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란 책은 죽음과 현실의 세계를 오가며 앞일을 예지하는 '파이버', 현명한 지도자 '헤이즐', 싸움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불굴의 전사 '빅윅', 뛰어난 이야기꾼 '댄더라이언', 침착하고 총명한 '블랙베리', 몸집은 작지만 충직한 '에이콘' 등 개성이 강한 열한 마리 토끼가 재앙이 닥친 고향 마을을 탈출하여 이상향인 워터십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온갖 모험과 유혹, 전투, 사랑, 우정을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또한 긴장감 넘치는 전개 속에서 이끌어 내는 판타지 소설이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다른 판타지 소설과는 별개로 동물 판타지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 리처드 애덤스가 자신의 두딸에게 해주던 이야기라 그런지 내용들이 무척 재미있고 톡특함이 엿보인다. 또한 다른 판타지 소설과는 다르게 토끼라는 우리와 가까운 인물과 소재들을 사용하여 친근감을 느끼게 해주고 있어서 더욱 읽을 때 기분이 좋다... 그리고 토끼어 사전이란 것은 무척 새롭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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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라는 책은 작가가 두딸에게 해주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여 지은 소설로 이 책 하나만으로 카네기상과 가디언상을 수상한 영국 작가 리처드 애덤스를 판타지계의 대부로 올려 놓은 그의 첫 작품이다. 이 책은 절대 겉표지와 책 제목만으로는 평가될 수 없는 책이다. 토끼가 등장하여 동화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읽어 보면 모험소설과 전쟁소설 등의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는 흥미진진한 소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토끼' 즉 겁이 많지만 민첩하고 지략이 뛰어난 동물이라는 설정을 이용해 그 겁 많은 열한마리의 토끼들이 서로 지혜를 짜내고 협력하며 모험을 떠나 온갖 위험과 고난을 제치고 이상 사회를 만들어가면서, 대개 영웅들이 판치는 틀에 박힌 소설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자는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보여진다. 또한 여타 다른 책들과는 달리 토끼의 입장이 된 듯한 친근한 설정으로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가는 한편, 토끼 사회에서 그들만의 언어와 표현법이 있을 거란 기발한 생각으로 만들어낸 '토끼어 사전' 등 여러 가지 인상적인 아이템이 등장하여 이 책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언제라도 또한 누구라도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우리들에게 어린 시절의 향수와 동심을 느끼게 해줄 책으로 이 책을 권한다. [인상깊은구절] 똥은 '흐라카', 자동차는 '흐루두두', 먹는 것은 '실플레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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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말하자면 토끼를 의인화한 환타지모험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건 아주 정확하지 않다. 첫째로, 토끼가 인간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욕망을 느끼고 행동을 한다고 하지만 그건 인간처럼이 아니라 토끼처럼이다. 저자는 토끼의 생태를 그린 로널드 록클리의 [토끼의 사생활 (The private life of the rabbit)]을 참조하여 이들의 생태 - 한번에 100미터 이상은 뛰지않는다는 것, 탁틔인 공간에서 공포감을 느낄수 있으며, 자신이 싼 응가에서 배출되는 영양소를 다시 섭취하기 위해 다시 응가를 씹는다는 것 등등 - 을 감안하여 등장토끼들의 행동을 구성하였다. 둘째, 아시모프박사에 따르면 SF와 환타지의 차이는 실현가능성의 정도인데 헤이즐, 파이버, 빅윅 등의 토끼들이 답답한 마을에서 벗어나 새로운 마을을 구성하고 암토끼를 구하는 여정들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토끼를 비하하는 발언은 무척이나 많은데, 이 이야기 한번 읽어보면 토끼들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스펀지에서 나온 분홍색 토끼고기가 '뜨아'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저자가 아이들을 데리고 런던에서 스트랫퍼드 온 에이번으로 놀러가는 차 안에서 해주었던 이야기에 아이들은 '아빠 이야기가 동화책보다 더 재밌어요!!!'했기에 한번 만들어보았다는 이야기치곤 정말로 뛰어난 토끼세계의 이야기이다. 헤이즐의 현실에서 그들 토끼들의 영웅인 엘 어라이라의 모험담이 적절이 섞여있는데 이건 마치 트로이 전쟁후의 오딧세이의 모험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신화적이다. 여하간, 그럼에도 이 작품은 토끼판 [반지의 전쟁]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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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들이 살고있는 토끼들의 세계는 마치 인간의 세상을 나름 반영한듯하기도 한데 - 뭐, 얘네들이라고 모여있고 위계질서 잡히고 그럼 뭐가 다를까 - 여하간에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여기는 너무나도 위계질서가 꽉 잡혀진, 그래서 한번 한 계급에 속하면 다른 계급으로 올라가기도 힘들고 또한 제안이라든가 어떤 커뮤니케이션도 그닥 속시원하지않은 샌들포트 토끼마을이었다. 아참, 맨앞에 커버를 열면 지도가 나오는데 나름 귀엽다.
