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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아이돌론 사이토 미나코/나일등 한겨레출판/2017.2.20.
<문단 아이돌론>은 일본에서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돋보이는 활약을 했던 여덟 명의 작가 및 언론인을 그 시대에 비추어 살펴본 책이다. 제1부 문학거품의 풍경에서는 거품 경제 시기에 경이로운 베스트셀러를 냈던 세 명의 작가 ; 무라카미 하루키, 다와라 마치, 요시모토 바나나, 제2부 여성 시대의 선택에서는 ‘여성 시대’를 상징하는 두 명의 여성 논객 ; 하야시 마리코, 우에노 지즈코, 제3부 지식과 교양의 편의점화에서는 ‘작가’라는 틀을 넘어 폭넓은 분야에서 언론 활동을 펼친 세 명의 지식인 ; 다치바나 다카시, 무라카미 류, 다나카 야스오를 살펴본다. 거품경제기에 일본을 움직여간 사회적 현상과 사상을 ‘문단의 아이돌’과 연결해 서술하며 시대를 통찰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의 문예비평가. 편집자로 일했고 1994년 <임신소설>을 통해 평론가로 데뷔했다. 현재 아사히신문 서평위원이며 도쿄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홍일점론>, <모던걸론>, <취미는 독서>, <말은 하기 나름> 등이 있다. <문단 아이돌론>을 통해 “그들이 어떤 식으로 논해지고, 평가받고, 보도되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작가와 독자와 저널리즘을 모두 포괄하는 시점에서 ‘아이돌이 되게 된 이유’를 분석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쓴 또 하나의 목적은 이러한 아이돌을 만들어낸 시대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입니다. 대중소비사회의 갑작스러운 도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구호 속에서 반쯤 혼미한 상태에 있던 1980년대 후반, 그리고 거품경제 붕괴 후의 1990년대까지를 분석 대상으로 하여 약 20년의 세월을 되돌아보고자 했습니다.(p.8)”라고 저자는 거품경제가 꺼지는 침체기에 있었던 시대상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무라카미 작품은 독자의 참여를 부추기는 인터렉티브 텍스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기분을 불러일으키고, 혹은 퍼즐이나 게임을 풀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무라카미 문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수수께끼 푸는 솜씨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난 젊은 비평가들에게 하루키는 최상의 재료를 제공해주었던 것입니다.(p.39)”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의 동료들, 즉 하루키 랜드는 시종일관 ‘보쿠’라는 일인칭으로 상징되는 ‘남자아이들의 세계’였다는 점을 떠올려주기를 저자는 바란다. 과연 ‘여자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이런 게임 공략이 가능했을까? 라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비평을 통해 그들이 다와라 마치에게 반한 이유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단가답지 않은 참신한 구어체로 젊은 여성의 일상을 노래했다는 점, 또 하나는 단순히 새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와카(!)라는 고전, 전통의 계승자라는 점, 즉, 정리하자면 ‘헌 부대(단가라는 형식)에 새 술(새로운 감수성)을 담았다’는 평가입니다.(p.49)” 이렇게 다와라 마치의 단가형식이 대중에게 어필 할 수 있었던 것은 말장난 같은 광고 카피 덕분이다. 광고 카피를 통해 일상적인 구어가 활자로 표현되는 일에 면역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와라 마치의 서른한 글자로 된 구어체 단가가 그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또한 젊은이들 사이의 대화에서 오가는 자유로운 언어 표현을 ‘활자화된 형태’로 접하는 기회가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점도 단가 형식의 구어체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바나나에 대한 초기 평가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다와라 마치처럼 ‘문체의 참신함’에 대한 놀라움이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책을 덮은 후 느껴지는 상쾌한 기분, 순수함, 솔직함, 천진난만함, 순정만화적이라는 표현은 바나나를 논할 때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들입니다.(p.80)”문체(형식)는 급진적이지만 이야기(내용)는 보수적인 멜로드라마, 달리 말하면 바나나 팬은 이야기의 형식에 전율했고, 안티바나나는 이야기의 내용에 혀를 내둘렀지요. 이런 식으로 그녀의 소설은 받아들여졌다.
하야시 마리코가 인기를 얻게 된 이유 두 가지는 “첫 번째 이유는 그녀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활동하거나 누드 사진을 잡지에 공개하는 등 개인으로서의 활동을 통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는 데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녀가 ‘신분상승’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p.125)” 과거 여성에게 허용된 계층 이동은 결혼밖에 없었다. ‘옥여(결혼을 통한 여성의 신분 상승을 상징하는 꽃가마)’란 말이 생겨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하야시 마리코는 입으로는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혼자 힘으로 출세의 기회를 거머쥐는 ‘남성적 신분 상승’을 실현했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까발린 것은 ‘여자의 속내’가 아니라 ‘남자의 속내’가 되는 셈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에노 지즈코가 인기를 얻게 되는, “첫 번째 이유는 그녀의 담론이 ‘남자들이 감상하기에도 적합했다’는 데 있습니다. 달리 말해 의외로 딱딱했다는 것입니다. 오다지마 다카시가 말하는 ‘여대생 아가씨’나 ‘논단의 호색가 영감’이 원했던 것은 야한 도발이나 수준 낮은 광고 대리점 카피가 아니라 시대를 읽고 해석하는 눈, 견고한 사회 분석이었습니다.(p.164) 두 번째 이유는 영웅성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카피라이트 센스에서는 한참 뒤떨어지지만 논쟁에서 만큼은 무척 강했습니다.(p.167)” 이 두 가지가 인기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우에노 지즈코가 주류로 떠오른 것은 아그네스 논쟁이 크게 작용했다. 탤런트 아그네스 찬이 갓난아이를 데리고 출근한 것을 비판한 하야시 마리코, 나카노 미도리, 야마다 에이미에 대항하여, 우에노 아그네스 찬을 옹호하는 논진을 구성하여, 비판세력 쪽으로 기울어가던 논쟁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기 때문이다. 현재의 일부일처제는 사유 재산제와 함께 자본주의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두 기둥이다. 여자 쪽에서 보면 성과 계급의 이중 지배 속에 여자의 사회적 지위가 정해진다고 할 수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정치에서 과학으로, 그리고 신비주의로. 조직 연구에서 인간 탐구로, 그리고 뇌와 정신의 문제로 주제가 계속 변했다. “다치바나 씨가 걸어온 길은 그 자체로 20여 년간 일본인의 지적 패션의 변천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p.215)”라고 후쿠다 가즈야가 이렇게 말했듯이 다치바나 다카시의 행보는 독자의 지적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무라카미 류를 논한 여섯 가지 측면의 글은, “세계경제, 금융/ 학교/ 전쟁, 폭력/ 풍속/쿠바 음악/ 영화. 그중에서도 최근에 특히 눈에 띄는 것이 ‘경제, 금융’에 대한 발언입니다.(p.220)” 그리고 무라카미 류는 결코 ‘선량한’ 쪽의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불량, 반사회, 반시민, 그의 소설 세계는 질서를 무너뜨리는 쪽, 범죄를 저지르는 쪽, 사람을 죽이는 쪽에서 주축 되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세계에서는 언제나 기분 좋은 바, 음악, 맥주, 대화를 즐길 수 있지만 무라카미 류의 세계에서는 기분을 해할 정도의 오물, 잡음, 피, 호통 소릴로 정신이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피츠제럴드가 있다면 무라카미 류에게는 루이 페르디낭 셀린이나 헨리 밀러가 있다.(p.235)”이와 같이 무라카미 하루키와 대조를 이룬다고 분석한다.
