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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을 둘러싼 문제들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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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같은 차분히 앉아 책에 집중할 수 있는 곳에 가 본 적이 별로 없다. 굳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려고 하기에는 나태함과 게으름이 몸에 배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읽게 되는 책은 주로 소설이나 칼럼, 에세이류가 주를 이루었다. 논문 형식으로 되어있는 딱딱한 글들은 자연스럽게 읽기를 주저하게 됐다. 환경의 힘인지, 인간 본성의 문제인지 아니면 나 자신의 문제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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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같은 차분히 앉아 책에 집중할 수 있는 곳에 가 본 적이 별로 없다. 굳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려고 하기에는 나태함과 게으름이 몸에 배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읽게 되는 책은 주로 소설이나 칼럼, 에세이류가 주를 이루었다. 논문 형식으로 되어있는 딱딱한 글들은 자연스럽게 읽기를 주저하게 됐다. 환경의 힘인지, 인간 본성의 문제인지 아니면 나 자신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민족과 페미니즘’도 사 놓은 지 수 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집어들기 시작했던 책이다. 그리고 책을 끝내는 데에는 상병 8개월이 고스란히 소요되었다. 두꺼운 책도 아니고, 내용이 난해하거나 현학적인 것도 아닌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쉽고 술술 넘어가는 책’들에게 우선순위를 빼앗긴 채 구석에 처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반성해야 할 일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을 이끌고 있는 정현백 교수의 최근작인 ‘민족과 페미니즘’은 제목이 말해주듯 민족문제와 여성문제가 교차하는 부분에 대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르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반경은 보다 포괄적이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경력으로 인해 저자의 연구 대상이 독일쪽에도 많이 연관되어 있고, 또한 학부에서 역사교육학을 공부했고 역사학 박사를 받았다는 점에서 역사와 역사교육에 관련된 글들도 보인다. 물론, 그 자신 여성으로써 자신이 다루는 모든 분야에서 여성주의적 관점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저자가 관심을 쏟고 있는 평화학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할 만큼 이 책은 사회 전반에 걸친 제문제를 다루고 있다. 다루고 있는 광범위한 분야가 말해주듯, 이 책에서는 생각해볼 만한 이야깃거리들을 많이 제공해준다. 그 와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평화’와 ‘통일’, 그리고 그것과 관련되는 ‘여성’의 문제이다. 예전보다는 한결 덜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피상적으로 느껴지기 쉬운 통일과 그에 관련된 문제에 관해서, 기존의 연구나 매체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여성’이라는 변수를 대입함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를테면 북한 여성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 비판, 통일과 여성이 맞닿는 지점에서 한국여성운동이 지향해야 할 부분, 먼저 통일을 이루었던 독일에서 어떻게 여성들, 특히 동독 여성들이 타자화 되어갔는지를 비롯한 경험적 사례분석을 통해서 앞으로의 통일운동에 있어서 어떤 여성적 관점과 실천이 필요한지에 대한 글들이 바로 그것이다.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에서는 저자가 ‘읽어야만 할 책’과 ‘재미있어 읽는 책’을 구분하는 부분이 나온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읽어야만 할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부담감과 그것을 피해 ‘재미를 위해’ 읽는 책으로 도피하려고 애썼고, 지금까지도 완전히 그런 기질을 버리지 못함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는 서경식의 글에 십분 동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말하고 있는 어린애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족과 페미니즘’은 앞서 말한 두 가지 분류에서 전자에 속하는 책일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삶에 있어서 도움이 된다고 섣불리 말하긴 어렵겠지만, ‘읽어야만 하는 책’에는 다 이유가 있다. 처음 읽는 데 허비한 어이없는 시간들의 대부분은 책 자체보다는 ‘읽어야만 한다’는 강박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비록 쓰지만 몸에 좋은 약처럼, 여러 번 읽어도 결코 나쁘지 않을 이런 책들을 새해에는 보다 많이 접해야지 싶다.
