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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어떤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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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이론가 질 리포베츠키(Gilles Lipovetsky)는 매력적인 문화비평가다. 2007년도에 처음 읽은 그의 저서가《공허의 시대》(1989)와《의무의 황혼》(1992) 두 권이었다. 포스트모던한 사회를 제2의 개인주의 혁명기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소비미학이 푸코식 자기실현의 정체성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간파한 점이 흥미로웠다. 프랑스작가 특유의 에세이적 글쓰기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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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이론가 질 리포베츠키(Gilles Lipovetsky)는 매력적인 문화비평가다. 2007년도에 처음 읽은 그의 저서가《공허의 시대》(1989)와《의무의 황혼》(1992) 두 권이었다. 포스트모던한 사회를 제2의 개인주의 혁명기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소비미학이 푸코식 자기실현의 정체성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간파한 점이 흥미로웠다. 프랑스작가 특유의 에세이적 글쓰기에 자본주의 문명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화철학적 비판과 성찰을 담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이번에 읽은 《행복의 역설》(알마, 2009)은 공허시대의 담론와 과소비사회의 담론을 한데 녹아낸 수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리포베츠키는 과소비사회의 기능과 과소비사회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예리하게 고찰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기대 대신 현재를 중시하는 삶이 자리를 잡았고 정치적 참여 대신 쾌락주의가 주를 이루었다. 안락함에 대한열정이 국가주의적인 열정을 대신하고 여가 생활이 혁명 정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삶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새로운 신앙처럼 등장하면서 더 나은 삶의 추구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대중의 열정, 즉 민주 사회의 최종 목표이자 거리 곳곳에서 발산되는 이상이 되었다."(5쪽)

 

저자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문화감정과 정서, 과거에 대한 향수, 신화와 유희, 시민 의식이나 환경, 동물적 본능에 기반감각적이고 경험적인 마케팅 기법과 더불어 창조적 이미지인 예술과 아름다움, 스타일, 미학적 경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과소비사회라는 관점에서 탐구한다.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과소비사회는 풍요와 사치의 낙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독과 절망의 지옥도 아니다.

 

책의 2부에서 저자는 과소비사회를 살아가는 소비자 유형을 다음의 5가지 패러다임 모델로 분류한다. 첫 번째 모델은 페니아(penia)다. 플라톤이 《향연》에서 빈곤과 결핍을 의인화한 것이 페니아인데, 저자는 이를 지나치게 해옥한 축제의 사회야말로 가장 심한 결핍감으로 절망하는 사회를 재현하는 모델로 제시한다. 두 번째 모델은 디오니소스다. 주신의 이름답게 지금 여기의 욕구만을 우선시하는 쾌락주의 시대의 모델이다. 세 번째 모델은 슈퍼맨이다. 슈퍼맨 모델은 자기 실현의 가치를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시대를 상징한다. 즉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며 유능함을 숭상하며 자기초월을 시도하는 시대를 상징한다. 네 번째 모델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Nemesis)다. 행복을 중시하는 문화가 오히려 증오심, 질투심, 경쟁 심리를 더 부추킨 측면을 부각시킨다. 다섯 번째 모델은 '행복한 인간'을 뜻하는 호모 펠릭스다. 호모 펠릭스는 현재를 유토피아로 여기고 즉흥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이다. 지금 당장의 행복을 추구하는 '행복한 인간'에 대한 숭배는 생태계파괴와 같은 물질문명의 위기 징후들을 초래한다.

 

각 모델마다 독특한 신화적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는데 저자가 5가지 모델에게 붙인 부제가 인상적이다. 가령 페니아는 '물질적 쾌락과 실존적 불만', 디오니소스는 '쾌락주의 사회와 반디오니소스 사회', 슈퍼맨은 '완벽에 대한 집착과 감각의 기쁨', 네메시스는 '행복의 과다노출과 욕망의 후퇴', 호모 펠릭스는 '유토피아의 위대함과 불행'이란 테마가 붙어 있다.

 

 

 