“시티보이를 흉내 내고 싶은 컨트리 보이였기 때문에 다나카 야스오는 도쿄의 풍속에 집착했던 것이고 또한 그 풍속을 상세하게 리포트하기도 하고 짓궂게 상대화할 수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우월감고 열등감이 혼재하고, 사디즘적이기도 하고 마조히즘적이기도 한 비도쿄 출신의 ‘짓궂음’은 와타나베 가즈히로나 하야시 마리코에게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입니다.(p.282)” 그들이 이즈미 아사토와 다나카 야스오 사이에서 발견한 것은 ‘도쿄출신/지방 출신’이라는 차이점 이다. 도쿄 출신은 즐거운 듯, 외로운 듯, 슬픈 듯, 기쁜 듯 분명하지가 않은 파스텔풍의 느낌인 반면에, 지방 출신은 심술궂고, 남의 흉을 보는 노하우가 뛰어나지만 현실을 세련되게 즐기는 능력이 다소 부족하다고 말한다.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올라가면서 자신이 어떤 사회 집단에 속하는가, 무엇을 보람으로 삼아 살아야 하는가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가치 체계가 흔들리면 문학도 사상도 교양도 흔들리게 됩니다. 그 틈을 메우는 형태로 등장한 것이 1980년대의 ‘문단아이돌’이 아니었을까요?(p.284)”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비평의 오타쿠화, 게임화를 부추겼다. 다와라 마치와 요시모토 바나나는, 그대까지 ‘여자아이 전용’이었던 J포엠과 소녀 문하의 흐름을 문학계의 공식 무대에 올림으로써 여자아이들의 문화를 경시했던 ‘문단 마을의 아저씨’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1980년대에 일시적으로 페미니즘의 기세가 높아진 것도 어쩌면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가시적 계층(포스트 계급?)으로서 남녀 간의 격차가 ‘발견’된 탓인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하야시 마리코와 우에노 지즈코는 고도 경제성장기의 남성 역할을 몸소 실천했던 존재였다.
이 책에서 사이토는 1980년대를 전후로 발표된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당시 사회의 배후에 흐르고 있던 사상의 맥락을 밝혀낸다. 일본의 80년대는 거품경제,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움직여갔다. 극단적인 호황과 극단적인 불황, 페미니즘의 대중적 유행, 지적 권위주의의 파괴는 80년대 일본의 사회와 문화에 변화를 가져왔고, 그런 변화가 남긴 긍정적, 부정적 그림자가 이 책에 묘사되어 있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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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아이돌론 사이토 미나코/나일등 한겨레출판/2017.2.20. sanbaram <문단 아이돌론>은 일본에서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돋보이는 활약을 했던 여덟 명의 작가 및 언론인을 그 시대에 비추어 살펴본 책이다. 제1부 문학거품의 풍경에서는 거품 경제 시기에 경이로운 베스트셀러를 냈던 세 명의 작가 ; 무라카미 하루키, 다와라 마치, 요시모토 바나나, 제2부 여성 시대의 선택에서는 ‘여성 시대’를 상징하는 두 명의 여성 논객 ; 하야시 마리코, 우에노 지즈코, 제3부 지식과 교양의 편의점화에서는 ‘작가’라는 틀을 넘어 폭넓은 분야에서 언론 활동을 펼친 세 명의 지식인 ; 다치바나 다카시, 무라카미 류, 다나카 야스오를 살펴본다. 거품경제기에 일본을 움직여간 사회적 현상과 사상을 ‘문단의 아이돌’과 연결해 서술하며 시대를 통찰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의 문예비평가. 편집자로 일했고 1994년 <임신소설>을 통해 평론가로 데뷔했다. 현재 아사히신문 서평위원이며 도쿄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홍일점론>, <모던걸론>, <취미는 독서>, <말은 하기 나름> 등이 있다. <문단 아이돌론>을 통해 “그들이 어떤 식으로 논해지고, 평가받고, 보도되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작가와 독자와 저널리즘을 모두 포괄하는 시점에서 ‘아이돌이 되게 된 이유’를 분석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쓴 또 하나의 목적은 이러한 아이돌을 만들어낸 시대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입니다. 대중소비사회의 갑작스러운 도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구호 속에서 반쯤 혼미한 상태에 있던 1980년대 후반, 그리고 거품경제 붕괴 후의 1990년대까지를 분석 대상으로 하여 약 20년의 세월을 되돌아보고자 했습니다.(p.8)”라고 저자는 거품경제가 꺼지는 침체기에 있었던 시대상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무라카미 작품은 독자의 참여를 부추기는 인터렉티브 텍스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기분을 불러일으키고, 혹은 퍼즐이나 게임을 풀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무라카미 문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수수께끼 푸는 솜씨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난 젊은 비평가들에게 하루키는 최상의 재료를 제공해주었던 것입니다.(p.39)”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의 동료들, 즉 하루키 랜드는 시종일관 ‘보쿠’라는 일인칭으로 상징되는 ‘남자아이들의 세계’였다는 점을 떠올려주기를 저자는 바란다. 과연 ‘여자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이런 게임 공략이 가능했을까? 라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비평을 통해 그들이 다와라 마치에게 반한 이유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단가답지 않은 참신한 구어체로 젊은 여성의 일상을 노래했다는 점, 또 하나는 단순히 새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와카(!)라는 고전, 전통의 계승자라는 점, 즉, 정리하자면 ‘헌 부대(단가라는 형식)에 새 술(새로운 감수성)을 담았다’는 평가입니다.(p.49)” 이렇게 다와라 마치의 단가형식이 대중에게 어필 할 수 있었던 것은 말장난 같은 광고 카피 덕분이다. 광고 카피를 통해 일상적인 구어가 활자로 표현되는 일에 면역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와라 마치의 서른한 글자로 된 구어체 단가가 그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또한 젊은이들 사이의 대화에서 오가는 자유로운 언어 표현을 ‘활자화된 형태’로 접하는 기회가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점도 단가 형식의 구어체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바나나에 대한 초기 평가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다와라 마치처럼 ‘문체의 참신함’에 대한 놀라움이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책을 덮은 후 느껴지는 상쾌한 기분, 순수함, 솔직함, 천진난만함, 순정만화적이라는 표현은 바나나를 논할 때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들입니다.