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자 룩셈부르크 최진실 제인 마플 무라사키 시키부 오리아나 팔라치 마리-앙투아네트 이화 샤를로트 코르데 라 파시오나리아 사포 요네하라 마리 니콜 게랭 측천무후 오프라 윈프리 라마 야드 아룬다티 로이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다이애너 스펜서 마더 테레사 임수경 브레트 애슐리 마리 블롱도 로자 파크스 프랑수아즈 지루 갈라 후지타 사유리 조피 숄 윤심덕 클라라 체트킨 셰헤라자데 시몬 베유 시몬 드 보부아르 황인숙 강금실 역사에 기록되는 ‘행운’을 지닌 여자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주로 극단적 역할을 맡았던 이들이다. 전형적 예로 잔 다르크를 들 수 있다. 그녀에겐 성녀(聖女)의 이미지와 광녀(狂女)의 이미지가 뒤섞여 있다. 그녀를 저주하며 불태워 죽인 사람들에게나 그녀를 ‘오를레앙의 성녀’로 숭배하는 사람들에게나, 잔 다르크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거처는 천당이거나 지옥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 위에는 그녀의 자리가 없다. 특별히 악독하거나 특별히 거룩한 여자들만 역사에 기록된다. … 이 책이 살필 여자 서른네 사람이 반드시 그런 극단적 여성들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평범한 여자들도 아니다. 너무 평범해서 역사 기록자의 눈이나 작가들의 상상력에 걸려들지 않은 여자(들)를 내가 찾아내거나 지어내서 살펴볼 수는 없었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이므로. 우리가 엿볼 여자들은 우리에게 이미 알려진 여자들이다. 그녀들의 존재론적 범주는 넓다. 누구는 지금 살아 있고 또 다른 누구는 이미 죽었다. 누구는 삼십대 장관이고, 또 다른 누구는 사십대 소설가다. 더 나아가 소설가가 만들어낸 인물도 있다. 다시 말해, 나는 이 책의 주인공들을 실존했던(하는) 여자들에 한정하지 않았다. 예술가의 상상력 속에서 빚어진 여자들도, 그러니까 예술작품 속의 여자들도, 그 삶이 흥미롭다고 판단되면, 나는 펜을 들이댔다. 저자의 글을 좋아해 헌책방이나 중고서점에서 저자의 책을 볼 때면 곧장 구입했었다. 어쩌다 여러 권을 한꺼번에 살 수 있어 최근에 저자의 책들을 많이 읽게 됐다. 저자의 글이 갖고 있는 매력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알아서들 읽어보시라. 그저 저자의 글을 좋아하고 여러 가지로 (글에서) 본받고 싶은 부분들 많아 이것저것 찾아 읽고 있는 중이라고만 말하면 될 것 같다. 일반적으로는 “고종석의” 가 앞서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뒤로 밀려져 있는 ‘여자들 – 고종석의’는 기자처럼 혹은 산문가처럼 (아마도) 적당한 기준에서 선정된 여자들에 대한 인물평이다. 저자가 본격적으로 한명씩 얘기를 꺼내기 전 책 앞에를 통해 어떤 의도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알려주고 있고 그 설명 그대로 저자는 특별한 순서 없이 34명의 여성들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선정된 이들 중 대부분은 처음 알게 된 사람이거나(내 무지를 항상 알게 된다) 몇몇은 이름만 들어본 사람들이라 저자의 설명을 따라 그들의 삶을 접해보게 되고 그들의 삶을 통해서 무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자세히 다루기보다는 간략하게 다루고 있고 삶을 통틀어 정리해주기 보다는 저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인물인지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인물전으로 읽기 보다는 말 그대로 인물평으로 읽으면 될 것 같다. 저자 특유의 글맛을 잘 느낄 수 있으며 저자의 기준에 따른 평가에 조금은 달리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 다뤄진 인물들에 조금 더 관심이 가기도 한다. 사람들을 다루는 다른 책들과는 조금 다른 점을 찾는다면 살아 있던(살아 있는) 인물들만이 아닌 창조된 인물들, 소설 속 등장인물들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루는 2명의 여성들을 저자 개인의 친분(혹은 각별함) 때문에 선정했다는 점도 이색적이라 할 수 있다. “그날에 태어나거나 죽은 인물, 또는 그날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되돌아보”았던 ‘히스토리아’와 적당하게 비슷한 유형의 책이라고 볼 수 있고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이들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 책이었다. 하나 더 말한다면 이 책에서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여러 책들을 많이 알 수 있어 좋았다. 읽을 것들이 많아지기만 한다. 그리고 읽어내지 못하는 건 내 능력 부족 때문이다. |
![]()
역사는 history 애초부터 여성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우리 역사를 예로들면 고려시대, 조선초기까지 부분적으로 여성에 대한 관대함을 찾아볼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며 동서양을 통틀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세상의 반이 남자라면 그 나머지는 여자인 것을 어떻게 남자들의 기준으로만 역사가 만들어진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인들은 성녀로 칭송받든 아니면 악녀로 낙인찍혔든지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대단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들의 일생이 파란만장했던 만큼 후대의 여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음은 말할 것도 없다.
