인 이야기가 실렸다. 작곡가라면 당연히 유럽인들을 떠올리는데 그런 가운데 한국인이 있다니 신기했다. 그러나 더욱 놀랐던 사실은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윤이상이라는 인물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외국에서는 대단한 인물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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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을 알게 된 때는 그가 타계하기 전이었다. 모 시사주간지에서 그가 죽기 전에 고향을 방문하고 싶어한다는 기사와 함께 그에 대한 개략적인 이야기가 실렸다. 작곡가라면 당연히 유럽인들을 떠올리는데 그런 가운데 한국인이 있다니 신기했다. 그러나 더욱 놀랐던 사실은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윤이상이라는 인물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외국에서는 대단한 인물로 평가받지만 정작 본인의 나라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사람이 비단 윤이상만은 아니겠지만,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까웠다. 윤이상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다가 갑론을박 끝에 입국을 허락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너무 노쇠해서 장거리 여행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가 타계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가 타계해서 안타깝다는 마음에 앞서 모든 잣대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에 대해 화가 났다. 지금은 윤이상의 이름을 딴 상도 있고 그가 어렸을 때 살았던 통영에서 음악제도 열리는 등 그를 기리는 행사가 많이 열리는 걸 보며 진작 좀 그렇게 관심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윤이상(1917~1995)은 완고한 아버지 때문에 처음에는 서당에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나중에서야 보통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처음 풍금소리에 반해 음악과 인연을 맺었단다. 풍금소리를 듣고 반한다고 모두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소리가 윤이상을 음악의 길로 가게 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서양의 문화가 싫어서 아들을 서당에 보낼 정도로 한국적인 것을 중시했던 그의 아버지가 풍금과 바이올린을 배우도록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까지 가서 음악이론을 배우고 통영으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윤이상이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고 싶어 유학을 간 때는 결혼 후다. 사십의 나이(1956년)에 가족을 한국에 두고 혼자 독일로 유학을 떠난 것이다. 독일에서 성실하게 공부를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북한을 다녀왔다는 사실 때문에 납치되다시피 본국으로 송환되어 고문을 받았다. 사실 마지막으로 고국을 돌아보고 싶어한 윤이상의 귀국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남한, 북한이 아니라 한국으로 존재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봐주지 않았다. 시대적인 상황이 그렇기도 했다면 조금 위안이 될까.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펴낸 책이라 윤이상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한국(남한이 아닌)에 대한 사랑을 엿보기에는 충분하다. 무조건 한국적인 것만을 고수하기 보다 어울림을 지향하되 한국적인 맛을 살리는 것이 바로 윤이상이 추구하던 음악이 아니었을까 싶다. 조금 있으면(2010년 9월 12일) '2010 윤이상 콘서트'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고 한다. 윤이상의 삶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았지만 그의 음악은 잘 모른다. 이 기회에 윤이상의 음악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지. 선선한 가을에, 20세기를 대표하는 다섯 명의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윤이상의 음악을 듣는 것도 좋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언젠가는 윤이상 평전을 한번 읽어봐야겠다. 분명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노력, 재능에 감탄하기 보다 시대적 상황과 우리의 정치적 상황에 분개할지라도.



l*****8 2010.09.09.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