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실린 그의 첫 시를 펴고 나는 오래 전에 했던, 교과서에 밑줄긋고 주를 달고 같은 의미의 핵심시어를 연결하고 은유의 속뜻을 밝히는 등의 소위 말하는 시의 분석을 시도하고야 말았다. 방학중 학교 보충수업으로 현대시를 듣고 있던 아들아이가 '어 엄마도 이렇게 시를 읽네'라며 신기해했다. 첫 시를 읽어내고 뒤적 뒤적 이거 저거 앞뒤로 당기는 시를 찾아 헤매다 급기야 한동안 시집을 내려놓고 있었는데, '나 참 뭔 말인지 모르겠네. 그래도 요즘엔 웬만하면 척척 이해가 잘 되더니...'라는 중얼거림을 옆에서 듣던 아이가 시집을 냉큼 받아 책 첫부분을 들쳐보고 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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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시집을 다 읽는 것도 어려웠고, 시집을 읽고 서평을 써보려 하니 너무 어렵게 느껴져 쉽게 시작을 못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의미심장한 표현들이 너무 많아 한 구절 한 구절을 쉽게 읽어내리지 못했는데 심지어 제목에 나오는 시차의 눈, 그 '눈'이라는 것이 사람 눈인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인지 조차 헤깔리고 있었으니까. 오랜만에 읽게 된 시집에 대한 기대는 가고 시속의 언어들과 고군분투 싸우고 있는 내모습을 보았다..시어들은 일반적인 관용표현들을 거부하고 새로운 언어들과 결합한다. 아, 이런걸 시에서 무슨 기법이라고 하는지... 예전 국어시간에 뭔가 있었던것 같은데 그 용어도 생각이 안난다. 한편으론 평론가들도 시인의 마음을 다 헤아리진 못할거라는 생각과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독자에게 새롭게 창조될 수 있는 것이 시일터, 호흡을 가다듬고 진지하게 시들과 맞서본다.
제목에서 시차라는 것은 작가가 여행을 통해 이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뜻을 이해하게 된다. 시집 뒷편 작품해설에서도 나왔듯이 "진티엔에서 밍티엔까지 기차의 침대칸에 누워" 라는 표현이 얼마나 그럴듯 했는지 모른다. 여기는 중국이고 작가가 기차로 원거리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참고로 진티엔은 오늘이고 밍티엔은 내일이다.ㅎㅎ) 중국어를 모른다면 이 시를 깊이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어느 구석진 방에서 지저분한 모습을 하고 어렵게 탄생되는 싯구가 아닌 작가가 수많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생각하고 써내려 갔을 상상에 그의 수첩이 슬쩍 궁금해진다.
초반 어렵게 느껴졌다고 표현했지만 그저 어렵기만 한 시는 절대 아니다. 이 시에는 놀라운 표현들이 많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과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부연이 당연하게 느껴질 만큼 대단함이 느껴졌으니까.