z***a 2012.12.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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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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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소비자는 단순히 물질적 탐욕을 품은 사람이라기 보다 정신적 안락함과 내적 조화 , 주관적 행복을 요구하는 자다. 이는  자아개발을 위한 기술 발달과 더불어 동양의 지혜, 새로운 신비주의, 이른바 행복과 지혜를 전달한다는 영적 지도자들이 성공을 거두는 데서 잘 드러난다. (p.9)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과소비사회를 살아가는 과소비자는 단순히 물질적인 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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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소비자는 단순히 물질적 탐욕을 품은 사람이라기 보다 정신적 안락함과 내적 조화 , 주관적 행복을 요구하는 자다. 이는  자아개발을 위한 기술 발달과 더불어 동양의 지혜, 새로운 신비주의, 이른바 행복과 지혜를 전달한다는 영적 지도자들이 성공을 거두는 데서 잘 드러난다. (p.9)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과소비사회를 살아가는 과소비자는 단순히 물질적인 탐욕을 품은 사람이라기보다 정신적 안락함과 내적 조화, 주관적인 행복을 요구하는 자다. 모든 소비재들의 브랜드화를 지향하는 젊은 층의 성향은 경제적 기반이 미약한 빈곤층에게는 극심한 소외감을 야기시키고 그들이 경제적 빈곤을 해소했을 때 또 다시 보상적 소비행위, 즉 과시 소비를 하게 하는 심리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물론 현대의 개인주의적 사회 하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소비는 지극히 당연한 권리이다. 그러나 사회통합적 차원에서 생각해 봤을 때 한 나라의 구조를 경제력이라는 일편의 가치로 이분화시키고 이질화시키고 있다. 대량생산 대량 소비로 인해 지구 전체가 신음하고 있다는 부분도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전세계 인구의 5%밖에 안되는 미국인들이 전세계 자원의 1/3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 즉 미국인들의  대량 소비를 위해 제 3세계 특히 열대림이 많은 나라의 국민들이 고생을 한다는 것이다. 나무를 베고, 석탄을 케고 수자원을 획득해서 미국등 선진국에 팔아 생활해야 하는 가난한 국가들의 사람들은 결국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들이 부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량 소비는 계속적인 생산을 요구하며 결국 자연의 파괴를 요구하게 된다. 지구의 다른 한 쪽 구석에서는 아직도 엄청난 숫자의 삶들이굶어죽고 헐벗어 얼어죽고 있지만 '풍요를 누리는' 국가에서는 끝없는 과소비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분명 도의적 차원의 비판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각종 명품 브랜드, 보석 등을 구매한다. 이것은 ‘ 나는 평범하지 않아. 나는 너보다 잘났고 돈도 있고 힘도 갖고 있다’는 과시욕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과시욕구와 그 구매는 몇몇의 사람으로 인해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이런 사회의 영향은 나와 나의 친구들에게도 과시욕구와 과소비를 안겨주었다. 이러한 소비심리가 심화될수록 그 사회의 이질화 또한 심화되고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소비사회는 사회 전반에 자아실현의 이상을 널리 퍼뜨리면서 원하는 것과 실제사항, 상상과 현실, 기대와 일상의 경험 간에 불일치를 더 증폭시켰다.(p.189) 

k****7 2010.01.30.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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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소비사회에 대한 전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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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우치"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 속에서 도사 전우치는 미움을 받아 그림 속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그가 풀려난 건 500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였다. 게다가 그가 생활하게 된 곳은 도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또한 눈에 보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런 그를 보면서 구석기나 신석기처럼 머나 먼 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몇 십년 전의 사람이 세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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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전우치"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 속에서 도사 전우치는 미움을 받아 그림 속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그가 풀려난 건 500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였다. 게다가 그가 생활하게 된 곳은 도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또한 눈에 보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런 그를 보면서 구석기나 신석기처럼 머나 먼 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몇 십년 전의 사람이 세월을 건너뛰어 갑작스레 현재로 오게 된다면, 그래서 지금처럼 넘쳐나는 물질문명을 접하게 된다면 얼마나 놀랄 것인가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는 과연 지금과 같은 물질문명을 접하고 좋아 할 것인가 혹은 놀라고 경계할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행복의 역설"이란 책은 지금처럼 풍부한 적이 없었던 현재에 대해서 "소비"에 초점을 맞춰 설명해주는 책이다. 

 먼저 1부, 과소비사회
이미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시장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단계를 넘어선 지금, 으레 그렇듯이 소비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줄어들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오히려 소비를 하고자하는 사람들의 욕심은 커졌고, 소비를 할 수 있는 물질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현대사회는 '탈-소비'사회가 아니라 과소비사회가 된 것이다.(P.25)

 소비가 미덕이 된 사회에서  소비 문명은 3단계를 거치면서 변화해왔다. 
1880년대 무렵부터  시작되어 제2차 세계 대전과 함께 막을 내린 대중소비사회 1단계. 
이 시기는 근대식 교통 통신과 관련된 인프라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로 인해 전국적인 대형 시장이 생겨나고 상품 또한 대량 생산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은 시작 단계였기에 부르주아만이 주체가 되는 불완전한 대중소비사회를 형성했을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브랜드, 포장, 광고가 생겨나고 상품 판매를 위한 방법으로 힘을 얻기 시작함으로써 1단계는 자연스럽게 2단계로 이어진다.