(p.80)”문체(형식)는 급진적이지만 이야기(내용)는 보수적인 멜로드라마, 달리 말하면 바나나 팬은 이야기의 형식에 전율했고, 안티바나나는 이야기의 내용에 혀를 내둘렀지요. 이런 식으로 그녀의 소설은 받아들여졌다. 하야시 마리코가 인기를 얻게 된 이유 두 가지는 “첫 번째 이유는 그녀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활동하거나 누드 사진을 잡지에 공개하는 등 개인으로서의 활동을 통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는 데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녀가 ‘신분상승’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p.125)” 과거 여성에게 허용된 계층 이동은 결혼밖에 없었다. ‘옥여(결혼을 통한 여성의 신분 상승을 상징하는 꽃가마)’란 말이 생겨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하야시 마리코는 입으로는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혼자 힘으로 출세의 기회를 거머쥐는 ‘남성적 신분 상승’을 실현했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까발린 것은 ‘여자의 속내’가 아니라 ‘남자의 속내’가 되는 셈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에노 지즈코가 인기를 얻게 되는, “첫 번째 이유는 그녀의 담론이 ‘남자들이 감상하기에도 적합했다’는 데 있습니다. 달리 말해 의외로 딱딱했다는 것입니다. 오다지마 다카시가 말하는 ‘여대생 아가씨’나 ‘논단의 호색가 영감’이 원했던 것은 야한 도발이나 수준 낮은 광고 대리점 카피가 아니라 시대를 읽고 해석하는 눈, 견고한 사회 분석이었습니다.(p.164) 두 번째 이유는 영웅성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카피라이트 센스에서는 한참 뒤떨어지지만 논쟁에서 만큼은 무척 강했습니다.(p.167)” 이 두 가지가 인기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우에노 지즈코가 주류로 떠오른 것은 아그네스 논쟁이 크게 작용했다. 탤런트 아그네스 찬이 갓난아이를 데리고 출근한 것을 비판한 하야시 마리코, 나카노 미도리, 야마다 에이미에 대항하여, 우에노 아그네스 찬을 옹호하는 논진을 구성하여, 비판세력 쪽으로 기울어가던 논쟁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기 때문이다. 현재의 일부일처제는 사유 재산제와 함께 자본주의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두 기둥이다. 여자 쪽에서 보면 성과 계급의 이중 지배 속에 여자의 사회적 지위가 정해진다고 할 수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정치에서 과학으로, 그리고 신비주의로. 조직 연구에서 인간 탐구로, 그리고 뇌와 정신의 문제로 주제가 계속 변했다. “다치바나 씨가 걸어온 길은 그 자체로 20여 년간 일본인의 지적 패션의 변천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p.215)”라고 후쿠다 가즈야가 이렇게 말했듯이 다치바나 다카시의 행보는 독자의 지적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무라카미 류를 논한 여섯 가지 측면의 글은, “세계경제, 금융/ 학교/ 전쟁, 폭력/ 풍속/쿠바 음악/ 영화. 그중에서도 최근에 특히 눈에 띄는 것이 ‘경제, 금융’에 대한 발언입니다.(p.220)” 그리고 무라카미 류는 결코 ‘선량한’ 쪽의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불량, 반사회, 반시민, 그의 소설 세계는 질서를 무너뜨리는 쪽, 범죄를 저지르는 쪽, 사람을 죽이는 쪽에서 주축 되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세계에서는 언제나 기분 좋은 바, 음악, 맥주, 대화를 즐길 수 있지만 무라카미 류의 세계에서는 기분을 해할 정도의 오물, 잡음, 피, 호통 소릴로 정신이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피츠제럴드가 있다면 무라카미 류에게는 루이 페르디낭 셀린이나 헨리 밀러가 있다.(p.235)”이와 같이 무라카미 하루키와 대조를 이룬다고 분석한다. “시티보이를 흉내 내고 싶은 컨트리 보이였기 때문에 다나카 야스오는 도쿄의 풍속에 집착했던 것이고 또한 그 풍속을 상세하게 리포트하기도 하고 짓궂게 상대화할 수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우월감고 열등감이 혼재하고, 사디즘적이기도 하고 마조히즘적이기도 한 비도쿄 출신의 ‘짓궂음’은 와타나베 가즈히로나 하야시 마리코에게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입니다.(p.282)” 그들이 이즈미 아사토와 다나카 야스오 사이에서 발견한 것은 ‘도쿄출신/지방 출신’이라는 차이점 이다. 도쿄 출신은 즐거운 듯, 외로운 듯, 슬픈 듯, 기쁜 듯 분명하지가 않은 파스텔풍의 느낌인 반면에, 지방 출신은 심술궂고, 남의 흉을 보는 노하우가 뛰어나지만 현실을 세련되게 즐기는 능력이 다소 부족하다고 말한다.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올라가면서 자신이 어떤 사회 집단에 속하는가, 무엇을 보람으로 삼아 살아야 하는가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가치 체계가 흔들리면 문학도 사상도 교양도 흔들리게 됩니다. 그 틈을 메우는 형태로 등장한 것이 1980년대의 ‘문단아이돌’이 아니었을까요?(p.284)”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비평의 오타쿠화, 게임화를 부추겼다. 다와라 마치와 요시모토 바나나는, 그대까지 ‘여자아이 전용’이었던 J포엠과 소녀 문하의 흐름을 문학계의 공식 무대에 올림으로써 여자아이들의 문화를 경시했던 ‘문단 마을의 아저씨’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1980년대에 일시적으로 페미니즘의 기세가 높아진 것도 어쩌면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가시적 계층(포스트 계급?)으로서 남녀 간의 격차가 ‘발견’된 탓인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하야시 마리코와 우에노 지즈코는 고도 경제성장기의 남성 역할을 몸소 실천했던 존재였다. 이 책에서 사이토는 1980년대를 전후로 발표된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당시 사회의 배후에 흐르고 있던 사상의 맥락을 밝혀낸다. 일본의 80년대는 거품경제,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움직여갔다. 극단적인 호황과 극단적인 불황, 페미니즘의 대중적 유행, 지적 권위주의의 파괴는 80년대 일본의 사회와 문화에 변화를 가져왔고, 그런 변화가 남긴 긍정적, 부정적 그림자가 이 책에 묘사되어 있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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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작품에 대하여 평을 하는 비평에 대해서 사실 나는 우호적이지 않다. 비평을 통하여 작가에 대한 생각이라든지 작품의 의미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자칫하면 독자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도록 선입견을 제공하는 듯하여 왠만해서는 그들의 의견을 배제하는 편이다. 