내 보잘것 없는 리뷰가 평론가처럼 시의 여기저기를 들어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이 책은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시집임엔 틀림없다. 뭐 나름 자유한 싯구들이 모두 나를 감동시킬 순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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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의 눈을 달랜다」를 읽고 우리 인간은 수많은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생활해 나가고 있다. 바로 그런 희로애락을 다루는 것들이 문학작품이며, 대표적인 것으로는 소설과 시, 수필, 희곡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런 장르 중에서 어떤 분야를 특별히 관심과 함께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다르리라 생각 한다.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표현력과 함께 자기 자신에게 맞는 분야가 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은 우선 읽기가 편한 수필 쪽과 많이 선호하는 편이었다. 각 분야를 살아가는 저자들이 각 자 살아가는 느낌과 함께 맡은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들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일상생활의 이야기를 가장 적나라하게 글로써 모든 것을 표현하여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하고,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을 보아야만 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집은 솔직히 자주 대하지 못하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이상하게 손이 더 가지 않는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역시 시인들의 고차원적인 사고와 함께 함축되어진 시어(詩語)에 대한 많은 부담감을 갖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시에 대한 내용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분야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시를 쓰는 시인에 대해서는 더 존경하게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피를 말리는 시어를 만들어내기 위한 자신과의 투철한 싸움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한 편의 시는 우리 독자들에게 아주 깊은 의미와 함께 무한한 동경의 마음을 갖게 하기에 족한 것이다. 그리고 좋은 시집은 항상 곁에 두고서, 반복하여 읽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고, 또 하나 바람은 아주 마음에 드는 좋은 시는 암송을 통한 기억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최근 시 암송대회가 열리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을 해보면서 적극 장려하였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 본다. ‘시차의 눈을 달랜다.’의 김경주 시인의 작품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첫째는 시라는 것이 참 오묘한 진리를 담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다. 몇 번을 읽으면 이해가 되는 내용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시라는 것이 그냥 씌어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여행을 통해서 독서 등의 간접적인 체험을 확실히 보충하듯이, 시도 시인의 이런 다양한 체험의 시간을 통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앞으로는 시에도 조금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간도 되었다. 어쨌든 이번 시집 독서를 통하여서 약간의 편협된 나의 독서 취향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의 계기도 되었다는 데에서 좋은 독서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나만의 좋은 애송시도 이번 기회에 하나 정하여 확실히 외워서 어는 자리에서도 술술 나올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였다. |
내 현기증이 조금 잘 팔리는 이유 (김경주, 『시차의 눈을 달랜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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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시인은 요즘 말로 "잘나가는 젊은 시인"임은 알고 있었다. 작년말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기 이전에도 '세계의 문학'에서 그의 시를 본 적이 있고, 미당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한껏 주목을 받는 시인이었다.
그의 시를 읽고 금방 고개를 끄덕이거나 이해를 한 사람이 있을까?
"시차의 눈을 달랜다"를 음미하노라면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들이 가지는 감정이입이 어려운 난해함과 모호함과는 다른 암호가 분명히 있다.
이 시집에서의 주제는 단연 '시차'이다. '시차'에 화두를 두고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시인이 말하는 시차는 "다면성의 결합이며, 그 연장선에서 암호의 코드를 해체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시차란 단어가 들어가는 "시차의 건축", "종이로 만든 시차"를 읽어보면 유년의 기억과 현재의 시적 상념이 매치되면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과 격차를 암호로 메우는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암호는 의미의 자각에 의한 형상적 개념임이 분명하고, 시인의 시적 통찰이 무엇인가를 풀어내면 되는 것이다.
미당문학상에 최종후보작으로 소개되었던, 김수영문학상의 수상작은 '연두의 시제' 외 49편으로 소개되는 "연두의 시제"를 보자. 마지막으로 그 방의 형광등 수명을 기록한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는 건 손톱이 자라고 있다는 느낌과 동일한 거 저녁에 잠들 곳을 찾는다는 건 머리카락과 구름은 같은 성분이라는 거 처음 눈물이라는 것을 가졌을 때는 시제를 이해한다는 느낌 내가 지금껏 이해한 시제는 오한에 걸려 누워 있을 때마다 머리맡에 놓인 숲, 한 사람이 죽으면 태어날 것 같던 구름 사람을 만나면 입술만을 기억하고 구름 색깔의 벌레를 모으던 소녀가 몰래 보여준 납작한 가슴과 가장 마지막에 보여주던 일기장 속의 화원 같은 것을 생각한다 그곳에는 처음도 끝도 없는 위로를 위해 처음 본 사람이 필요했고 자신의 수명을 모르는 꽃들만 살아남았다 오늘 중얼거리던 이방(異邦)은 내가 배운 적 없는 시제에서 피는 또 하나의 시제, 오늘 자신의 수명을 모르는 꽃은 내일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된다
뭔가 울림은 있는데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다시 시인의 설명을 보자.
