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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의 위대함 - Science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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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과학이라는 것을 배울 때, 이 사실들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난 여태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이렇게까지 발전시키려 한 적이 있었나?"라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된다. 하지만 "경이롭다는 감정은 나의 능력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경계할 필요가 있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듯이, 이런 과학적인 발견이 일어나는 원리를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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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상 과학이라는 것을 배울 때, 이 사실들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난 여태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이렇게까지 발전시키려 한 적이 있었나?"라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된다. 하지만 "경이롭다는 감정은 나의 능력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경계할 필요가 있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듯이, 이런 과학적인 발견이 일어나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과학사를 보는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발견을 해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연에 대한 신비로움을 잊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며 잃어가는 것이지만, 과학자들은 그것을 잃지 않고 계속 유지하며 자연의 신비를 밝혀내려는 노력을 해 왔다. 이런 과학자를 어느 시인들은 자연을 파괴하느니, 자연의 신비를 훌러덩 벗겨버렸느니... 등의 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연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관점에는 다를 바 없으나, 자연을 친숙한 것이 아닌 신적인 존재로 보는 것은 자연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장애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를 처음 생각한 사람이 바로 탈레스로, 자연에 숨겨진 원리를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발견하러 노력했다. 몇 천년 전에 이미 우주의 모형을 설명하려 했고 일식이 발생할 시기를 예측하는 등 강한 통찰력을 지닌 것으로 예상된다.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을 조금 배웠고, 지동설과 천동설에 대해 배운 사람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를 다소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쉽다. 물론 그가 내세운 천동설이 프톨레마이오스를 거쳐 거의 신격화되고 그로 인해 아리스타르쿠스가 주장한 지동설을 학자 중 브루노와 갈릴레오가 다시 언급하여 교회 재판을 면치 못했다만, 자연을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그의 모습까지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전문분야는 생물학이다.)

이렇듯 아이러니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현대의 올바른 개념은 대게 '옳지 못한 개념'에서 탄생한 경우가 상당하다. 물리의 경우, 아리스토텔레스가 내놓은 개념 중 하나인 '목적론'이 후에 부정당하고 '기계론'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도 이와 같다고 볼 수 있으며, 그 가운데 뉴턴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정말로 중력을 발견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당대에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을 발견할 만한 통찰력은 뉴턴 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미적분의 발견 때문에 라이프니츠와 다소 이전투구를 보이긴 했으나, 뉴턴의 업적은 물리학에서 그야말로 엄청나다고 봐야겠다.)

 

  그렇게 형성된 고전역학에서는 대부분의 현상을 '입자'를 통해 설명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프린키피아의 저자, 혹은 고전역학의 창시자인 뉴턴도 역시 빛이 입자라는 개념을 고수하고 있었고 이를 통해 '기하광학'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 덕분에 렌즈를 통한 빛의 굴절은 대부분 설명할 수 있었다.

 

  이 고전역학과 전자기학 등으로 대부분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과학자들은 제법 우쭐해졌다. 하지만 이들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존재했다. 고전물리학대로라면, 큰 용기를 가열할 경우 그 안에 존재하는 파장은 거의 자외선 파장 근처에 집중되어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파동의 집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은 스펙트럼 전반에 걸쳐서 에너지를 분산시켜 내보낸다.'라는 결론에 이르기에 충분했다.  당시 레일리-진스와 빈도 이를 설명하기 위한 연구를 하여 각자 하나의 식을 내 놓았다. 하지만 레일리 진스의 식은 낮은 진동수 영역의 파동에 대해서만 설명이 가능했고 빈의 식은 그 반대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를 거듭한 끝에 '에너지는 양자화되어 이동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 바통, 즉 '양자론'을 아인슈타인이 건네어받았다. 아인슈타인에 대한 인상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물리에 미쳐 살고 실험실에서 처박혀 식을 풀어낼 것 같겠지만 이는 그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후였다.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그는 학교도 다니는 둥 마는 둥 하였고, 대학교에 진학하여 졸업한 뒤에도 2년 간 직업을 잡지 못하는 등 왠지 우리와 친숙한(?) 면모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특허청에 일하며 어느 정도 안정적인 여유를 가진 뒤부터 본격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뒤부터는 우리와 그 모습이 달라진다.

  그가 맨 처음 생각한 것은 '광전효과'였다. 빛이 파동이라면 강한 파동을 금속에 쬘수록 전자가 금속에서 많이 튀어나와 광전실험 회로에 흐르는 전류가 더 커야 한다. 하지만 일정 진동수 이하로는 전자가 전혀 튀어나오지도 않고 설령 진동수가 높더라도 빛의 세기와 전류의 세기가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즉, 빛이 파동이라는 입장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광전효과'를 플랑크가 남긴 양자론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빛의 매질이라고 전해지는 '에테르'에 대한 연구를 아인슈타인이 했드랬는데, 사실 아인슈타인 이전에 마이켈슨과 몰리가 에테르의 존재를 알아내기 위해 실험을 했으나 에테르의 존재 유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논리적으로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논리적으로 알고 있었다만, 당시 과학자들은 에테르의 존재를 설명하기에 급급한 상황이었고 그 과정에서 로렌츠 변환이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상대성 이론'의 토대가 된다.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와 '절대적인 시/공간 좌표계는 없다.'라는 가정 하에 만들어진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E=mc²이라는 식이 만들어지고, 에너지와 질량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점차 원자 세계에 이르는 길을 만들게 되었다.

 

  이 상대성 이론은 어떻게 쓰일 것인지... 에 대한 어느 정도의 '예언'을 한 사람이 바로 엔리코 페르미이다. 그는 '상대성이론에서의 질량'이란 에세이에서 핵에너지의 방출이 상대성 이론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이상기체를 연구하던 중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따라 이상기체의 통계치를 계산해낸 결과를 디락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내놓았고, 그것이 바로 페르미-디락 통계이다. 그리고 이를 따르는 입자를 바로 '페르미온'이라고 이름붙이게 된 것이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중성자'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단순히 핵의 내부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이 목표였던 그의 실험은 '핵분열'의 열쇠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원자폭탄이 만들어졌고,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떨어지게 되었다.

 

 

  과학사는 아이가 점차 자라면서 과학적 원리를 깨쳐가는 과정과 어느 정도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긍정적으로는 새로운 발견을 위한 야망을 가지게 되고, 극단적으로는 폭력성까지 띠게 되는 경우까지.



j*****0 2012.02.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