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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시골마을 홀트의 한 노인과 이웃들의 이야기입니다. 노인 데일은 암 진단을 받고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하며 과거의 기억들을 돌아보게 돼요. 가족들 중 특히 아들과 관계가 좋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상처를 줬던 과거가 드러납니다. 마을 사람들 각자의 삶도 교차되며 잔잔하고 담백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올리브 키터리지"와 비슷한 감정의 결이 느껴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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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콜로라도 주의 가상 도시 ‘홀트’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대드와 그의 가족 이야기, 마을에 새로 부임해 온 라일 목사 부부와 그들의 아들, 존슨 네 모녀 윌라와 에일린, 대드가 운영하는 철물점 직원들의 이야기를 잔잔하고도 담담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눈앞에 닥친 ‘죽음’의 선고는 이전의 평범하던 일상을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만든다. 불편한 몸을 의자에 의지한 채 창밖을 바라보는 70대의 노인 대드,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지난날을 떠올리며 상념에 젖는다. 집을 떠나 소식을 알 수 없는 아들 프랭크, 그리고 아내와 함께 그 아들을 찾아갔던 일, 그가 운영하던 가게에서 돈을 훔친 것을 들킨 후 자살해 버린 직원의 아내를 도와준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대드는 사람들에게 ‘시곗바늘처럼 정확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바깥으로부터 오는 인정과 칭찬이 그의 내면까지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집을 나가버린 아들, 딸(손녀)을 잃은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딸, 그리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거 부모(아버지)로부터 받은 깊은 상처들. 죽음을 앞둔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이 정리하고 풀어가야 할 생의 마지막 숙제와도 같았다. 과거 아내와 함께 아들을 만나러 갔던 어느 날, 아내 메리는 아들과의 유쾌한 만남을 기대했었다. ‘뭔가 남아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남편과 아들 사이에서 주고받은 짧은 대화는 그녀에게 실망만 안겨 주었다. 거기엔 ‘접촉’이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자존심으로 스스로를 꽁꽁 묶어둔 채 서로에 대해 마음을 열려 하지도, 이해하려 노력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난 우리가 그애와 아무 접촉도 없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워요. 어떤 식이든 이보다는 나았을 거예요. 아까 거기서 있었던 정도의 일보다 나은 일이 있기를 바랐어요.” 눈을 맞추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것, 서로의 일상을 묻고 상대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없다면, 비록 같은 공간에 있다 해도 그들은 ‘함께’가 아닐 수 있고, ‘우리’가 아닐 수 있다. 나는 그 눈빛과 마음을 얼마나 헤아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가장 가까운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 사실 그보다 더 큰 행복감을 주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늘 있는 것 같아서, 깨닫지 못하고 살아갈 뿐이다. 자신이 운영하던 상점 앞에서 대드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가 본 것은 그저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었다. “나로 하여금 울음을 터뜨리게 한 그 일 말이오. 거기서 내가 보고 있던 것은 바로 내 인생이었소. 어느 여름날 아침 앞쪽 카운터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 사이에 오간 사소한 거래 말이오.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것. 그냥 그뿐이었소.” 온 가족이 아침에 일어나 내가 차려준 밥을 먹고, 각자의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하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함께하는 것. 반복되는 매일의 일상 속에서 의미 없는 듯 지나쳤던 사소한 일들이, 사실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시간의 유한함과 그 소중함을 알고 산다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금‘에 조금 더 감사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나이가 들고 늙어간다는 건, 그 지혜의 깊이를 조금씩 더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인으로부터 아들 프랭크를 봤다는 소식을 들은 메리는, 아들을 봤다고 하는 그에게 아들이 괜찮아 보였는지, 행복해 보였는지를 묻는다. 물론 타인이 알아보고 답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비록 만날 수 없고 소식도 알 수 없는 아들이지만, 어디서든 그 아들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오는 듯했다. 딸을 향한 아버지 대드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난 그저 네가 행복한지 아닌지 내게 말해주었으면 했어.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알고 싶었지.” 그리고 꿈속에서 만난 대드의 아버지와 어머니 마음도. “우린 그저 네가 잘 지내는지 보러 들른 거란다.” 자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동일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대드와 가족들,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가운데 이야기는 그렇게 ‘평온’을 향해 물 흐르듯 아름답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나의 마음은 정작 그러질 못했다. 갑작스레 맞아야 했던 엄마와의 이별은 세월의 흐름을 따라 조금씩 정리되어 가는 듯하다. 그런데 나에겐 아직 한 번의 이별이 더 남아 있다. 아버지와의 이별이다. 최근 폐암 수술과 항암 치료로 힘들어하시는 아빠의 소식을 접하며 통화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빠에 대한 나의 감정은 그 이상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아빠는 가족보다는 친구, 집안보다는 바깥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아빠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속에 있는 고민을 꺼내 본 적이 없다. 아빠가 다른 가정을 꾸려 집을 떠나셨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대학 등록금 명목으로 대출한 돈을 갚지 않으셔서 신용 불량자가 되어야 했을 때도,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아빠에게 어떤 원망의 말도 내뱉지 않았다. 