이러한 비평의 힘이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문단의 실세를 자처하는 문단권력이 형성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비평은 독자가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해석의 여지가 분분한 상황에서 나름의 해석 또는 지평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기 때문에 비평이 필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일본 현대문학의 커다른 흐름을 잘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이토 미나코의 <문단 아이돌론>은 이러한 비평의 긍정적인 기능을 떠올리면서 한번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단순히 기존의 비평에 동조하는 내용이 아니라 나름의 반박과 자신만의 표현을 통하여 새로운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기에 그러한 생각이 왠지 타당하게 느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하여 8명의 작가에 대한 사이토 미나코의 입장은 조롱의 표현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냉철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지금에서야 우리나라에 출간이 되었지만, 실제 이 책은 일본에서 2002년에 출간되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돋보이는 활약을 한 8명의 작가에 대한 사이토 미나코의 비평은 어느 정도 이들 작가에 대한 되돌아보기가 가능한 시점에서 쓰여진 것이기에 좀더 깊이있는 관점으로 이들 작가에 대한 들여보기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하여 여전히 진행형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작가들도 아직 존재하고 있지만, 이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당시의 시간을 어느 정도 차분한 시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바로 <문단 아이돌론>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표하면서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이끌고 있는 하루키의 기존 비평에 대한 사이토 미나코의 비평과 분석은 꽤 기상천외한 표현으로 보여진다. 비평의 오타쿠화 또는 게임화라는 그의 표현이 신선하게 들려온다. 단순히 기존과의 차별적인 표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분석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80년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으면서 지금도 신간을 발표할 때마다 그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비평은 어찌보면 게임의 출시와 더불어 우리가 볼 수 있는 게임 마니아들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는 하루키의 작품이 게임의 공략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양한 은유와 상징을 통하여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해석은 왠지 독자 또는 비평가와 함께 하고자함을 이끌어내는 것이기에 사이토 미나코는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게임 비평 삼매경'을 부제로 삼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 못하였지만, 내가 읽었던 <1Q84>라든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2000년 이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사이토 미나코의 비평이 자연스럽게 연상이 된다. 환상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다자키 쓰쿠루의 평범한 이야기에서조차 과연 이러한 내용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많은 해석이 분분한 이유는 미나코의 예의 게임론이라는 하루키에 대한 평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 같다.
독창적인 이러한 미나코의 비평은 왠지 그녀 자신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낸다. 그녀에 대하여 단시간에 자세히 알 수 없지만(실제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녀의 작품은 이 책이 유일하기에), 인터넷에서 찾아본 내용 중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그녀의 글들이 모두 페미니즘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2부에 소개된 2명의 여성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여성 시대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점도 그렇고, 1부에서 하루키와 함께 소개된 다아라 마치, 요시모토 바나나에 대한 이야기도 어찌보면 페미니즘이라는 요소와도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1부에서 소개된 다와라 마치와 요시모토 바나나는 1980년대의 일본의 거품 경제와 더불어 문학계에서도 거품기라 불리우는 시기의 여성 작가에 대한 소개에 그쳤지만, 2부는 여성 운동과 연관된 적극적인 관점으로 확장됨을 느끼게 된다. 다와라 마치와 요시모토 바나나의 문학이 여자 또는 소녀 문학의 전용이라는 하위 문학의 개념을 문학의 한 부분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면, 하야시 마리코와 우에노 지즈코는 좀더 적극적으로 여성 자체에 대한 관심을 그들의 활동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 사이토 미나코의 관심을 끈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야시 마리코와 우에노 지즈코에 대한 공통 분모 중 특기할만한 부분은 바로 '아그네스 논쟁'이 아닐까 생각된다. 일본의 한 여자 연예인이 자신의 아이를 일하는 곳으로 데려온 것을 계기로 촉발된 이 논쟁은 당시 일본의 여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이끌어낸다. 남성의 세계에 저항하고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페미니즘의 대명사라 여겨지던 하야시 마리코는 결혼과 더불어 바로 이 논쟁에서 페미니스트들로부터 파상적인 공격을 당하게 된다. 일하는 어른의 무대에 아이를 데려오는 것은 부당하다라는 그녀의 의견은 여성의 사회 진출과 불평등이라는 다소 확장된 논쟁으로 인하여 반페미니즘으로 비춰지게 된다. 이에 반하여 하야시 마리코와는 정반대의 환경에 서 있던 우에노 지즈코는 하야시 마리코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일본의 우먼 리브의 뒷처리를 훌륭히 소화해낸 인물로 평을 받게 된다. 비록 목적은 달랐지만, 이 두 여성 작가에 대한 사이토 미나코의 평은 고지식한 영감들에 대한 저항을 하였다는 점을 높이 사고 있는 것이다.