<고종석의 여자들> 이 책은 저널리스트이자 언어학자인 고종석님이 손꼽은 34명의 여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인물이 중심이 되는 책의 경우 '역사를 움직인', '세계를 빛낸' 등의 수식어가 붙기도 하고 왜 그 인물을 선정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뒤따르기도 하는데, 이 책의 경우는 서두에서 아예 못을 박고 시작한다. 소개하고 있는 여인들이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에 따라 편파적이고 불공정하게 선정된 인물이며 실존과 허구, 삶과 죽음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클을 걸 수가 없다. ^^;
솔직히 책을 처음 봤을 때, 바람직하지 못한 두 가지 생각을 떠올렸음을 고백한다. 요즘들어 '골프의 황제'라 불리는 세계적인 스타가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과 겹쳐 제목의 느낌이 달리 와닿았던 것이 첫번째이고 또 한가지는 '고종석'이 누구인가?, 라는 생각이었다. 무엇을 하든 어떤 자리에 있든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은 자신감의 표현이다. 기업이 브랜드화 되고 있는 것처럼 개인의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 시대인 것이다. 하지만 독자로서 저자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자 순간 내 탓이 아니라고 위로하고픈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저자에 대한 정보 뿐 아니라 그가 소개하고 있는 여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서른네 사람 중에서 반 정도만 알고 있었고 나머지는 처음 들어보는 인물이었다. 오래된 영화나 문학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니콜 게랭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기억에 남는다. <러브스토리>의 에릭 시걸의 또다른 작품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에 등장하는데 상당히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로 결혼은 원치 않지만 아이는 낳아 키우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대단하다 싶었다. 시대적 배경이 1960년대임을 감안할 때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논란이 될만큼 파격적인 생각이나 가족의 형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결손가정'이라는 말이 없어져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하게 된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미디어 여왕'으로 등극한 오프라 원프리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손꼽힌다. 그녀의 토크쇼에 출연했던 사람들은 진솔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유명인이란 타이틀을 내려놓고 진심을 털어놓게 된다고 한다. 오프라 원프리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어려움에 처해있는 여성들에게는 희망을 주고 또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한 편견을 극복하는데도 힘을 쏟고 있다. 그외에 마리 앙투아네트, 윤심덕과 같은 비련의 주인공들에 대한 의견이나 최진실, 강금실 전 장관을 포함한데 대해서는 의외였지만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누구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여인 한 두명쯤은 가슴에 품고 살지 않나 싶다. 하지만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여인을 꼽으라면 주위를 둘러볼 것도 없이 바로 내 어머니를 꼽을 것이다. 어머니는 체형, 외모, 성격 등 모든 면에서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을 가지셨다. 단아하면서도 다소곳하시고 자식들에게 헌신적이며 생활력 강하시다. 무엇보다 긍정적이고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셔서 주위에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많다. 사춘기때 한참 반항하고 그럴때는 엄마처럼 가족과 타인을 위해서 사는 인생을 누가 알아주느냐고 엄마처럼은 살고 싶지 않다고 소리쳤던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엄마를 반 만이라도 닮고 싶다는 바램이 간절하다. 뒤늦게 철드나보다.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고종석이라는 작가와 그의 여인들을 알게 되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아무리 주관적인 생각으로 선정하였다고는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 깊은 인상을 심어준 인물들인 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처음에 책 제목과 표지만 보고 선입견을 가졌던 점을 반성한다. 모두가 나의 내공이 부족한 것이 이유였는데 말이다. 다행인 것은 나의 무지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젊다는 이유로 세상을 경험하고 배울 시간이 많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인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이 많고 세상을 변화시킨 이들도 많지만 그들을 낳아 기른 것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