무언가 예지능력을 가진 파이버, 그러니까 한배에서 난 토끼형제중에서 다섯째로 작고 연약해서 높은 급에는 속하지 못한 작은 토끼가 이들 마을에 닥친 재앙을 미리 예견하고 두려움에 떤다. 그리하여 그의 형제인 헤이즐 (중간에 얘 이름을 헷갈려서 '월넛이냐?'라고 묻는데 ㅋㅋㅋㅋ)과 함께 마을의 보스인 스레아라에게 가서 이를 말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담한 반응. 하지만, 파이버를 믿는 헤이즐은 친구 블랙베리, 댄더라이언, 스피드웰, 에이콘, 벅손 과 마을을 떠나려한다. 이때 일종의 관리자급, 전사급인 아우슬라의 토끼 빅윅과 실버이 이들과 함께하고, 이들의 천적인 여우, 올빼미, 인간 등등의 위협을 피하여 새로운 마을을 떠난다.
그 와중에 교묘하게 인간이 만들어놓은 카우슬립 마을을 통과하면서, 남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져 토끼의 정체성을 잃고서, 위대한 토끼영웅의 전설에 대해 콧방귀도 뀌지않는 토끼들의 위기를 목격하게 된다.
장장 4부에 780여 페이지에 육박하는 이 이야기는, 결국 이 토끼들이 친구를 더 만들어서 독재자인 운드워트와도 싸워서 평화롭고 자유롭고 행복한 마을을 구성하게 될까 말까로 이어진다.
종은 달라서 도와줘도 하등 도움이 될게 없다고 난리치지만 도와준 검은부리 갈매기나 쥐 등과 친구가 되어서 어려움을 같이 극복해나간다. 흠, 다케다 신겐이 그랬던가. '인간이 성이고 해자라고. 성을 지어 이에 기대기 보다 인간에게 기댄다'고 말했듯, 서로가 다른 이 토끼친구, 새, 쥐 친구들은 각자의 장점을 살려서 약점을 보듬어준다.
약해서 다른 토끼들에게 치이지만 본능적인 예지력과 지혜가 뛰어난 파이버를 존중하고, 과거의 보스들은 다른이의 말을 잘 안듣기에 큰 재주는 없어도 헤이즐은 모든 토끼들을 말을 다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가끔 영웅심리가 나오긴해도), 성질이 불같아도 책임감이 강하고 약한 토끼를 보면 도와주려고 하고 다들 말리지만 갈매리 키하르를 도와주고 자신의 생명을 거는 빅윅, 어두운 분위기에도 다들 웃기려고 농담하는 블랙벨, 이야기로 긴장을 풀어주는 댄더라이온, 작고 겁이 많지만 착한 핍킨 등등 뭐, 약간은 인간적 색채를 더했지만 각자의 개성이 강한 이 토끼들은 큰 목적을 두고서 어떤 것을 희생할지, 어떤것에 목숨을 걸지를 생각하며 가끔 패닉에 걸려 답답한 지경을 만들면서도 열심히 살아나간다.
토끼개체수가 많아지면 자연적으로 임신한 태아토끼가 체내에 흡수되는 등 채소 먹으려고 인간과 싸우면서도, 그럼에도 약자를 도와주면서 꾀를 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게다가 커버 안쪽의 두 페이지에 걸쳐 모험을 펼치며서 겪는 자연의 모습 또한 읽기에 즐겁다.
조상인지 아닌지 몰라도 누군가 용감한 이야기를 듣고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않는 것이 왜 위험한 것인지, 지금 평화로워도 과거에 그런 평화를 위해 어리석게만 보이는 전쟁을 했던 것에 대해 존중을 해야할 것인지 등등 정말로 건전하게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아직 방학은 끝나지 않은, 집안의 어린이들을 위해 이 책 한권을 한번 추천해주시길. 아니, 아이부터 어른까지 가능하다.