 2단계는 1950년대 무렵 부터 시작되어 전후 30년에 걸쳐 자리 잡았다. 2단계는 '풍요로운 사회'와 동일시 되는 시기로 봉급자의 월급이 3-4배까지 오르곤 했다. 더불어 소비력도 증가하여 소비의 엘도라도라는 꿈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시기는 '대중소비사회'의 완벽한 모델로 등장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3단계는 1970년대 말 이후에 현대사회의 무대에 올랐다.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던 포드주의 생산방식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시점에 등장하여 소품종대량생산보다는 다품종소량생산의 문을 활짝 연 것이다. 이 시기에 와서는 특정 계층에 의해서만 소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가진것이 없는 자들도 자신만의 소비를 꿈꾸고 때로는 먹을 것을 줄여가면서까지 소비에 참여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마지막 2부, 소비자의 기쁨, 상처받은 행복. 
1부에서 소비의 진화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면 2부에서는 그 진화의 과정에서 있었던 고통과 현재의 고통, 그리고 미래에 혹 있을지도 모를 걱정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사회의 행복과 기쁨을 보여주는 다섯 가지 패러다임의 모델을 제시하여 책을 읽는 재미를 더했다. 

모델 하나, 끝없이 욕구를 자극하는 소비주의 사회라는 페니아(Penia)의 원리. 
모델 둘, '지금 그리고 여기'의 욕구만을 우선시하는 쾌락주의 시대- 디오니소스. 
모델 셋, 경쟁력, 훌륭함, 유능함 등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 영웅 슈퍼맨. 
모델 넷, 개인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끝없는 욕망으로 고통을 주며 타인의 성공과 행복을 지켜보면서 더 큰 불쾌감을 느끼는 사회-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 
모델 다섯, 소비 문명에 의해 시작된 존재의 사유화를 강조하면서 형성된 사회- 호모 펠릭스.

  아직 상품화폐가 발달 하지 않았던 시대엔 나라에서 이를 권장하곤 했었다. 소비가 곧 미덕이라는 심리를 심어주기 위해 국민들의 어깨를 토닥거리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필요한 것을 사고 파는 소비사회를 벗어나 과소비사회가 된 지금, 이는 옳은 것일까? 혹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 끝이 과연 인간에게 유익할 것인가? 책은 그 점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말하고 있다. 

 책을 보니 지금의 과소비사회를 두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들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어느 덧 과소비가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터전의 생명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각종 환경문제,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등으로 인해서. 현재 접하게 되는 환경오염이나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다루는 뉴스 등을 보면 지금의 과소비사회가 정말 위기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역시, 한걸음 물러나서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다.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간이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을 통해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자신의 행동을 수정해 가곤 한다. 그것을 생각하면 역시나 희망은 있다. 

 과소비자본주의가 아무리 자신과 타인, 문화와의 관계를 뒤흔들어놓는다고 해도 포스트 역사주의 인류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배우고 이해하고 진보하며 자기를 초월하는 의지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P. 415)
위의 문장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치고 싶었다. 정말 내 생각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소비사회의 소비심리를 분석한 미래사회 전망 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기에 얼핏 심리를 다룬 책인가 했다. 그리고 보게 된 책의 두께에 손길이 주춤했다. 휘리릭 넘겨보고는 혹 전문서를 잘못 고른게 아닌가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읽기 시작하니 어렵지는 않았다. 중간 중간 처음 접하는 낯선 용어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해를 할 수 없다거나 이해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내용은 없었다. 그렇다고 페이지 넘기는 속도가 빨랐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소설 위주로 책을 읽었던지라 오랜만에 읽는 교과서 같은 책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책은 재밌는 소재를 다루지 않으면서도 재미를 아주 잃지는 않고 있었다. 그로인해 유익한 독서를 했다는 흐뭇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w*******y 2010.01.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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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물질적 성공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물질적 성공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내용보기
우리는 물질적 성공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A. J. 크로닌의『성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처음에는 일 년에 1000파운드만 벌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만한 수입이 들어오자 곧 희망 금액을 두 배로 올리고 그 숫자를 최대치로 잡았다. 그러나 그 최대치에 도달하고서도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높여 나갔다. 가지면 더 갖고 싶었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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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물질적 성공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A. J. 크로닌의『성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처음에는 일 년에 1000파운드만 벌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만한 수입이 들어오자 곧 희망 금액을 두 배로 올리고 그 숫자를 최대치로 잡았다. 그러나 그 최대치에 도달하고서도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높여 나갔다. 가지면 더 갖고 싶었다. 그리고 그대로 갔다면, 그는 결국 파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그(앤드루)처럼 우리는 물질적 성공만으로 행복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물질적 성공으로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과시할수록 이러한 기댓값은 최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댓값이 끝이 없다는 것이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돈이 있는데도 역설적으로 그가 불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질 리포베츠키는『행복의 역설』에서 흥미롭게도 과소비사회를 분석하면서 현대인의 불행에 접근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소비주의 3단계를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즉 생산과 대중 마케팅의 1단계, 대중소비사회의 2단계 그리고 과소비사회의 3단계다. 특히 2단계인 대중소비사회는 물질적 안락함으로 인해 풍요로운 사회이며 욕망의 사회였다. 결과적으로 욕망이 양적으로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3단계는 비소비사회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대중소비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아무래도 소비사회를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의 단순한 생각과 달리 과소비사회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상품과 불가분의 관계며 결국에는 소비하게 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저자는 3단계에서는 우리가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소비자 즉 ‘소비주체(consommacteur)'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개인의 사회적, 경제적 정체성이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창조적 소비, 감정적 소비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소비사회라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비록 질적으로 소비패턴이 변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행복의 추구에 대한 또 다른 갈등이 있다. 이것이 곧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행복의 역설’이다. 저자는 5가지 패러다임을 통해 과소비사회의 심리를조명하고 있다.

