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좋은 책에 리뷰가 한 개도 붙어 있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워서 이렇게 키보드를 두들긴다. 예전에 우리 교회 청년부를 지도하던 어떤 전도사님에게 요한계시록을 한 번 공부해보자고 제의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분의 반응은 이랬다. "그럼 나는 교회에서 쫓겨 나겠네" 그러면서 이분이 나에게 이 책을 소개해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리처드 보쿰의 요한계시록 신학이나 이 책 중, 둘 중의 하나 읽으라고 하시면서, 이 두 책을 읽고나니 이 전에 읽었던 요한계시록에 대한 책들은 전부 다 쓰레기였다고 말했다) 요한계시록을 교회에서 가르치면 왜 교회에서 쫓겨날까? 그 분은 농담으로 말씀하셨겠지만 계시록을 곡해하는 사람들과 집단들은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그러한 무분별한 해석에대해 그저 고개를 숙이고 침묵해야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 책을 천천히 정독했다. 일단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대단히 놀랐다. 이 책에서 말하는 교회의 영광스런 이중적 성격적, 요한계시록에 면면히 흐르는 구속사의 장대한 스케일, 새예루살렘의 정확한 개념과 그 영광 스러움, 계시록과 구약과의 밀접한 관계 전투하는 교회로서의 등은 나로 내 입을 다물지 못하게했다. 우리가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1판에서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오자가 많다는 것이었는데 재판이 나오면서 오자들도 대체로 바로잡힌 듯하다. 나는 재판이 나왔을 때 이 책을 한 권 더 샀다. 이 책은 학적일 뿐만아니라 신앙적인 면도 있는데 그 점이 이 책이 딱딱해지는 것을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읽을 다른 책들이 쌓여 손대지 못하고 있지만 이 책을 쓴 이의 스승인 리처드 보쿰의 책들도 조만간 읽고 싶은 소망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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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그것은 처음부터 두려움이었다. 교회에 발을 들여놓고 얼마 안돼서 만난 첫 도서가 시한부종말론에 관한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으로 그것은 “한에녹”이라는 사람이 쓴 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서점도 아니고 서울역 서부대합실에서 허리 꼬부라진 한 할머니에게서 그 책을 샀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초심자가 그저 기독교 용어가 붙은 제목의 책이라는 사실과 할머니에 대한 연민만으로 구입한 책이었다. 그런데 그 책에서 예수님이 언제 오신다며 날짜를 집어주었다. 그 날이 될 때까지 잘 준비하라고... 그런가 하면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 무렵에 꽤나 알려진 기독교 출판사 하나가 종말에 관한 책들을 줄줄이 찍어냈다. 그것은 미국과 구소련의 군사력을 비교해서 그래프로 보여주는 책들이었다. 산술적 수치로 제시되는 미래는 읽는 사람에게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소련이 해체된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는 짓이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다가올 아마겟돈 전쟁을 준비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신앙에 입문했던 초기에 나는 요한계시록을 그런 식으로 읽는 사람들의 안내를 받았다. 물론 성경에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이 있는지도 아직은 모르던 때였다. 따라서 무지한 눈에 비친 그들의 진지함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금방 빠져들게 했고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관한 정보를 그런 식으로 제공하는 책으로 인식되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식의 해석이 잘못이라고 이해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도 그것을 지적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런 일련의 경험들이 잘못 찍은 점(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요한계시록은 되도록 멀리 두는 책이 되었다. 이번에는 앞의 경험자들처럼 잘못 읽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성경을 통독하는 과정에서 계시록을 어쩔 수 없이 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그림들이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어서 눈으로만 읽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읽기가 아니고 성경을 읽었다는 기록을 위해서 글자만 읽은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난 뒤로 시간이 많이 지났다. 지금도 신자들 가운데 내 경험과 비슷한 경험으로 질문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세월이 지났고 세대가 달라졌지만 요한계시록은 여전히 교인들에게 어렵고 무서운 책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일단 좋은 안내서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바로 이 책,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이다. 이 책이 믿을만한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저자가 그저 강단에서 알지도 못하는 자기 얘기로 신비롭게 계시록을 푸는 어떤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는 계시록을 공부하기 위해서 굳이 멀리 영국까지 가서 “리차드 보캄”이라는 요한계시록 전문가에게 배웠다. 요한계시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을 정도니까 우리나라에서는 그래도 이 분야에서 전문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그가 쓴 요한계시록 주석은 우리나라 기독교 출판문학 대상을 받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직 젊고 이성적이며 그러면서도 요한계시록에 대한 애정과 흥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어줍잖은 요한계시록 설교집을 읽는 것보다는 냉철한 이성을 사용해서 이 책을 한 번 보는 것이 훨씬 바르게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성경을 공부할 때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는 쪽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먼저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의 구도를 조망하고, 그 다음에 내려와서 마을의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살피는 것이 성경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책은 완전히 내 스타일이고 이것 또한 내가 이 책을 마음에 들어 하고 추천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요한계시록이라고 하는 동네를 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방식으로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계시록을 일직선상의 전개로 보지 않고 나선적인 구조로 보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요한계시록 전체를 반으로 접어서 양끝을 서로 맞추는 대칭형 구조의 방식이고, 세 번째는 “엔 프뉴마티”라고 하는 표현에 의해서 단락이 구분된다고 보는 언어적 표시에 의한 구분이 있다. 이 각각은 람브레히트(Lambrecht), 피오렌자(E. S. Fiorenza), 리차드 보캄(Richard Bauckham) 등에 의해서 주장되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주장들이 그렇듯이 이 주장들도 저마다 장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그 중에서 세 번째 이론을 따라가고 있다. 이 세 번째는 저자의 선생님(보캄)의 이론이다.(물론 선생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기는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요한계시록이 미래에 있을 일을 미리 보여주는 예언이라는 인식과 다르게 저자는 계시록을 교회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에게 있어서 요한계시록은 암호화된 신비서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시록은 철저하게 편지이며 묵시이자 예언이다.(물론 여기서 예언이란 절대로 미래를 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따라서 계시록의 원저자의 원리와 신학을 알기만 하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공개된 책이다. 저자는 그 원리를 근거로 해서 자기의 주장이 얼마나 옳은지를 조리 있게 보여주고 있다. 이를 위해서 그는 1장에서 전체의 구조를 먼저 설명하고 2장부터 자신의 구조에 의해서 계시록을 나누고 분석해내고 있다. 그가 나눈 단락은 전체 아홉 개로 되어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종말론적 교회관과 그에 대한 적용을 덧붙여서 글을 맺는다.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은 요한계시록 전체를 조망하는데 확실히 도움을 주었다. 물론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한 번 읽고 다 됐다고 할 입장은 아니다. 계속해서 그 내용을 되씹어야 하고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기 위해서 시간과 정신을 투자해야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이런 책을 벌써 읽었어야 하는데 계시록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고 또 적절한 책들이 눈에 띄지도 않아서 미루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이런 책을 발견하게 되어서 너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계시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당분간은 이 책을 숙독하라고 권하게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