"저는 아내나 어머니라고 하는 '탈'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탈을 벗으면 저도 페미니즘 쪽에 꽤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하야시) "저는 하야시 씨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노력해서 손에 넣는 그것이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인가?'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우에노) - p. 177 - 아그네스 논쟁을 통하여 같은 여성임에도 서로 다른 시각으로 인하여 서로 비평을 하던 하야시와 우에노의 20년이 흐른 시점에서의 이 둘의 대화를 역사적인 화해의 현장이라고 평하는 사이토 미나코의 모습은 이 둘의 작가는 물론이거니와 페미니즘에 대한 사이토 미나코의 모습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문단 아이돌론>은 결국 8명의 작가에 대한 개인 비평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을 통하여 당시 일본 문학계의 흐름과 사회상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3부의 '지식과 교양의 편의점화'라는 제목과 더불어 등장하는 다치바나 다카시, 무라카미 류, 다나카 야스오에 대한 이야기는 당시 사회에 대한 내용을 소재로 한 그들의 작품 스타일과 변화를 느끼게 해준다. '편의점화'라는 단어에 주목해본다면 이들의 작품이 르포르타주이기에 우리가 접하고 있는 사건 또는 사회 현상이 나름의 장르로 쓰여지고 있으며,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가공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사건의 전달이 아니라 저자 나름의 가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무라카미 류의 사례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팩트만을 다룬 그이 작품이 형편없는 것에 반하여 많은 허구가 곁들여진 그의 작품이 대단한 평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예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문단 아이돌론>은 8명의 작가에 대한 그들의 글쓰기에 대한 비평과 더불어 일본의 문학계의 흐름, 특히 80~90년대의 거품기와 여성 운동이라는 굵직한 현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나 또한 하루키와 바나나의 소수의 작품을 읽어 보았을 뿐이기에 사이토 미나코가 말하는 것들을 모두 이해하기란 쉬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애초 이 책을 통하여 일본의 현대 문학의 흐름을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한권의 책으로 그러한 것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으나, 부분적이지만 분명 조금은 도움이 되면서 관심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괜찮은 선택이 아닌가 생각된다. 말미의 이들 작가에 대한 작은 요약은 사이토 미나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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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개정판 출간으로 불판이 펼쳐진 지금 내가 오구오구만 할 독자는 아니라서 참고삼아 이 책을 읽게 됐다. 나는 좋아하는 작가일수록 더 매의 눈초리로 분석한다. 어떤 건 왜 좋고 어떤 건 왜 싫은지 알고 싶은 것도 있고, 비판점이 있다면 팬인 내가 더 잘 알아야 할 테니까. 책 제목부터 뭔가 B급스러워 평가절하 소지가 있지만 뼈 있고 수긍 가는 내용도 꽤 있다. 미나코의 통찰은 일본 만화를 보듯 잔재미 가득한 색다른 문예비평이어서 읽는 내내 재밌고 흥미로웠다.
일본 문예라는 좁은 범위지만 미나코의 비교 분석이 한국 문학의 경향과 비교해 볼 부분이 많다. 요즘은 일본문학이 한국 출판계 점유율이 높기 때문에 한국도 그 영향권에 있다고 봐야 할 테고 말이다. 거론하는 스타작가 8인 중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다치바나 다카시, 무라카미 류, 우에노 지즈코는 친숙하지만 다와라 마치, 하야시 마리코, 다나카 야스오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터라 더 깊이 있는 독해를 못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게다가 이 책이 일본의 1980~90년대 거품경제,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열풍 속에 움직인 일본문학 전성기를 돌아보는 문예 비평이라 현재 인기 절정이라고 할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들이 다뤄지지 않으니 지금 시점에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페미니즘, 문예, 시사, 문화인류학을 넘나드는 미나코의 현재 저작이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아 최신의 관점을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에서 내가 한국의 현상과의 유사성을 말했는데,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대와 그 시대성(‘극단적인 호황과 극단적인 불황, 페미니즘의 대중적 유행, 지적 권위주의의 파괴’)은 지금 한국 출판계 분위기와 매우 흡사하다. 일본의 8~90년대 문단 이야기가 한국 90~2000년 대랑 비슷한 것이 이것도 다른 분야처럼 한국과 일본의 질긴 10년 차를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장르소설, 철학 쪽은 일본이 이미 넘사벽이 된 거 같지만. 거론하는 작품들은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시대 속에서 독자들의 책심을 잡았다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
신분상승을 꿈꾸는 여성 작가와 엘리트 여성학자 대결 구도로 하야시 마리코와 우에노 지즈코가 비교되었듯이 동물성과 식물성의 대결 구도로 무라카미 류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비교되는 건 그들이 동시대에 활동했기에 더 재밌는 관전 포인트다. 이 책에서 인용된 당시 두 명의 무라카미 비교론은 너무나 단순한 논리임에도 정말 재밌다ㅎ. 이건 한국 문단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도 김금희 vs 최은영 라이벌전 을 만드는 걸 나는 똑똑이 보았으니까. 왜? 그들을 아이돌로 만드는 독자와 문단의 합작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는 현상이다. 여기서 미나코는 허점을 콕 찌른다. 비슷한 시기에 베스트셀러로 인기 절정이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와 요시모토 바나나는 서로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작품의 질적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 인식 속에 묘한 차별이 있는 것 아니었냐는 페미니즘적 지적이다. 신빙성은 있지 않나? 다시 나의 관심사로 돌아와서, 1991년 걸프전쟁 이후 공통적으로 전쟁이라는 주제를 다룬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무라카미 류 『5분 후의 세계』를 비교하고도 싶은데 한국에서의 아이돌 저력도 하루키가 승자라 『5분 후의 세계』 책이 없어 읽을 수 없는 게 조금 아쉽다. 일본어 공부를 해서 원서로 읽으라고요? 읽어야 될 아이돌이 어찌나 많은지 그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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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아이돌론>은 일본에서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돋보이는 활약을 했던 여덟 명의 작가 및 언론인을 그 시대에 비추어 살펴본 책이다. 제1부 문학거품의 풍경에서는 거품 경제 시기에 경이로운 베스트셀러를 냈던 세 명의 작가 ; 무라카미 하루키, 다와라 마치, 요시모토 바나나, 제2부 여성 시대의 선택에서는 ‘여성 시대’를 상징하는 두 명의 여성 논객 ; 하야시 마리코, 우에노 지즈코, 제3부 지식과 교양의 편의점화에서는 ‘작가’라는 틀을 넘어 폭넓은 분야에서 언론 활동을 펼친 세 명의 지식인 ; 다치바나 다카시, 무라카미 류, 다나카 야스오를 살펴본다. 거품경제기에 일본을 움직여간 사회적 현상과 사상을 ‘문단의 아이돌’과 연결해 서술하며 시대를 통찰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의 문예비평가. 편집자로 일했고 1994년 <임신소설>을 통해 평론가로 데뷔했다. 현재 아사히신문 서평위원이며 도쿄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홍일점론>, <모던걸론>, <취미는 독서>, <말은 하기 나름> 등이 있다. <문단 아이돌론>을 통해 “그들이 어떤 식으로 논해지고, 평가받고, 보도되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작가와 독자와 저널리즘을 모두 포괄하는 시점에서 ‘아이돌이 되게 된 이유’를 분석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쓴 또 하나의 목적은 이러한 아이돌을 만들어낸 시대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입니다. 대중소비사회의 갑작스러운 도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구호 속에서 반쯤 혼미한 상태에 있던 1980년대 후반, 그리고 거품경제 붕괴 후의 1990년대까지를 분석 대상으로 하여 약 20년의 세월을 되돌아보고자 했습니다.(p.8)”라고 저자는 거품경제가 꺼지는 침체기에 있었던 시대상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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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한 방에 떠서 가수가 되고 인기를 얻게 되는 경우도 드물게 있지만, 대개의 아이돌들은 기획사에 들어가 몇 년 간 체계적으로 연습생 생활을 거친다.