 

 

첫 번째는 페니아(Penia)다. 소비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욕구를 자극하는데 그런 만큼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한 절망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디오니소스다. 쾌락도시에서는 안락함과 풍요로움의 디오니소스다. 그러나 과소비사회에서는 유희-축제의 가치 기준이 확산되며 사실상 완전히 반디오니소스(anti-dionysiaque)다. 즉 개인이 디오니소tm적인 게 아니라, 개인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공동체를 도구화하며서 디오니소스적인 분위기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슈퍼맨이다.

실적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잠재력이 주요 결정 요소가 되었다. 완벽에 대한 집착이다.

 

네 번째는 네메시스다. 과소비사회는 투명한 사회다. 모두 보여주고 모두 말하고 모두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 개인의 사적 영역의 마지막 힘이 바로 질투심이다. 풍요로운 사회일수록 질투가 더 심하며 ‘모방의 지옥’에 따라 행복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호모 펠릭스다. 대중 미학의 소비시대에서 파괴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책임감있는 소비자가 필요하다. 또한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미시 유토피아시대다. 개인의 자아도취에 따른 지혜조차 즉흥성과 감정이라는 ‘가벼운 지혜’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를 역설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즉 정복과 위험에 대한 열정이 높은 사회라는 것이다. 행복의 보편화 현상과 위험한 행동의 증가가 함께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3단계의 과소비사회에서 개인의 위치는 역동적이며 초개인주의다. 그래서 단순하게 소비재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을 정복하면서 재창조한다는 것이다.

 

<책 속 밑줄>

과소비자는 단순히 물질적 탐욕을 품은 사람이라기 보다 정신적 안락함과 내적 조화, 주관적 행복을 요구하는 자다. p 9

이렇듯 소비는 더 이상 의사소통 체제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언어라기보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통해 일상을 낯설게 만드는 과정, 즉 여행이다. p 74

생활방식이 상업화할수록 인간 감성의 가치는 더욱 두드러진다. 소비-세계는 따뜻한 정서를 배척하지 않는다. p 163

안락함의 세계가 강화될수록 디오니소스는 사라진다는 필연적인 법칙이 성립되었다. p 245

행복한 인간 호모 펠릭스는 단지 현명한 자들에게만 약속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진보의 원리를 따르는 모든 인간에게 제공된다. p 379



p******0 2010.01.07. 신고 공감 0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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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역설. 행복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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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책이 무척 두꺼웠습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보니 책이 왜 두꺼운지 알 수있었습니다.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의 최신판 그리고 프랑스판이라 해도 좋을 만큼 현대소비문화의 실태를 총정리하느라 이 책은 일단 두껍다. 그러나 내면의 치유나 해방따위를 추구하는 반물질주의, 반개발주의 역시 또 다른 소비에 불과하다는 주장, 비만이 빈곤의 징표로 바뀌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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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책이 무척 두꺼웠습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보니 책이 왜 두꺼운지 알 수있었습니다.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의 최신판 그리고 프랑스판이라 해도 좋을 만큼 현대소비문화의 실태를 총정리하느라 이 책은 일단 두껍다. 그러나 내면의 치유나 해방따위를 추구하는 반물질주의, 반개발주의 역시 또 다른 소비에 불과하다는 주장, 비만이 빈곤의 징표로 바뀌엇듯이 소비가 새로운 하류 인생들의 징표로 바뀐다는 주장. 그리고 창조하는 인간, 계발하는 인간이 대안이라고 하는 주장에 눈에 띄는 새로운 성찰은 없다. 물론 이런 주장들에 낯익지 않은 사람에게 그러니깐 아직도 내면이니 지혜니 비밀이니 신비니 따위에 빠져있는 사람이나, 실존의 문제를 소비를 통해 카르페 디엠을 통해 해결하느라 바쁜 사람, 그리고 아직도 치열한 자기연마의 중요성을 모르고 멍하니 노느라 바쁜사람에게는 그닥 나쁘지 않은 책이다. 다만 한가지 교육의 놀리 자체가 자본의 논리와 얼마나 동질동형인지를 간과한 채, 교양이니 예술이니 인문학이니 치열하게 몰입했다가는 치명적으로 몰락할 수 있음도 명심해야겠다. 평생치유, 평생유희에서 벗어날 수 있을 듯 보이지만 순진한 철학자 리포베츠키와 함께 평생학습 평생예술을 운운하는 자본의 덫에 걸리는 수가 있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소비적인 생활패턴이 형성되기까지의 역사적 내용들을 통해 이해의 폭은 넓힐 수 있었지만, 미래 사회 전망으로 내세운'과소비사회'에 대한 저자의 의도가 나에게 있어서는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의 패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였다.
책이 대학교 서적(?)처럼 두껍지만. 책의 내용은 무엇보다 알차다.