(1978년에 만들어진 영화의 트레일러, 생각보다 토끼들의 모습이 좀 무서운데 여하간, 여기서 보여지는 이야기보다 훨씬 더 벼라별 박진감 넘치는 사건들이 나온다. youtube에서 헤이즐의 죽음이란 제목이 있어서 많이 긴장하고 봤는데, 뭐 요건 좀 안심하고 봐도 된다. 역시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드는 토끼는 죽음이 피해간다)
...동물을 사랑하시오. 신은 동물들에게 근심없이 생각하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자질을 내리셨습니다. 동물을 괴롭히지 말고 곤경에 빠뜨리지 말고 행복을 빼앗지마시오. 신의 뜻을 거스르지 마시오....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p.264 (지구 위에는 인간만 사는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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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한마디로 토끼들의 모험을 그린 소설이다. 토끼들이 자기들이 살던 말을 을 빠져나와 겪는 이야기들이 아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겉보기에는 귀여운 토끼들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각자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전개하는 이야기 또한 정말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하다. 토끼들을 의인화 한것이 아니라 야생토끼 자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에 마치 나도 토끼가 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그때에도 마치 내가 개미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개미를 정말 재미있게 읽은 사람들은 이 책도 정말 좋아할 것이다. 이처럼 흥미진진하고 사실감 넘치는 소설을 발견하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700페이지가 넘지만 쉬지않고 한번에 쭉쭉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한 작품이다. 이 소설이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해리포터 만큼 사랑받을 만한 자격을 충분히 갖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작품은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고 다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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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은 길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다
아이의 손을 잡고 가던 곳이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유치원 모퉁이. 부모님을 졸라 샀지만 아파트에서 기를 수 없어 유치원으로 쫓겨 왔고, 유치원에서도 감당이 안 됐는지 처마 밑에 토끼 두 마리가 자리를 잡았다. 그 토끼를 보기 위해 아이는 엄마 손을 잡아끌고 매일 유치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지난 봄, 이름도 없는 토끼 두 마리는 토끼장만 남겨 두고 사라졌다. 토끼가 왜 없어졌느냐고 아이가 묻자 소홀한 관리로 죽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풀이 많은 곳으로 모험을 떠났다고 둘러댔다. 나에게 토끼는 토끼장 안에서 가져다 준 풀이나 배춧잎을 부지런히 갉아먹는 온순한 동물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모험을 떠났다고 둘러대고도 머쓱했는데 진짜 모험을 떠난 토끼들을 만났다.
겨우 모험을 떠나는 토끼 이야기가 영국 판타지 문학의 고전이라니 시시한 감이 들었다. 일단 소재부터 어딘가 어색했다. 기왕 모험담의 주인공을 동물로 설정할 거라면 사자나 표범, 여우처럼 활동적인 동물을 선택했어야 하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두 마리도 아니고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라니? 백설공주와 인어공주 이야기도 이제 밑천이 다했으니 읽어 두었다가 아이가 조르면 자장가용으로 쓰자는 마음으로 펼쳐 들었다. 그러나 카우슬립네 마을에서 파이버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대목까지 숨을 꼴딱거리며 읽고 있는데 아이가 졸음에 겨웠는지 엄마가 읽던 책을 덮어 버렸다. 아이를 재우고 스르르 잠이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안락한 카우슬립네 마을에 있던 파이버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궁금해 눈을 번쩍 뜨고 일어섰다. 헤이즐 일행이 워터십 다운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뒤 아이 곁에서 다시 잠들 수 있었다.