즉, 소위 아이돌들은 철저한 계획과 기획 하에 만들어지는 ‘상품’인 셈인데, 이 책의
저자인 사이토 미나코의 기본 논지는 많은 독자들을 거느리고, 비평가들에게 자주 언급되는 소위 ‘유명 작가’내지는 ‘베스트셀러
작가’들 역시 유명해지는 매커니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
‘매커니즘’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 다루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제목에 ‘문단’을 거론하고 있어 논의의 대상이 ‘문단’, 즉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 한정되어 있을 것 같지만, 이 책에서는 언론인을 포함한 지식인도 논의의 대상에 포함된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대표적이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문단과 논단(여기에서의 문단이나 논단은 담론이
집적되는 장소를 의미한다)에서 유명한 작가들을 ‘아이돌’이라 지칭하면서 이들이 어떻게 ‘아이돌’—인기작가—가 될 수 있었는가, 그
이유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다치바나 다카시, 무라카미 류 등은 국내에도 꽤 많이 소개되어 사랑받고
인기 있는 작가들이기에, 이들이 배태된 시대적 양상이나 이들이 인기작가가 된 매커니즘 등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롭고 즐겁다. 물론 대체로는 비판적인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에 소위 ‘팬’이라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렵다거나 오롯이 즐기기엔 불편한
내용들이 있을 수 있지만, ‘객관적’ 입장에서 문학 시장
전체를 조망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출판 시장이나 문학계,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생태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그 일원들이 어떻게 자기 영역을 구축해나가는지를 살필 수 있는 유의미한 기회가 될 수 있을것이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는 것 자체가 ‘문학의
황금기’라는 게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작가들이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거의 모든 대중들이 이들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시기에 있었기에 이런 분석도 가능한 것인데, 가령
현재의 한국의 출판시장과 같은 상황이라면, 이런 논의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의도한 건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문학의 황금기에 대한 노스탤지어나 향수 같은 것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봐도 될 듯하다.
대립하는 담론들 살피고, 그들 중 무엇이 새롭고 무엇이 낡은 것인지 분석하고, 담론들이 어느 지점에서 충돌하는지 면밀히 살펴본다면 비평의 작동방식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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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은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보일러가 잘 돌지 않는 방에서 문학과 지성사 판 난쏘공을 읽었다. 촘촘한 글씨를 따라 읽어가며 예감, 전조, 불안함을 느꼈다. 충격과 함께. 특출나게 잘 하는 것도 없고 소심하고 주거지마저 불완전한 나에게 문학 읽기라는 새로운 사명이 주어졌다. 중독되듯 책 읽기에 빠졌다. 서점에 가면 한국문학 코너부터 찾아 들어갔다. 산 중턱에 있는 도서관에 올라가서 책들을 뒤졌다. ㄱ으로 시작되는 책꽂이를 섭렵해 나갔다. 도장 깨기. 책꽂이 깨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전설. 거처가 정해지고 나만의 방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책들을 사 모았다. 그 시간은 '젊은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새로운 감수성'이라는 수식어를 들고 작가들이 속속들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소설 쓰기의 세계로 한 발은 내딛기로 했다. 연습장을 사서 문장들을 적어 갔다. 어디서 읽은 문장들의 아류였다. 쓰기는 안 되겠구나, 다시 읽기. 열심히 읽었다. 한국문학. 소설 뒷부분에 실린 해설을 읽기도 했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더 많았다. 결벽증이 있어 해설까지 다 읽어야 달력에 읽은 책들을 쓸 수 있기에 읽어 나갔다. 비평은 소설 읽기에 비해 훨씬 장벽이 높았다. 콤플렉스를 이기기 싶어 비평집을 빌리고 사서 읽었다. 지금도 비평 읽기에 애를 먹는다는 이야기. 사이토 미나코의 『문단 아이돌론』은 일본의 거품 경제기 1980년에 등장한 작가들이 어떻게 소비되고 문단에서 논해지고 있는지를 다룬 비평집이다. 『문단 아이돌론』에서 다루는 작가들은 한국에서도 꽤 알려진 작가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시작으로 『샐러드 기념일』의 다와라 마치,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류까지. 한국문학에서 눈을 돌려 일본 문학을 읽어가는 시기가 있어 『문단 아이돌론』을 읽어가는 시간은 힘들지 않았다. 작가론을 시작하는 제목이 심상치 않다. 「게임 비평 삼매경-무라카미 하루키」, 「불러라 춤춰라 J포엠-다와라 미치」, 「신데렐라 걸의 우울-하야시 마리코」. 제목만 보면 이 책이 비평집인지 잠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내가 읽어 나갔던 한국문학을 다룬 비평집의 제목과는 무게가 다르다. 한국문학의 평론은 책의 두께로 독자를 압도한다. 심오하고 철저하게 작품을 해부하는 비평가는 시종일관 근엄한 얼굴이다. 