o******1 2010.03.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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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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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이것은 현대에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다. 소비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일자리가 생기고 더 낳은 생활을 하게 된다.  더이상 과거 의,식,주만 의존한 소비문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 질서와 새로운 소비 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다. 기업들은 더 좋은 제품을 더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고 경쟁을 하고 식품들은 질 좋은 재료 더 몸에 좋은 식품들이 나오고 있다.   기업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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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이것은 현대에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다. 소비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일자리가 생기고 더 낳은 생활을 하게 된다.  더이상 과거 의,식,주만 의존한 소비문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 질서와 새로운 소비 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다. 기업들은 더 좋은 제품을 더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고 경쟁을 하고 식품들은 질 좋은 재료 더 몸에 좋은 식품들이 나오고 있다.

 

기업뿐만이 아니라 소비자들도 소비 문화가 바뀌고 있다. 핸드폰같은 경우 1년동안 수십개의 신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전자 제품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것들이 빠르게 변화하고 새로운 제품이 나와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우리나라 가수들도 그렇다. 예전에는 음반을 한번 내고 다른 음반 작업을 하기위해 최소 2~3년 뒤에 새로운 음반을 가지고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 다르게 금방 새로운 노래로 활동 하고 있다. 전자제품,패션,음악, 점점 주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만만큼 소비자들도 변화에 맞게 쉽게 질리고 더 새로운 것을 찾아 다닌다.

 

이제 소비문화에서 과소비문화로 바뀌었다. 과연 이 소비생활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까?

"과소비는 단순히 물질적 탐욕을 품은 사람이라기보다 정신적 아락함과 내적 조화 주관적 행복을 요구하는 자다. 이는 자아 개발을 위한 기술 발달과 더불어 동양의 지혜, 새로운 신비주의, 이른바 행복과 지혜를 전달한다는 영적 지도자들이 성공을 거두는 데서 잘 드러난다" 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소비로인해 분명 욕망,욕구가 충족이 된다. 잠시나마 욕구가 충족이 되니 행복함을 느낄것이다. 그것도 잠시 더 새로운것을 갈망하고 더 좋은 제품을 가지고 싶은 욕구로 인해 채워도 채울수 없는 욕망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서 소비의 대상인 새로운 것들이 더 빠르게 세상에 나왔다가 사라질것다. 소비자의 불만 욕구로인해 세상은 더 빠르게 변화 할것이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지만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끝으로 얼마전 모 프로그램 보는데 에서 나왔던 말이생각난다.

 

"세상이 과거보단 편해지만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n****j 2010.02.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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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가 주는 쾌락의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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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우리 조상들은 삼시 세끼의 즐거움만 있었으면 행복을 느꼈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런 생활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지금도 물론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예전에 비하여 풍족함을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로 인하여 행복하여 졌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미지수다. 절대적인 국민 소득을 비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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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우리 조상들은 삼시 세끼의 즐거움만 있었으면 행복을 느꼈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런 생활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지금도 물론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예전에 비하여 풍족함을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로 인하여 행복하여 졌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미지수다. 절대적인 국민 소득을 비교하여 볼 때 행복지수와 소득과의 상관관계는 비례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매년 조사와 통계를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  행복해 지기위해서 물질적 풍요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행동에 무엇이 문제가 있었을까?


[행복의 역설]은 소비가 가져다준 쾌락적 만족감이 결코 자신의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음을 여러 사회학적 관점으로 그리고 소비문화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생각의 변화를 이야기 해 주고 있다. 과소비라 불릴 정도로 풍요로운 소비 지출 문화가 가져온 불안감은 이전의 산업화이전의 조상들보다 행복지수를 오히려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정도로 물질의 부족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사회적 변화를 통하여 설명하여 주고 있다.