작가의 말에 “나이가 찬 아이들은 토끼 이야기라서 유치하다고 싫어할 테고, 어린이들은 어른 책처럼 씌어 있어서 어렵다고 싫어한다.”는 이유로 출판사를 전전한 배경이 담겨 있다. 아마 이 책의 가치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제목과 서두만으로 성급한 판단을 내린 편집자였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가진 선입견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읽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한 줄도 고치지 않고 출판사 문을 두드렸던 작가의 자신감 덕분에 우리는 아동문학의 성숙한 경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피곤에 겨워 쓰러지듯 잠들던 아줌마를 불러 세웠던 이 책의 힘은 무엇보다 박진감이었다. 그저 토끼를 의인화한 우화였다면 잠 못 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른에게도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만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토끼들의 성격 설정이 완벽하다. 겸손하면서 현명한 지도자 헤이즐, 재난을 예언하고 토끼들에게 새로운 마을을 찾게 도와주는 예언자 파이버, 단순하면서 강인한 투사 빅윅, 총명하지만 힘든 일은 남에게 미루는 블랙베리, 헤이즐 일행을 괴롭히는 나쁜 토끼지만 전략적 지도자로서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운드워트 장군. 주인공 토끼 열한 마리뿐만 아니라 조연 토끼까지 여느 대하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 못지않게 생생하다. 하나의 사건에 부딪칠 때마다 영웅 토끼 한 마리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 일을 풀어 나가는 것도 이 책이 가진 미덕이다. 또 헤이즐 일행의 모험에 정신적 지주로 등장하는 엘-어라이라의 이야기는 신화적 상상력이 가득 담겨 있어 책의 깊이를 더해 준다. 한마디로 이 책은 신화와 역사가 담긴 영웅 토끼들의 이야기이다. 토끼의 생태와 맞물려 우리가 그 동안 읽어 왔던 그리스ㆍ로마 신화와는 색다른 맛을 준다. 양장본 768페이지면 아주 긴 이야기지만 읽는 동안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헤이즐 일행에 끼어 엔본 강을 뛰어넘고 천의 적을 피해 워터십 다운으로 가는 토끼가 되었다.
헤이즐 일행이 안락한 워터십 다운에 정착하고도 이야기는 끝을 맺지 않는다. 워터십 다운에 정착했어도 암토끼가 없어 번식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운드워트 장군을 찾아가 협상을 하지만 결국 전투를 통해 암토끼를 얻게 된 헤이즐 일행. 사실 이 안에 동물의 생존 방식이 담겨 있다. 자립과 자손 번성은 인간뿐만 아니라 어느 동물도 피해 갈 수 없는 중대하고도 영원한 과제이다.
“동물은 싸워야 할 때는 싸우고 죽여야 할 때는 죽이지. 가만히 앉아서 머리를 굴려 가며 다른 동물의 삶을 망치고 상처를 주진 않아. 동물은 존엄성과 동물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야.”
암토끼를 두고 협상을 하기 위해 운드워트 장군을 찾아간 사절단은 이렇게 연설했다. 그러나 이 말은 운드워트 장군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에게 전하는 말로 다가온다. 인간만이 최고라는 자만을 버리고 동물의 존엄성을 이해하고, 더불어 인간 사회가 가장 합리적인 사회라는 환상을 버리라는 주장이 바닥에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운드워트 장군이, 토끼가 너무 많아 스스로 수정된 태아를 체내로 흡수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암토끼를 보내지 않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감행하는 것처럼, 인간도 부작용을 알면서도 동물과 자연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또 들꽃과 자연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노력 속에서 좀더 겸손하게 허리를 숙이고 자연과 만나자는 다짐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판타지 문학 하면 기상천외하고 주술적인 내용이 담긴 문학을 생각한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는 신화와 종교, 역사에 바탕을 둔 단단한 판타지 문학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마법 같은 내용이 전혀 없지만 읽는 사람은 판타지 문학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내가 아이 손을 잡고 유치원 모퉁이 토끼를 보러 갈 때 이 책을 알았더라면 아이와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아이는 갇힌 토끼를 보고도 더 많은 상상을 펼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이는 잠자리에서 토끼들의 모험 이야기를 듣는다. 작가의 두 딸이 아빠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 달라고 졸랐듯이 우리 아이도 꿈 속에서 토끼들이 펼치는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은 길고 재미있는' 모험을 함께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동물은 싸워야 할 때는 싸우고 죽여야 할 때는 죽이지. 