1월 1일에 읽은 두 권의 책 중 한 권이 고종석의 책이었다. 부끄럽지만, 고백컨대 (일단 변명부터 붙이고) 소설만 지독하게 편애하는 나는 고종석의 책을 처음 만나본 거였다. 1일에 펼쳐 들었던 책은 <코드 훔치기>였는데, 반쯤 읽다가 잠시 다른 책을 읽느라 아직 다 읽지 못했다. 그러고는 그 뒤에 잡은 이 책, <고종석의 여자들>을 먼저 완독했다. 연초부터 소설도 아닌, 슬쩍 넘겨만 봐도 어려워보이는 그 책을 읽겠다고 펼쳐든건 저자 이름 때문이었다. 작년에 친구로부터 "아, 고종석 너무 좋아!"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던 게 생각나서. 그러니까 내가 소설, 시, 에세이를 벗어나서 평소에 감히 눈도 안 돌리던 쪽에 슬쩍 눈길을 기울인 건 순전히 친구의 '고종석 사랑' 덕분이다. 고맙다, 친구야. 덕분에 올해는 연초부터 별식을 즐기는구나!
이 책도 역시 고종석의 책이니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다. 또 한번 고백하자면, 지난해 내 독서 목록은 편식의 끝을 달려 소설, 시, 에세이가 95%쯤 차지한 듯 싶다. 그나마 조금 벗어난 거라면 사진집 정도?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이런 책(? 어떤 책? 아무튼 소설, 시, 에세이가 아닌 이런 책!)을 읽어봤다. <코드 훔치기>를 읽을 때부터 뇌의 움직임이 평소와 다른 게 느껴질 정도였다. 잔뜩 긴장하고, 낯선 단어단어들에 주눅도 들며,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면서도 어쩐지 흥미진진하여 쉬이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는, 평소의 책 읽기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의 책 읽기. (그래서 이 책 리뷰를 쓴다고 페이지를 열어 놓고도 책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고 평소와는 다른 책 읽기에서 받은 신선한 긴장을 줄줄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흠흠)
이 책에는 모두 서른네 명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국내외를 막론하여 역사적 인물도 있고,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도 있고, 현존하는 소설가나 정치가도 있다. 지은이가 편애하는 여인들이라고 보면 될까? 그 서른네 명의 리스트부터 흥미진진하다. 일단 나는 저자 고종석을 전혀 모르므로, 그 여인들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무척 궁금했는데, 단순히 한 여인의 일생을 소개하고 거기에 간단한 에피소드를 곁들이는 식의 글이 아니었다. (모르긴 해도, 아마 고종석의 글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이런 단순한 글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 같다.) 그 여인들을 만나는 데는 역사, 문화, 문학 등이 배경 장면이 되어주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그 서른네 명의 여인들 대다수가 내게 낯선 인물이므로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 역시 대부분은 '새로운 세계'. 이 책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 두 가지는, 친구가 어째서 '아, 고종석 너무 좋아!'라는 문자 메시지를 내게 보냈는지를 알 것 같았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는 편식에서 벗어나 이런 책(!) 좀 많이 읽어야겠다는 것. 아무래도 평소에 읽지 않던 분야의 책을 읽었다보니, '제대로' 읽었는지도 모르겠고, 리뷰 남기기도 참 힘들다. 정말 무식이 통통 튀는 내 모습을 까발려내는 것 같은 시간인데, 흠흠, 어찌되었든, 이 책을 계기로 올해는 편식에서 벗어나야겠다! (정말, 책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결론이다. 참, 나답다.) |
|
|
|
|
활자로 만나는 고종석은 이 번이 처음이다. 솔직히 그의 이름 자체가 처음일 정도로 너무도 생소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고종석의 여자들'이란 제목의 책으로 나를 찾아왔다. 처음 '이거 뭐야?'식의 거북스러움(토악질)이 나를 압도했다. 이걸 읽어 말어를 두고 마음 속 내분이 거세게 일기도 하였다. 그에 대한 의문에서 '고종석'이란 이름을 검색하니, 가장 먼저, <어루만지다>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물론 읽은 적 없다. 그렇지만 표지가 참으로 인상적이어서, 눈독을 들인 기억은 있지만 저자에 주목하지 못했다. 그리고 <착한 딸 콤플렉스>라는 책을 읽다가 책 뒤표지에서 저널리스트 고종석을 만나면서, 슬쩍, 마음 속 동요가 일었다. 그리고 그의 여자들을 만나보면서 제목으로 인한 오해가 편견은 단순에 날아갔다. 부끄러웠다. 나의 무지가, 그리고 고종석의 박학다식함을 뛰어넘는 한없는 애정에 동요되었다.