명품을 사는 사람들의 심리와 같은 모델이라도 유니크한 상품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심리 이것은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의 심리와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소비는 소속감을 얻기 위한 사람의 불안함 심리를 자극하고 소비를 부추기면서 이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소속되지 못한 자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발전되어온 소비 구조의 변화는 최근 들어 남과 나를 구분하는 행위에서 점점 ‘즐기고’ 기분 전환을 하는 일상의 장식 같은 문화로 우리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많은 광고가 그들을 유혹하고 있으며, 무의식적으로 노출된 광고는 우리의 이성을 소비와 연계한 행동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많이 사고 많이 먹는 소비의 문화는 그 빈도와 양이 증가함에 따라 더 큰 좌절과 불안을 만들어 주고 있어 소비의 문화는 결코 우리를 행복으로 끌고 가지 못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많은 관점에서 과소비는 우리의 마음을 상처주고, 허무하게 만들어가지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근원적인 답은 행복론에 있는 것 같다. 행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정신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동양의 공자 장자와 같은 사상이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지 모르겠다.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행복,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의 만족에 위안을 받는 행복을 찾아야 할 것 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어떤 물건을 처음 장만 하였을 때의 행복이 가장 크다면 그 다음의 지수는 점점 감소하기에 물질에서 얻으려는 행복은 우리의 생활을 정상적인 상태의 행복에 올려놓지 못할 것 같다. 어떤 면에 있어서 최소한의 삶을 위한 물질이 더 즐거워야 하지만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생각은 얼마나 힘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교와 경쟁이 가져온 문화 속에서의 소비는 우리를 얼마나 더 좌절을 맛보게 할지 두렵기도 하지만 스스로 지켜야할 가치관과 자아에 대한 올바른 생각이 절실히 요구되는 세상이기도 하다.

a********8 2010.01.22.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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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역설...자본주의를 긍정의 힘으로...
"행복의 역설...자본주의를 긍정의 힘으로..." 내용보기
좁은 의미의 자본주의인...소비 문화에 대해 대세는...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아닐까...한다... 근데...이와 약간의 대조적인 입장에 있는 것이... 질 리포베츠키의 <패션의 제국>이라 라 할 수 있다...   라고...대학교 때...배웠다... 물론...두권의 책을 읽으나고...참 힘겼웠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아무튼...내게 신선한 충격을 준...질 리포베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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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의미의 자본주의인...소비 문화에 대해 대세는...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아닐까...한다...

근데...이와 약간의 대조적인 입장에 있는 것이...

질 리포베츠키의 <패션의 제국>이라 라 할 수 있다...

 

라고...대학교 때...배웠다...

물론...두권의 책을 읽으나고...참 힘겼웠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아무튼...내게 신선한 충격을 준...질 리포베츠키...

그의 신간...<행복의 역설>에 대해 지금부터 적어볼까 한다...

쓰기도 전부터...또 다시 식은 땀이...ㅡㅜa

 

1. 형식 - 아름답다...익숙한 이들에겐...

전반적 글의 형식은...

자신의 주장을 먼저하고 다른 이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거나 비판적인 수용을 하는 방식으로 쓰여있다...

즉...자신은 현대를 과소비 사회라고 정의하고 다른 이들의 주장을 5가지로 압축해서 이에 대해 반박하거나 비판적으로 수용한다...

문체는...

사회과학도서 특히 유럽 쪽 책들을 제대로(!) 읽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그 수려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모습들은 영미권의 책들과 대조를 이루는데...

일례로 이전에 필자가 서평을 썼던 제프리 삭스의 <커먼 웰스>와 비교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심하게 말해...

영미권 책은 내용이 압축되어 있는 서문이나 1장을 읽거나, 각 단원의 첫 문단을 보고 나면 사실상 그 책을 다 읽은 것이나 다름없지만...

유럽 쪽은 그렇지 않다...물론 내용의 요약 단원이 있지만 각 단원이 영미권 책처럼 주로 보충자료나 예제로 되어 있지 않고 주제나 소재의 심화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아무튼...

수학이 그러하듯...사회과학적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보다 즐겁고 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2. 내용 - 과소비 시대, 행복, 개인주의

저자는 지금 시대를 타인에게 자신을 과시 위해 소비했던 이전 시대와 달리 자기 만족에 의해 소비하는 과소비 사회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비는 자기 만족적 행복을 주고, 단순하게 물건만을 사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보다 주체적인 소비자로써 개인주의를 더욱 심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다른 이들의 주장인...

· 페니아

 : 풍요 속 빈곤처럼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우나 실제로는 살 수 있는 능력이 되지 못해 격는 불행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것도 이전에는 계급 또는 사회의 탓으로 돌릴 수 있었던 이러한 무능력이 지금은 개인의 책임으로 되어 더욱 불행을 느낀다고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긍정하지만 반대로 어느 때보다 속박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시대니 불행하다고만 할 수 없다고 비판적 수용을 한다...