영상적 느낌이 시인의 감각으로 결합되면서 한껏 사유의 공간으로 우리를 끌어올린다. 이 부분이 일부 젊은 작가들의 정신분열적 모호함과 다른 김경주 시인만의 철학적 공간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인다면, 시인의 역량으로 볼 때 젊은 시인들에게 필수과정처럼 여겨졌던 산문시에서 벗어날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추언 :
세계의 문학 2009년 여름호==> 내가 지금껏 이해한 시제는 하루 종일 딸들의 머리를 땋아주던 여자가 중얼거리던 화음의 중간만 기억하는 거
시집의 표현이 더 깊이가 있어보이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
너도 곧 네 피 속으로 뛰어든 새를 보게 될 거야
나는 욕조에 눈을 담아 끓이는 계절에 태어났습니다 나의 눈에서 태어난 눈들은 모두 내가 태어난 계절에 새 들이 되었을 겁니다 어쩐지 나는 자기 눈을 번식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습니다 그게 나의 궁리하면 나의 욕조는 따스한 물로 커다란 거울을 안고 들어가 거울 속으로 사라져 버린 날의 기후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그게 당신의 방이라면 당신의 방에는 분명 처음 보는 욕조가 있을 겁니다
............13쪽에서
이 시집 속에는 정말 어려운 시들이 가득 들어있다. 도대체 무슨 말들인지 어여쁜 말들은 아니고 도대체가 한구절을 따라가다 보면 다른 구절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다음 구절은 다른 이야기를....ㅠㅠ 정말 너무도 괴로운 시이다.
그래서 써보기로 했다. 쓰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너도 곧 네 피 속으로 뛰어는 새를 보게 될거라니? 도대체 무슨 새? 피 속으로? 계절을 그냥 이야기하면 되지.....눈을 닮아 끓이는 계절이라니...그럼.....따끈한 차를 이야기하는 건가? 겨울에 태어났다는 은유적인 매혹적인 표현?
눈이 새가 된다.....욕조는 따스한 물로 커다란 거울을 안고 들어가.....ㅡㅡ;;; 거울 속으로 사라져 버린 날의 기후...그게 당신의 방이라면 당신의 방에는 분명 처음 보는 욕조가...ㅠㅠ 으악~~미치겠다....ㅡㅡ;;;
그런데 이 시집이 [김수영 문학상] 이라는 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다면 무언가가 있다는 말인데....알고싶다...궁금하다...도대체 어떤 마음이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인지...'현대 시를 이끌어 갈 젊은 시인' 이고 가장 주목해야 할 젊은 시인이라는데....새로운 언어와 발상과 이미지로 시적 문법을 새롭게 쓰고 있다고 한다.
흠...그렇다면 열심히 읽어보리라...내 힘닿는 데까지 이해하도록 열심히 읽어보리라....이해할수 있는 그 점을 찾아서.....백번을 읽다보면 하나는 다가오지 않을까나? 뭐 백번을 읽을 정도로 내가 견디어내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시인에 대한 글을 읽다보니 예전에 알고 있던 아이가 생각이 난다. 그 아이도 이 시인과 약간은 비슷한...그림을 그리는 아이였고 그리고 잘생겼고...그리고 아주 힘겨운 삶을 살아내야하는 아이였다. 아주 독특한 색조를 지니고 있는...그리고 그 아이는 커다란 개와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 집에 절대 가보지 않았다. 개를 무서워하기 때문에....이 시들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은 그아이이다....그 아이는 지금쯤 이 시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자라있을까? 한번 더 김경주 시인의 시를 적어본다. 이해하고픈 간절한 마음을 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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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꽃말을 잊어버릴 때 꽃에서 벗어난 꽃말은 수증기가 되리라
꽃말을 외우면 그 꽃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계절 에 와서 그는 오래된 동굴의 종류와 계절에 따라 눈 색깔 이 변하는 새, 아버지의 잘린 엄지손가락 모양, 처음 써 본 단어, 새로 산 이불 속으로 들어간 본 느낌, 마지막 페이지 의 그림만 기억하는 동화, 아홉 개의 귀고리와 바꾼 돌로 만든, 앞발로 핥고 있는 한 개의 짐승(청록색 혀가 입에서 흘러내려 앞발에 붙은), 집 근처에서 발견된 살인범의 노 모, 깨진 돌들의 단면 같은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꽃말을 차곡차곡 외우면서 그가 점점 분명하게 떠올린 것은 처음 꽃을 발견하고 그 꽃의 이름을 지은 저자가 모 두 식물한자가 아니라는 거, 꽃말을 지은 자는 꽃보다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거 자신의 이름이 꽃말에서 유래된 자 는 꽃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향을 몸에 