가만히 앉아서 머리를 굴려 가며 다른 동물의 삶을 망치고 상처를 주진 않아. 동물은 존엄성과 동물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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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야 하는 것은 큰일이다. 잠깐 떠나는 것도 아니고 아예 떠나야 한다면 더욱 큰일이다. 한 집도 아니고 마을 전체 구성원이 떠나야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뜻과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여기, 마을을 떠나야 하는 토끼들이 있다. 시시각각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 오고 있어 그대로 마을에 머물러 있으면 죽음의 그림자에 짓눌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무리가 있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죽는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다. 그만큼 지금 살고 있는 집과 마을의 관성은 강력하다. 그러나 그러한 관성을 거슬러 뿌리치고 새로운 집과 마을을 찾아 떠나는 모험심 강한 토끼들이 있다. 모험심 강한 토끼들은 괴로운 삶 속에서 무슨 뾰족한 수가 없을까 궁리하던 변두리 출신들이다. 중심에서 누릴 것은 누리는 토끼들은 새로운 삶을 추구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지금의 삶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모험을 떠나는 토끼들은 변두리 출신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인간한테서 풍겨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제일 먼저 감지하고 알려준 파이버, 불길한 이야기를 듣고 결단을 내리는 현명한 지도자 헤이즐, 싸울 때 비로소 삶이 충만함을 느끼는 전사 빅윅, 토끼족의 전설 속 영웅 이야기를 통해 동료들에게 힘을 주는 이야기꾼 댄더라이언, 침착하고 총명한 블랙베리, 몸집은 작지만 충직한 에이콘 등 열한 마리 토끼가 그 주인공들이다.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난 열한 마리 토끼의 모험은 흥미진진하다. 이야기는 옛이야기의 영웅 서사 구조를 토대로 한다. 거기다가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살아 있게 하여 다채로운 모험을 겪게 하였다. 중간 중간 이야기 속 영웅 이야기를 넣어 풍부함을 살렸다. 그렇다 보니 800쪽 가까운 책을 읽으며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정교하게 구성한 것이다. 각 장마다 프롤로그처럼 들어가는 인용 문구가 그 장의 핵심 내용과 맞아떨어지는 것 또한 정교한 구성의 일부다. 등장인물들을 이솝 우화처럼 의인화하지 않고 실제 자연에서 살아가는 토끼로 설정한 것도 흥미를 더하는 요소다. 펠릿 씹기, 마을 크기에 비해 토끼 수가 많아질 때의 결과, 암토끼가 수정된 태아를 체내로 흡수하는 현상, 굴 파기 습성 등 토끼의 생태에 관해 생생하게 묘사한 것은 물론 그것을 뒷받침하는 아름다운 자연 묘사 역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10월 중순, 맑고 쾌청한 저녁이었다. 너도밤나무 잎이 아직 남아 있고 햇살도 따스했지만, 드넓은 언덕에는 어딘지 허전한 느낌이 커져만 갔다. 꽃은 점점 줄어들었다. 풀밭에는 드문드문 노란 양지꽃이 보이고, 버석거리는 갈색 꿀풀 덤불에 때늦은 실잔대나 보랏빛 꽃들이 피어 있기는 했지만, 눈에 보이는 식물은 대개 씨앗을 맺고 있었다. 숲가를 따라 자란 으아리는 향기롭던 꽃들이 노인의 수염처럼 변해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벌레 소리도 이따금씩 들렸다. 수많은 동물이 우글거리는 정글 같던 드넓은 긴 풀밭은 텅 비어 버리고, 8월에 무수했던 벌레들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이라곤 허둥거리는 딱정벌레나 둔해진 거미 한 마리 정도뿐이었다. (750쪽) 열한 마리 토끼와 함께 모험을 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종족인지 다시 느꼈다. 토끼에게 미안함 마음이 들어 얼굴이 몇 번 뜨거워지기도 했다. 동물들은 다른 종족을 죽일지언정 아예 종족 전체를 완전히 없애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인간은 다른 종족을 아예 없애버리기도 한다. 인간이 그 동안 사라지게 한 동물과 식물물이 얼마나 많은가. 열한 마리 토끼가 자신들의 고향 마을을 뒤로 하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난 것 역시 인간 때문이다. 인간들이 토끼들이 살던 마을을 개발하기 위해 중장비를 몰고 들어온 것이다. 따라서 열한 마리 토끼가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자신들의 터전을 끝내 세우는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부끄러움이 불쑥불쑥 찾아들기도 했다. |