· 디오니소스

 : 옛날 집단적이고 퇴폐적인 축제의 시대...즉 지금의 쾌락만을 쫒는 시대가 다시 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부 긍정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개인적 만족을 중시하는 그래서 오히려 반디오니소스적이라고 말한다.

· 슈퍼맨

 : 모든 면에서 완벽을 추구 하는 슈퍼맨...시간을 무색게 하는 건강은 물론 섹스까지도 잘하는 슈퍼맨을 요구하는 시대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되려고 하는 노력하기는 하지만 실제보다는 그러한 완벽의 이미지를 소비한다고 말하면서 대표적인 예로 대리만족을 위한 스포츠를 든다...

· 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타인을 질투하고 끌어 내리기 바뿐 시대라는 말에 대해서는 타인에게 관심을 집중하는 네메시스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집중하는 나르시시적인 면이 더 강하다고 말한다.

· 호모 펠릭스

 : 과거회귀적인 극단적인 대안들보다는 적절한 대안으로 지금의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3. 걱정 - 우리는 어디에...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서구를 대상으로 연구되어 나온 책이다...

그러니 현재 대한민국이란 사회 속 우리에게 모두 맞다고 할 수 없다...

비록 우리가 정보화 시대란 이름으로 물리적으로는 시간과 공간의 압축을 하고는 있지만...

실제 정신적인 면에서는 과연 그런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비록 우리도 90년 대 이후 본격적으로 생산보다는 소비의 시대로 들어섰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과시적인 소비를 더 많이 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우리도 결국 서구가 밟았던 길을 간다고 한다면...

곧 우리도 그러하지 않을까 한다...

중저가인 유니클로의 유행이라든지...아이폰 사태(?)에서 보여준 애플빠라든지...

아직도 미미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늘고 있는 공정무역이라든지...

 

4. 어설픈 의문 - 주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소비의 사회> 인간은...참으로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다...

즉...타인의 조종에 의해 끊임없이 소비하고 또 소비하는 인간...

하지만 질 리포베츠키는 그보다는 소비를 통해 진정한 개인주의가 발전한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가...

필자는 저자의 의견에도 상당히 설득력 있지만...그래도 전자의 의견에 더 기울어진다...

왜냐하면...그 주체란 것이 생득적인 것인지 교육에 의한 것인지...

(아직 저자의 모든 저서를 읽어보지 못한 관계로...성급하지만...)

만일 교육에 의한 것이라면 그의 바람(호모 펠릭스 참조)처럼 긍정적인 교육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깐...

 

5. 찬양 - 그래도 신선하고 아름답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회과학적 훈련이 된 사람이라면 이 책은 문학도서를 읽는 기분으로 읽어내려갈지 모른다...

마르크스의 글이 위대할 수 있었던 것은 내용도 수준급이었지만 표현력 또한 훌륭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것처럼 다소 이해하기 힘든 수식들이 있을 수 있지만 무지건조하지 않은 글이 읽기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내용 자체가 신선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는 자기만족적 소비를 떠올리면 오타쿠식의 폐쇄적이고 엽기적인 것만 떠올리지 않았는지...

그런데 저자는 베블린의 <유한계급론>을 넘어선 긍정적인 자기만족 소비의 모습을 끌어낸다...

그 뿐만 아니라...

(최소한 필자에게는) 부정적이기만 했던...

소외의 대표주자 자본주의와 지나처 낭비로도 보이는 소비주의에 대해서...

저자는 부정적인 요소들에서 긍정의 힘을 끌어내는 모습을 보라...이는 경이적이기까지 하다...

우파 특히 (아직도 반성할 줄 모르는) 신자유주의식의 찬양이 아니라...

우파와 좌파의 적절한 반영을 통해서 끌어내는 모습을 보면 아릅답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너무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쓰레기 속에서도 장미꽃은 필 수 있지 않은가...

 

6. 당부 - 제목이 모두가 아니다...

<행복의 역설> : 과소비사회 소비심리를 분석한 미래사회 전망 보고서...란 제목을 통해서...

재미로 읽는 상식수준(!)의 책으로만 판단하고 만만하게 봐서는 안된다...

읽는 순간 알테지만...

보드리야르, 부르디외는 물론 니체, 루소까지 많은 거장들의 저서를 인용하고...

그외의 다른 작가들의 최신의 저서들을 인용한다...

다시 말해...철학이나 사회학 또는 정치학적인 부분에 대해 약간은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런 거 몰라도 이 책을 읽는데 지장이 없을 만큼 저자가 필요한 부분은 부드럽게 설명하고 있으니...