사실 어떻게 아파했고 감정을 삼켰었는지,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점점 늙고 약해져 가는 아빠를 본다. 안부 전화를 드리고 용돈을 부쳐 드리는 것으로 최소한의 자식 도리를 하고 있다 생각했다. 그저 아빠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다. 그런데 그걸로는 부족한 듯하다. 서로의 안부 정도를 묻는 아빠와의 짧은 통화가 끝나고 나면, 왠지 모를 헛헛함이 밀려오곤 한다. ‘나는 왜 아빠에게 할 말이 없을까?’ 아버지 대드와 딸 로레인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그저 부럽기만 했다. 내 속에 있는 말을 아빠에게 솔직하게 꺼내 본 적이 없다. 꺼내지 않고 잘 덮고 사는 게 편안해지고 익숙해져 버렸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가도, 마지막을 생각하니 조금 두려워진다. ‘훗날 아빠를 떠나 보내는 순간에도 내 마음이 텅 비어 있으면 어떡하지? 그때에 이르러서도 마치 물 위를 떠다니는 부유물처럼 마음의 평온을 얻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어려운 숙제처럼 내 마음의 발목을 잡는다. “할 수 있을 때 마음껏 누리렴.” 돌아가신 대드의 어머니가 대드에게 남긴 말처럼, 할 수 있을 때, 아직 기회가 남아 있을 때, 그 일을 해나가야 할 것 같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당신이 더는 고통이나 후회나 불행이나 가책이나 스스로에 대한 회의나 걱정 없이 이 육신의 세계를 떠나실 수 있기를 빕니다. 오로지 당신이 평온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방 안에 있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도 평온하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저희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모든 축복을 구하나이다. 아멘.” 이 평온의 축복을 구한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
| 켄트 하루프의 소설 축복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노인 대드와 그의 가족 그리고 이웃들의 일상을 무척 섬세하게 그린 소설이다. 콜로라도 주의 가상 마을 홀트를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 용서와 화해를 아주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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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트 하루프(1943~2014)는 마흔한 살 때 단편으로 데뷔한 이래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썼다. 우리나라엔 세 편만 번역되었다. 과작 작가인데 작품들은 묵직하다. '밤에 우리 영혼은'과 '플레인송'을 읽고나서 '축복'도 읽었다. 이 책도 하루프가 만든 가상의 마을 '홀트'를 배경으로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대드 루이스'와 주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작가 특유의 화법으로 담담하게 펼쳐진다. 한 달을 선고받은 77세 대드 루이스, 그의 다정한 아내 메리, 아이를 잃은 상처를 가진 그의 딸 로레인, 대드를 원망하며 떠난 아들 프랭크, 이웃 존슨 모녀, 버타 메이 부인과 어린 손녀 앨리스, 마을에서 배척당하는 목사 라울... 그냥 흘러갈 뿐이다. 노력은 하지만 극적인 화해도 없고 이별을 막을 수 없다. 뜨겁게 감동적이거나 눈물 철철 흘리는 절절함이 있지도 않다. 오히려 서글픈 느낌이 든다. 그런데 제목이 왜 '축복'인지 알 거 같다. 산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한 경의이며 감사이고 축복이라는 느낌. 하루프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 어떤 것을 이루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 식의 욕망이 없다.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승전전이다. 자기 글엔 결은 없다고 말하는 듯하고 인생에 결이 어디있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래서 좋았다. 그의 책이 더 번역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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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의 순간들 속에서 건져올린 ‘소중한 일상’. 그 고요하고 경이로운 축복에 대하여…. 죽음을 축복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축복 / 켄트하루프 / 문학동네
예전에 켄트하루프 작가님의<밤의우리영혼은> 책 감명깊게 읽었기에, 이 책도 망설임없이 구매하게 되었다.. 이번책에서도 홀트 마을의 무대로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이 독특하다.
노인 대드는 폐암을 진단받고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지나간 삶들이 평범하지만 누구에게나 누릴 수 있는 큰 행복한 매일이었다는 것을 읽는내내 깨닳을 수 있었다. 자신이 평생 일구어낸 직장 철물점을 딸에게 물려주고, 직원들을 신뢰하며 마지막엔 큰 보상을 주기도 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을 함께 한다. 그러나 자신의 둘째 아들의 방황으로 오랜시간 헤어져 살게 되면서 남보다 못한 사이로 마지막까지 함께 하게 된다. 축복이란 단어만으로도, 대드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에게도 결핍이 존재했던 것 같다. 아들 프랭크의 삶도 순탄치 않았기에 읽는내내 안타까운 마음과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대드의 마지막 삶을 만나기까지 홀트 마을의 이웃들의 이야기들도 만날 수 있었고,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행복과 희망의 끈은 놓지 않고 살아가고 있던 것을 다시 확인한다.
우리는 언젠가 늙어가고, 언젠가 죽는다. 별 것 없는 일들이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다는 대드의 슬픔이 가득한 메세지가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바쁘게 살아왔던 시간들이 죽음이라는 문턱 앞에서 쉼을 주었다. 페이지 한장씩 넘길 때 마다 지루함보다는 느긋이 남은 삶을 살아가는 대드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 순간을 그저 감사하고 축복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의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었는데, 켄트하루프 작가님의 책들을 통해 축복으로 태어나 축복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잘 견디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내 삶을 되돌아보고, 가족과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며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 책을 덮는다.
작가님의 잔잔하지만 울림을 주는 문체들이 나는 그렇게나 좋다. <플레인송> 책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 책마저 구입해야겠다. 고인이 되신 작가님. 더 많은 책들을 만날 수 없어 아쉽지만 살아가면서 내 삶이 빛이 사라져갈 때쯤, 작가님의 책들을 재독하면서 삶의 반짝임, 축복을 다시 만나길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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