| 얼핏 제목과 표지를 보고는 어린이용으로 나온 동물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고급스러운 양장과 700페이지가 넘는 책 두께에 다시 읽어보게 되는 책이다. 동물이야기이고 토끼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어린이용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인물들간의 특징, 번역서이지만 껄끄럽지 않은 무난한 문체,자세하고 이야기의 맥을 끊지않는 흥미로운 구성등으로 인해서 즐겨움을 주는 책이다. 재앙이 닥친 고향 마을을 탈출해 새로운 이상향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모험담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긴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도록 버티고 있는 주인공 토끼들에 의해 큰 즐거움을 주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내가 만인 이 책에 나오는 토끼의 상황이였다면... 이라고 상상해보면서 이 책을 접하면 더욱 흥미로운 모험소설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고가의 양장본 도서가 아닌 비양장본 신국판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운게 사실이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은데 출간된 책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가능하면 동일한 작가의 여러작품들이 꾸준히 소개되었으면 한다. |
| 신간안내에서 이 책을 우연히 봤을 때, 몇 해전에 EBS에서 하던 '워터쉽다운의 토끼들'이란 애니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아직 남아 있었던 터라 꼭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 범상치 않은 토끼이야기가 총 4권으로 분책되어 있는걸 보고는 아쉽게 단념해버린게 작년이었는데,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다시 한 권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을 마주치자마자 앞 뒤 생각없이 바로 사버리게 됐다. 처음부터 애니메이션의 기억과 맞춰가며 읽어서인지 등장하는 토끼들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잘빠진 몸매의 갈색토끼 헤이즐, 다부진 몸집의 회색토끼 빅윅, 헤이즐의 사이즈를 그대로 약간 줄인 듯 한 파이버, 귀여움 덩어리 핍킨, 각진 인상의 캠피언 대장, 한쪽 얼굴에 큰 흉터가 있는 거대한 운드워트 장군 등등.. 책에 묘사되어 있는 성격이나 능력들에 정확이 매치되는 이런 모습들을 떠올려 가면서 책을 읽는 것은 확실히 훌륭한 재미였다. 등장하는 것이 사람이 아닌 야생토끼이지만 하나하나 각자의 개성이 빛나는걸 확실하게 느낄수 있다. 또한 그 토끼들이 구성하는 사회가 우리 사람들이 구성하는 사회를 은근히 풍자하고 있는걸 느끼는 것 또한 쏠쏠한 재미였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사는 방식이 카우슬립네 마을의 생존방식과 그렇게 크게 다를건 없는거 아닌가? 위험이 가까이에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 외면하면서 사는 세상 말이다. 초반부부터 꾸준히 장면 중간중간에 나오는 멋진 자연 풍경묘사야 말로 정말 이 책에서 멋진 것 중에 하나다. 당장 생각나는 분홍바늘꽃, 개망초, 현삼 등등, 집에 있는 식물도감을 펼쳐보게 만드는 아름다운 식물 이름을 보면 원작도 원작이지만 번역하신 분도 꽤 수고하셨구나 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오래간만에 맘에 쏙 드는 책을 읽은 것 같다. 얼마 뒤 돌아오는 사촌동생의 생일에 이 책을 선물해 주면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
| YES 24에 올라온 평을 보고 책을 주문하면서도 그 통통하고 조용해보이는 토끼들의 모험담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출퇴근 시간에 전철에서 읽어가면서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칠 뻔한 적도 있을 만큼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고 그야말로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파이버는 마을에 다가오는 정체모를 위험(인간들의 토끼 마을 파괴)을 감지하고, 헤이즐과 파이버를 중심으로 몇 마리의 토끼들은 용감하게 길을 떠나 안전하고도 자유로운 곳을 찾아나선다. 각종 엘릴(적)들이 그들을 노리고 숨을 곳도 마땅치 않은 곳에서 서로를 격려해가며 기지를 발휘해 역경을 헤쳐나가는 과정들은 어떤 소설의 모험담보다도 흥미로웠다. 강에서 나무판자가 뜬다는 사실을 알고 후에 에프라파에서 암토끼들을 데리고 도망칠 때 그것을 이용해 뗏목을 타고 도망칠 줄도 알고, 심지어 토끼가 들쥐나 새와도 친해져서 도움을 주고 받는 것, 고양이와 싸울 정도로 강한 토끼들의 모습이나 어깨를 물어뜯고 발길질을 하는 토끼의 전투(!) 등등 판타지 소설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만했다. 토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간이 만든 길, 철길, 기차 등의 묘사, 불타는 하얀 막대기나 검은줄(글자)이 나 있는 나무 표지판 등의 표현도 재미있다. 