 

하지만...어차피 인간은 아는 만큼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다소 빈약한 깊이에 자신 스스로 안타까워지지 않을까...

a*****g 2010.01.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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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소비 사회만이 대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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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역설..   책을 맨처음 받아 들고 접한 소제목.. "과소비사회의 소비심리를 분석한 미래사회 전망 보고서"라는 글귀에 많은 호기심이 생겼는데,   맨 처음 드는 생각은.. 소비적인 생활패턴에 익숙한 현 시대의 모습을 알고자 했었고, 그 대안으로써 저자는 '무엇을 제시할 수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였다고 할까?   그렇게 첫장을 넘기며 저자의 이야기를 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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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역설..

 

책을 맨처음 받아 들고 접한 소제목..

"과소비사회의 소비심리를 분석한 미래사회 전망 보고서"라는 글귀에

많은 호기심이 생겼는데,

 

맨 처음 드는 생각은..

소비적인 생활패턴에 익숙한 현 시대의 모습을 알고자 했었고,

그 대안으로써 저자는 '무엇을 제시할 수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였다고 할까?

 

그렇게 첫장을 넘기며 저자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소비적인 생활패턴이 형성되기까지의 역사적 내용들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지만, 미래 사회 전망으로 내세운 '과소비사회'에 대한 저자의 의도들이 나에게 있어 반감이 드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산업혁명(대량생산) 이후 정보화산업 혁명까지 변해가는 소비자 성향과 소비패턴

 

 

물직적인 풍족함을 누리며, 동시에 상대적인 빈곤을 느껴야 하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과거보다는 경제적인 여유를 가진(선진국과 같은 3차산업의 증가와 생산보다는 수요의 성향이 강했던, 그래서 더욱 골디락스 시대의 착각이였을지도..) 소비자들의 증가로, 소비행위의 주권화를 이루며... 이로 인해, 소비자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한 다양한 상품들의 등장과 서비스 상품의 필요성 및 당위성에 대한 이야기... 이러한 변화에 따른 소비자의 '자아의 존재감, 편리성'등의 요소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소비패턴들의 변화를 설명하며 시대의 변화에 대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가 있었다.

 

 

금욕적인 사상 <-> 과소비주의 적인 세계?

 

하지만,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소비자의 자아실현의 욕구와 삶에 대한 불안감.. 그로 인한 즐거움이라는 단순 쾌락으로써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를 바탕으로 '행복'을 추구하는데

소비적인 활동을 통해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저자의 의도를 보면, 신자유주의 사상의 당위성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만 같은 느낌에 반감이 든다.

 

예를들어, 이러한 소비성향에 대한 반론으로 금욕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절제를 언급하며 이는 현실적인 불가능성을 말하며 과소비적 소비성향의 가속화만을 이야기 하는 점이다.

 

 

소비를 통한 정신적 안락함, 개인적인 행복 추구?

 

 

현실 도피성, 개인주의적인 시대로 인한 소외, 사회 양극화로 인한 절대적 빈곤과 더 무서운 상대적 빈곤.. 그로인해 핍박해지는 정신 및 사고체계..

 

상기 언급한 악순환(공허함)을 메꾸기 위한 과소비 행태가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어느정도 공감하기는 하나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확고한 대안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또한 현 시점에서 보면..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사상의 문제점은 드러나고 있고, 본 '행복의 역설'의 내용 중에서도 언급되는 모순이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개인의 구매력의 부재(양극화)이고 그로인한 소비여력의 '지속'여부다.

 

 

물질적인 풍요속에서 얻지 못한 행복의 역설은 무엇일까?

 

상기와 같은 저자의 의도에 공감하지 못한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일까?

책 마지막의 다양성을 언급하며 인본주의적인 사상에 대한 언급도 있었는데,

이 짧막한 언급이 아쉬움에 남는다(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만 당분간은 아닐꺼라는....)

 

개인들의 경제적 양극화 해소와 일정 구매력을 가지고 있어 개개인들이 충분한 '소비'가 가능할 때, 상대적인 빈곤도 줄며.. 소비 성향이 강한 '행복 추구형 소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나라와 같이 개인의 구매력이 높은 것도 아닌 개발도상국에 적용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은가 싶은 것인데..

 

아무튼,

지난 금융위기로 빚을 통한 풍요의 시대는 지나갔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말이다.

 

어쨌든 시대는 변하고, 사람도 역시 그 시대에 맞게 변하는 것이기에 전망 보고서로써 단편적인 주장만이 대안으로 언급된 것이 아쉽다.

 

어쩌면..

'행복의 역설'에 대해 내가 너무 많은 기대(저자와는 다른 관점으로)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내가 철학적인 성찰이나 배경지식 부족한 것이기에 진정 저자의 의도를 읽지 못하는 것일지도..

 

 

(P.s. 다 읽고 난 후 책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았는데, 2006년 출판으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그 시대에 읽었다면.. 그 상황에서라면.. 

지금보다 많은 공감을 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역시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겠지만..)

r*******2 2010.01.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