사용하면 눈이 금방 멀게 될 거라는 거 꽃의 그림자를 마시고 숲에서 태 어난 바람은 태생동물이라는 거 고대엔 분명 바람의 연령 을 기록하는 학자가 있었을 것이라는 자신의 소설의 첫 페 이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꽃말을 하나씩 망각하기 시작하자 그는 자신의 노트의 왼쪽에는 자신에게 온 꽃의 나이와 이름을 기록했고 노트 의 오른쪽에는 자신에게 와서 묻힌 꽃의 묘지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가락과 황혼이 가장 닮은 시간에 구부 러질 때 노트의 가운데에 꽃의 비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 가 오늘 자신의 시에게 보낸 꽃의 조문은 이러했다 '이 시 를 보는 자는 현기증이 하나의 육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 시를 만진 자는 그 육체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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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학창시절 시를 써본 기억은 있지만 어떤 내용이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의 졸작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시에 대해서는 약간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tv에서 조정래 선생이 나와서 시인인 아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신이 쓴 글은 아내에게 물어보고 잘못된 부분이다 싶으면 상당히 많은 부분을 고치고 하는데 아내는 옆에서 무슨 말을 해도 시를 고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는 가장 상징적이고 함축된 표현을 하기 때문에 가장 언어를 잘 표현하는 사람은 시를 쓰고 되고 그 다음은 소설을 쓰고 다음은 에세이를, 다음은 비평을 한다며 농담같이 이야기하였다. 시집을 아주 오랜만에 본 것 때문인지 이 책은 상당히 어렵게 다가왔다. 이해하기 어려운 많은 시들 가운데에서 감상이라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표현을 적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시에 대해서 평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서문에서 너의 수증기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내가 모르는 마을 속에서 언제나 네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일 거야. 모래의 날들 자고 일어나면 입술 위에 쌓이는 먼지로 알아보는 모래의 날들 발푸르기의 밤 개구리는 평발이다 하루도 새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이 없다 시 때문에 살 일 좀 생겼으면 하는데 사형수가 교수대를 향해 걸어가면서 뒤따라오는 간수들에게 갑자기 자꾸 밀지 말라고 울먹이는 광경처럼 꽃의 현기증 이 꽃말을 잊어버릴 때 꽃에서 벗어난 꽃말은 수증기가 되리라 |
![]() 민음사의 시집을 몇 번 접해보았는데, 시의 느낌이 아닌 산문의 느낌도 살며시 난다. 김경주 작가만의 느낌이 잘 나타나는 '시차의 눈을 달랜다' 시라는 것이 나에게는 항상 어렵게만 느껴지는 장르중에 하나인데, 내 나름대로 아주 조금은 이해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대필' 이란 시가 가장 마음에 든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대필
일기를 대신 써 준 적 있고 군대를 대신 가 준 적도 있다
주인이 떠난 폐가의 마루 냄새르르 맡고 밤이면 이름이 없는 먼 별에서 흘러내리는 모래를 혀에 굴리다가 죽은 바람은 자신의 장례를 단 한 줄의 밀사라고 불렀다"
혼자만의 시간동안 이 시집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과 시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였다. 난 하루하루 급박하게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는게 눈에 보이고,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조차 잘 못했던 것같다. 내 마음을 진정으로 느끼게 해주는 좋은 시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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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 되면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면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기도 하고, 하얀 눈을 보면서 마치 설국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죠. 