b*****l 2005.02.2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민족과 페미니즘의 새로운 관계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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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족주의에 대해서 그리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특히 배타적이고 군국주의적이기까지 한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반만년의 역사라고 하는 말로 대표되는 단일한 혈통에 대한 뿌리깊은 맹신은 때로는 신성불가침한 영역이라고 느낄 때가 있을 정도로 단단하다. 민족주의는 포용이라기보다는 배제의 논리로 비춰지며 이는 내게 억압적일 정도로 이해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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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족주의에 대해서 그리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특히 배타적이고 군국주의적이기까지 한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반만년의 역사라고 하는 말로 대표되는 단일한 혈통에 대한 뿌리깊은 맹신은 때로는 신성불가침한 영역이라고 느낄 때가 있을 정도로 단단하다. 민족주의는 포용이라기보다는 배제의 논리로 비춰지며 이는 내게 억압적일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곤 한다. 재일동포가 받는 불이익에는 자신의 일처럼 분노하면서(하지만 그들에게 실제로 도움되는 일은 거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바로 우리 주위에서 착취당하고 학대받는 이주노동자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무감각해하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민족주의를 전적으로 거부하지는 못하고 있다. 민족주의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직도 꽤나 주저하게 되는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식민지 국가라는 것, 그리고 식민지 국가에서의 민족주의는 그 자체로서 진실성과 진보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하곤 한다. 윤금이씨에게 ‘민족의 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반미 운동의 도구로 사용하는 민족주의 진영에는 분명히 반대하지만, 미군 장갑차 사건에 대한 올바른 대처는 평화 기원이라는 허울좋은 물타기가 아니라 명백한 반미여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이에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은 불화의 관계로 일관되었다는 논의가 무성한 것은 페미니즘이론 역시도 미국, 영국, 프랑스와 같은 선진 자본주의국가의 페미니즘 연구성과로 집중되었으며, 마치 이 대표적인 국가들의 페미니스트들이 선택하였던 태도가 절대적인 진리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페미니즘 담론의 헤게모니가 존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그러나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의 연대가 해당 사회 여성들의 지위를 월등히 향상시키는데 기여하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늘 지적되듯이 약소국가로 갈수록 여성은 민족국가라는 공동운명체 내에서 그 지위 향상을 시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저자는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의 연계, 정확히 말하면 페미니즘의 민족주의에로의 참여 내지는 민족주의를 포용할 것을 제안한다. 서구 중심국가의 경우 여성운동은 법적인 평등의 달성에 전념하였지만 이후 형성된 국민국가에서의 시민이라는 지위는 개인 그 자체가 아니라 능력을 갖춘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남성 그리고 가족의 대표자로서의 남성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 국가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이 민족주의에 거부의 의사를 분명하게 나타낸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의 민족주의는 서구와는 그 형성 배경이 사뭇 다르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탈에 대한 생존 논리로서 생성된 민족주의는 그 때문에 이념을 초월하여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고 그것은 현재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아직 분단의 상황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는 민족주의 담론은 논의의 수준이 아닌 그 자체로 이미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페미니즘이 민족주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적극적인 사고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제 시대에서는 민족주의는 탈식민주의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으며 해방 이후에는 민족 자주의 논리, 군사독재 시절에는 반외세와 민주화의 얼굴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군사정권의 동원 이데올로기나 혈연, 지연, 학연으로 대표되는 편가르기 논리의 확실한 근거로 사용되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경험적인 인식에 따른 변혁으로서의 민족주의와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써 사용되었던 인위적으로 조장된 민족주의가 한국 사회에 동시에 존재해왔던 것이다. 이를 감안한다면 민족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의 논리는 부당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페미니즘과 민족주의의 행복한 결합이 과연 가능하냐이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에 앞서 저자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지적한다. '독립국가ㆍ조국ㆍ민족을 남성으로 설정하고, 주권을 상실한 패배한 조국을 여성으로 그리는 것, 그리고 정치적 해방의 추구를 여성이 남성을 그리워하는 관계로 설정하는 것', '1960년대 경제개발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하였던 값싼 노동력을 위하여 여성을 동원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의 장점인 충순함과 희생정신이 강요되었다.', '사실상 국민국가가 수행해야 할 사회복지의 상당 부분이 전업주부들의 중노동에 의해 채워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런 여성들의 수고는 한번도 사회적으로 데대로 된 평가를 받아보지 못하였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 예에서 드러나는 것은 여성은 근대적 민족주의 국가 형성에 많은 부분을 담당하였지만, 그로서 얻는 것은 남성들에 비해 미미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의 모순 또한 함께 끌어안아야 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민족주의와 여성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는 현재 분단 상황하의 국가라는 점이다. 이미 여성들은 국가형성과정에 적극 참여하고도 그 이후에는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경험을 겪은 적이 있다. 따라서 앞으로 계속될 통일운동에서는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이에 대한 목소리를 높임과 동시에 바람직한 통일논의를 형성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여성이라는 새 주체의 참여가 이루어지면 그간 은폐된 또 다른 현실이 더욱 명료하게 가시화될 것이고, 이는 통일과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접합이자 미완의 민족국가를 또 다른 의미에서 완성하는, 즉 성이나 출신지역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더욱 평등한 국민화의 과정이 될 것이다.’ 결국 페미니즘이 민족주의에 개입하고, 이를 극복하며 페미니즘적으로 재창조해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필요의 수준을 넘어서 당위적인 차원으로까지 소급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렇게 보면 ‘여성운동 역시 민족주의 운동과 결별하는 순간, 여성들은 여성만의 하부문화에 격리된 채 자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은 단순히 민족주의를 수단으로써 사고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한국 사회의 새 판을 짜려는 의지의 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m******o 2003.12.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