자신을 여자를 애호하는 '자이노파일'이라 소개하면서, 서른네 명의 여성들을 소개하고 있다. 역사속 실존인물인 경우도 있고, 문학 속 허구인물와 현존 인물들을 망라하고 있다. 자신의 취향과 변덕을 반영하면서 편파적이고 불공정하게 그에 의해 선택된 여성들은 모두가 흥미로웠다. 그녀들 앞에 붙은 남다른 수식어, 그 의미를 파헤치며, 그녀들의 탐구한 그의 필력에 속수무책 빨려들고 말았다.
펜을 든 여전서 '오리아타 팔라치'와 21세기의 제망매 '최진실' 그리고 마을의 현인 에거사 크리스티가 탄생시킨 '제인 마플'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해, 나는 임신한 이모와 함께 지내면서, 최진실 자살 소식을 알리는데 반나절이 걸렸었다. 쓸적쓸적 뉴스를 접하면서, 충격에 혼란스러웠던 만큼, 괜시리 염려스러웠던 마음에, 점심이 지나고서야 고백하듯 이야기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울었던 기억, 그 충격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어, 마음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랄까! 오리아타 팔라치는 얼마 전 읽은 <슈러 글로벌 리더가 세상을 움직인다>라는 책을 통해 만난 적이 있었고,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라는 책을 통해 이미 마플을 만난 적이 있어 그 반가움에 더욱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물론, 체 게바라의 견줄만한 여성 혁명과 사랑의 불꽃 '로자 룩셈부르크, 폴 자크 에메 보드리라는 화가가 그린 '샤를로트 코르데'란 그림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면서, 암살의 천사 '샤를로트 코르데', <노새>라는 작품을 통해 스페인내전을 알게되어 그 의미가 남다른 열정과 수난의 꽃 '라 파시오나리아', 현 프랑스 인권담당 국무장관이라는 프랑스를 매혹시킨 흑진주 '라마 야드' 등등의 아주 인상적이었다.
고정석에 의해 선택된 여자들은 각양각색, 그만의 재해석에 의해 그네들의 삶이 더욱 깊이있고 풍성하게 다가왔다. 그의 편파적인 애정 과시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이면서도 끊없이 다정다감한 눈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이 애지중지하던 여인들을 세상에 소개함으로써, 그네들의 삶이 더욱 다채로워짐을 느낀다. 아무래도 '고종석의 OOO'이란 제목을 찾아 이리저리 헤맬 것 같다. |
|
<도시의 기억> 이었던가. 저자가 살아오면서 머물렀던 도시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 책에서 나는 처음으로 고종석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글쓴이를 알고 있다는 것은, 아예 모르는 책을 대할 때보다 가슴이 뛰는 반면, 좀 더 조심스럽다. 행여 저자의 한두 가지만 보고 다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걱정에 최대한 선입견을 배제한 뒤, 책을 펼친다. 예전엔 기자였고 지금은 출판사의 기획위원으로 있는 저자 고종석의 인문학적 세계는 넓고 깊다. 무엇보다 재밌다. 그가 이번에는 자신이 만난 서른네 명의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에게 선택된 여자는 로자 룩셈부르크, 마리 앙투아네트, 최진실, 측천무후, 오프라 윈프리, 마더 테레사, 윤심덕, 강금실 그리고 셰헤라자데까지 현실과 픽션, 정치와 문화, 역사와 혁명적 인물에 이르기까지 틀도 없고, 형식도 없다. 그는 그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역사 속 별이 된, 또는 될, 여자들의 생애를 서술한다. 인문학적 에세이스트답게, 능숙하고 유쾌하며 때로 아련하게.
