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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미술이 될 수 있는 시대.라고 저자는 규정짓고 있었다. 과연 그럴까. 21c는 그만큼 실험적이었던 것일까.
그 물음을 뒤로 하고 저자의 다음 주장들을 따라 나섰다.
그림도 변해야 한다. 제목 덕에 명작이 된 그림도 있다. 알고보면 그림은 더 재미있다.
무슨 서프라이즈 프로그램의 진실 혹은 거짓의 소재목도 아니고 이렇게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주장들이라니...하지만 흥미로운 것만은 사실이라 곧 그 해당 페이지를 펼치고 코를 박고 읽기 시작했다.
현대 미술을 구경하기 위해 펼쳐든 몇몇 책 속에서 꼭 등장하는 이름 중 하나였던 쿠르베. 프랑스 사실주의 회와의 대표주자였던 그가 또 있었다. 혹시 전날 나를 불쾌하게 했던 그림류가 또 실려 있나해서 제일 먼저 찾아보았지만 다행스럽게 그런 그림은 없었다.
그리고 같은 류 같지만 다른 느낌을 전달하는 화가 마네의 풍만한 누드들을 구경했다. 인체묘사도 어느부분인지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어떤 각도, 어떤 취지, 어떤 느낌을 전달하느냐에 따라 감정이 달라진다. 쿠르베와 마네를 비교해봐도 그렇다. 누드화 일색이었지만 마네의 누드에는 따뜻함이 배여 있어 참 좋았다.
또 네덜란드인인 몬드리안의 작품들이 주는 색채의 향연과 딱딱 맞아떨어지는 색채의 향연데 취해보기도 하고 루소의 투명함이 없는 짙은 색체에 빠져보기도 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벨기에 출신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들을 감상한 일인데, 그 몽상과 환상의 조화앞에 저절로 눈이 커졌다. 저자의 말처럼 21c는 역시 모든 것이 미술이 될 수 있는 시대였나보다. 이토록 화풍이 다른 화가들이 가득하면서도 각자 유명해질 수 있었다니 말이다.
그중 특이한 화가도 있었는데 무슨 사기꾼도 아니면서 이름이 백개가 넘었던 스탕달. 그는 스탕달이라는 이름조차 가명이었다고 했다. 무슨 이유로 화가가 그림을 그리면서 이름을 그토록 많이 바꾸었던 것일까. 그에 비해 한 이름을 세 사람이 나누어가진 경우도 있었다. 딱 1년전 자신이 태어난 날 죽은 친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빈센트 반 고흐.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의 자식에게 자신의 이름을 또 그대로 물려준 그. 결국 한 집안에 세 명의 빈센트 반 고흐가 있었다는 말인데...이 또한 잘 일어나는 일이 아니어서 색달랐다.
그들이 꿈꾸었던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이 바라보았던 세상은 고스란히 화폭속에 담겨 있었다.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시각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문자나 숫자 혹은 장면으로 세상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색채와 빛으로 해석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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