그러다가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지만 가끔은 현실에서 벗어나 나만의 생각 속에 잠기고 싶기도 해요. 그럴때는 아무래도 한 편의 소설보다는 시 한 줄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아요. 소설은 아무래도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야기이고 시는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마음의 이야기이니까 말이죠. 김경주님의 시차의 눈을 달랜다라는 시집을 보면서 문득 생각한게 겨울이랑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되요. 좀 고독하다고나 해야할까? 세상과 섞이지 못하는 그런 냉정함, 사색 같은 거 말이죠. 물론 시라는 것이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지만 말이요. 아마도 지금이 겨울이라 그런지 지금 읽어도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고 해야할까요? 시차라는 말이 주는 의미가 남다른 것 같아요. 그냥 사전적인 의미로만 생각한다면 세계 각 지역마다의 시간 차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물론 '시'라는 단어를 시간으로 볼지, 아니면 본다는 의미로 볼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죠. 본다는 의미에서는 하나의 물체를 서로 다른 두 지점에서 보았을 때 방향의 차이라고 하네요. 뭐 둘의 공통적인 느낌은 일단 다르다는 차이를 나타낸다는 거겠죠. 아무래도 이게 이번 시집의 주제인 것 같아요. 나와 너가 다르고 나의 생각과 너의 생각이 다르고... 차이를 느낄 수 있는게 지역적인 면도 있겠죠. 익숙한 곳을 벗어난 다른 곳에서의 느낌... 그렇지만 이런 시차가 어느새 점점 같음이 되어가는 것 너와 내가 마음이 통한다는 것 시차의 눈을 통해서 본 세상은 어떤 것인지 한 번 들여다볼까요? |
시를 읽는다. 아니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나는 느끼는 것이 몇 되지 않는다. 시가 어려운 것인가? 아니다. 삶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는 시인과 내가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 만에 잡아본 시집이 나를 온통 복잡함 그리고 혼란으로 끌어들인다. [시차의 눈을 달랜다] 김경주의 시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의 조합으로 나의 눈을 시 속에서 떼어내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같은 문장을 다시 읽는 동안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머리는 복잡해 져 가고 있었다. 그의 시는 하나의 시를 통으로 볼 때와 한 문장 한 문장 따로 읽을 때의 느낌이 서로 다르다. 어떤 시는 이어지는 듯 한 문맥이지만 어떤 시는 전혀 다른 문장의 나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연관성이 있을 듯하지만 아직 그의 삶을 통째로 이해하기에는 나의 삶의 무게가 더 가벼운 듯 하다. 연민이란 인간은 결국 자신과 가장 닮은 허구를 타인 쪽으로 열고 간다는 거다. (Page 45 입김으로 쓴 문장 중에서 ) 그의 시를 읽으면서 조금은 교만한 나를 발견한다. 나와 닮은 허구를 그의 시에서 찾아 느끼려고 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시인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없는 나의 단어의 한계와 의미의 한계를 느껴 보면서 시에 대한 존경심을 뿜어낸다. 시인은 제목을 시차라는 단어를 끄집어내서 이야기한다. 그의 시에는 시차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지는 않는다. 많은 여행의 뒤안길을 표현하는 느낌의 시들이 눈에 들어오고 머릿속에 남아있지만 여행의 상념을 이야기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새로운 환경에서 느껴지는 생소함이 시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나는 시차의 느낌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의 시에서 시차는 동시대에 놓여 있지만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간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쉽지만 미약한 시에 대한 나의 한계는 여기까지 인 듯하다. 짧은 글이 몇 백 페이지의 소설보다 더 오래 읽어도 다 읽은 다음 머릿속은 하얗게 되어 있다. 그래도 그의 단어 조합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전해 주는 듯한 느낌만은 오래 간직하고 남아 있을 것 같다. 그 느낌이 무엇인지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알게 될 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