마냥 허구인 소설은 붕 뜬 것 같아 거부감이 들고, 주제의식을 상실한 얕은 에세이들에 차별화 없는 싫증을 느낀다면, 고종석의 작품이 공허의 틈을 덜어줄 것 같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능력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밌게 읽히고, 의외로 얻는 것도 많다. 그가 이야기하는 서른네 명의 여자들은 모르는 인물이 반 이상이지만, 오히려 그 정도의 수준이 이 책을 유익하게 느끼기에 적절한 것 같다. 정치,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이야기 솜씨가 일정 깊이를 지키면서도 초보자에게 학습의 여운을 남기는 매력이 있기 때문에 좀 편안한 독서를 원한다면, 역사 속에서 한 인물하는 여성들을 만나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든 남자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여자. 오늘날 그 고정관념이 많이 사라졌다해도 여전히 사회활동면에서 남자보다 제약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이 여자를 말한다 해서 저자가 페미니스트이거나 마초가 아니다. 그는 그저 오래 전부터 있었던 위대한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 것 뿐이다.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서른네 명의 여자들.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 사회적으로 따지면 제약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역사라는 페이지 한 켠을 장식하기 위해선 가장 불리한 제약 또한 자기 것으로 완벽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세상에 여자라서 불리한 점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남자도, 남자라서 불리한 점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여자는 연약하고 의존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무시해주는 수많은 여자들이 있어서 그렇지 않은 여자들도 꿈꿀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 아닐까. 가족, 연인, 친구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부드러운 여자'도 여자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 또한 마다않는 '간 큰 여자'도 여자다. 물론 어딘가에 흡수되어 사라지는 편보다 어느 분야든 자신만의 가치로 반짝이는 여자가 멋진 것도 사실이다. 고종석이 본 여자들은 모두 매력있다. 하나같이 본받고 싶은 신념과 가치를 지닌,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여자라는 역할을 좀 더 숭고하게 이뤄놓은 인물들이다. 내가 감히, 여자로서, 그들의 삶을 욕심내도 될까. 그래도 괜찮을까. |
|
며칠 전에 <여배우들>이라는 영화를 봤다. 원래 여자는 여자에게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여자 이야기'에는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간다. 어쩌면 나 아닌 '다른 여자'에 대한 질투와 경쟁심, 동경 같은 것이 은연중에 내 맘을 파고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에서 '여자'와 관련된 이야기들에 꽤 흥미를 가지는 편인데 마침, 고종석의 이 책 『여자들』이 눈에 띄었다.
그동안 고종석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저자들이 세계의 이름난 여자들에 대해 자신의 의견들을 피력하거나 혹은 그들의 전기를 간략하게 보여주는 글들을 써오기도 했다. 여신이나 혁명가, 팜므파탈이나 조선의 악한 여자들까지. 그렇게 세계의 다양한 여자들을 알아왔는데 저자에 따라 그 읽는 재미가 달랐다. 특히 고종석이 말하는 여자들은 그들과 조금 다르다. 물론 여태껏 알아온 유명한 여자들도 많지만 전혀 알지 못하는 여자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여자들이다.
'제인 마플'(아는가? 이름은 많이 들어왔지만 이 여자는? 하는 의구심이 생길 것이다.) '무라사키 시키부'(겐지 이야기라고 하면 아하! 하는 분들 있겠다.) '이화'(이건 정말 재미있는 선택인데 고종석이 말하는 여자들에서 가장 독특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결국엔 이화라는 여자보다 장미희라는 여자에게 더 관심이 갔던 것이 분명하지만.) '갈라 엘뤼아르 달리'(변동림을 떠올리며 비슷한 운명의 갈라에 대해 고종석이 말하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진진했다. 나중에 꼭 이 여자와 관련한 책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후지타 사유리'(맞다.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그 사유리다.).
또한 고종석은 역사 속에 존재하는 여자들을(측천무후, 사포, 마리 앙트와네뜨 등등) 말하기도 하고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여자들을(최진실이나 다이애나 같은) 떠올리기도 하며, 지금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오프라 윈프리, 임수경) 여자들에 대해 사유하기도 한다.