비평을 비평하고 싶어진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서로를 치켜세워주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똑똑한 척해서라도 끼어들고 싶지만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문단 아이돌론』의 비평은 목소리가 다르다. 발랄하고 경쾌하다. 신인 작가들이 1980년대 일본에 어떤 영향을 주고 영향을 이어가는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한다. 신작이 나올 때마다 한국 출판사들이 줄을 선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 스타일을 다방 주인 문체라고 소개한다. 하루키 세계의 입성하는 독자들은 다방으로 들어가서 하루키가 심어 놓은 암호들을 해석하기 위해 게임장으로 빠진다. 곳곳에 심어 놓은 심어 놓은 것이라 믿는 하루키의 소설 속 상징들을 해석하느라 독자들은 소설 읽기를 게임처럼 즐긴다는 것이다. 80년대 일본 문학은 혜성처럼 등장한 작가들이 폭죽으로 팡팡 터지던 시기였다. 『샐러드 기념일』이 나오고 이 책의 수요자들은 중년 남성들이었다. 문학의 소비층이 다양하게 바뀌면서 『샐러드 기념일』의 판매 부수는 천만 부에 이르렀다. 시집으로 분류되는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나도 쓸 수 있겠다 자신감이 솟아오르면서 일본에서는 단가 짓기 열풍이 불었다. 문학을 읽기만 했던 수동적인 독자들은 쓸 수 있다는 능동의 포즈를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억을 떠올려 본다. 가벼운 감각이라는 시집이 등장한 이 시기 한국문학에도 말라버린 감수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들이 등장했다는 것이. 하루키 열풍이 불어닥쳤을 때 하루키 감성을 가지고 온 한국 작가들이 출몰했다. 불륜을 다룬 소설이 일본 신문에 연재됐을 무렵 작가들은 문학적 수사와 더불어 불륜 이야기에 자신의 필력을 쏟아부었다. 영향을 받고 영향을 준다. 노골적인 문체 따라 하기, 분위기 가져오기. 사이토 미나코의 『문단 아이돌론』은 일본 문학을 비평하고 있지만 이면을 생각해보면 한국문학이 교묘히 숨겨온 일본 문학 따라 하기의 역사가 80년대를 시작으로 하고 있구나 충격까지는 아니고 그랬구나, 그런 거였구나, 씁쓸해진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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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가 말했다. 그녀는 다이아몬드다.
그녀. '문단 아이돌론'의 저자 사이토 미나코 이다.
아마도 그 누구보다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책의 서평을 쓰더라도 그녀의 글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번역한 이가 아닐까 싶다
그녀가 쓴 서평은 서평의 대상이 된 책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전해주는 경우가 많다.p.296
옥과 돌이 함께 뒤섞여 있다는 뜻으로,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섞여 있음
옮긴이는 일본출판 시장을 옥석혼효에 비유했는데 사회학자,심리학자,정치학자,철학자의 간판을 내걸고 독서 감상문 수준의 글로 책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소개되는 폐단과 우려를 염려하며
사이토 미나코는 옥석을 가리는 기준이 될것이라고 한다.
이책의 목적에 관하여. 스타덤에 오른 작가들을 올려놓은 저널리즘과 수많은 독자의 존재를 파악하고 (스타덤..여기서 표현하는 '아이돌'이라는 표현이 순화되는 방향인듯하다.) 이러한 이이돌을 만들어낸 시대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라고 밝힌다.p.8
아이돌 앞에 문단을 넣었으니. 그것이 표현하는것은 펜을 들은 작가들에 관한 이야기로 점철되어 읽혀질 것이다.
이 책은 활자 세계를 통해 본 1980년대 시론으로 쓴것입니다. p.291 세카이 연재 한 글을 바탕으로 단행본으로 엮으면서 추가하거나 삭제한 내용이라는 글과 함께 저자의 글 말미에 소개되었는데. 쓴날이 2002년 5월 31일.
판권을 봤는데 2017년 2월13일 인쇄.20일 발행인 책인데. '최신의 과거'가 '책'이 되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참고로 '오래된 미래'는 '꿈'이리라.]
게재지 일람을 살펴보면 무라카미 하루키[게임 비평 삼매경] 1996년 8월 다와라 마치[불러라 춤춰라 J포엠] 1999년 3월 요시모토 바나나[소녀 문화라는 지하 수맥] 2001년 1월 하야시 마리코[신데렐라 걸의 우울] 2001년 5월 우에노 지즈코[바이링갸루의 복수] 2001년 9월 다치바나 다카시[신화가 된 논픽션] 2001년 3월 무라카미 류[5분후의 뉴스쇼] 2001년 8월 다나카 야스오[브랜드라는 이름의 사상] 2001년 11월
과거의 책을 길어올려 현재에 다시 조명한다. 지나간 글을 읽는것 같아 독자들에게 실망을 줄지 모르나 이책의 시점이나 관점은 현재와 미래에 있지 않고 과거시점에서 이뤄진 움직임을 읽는 하나의 단초이다 하여 문화인류학이나 사회학의 보고서로 읽어도 좋다고..옮긴이는 말한다.p.294
훼예포폄 [ 비방과 칭찬, 나무람과 치켜세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가와 언론인은 모두 훼예포폄이 심한 사람들이다p.253
8명의 작가중 마지막 편에 해당하는 다나카 야스오를 나는 주목한다.
뭐 여러가지로 다른 작가들보다. 사이토 미나코의 오마주가 '문단 아이돌론'에 숨겨있는 부분이 있어서이며
느낌 어쩐지 크리스털의 익명서평에 관한 글에 가서야 '문단 아이돌론'의 구성과 맞닿아 있는 부분을 접하게 되어서 그러하다.
주석을 소설의 본편에서 따로 떼어내 별도로 정리해 놓은 까닭은 전형적 광경을 한장의 희화로 성립시키기 위한것으로 본편을 읽은 다음에 주석을 읽으면 이 작품이 훌륭한 풍자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본편과 주석으로 구성된 2부 구성의 소설이다. 제1부가 보이는 그대로의 '그림'이라면, 제2부는 캐리커처 감각의 '말풍선으로 된 멋진 구성
보이는 그대로의 그림이란 '르포르타주'이고 희화는 '비평'이라고 할수 있을까p.263-264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과 난해한 책을 읽는 일은 같은 가치를 가진다-다나카 야스오-.p.267
문단 아이돌론의 8명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시대 거품경제,페미니즘,포스트모더니즘에 움직여간 80대년대 일본의 문화적변화를 묘사한것이다.