조금은 진지한 시각에서 본다면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동료들을 먼저 생각하고 희생하는 모습, 인간은 '개발'을 한다고 하지만 다른 생물의 관점에서는 그들의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의 잔인성, 그리고 에프라파처럼 장로회와 아우슬라파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를 폐쇄적으로 만들고 다른 이에게 표적을 찍어 규칙에만 따라 살도록 강요하고 그에 벗어나면 가혹하게 왕따시키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을 하게 되기도 한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사려깊으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헤이즐, 토끼의 이미지에 전혀 안 맞는, 머리털이 북실북실한 전사 빅윅, 자그마하고 겁이 많지만 점차 용감해지는 핍킨과 파이버 등의 다양한 토끼들의 모습과 오물오물 실플레이(풀을 뜯는)하는 장면들이 머릿 속에 연상되면 빙그레 웃음이 나오곤 한다. |
| 다른 많은 판타지 소설이 그렇듯이, 리처드 애덤스의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아이들의 요구에서 시작된다. 애덤스의 아이들은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은' 길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했다. 아이 때는 누구나 이야기를 원한다. 삶의 언어, 언어로 표현된 삶이 인간에게 본래적인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증거이다. 허구虛構를 뜻하는 '소설fiction'이라는 말에 환상幻想을 뜻하는 '판타지fantasy'라는 말이 덧붙여졌을 때, 그 말의 파괴력은 절정에 달한다. 그것은 그야말로 '거짓'의 극한極限이다. 그런데, 놀라워라, 판타지 소설의 독자는 그 '거짓'을 '거짓' 그대로 믿게 된다. 이름에서 보자면 허구의 끝으로 달려가는 것이 판타지소설인데도 판타지소설의 독자는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톨킨도 그런 맥락에서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불가능한 것을 믿을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 판타지라고 정의내렸던 것이다. 『워터십 다운』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판타지다. 판타지는, 외부적인 해석 없이, 내재적으로 사실성reality을 갖는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현실 세계와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부질없을 때가 많다. 판타지를 알레고리로 해석하는 것은, 그래서 온당치 않기가 쉽다. 그런 알레고리는 오히려 판타지의 사실성을 약화시킨다. 현실과 일대일 대응시키려는 노력 속에는 '이것은 거짓이다, 거짓이다, 거짓이다'라는 자기암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복잡하고도 사실적인 텍스트의 전승을 설명하면서 리얼리티를 획득했다면 『워터십 다운』은 1권 첫머리에 밝혔듯이 실존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제시하면서 사실성을 갖게 된다. 더구나 토끼의 생태를 연구한 연구서를 숙독하면서 사실에 기초한 토끼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다 알다시피 문학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새로운 세계의 창조이다. 또 한편으로는 상세하고 자세하면서도 정형화定型化의 위험에 빠지지 않은 캐릭터들의 묘사에서도 사실성은 드러난다. 작가는 「서문」에서 헤이즐이 "조용하고 겸손하고 분별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운드워트가 "상냥함이나 온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토끼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의 인물 요약과는 상관없이 토끼들은 작가가 설정한 성격의 틀에서 조금씩 일탈하기도 하는데, 바로 그것이 사실성의 중요한 밑거름인 것이다. 가령 운드워트에 대해서도 4부의 43장 말미에는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운드워트 장군은 스스로 생각하듯이 자신이 앞날을 내다보는 비범한 지도자인지, 아니면 해적의 용기와 교활함을 가진 폭군에 지나지 않는지 판가름할 중요한 순간을 맞이했다. 맥박이 한 번 뛰는 동안, 절름발이 토끼가 제시한 미래상이 눈앞에 환하게 펼쳐졌다. 운드워트는 그것을 이해하고 의미를 깨달았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맥박이 한 번 뛰는 동안"의 망설임이다. 운드워트는 바로 이러한 망설임에 힘입어 폭군의 이미지를 잠시 벗을 수 있으며, 또한 이어 "그 생각을 떨쳐 버"리는 부분에서도 오히려 온정-자신을 향한-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워터십 다운』을 읽고 난 후에는 한 번 자문自問해봐야 한다. 내가 이 토끼 이야기를 진실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고. 실제로 나는 이 책을 읽고 한동안 토끼들의 행군 모습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상상 속의 토끼들은 질서정연하지도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았다. 토끼는 거기(상상 속)에 사실로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