고종석의 글을 읽은 것은 『도시의 기억』이란 책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문체가 좋다. 쉽게 읽히지만 난삽하지 않다. 굉장히 인문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감성적이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솔직하다. 그들을 찬양(!) 하지만 내면을 꿰둟어보는 듯 꽤 진지하고 깊이 있다.
고종석은 페미니즘 코드로 이 여자들을 무조건 옹호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 역시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여자가 아닌고로 고종석의 서른네 명의 여자들에 대한 생각들이 흥미를 끌었고 깊이를 얻었다. 인물의 중요도보다 취향과 변덕을 반영하고 있다하더라도 말이다. 해서 "역사에 기록되는 '행운'을 지닌 여자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주로 극단적 역할을 맡았던 이들" 이든 그렇지 않든 고종석이 말하는 여자들에겐 왠지 부쩍 관심이 간다. 여자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더불어 이번 기회에 고종석의 다른 책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나.
참고로, 내가 아주 맘에 든 여자는 오리아나 팔라치, 생전 처음 들어본 이름이고 그녀에 대해 고종석을 통해 처음 알았지만 굉장히 매력적이다. 뭐, 굳이 꽤 멋지게 나온 섹시한 할머니 모습의 그녀때문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 정도로만 멋지다면 좋겠다. 역시 이건 동경이다. 같은 여자로서. |
|
고종석의 여자들. 제목 자체가 내게 주는 느낌은 지독하게 직설적이고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본능이었다. 물론 '고종석'이라는 이름때문에 이 책에서 말하는 '여자들'이란 그저 평범한 그의 여자들을 말하는 것은 아닐것이라 짐작하긴 했지만 말이다. |
|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인물들의 목록을 살펴봤다. 원래 이런 책은 목차부터 보곤 했으니 특이하다고 볼 건 없다. 다만 이 중에서 내가 아는 인물이 얼마나 되나를 속으로 열심히 세어 보고 있었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실존 인물도 있고 소설속 인물도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내 경우는 실존 인물에 더 관심이 간다. 다행히 실존 인물이 훨씬 많다. 그리고 단순히 여자로 얌전하게 산 사람보다는 시대를 앞서 살았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건 남자를 대상으로 한다 해도 비슷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조금(이라기 보다는 좀 더 많이) 앞서가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한다. 그래서 당대엔 인정받지 못하다가 후대에 유명해지는 사람이 있지 않던가.
이 책 한 권에서 30여 명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각 인물에 대한 내용이 길지는 않다. 어쩌면 그래서 더 흥미있게 읽었는지도 모른다. 한 인물을 제대로 분석해 놓은 글이었다면 나 같은 일반 독자는 지루해하지 않았을까. 이미 알고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주워 들은 조각을 맞춰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고 아예 모르는 인물의 경우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물론 가끔은 역사적 평가와는 상관없이 작가 개인적인 감정을 인물에 투영해서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것은 시비를 가릴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간혹 어떤 인물은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워낙 예술에는 문외한이라 그런지(게다가 세계사도 어둡다.) 마라가 암살을 당한 모습을 그린 그림을 알지만 정작 암살한 사람은 누군지 몰랐었다. 다만 마라와 잘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말만 들었다. 그런데 그 암살자가 샤를로트 코르데였단다.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 프랑스 혁명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가면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너무 자세하지 않으면서도 상황파악이 가능할 만큼 설명해주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또한 공산주의라면 입 밖에 내서도 안 될 것 같은 시대에 살았기에 그쪽에 아주 관심이 많은 사람 아니었으면 알지 못했을 여러 인물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좋았다. 그 밖에도 문화 예술 영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달리에 대한 책을 읽으며 갈라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는데 여기서도 잠깐 언급된다. 그리고 백장미(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그림책도 있다.)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다 결국 죽은 조피 숄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책을 다 읽을 즈음 문득 신문의 사설을 읽는 듯한 느낌과 함께 문체가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이력에서 논설위원실에서 오랫동안 일했다는 것을 봤기 때문일 거라며 넘겼다. 그러다 며칠 후에 어느 주간지에서 작가의 글을 봤다. 아, 이 사람과 동일인이었구나, 어쩐지 낯익다 했다. 지금까지(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정기적으로 '그'의 글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