처음에 읽었을때는 모르는 고유명사(작가들의 이름)를 접할때마다 모르는것 투성이고 읽기가 쉽지 않다는 느낌만 갖게되었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이책을 어떻게든 한번 읽은 이후의 다시 읽기에서 다른 변화를 얻었다.
고유명사는 그냥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며 그들의 언어와 표현으로 내용이 전달되고 나의 읽기가 처음에 막혔던 이유는 자유로운 읽기라기보다 이책을 읽고 정리하려는 조급함으로 몰아간 내 마음의 문제였던것 같다.
아직까지. 이책을 난해하다고 느끼는것은 아니지만. 이책이 쉽게 쓸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는걸 느끼는건
시대의 현상을 통해 사유할 가치와 무기를 발견하는 저자의 지적능력은 지금에와서도 분석되어지는 그들(작가들)의 언어와 문화등이 내놓은 가장 정점에서 바라보는 객관적이고 응전가능한 분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작품과 비평의 생산적인 줄다리기가 이뤄지는 그런 무대의 작품론을 읽어간 3월의 어느날을 보냈다
느낌 어쩐지, 무라카미하루키 현상 요시모토바나나 현상 무라카미류 현상 다와라마치 현상 하야시마리코 현상 우에노치즈코 현상 다치바나다카시 현상 타나카야스오 현상
모두가 같은 시대에서 현상처럼 등장하여 관찰되어지고 분석되어졌다. ------------------------------------- 현상(現象 · Phenomenon)은 실제로 드러나 있는 것, 볼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을 말한다. 자연도 그러하다. 집이나 거리나 마을이나 들판이나 산이나 나무도 그러하지만 개개의 하나하나라기보다 그것들 전체의 변전하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감각적 인식의 대상이라 하여 이성적 인식의 대상과 구별되었다. 칸트는 인식의 형식, 즉 시간이라든가 공간이라든가 하는 범주로써 질서가 이루어진 것이라 했다. 마르크스는 현상을 떠나서 본질은 있을 수 없다고 하여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고 했다. -위키백과- ---------------------------------------
사이토 미나코가 통찰력 있는 그녀의 접근방법으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공을 돌리며
느낌 어쩐지, 사이토 미나코
느낌 어쩐지,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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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아이돌론 이 책은 이 책의 배경은 일본이다. 일본 작가가 일본의 문화 현상에 대해 쓴 글이다. (일본의) 활자 세계의 스타 가운데에서도 특히 1980년대부터 1990년에 걸쳐 돋보이는 활약을 했던 8명의 작가 및 언론인을 다루고 있다. (8쪽) 저자는 이 책을 쓴 두 가지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활자 세계의 스타들이 어떤 식으로 논해지고, 평가받는지를 살펴보면서, 그들이 아이돌이 된 이유를 분석해 본다. 또한 그러한 아이돌을 만들어낸 시대상에 대해 생각해 본다. (8쪽)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활자 세계의 아이돌은 누구일까 모두 8명인데, 1980년대 후반에 경이로운 베스트 셀러를 펴낸 3명의 작가가 먼저 다루어진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잘 모르는 두 명의 작가, 다와라 마치, 요시모토 바나나가 있다. 두 번째로는 ‘여성시대’라 불렸던 1980년대를 상징하는 여성 논객 두 명을 다룬다. 세 번째로는 작가의 틀을 벗어나 폭 넓은 분야에 걸쳐 활동해 온 사람들인데, 이에는 잘 알려진 – 나의 기준으로 – 다치바나 다카시와 무라카미 류가 있고, 또 한명 다나카 야스오도 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모두 일본인이기 때문에 전체를 읽어가되, 그래도 잘 알고 있는 세 명에 대하여 더욱 심도 있게, 의미 있게 읽었다. 그 사람들은 무라카미 하루키, 다치바나 다카시, 그리고 무라카미 류, 이렇게 세 명이다. 담론의 장으로 이들에 대한 평가는 맨처음에는 찬양 일변도였다가 세월이 변하게 되자, 그들에 대한 평가도다양화 되기 시작하였다. 예컨대 ‘신화가 된 넌픽션’이라는 타이틀로까지 논의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경우가 그렇다. 먼저 그에 대한 찬사가 어느 정도였는지 살펴보자. 여러 영역에 강한 호기심을 가진, 현대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185쪽) 그의 손에 걸리면 마치 강력한 자석이 모래 속에서 쇳가루를 빨아들여 자석 아래에 ‘정렬’시키듯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그런 능력의 소유자다. (185쪽) 그에 대한 기사가 수록된 잡지의 띠지에는 이런 말도 써있었다. ‘지식’의 거인의 멈추지 않는 걸음. (185쪽) 다른 저널리즘은 구경꾼의 외침에 불과하지만, 다치바나의 경우는 문제를 제대로 이야기함으로써...(193쪽) 그러나 그가 다루는 범위가 점점 넓어지면서, 조금씩 한계가 보이지 시작하고 철옹성 같던 그의 명성도 균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런 반론도 등장하기 시작한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지식의 거인’에도 약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211쪽) <문명의 역설>과 <환경 호르몬 입문>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저작 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책입니다. (211쪽) 언제 그가 이러한 비평을 들어봤겠는가 또 있다.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어하는 독자에게 왜곡과 엉터리 해석과 같은 불순물 섞인 정보를 흘리는 ‘지식의 야바위꾼’이다. (214쪽) '지식의 거인'이라는 평가에서 '지식의 야바위꾼'이라는 평가까지, 그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서두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렇게 되어 일변도의 찬양이던 것은 사라졌지만, 그렇게 두 가지 방향으로 보는 담론이 오히려 활발해져서 대중의 흥미를 끌게 되었고, 그들의 성가를 높이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평론의 역사를 헤집어 보는 작업이 가치있는 일이 되는 것이다. 현시점에 혹은 과거의 시점에 머무르지 않고, 통시적으로 비평의 변화를 살펴보면서 작가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다시, 이 책은 실상 위에 거론한 세 명의 작가에 대하여, 안다 하면서도 변변히 알지 못하는 것, 사실이다, 그저 그들의 책 몇 권을 읽고, 그들에 대한 평론 몇 꼭지를 읽은 것이 전부다, 그러니 안다고 말은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하여 그들을 조금 더 알아가는 계기로 삼고, 그들에 대한 일변도의 지식에서 벗어나 다른 면도 포함한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 나에게는 행운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