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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러버] 말할 수 없는 불안함
"[북클러버] 말할 수 없는 불안함" 내용보기
이전에 꽤 유명한 골키퍼였던 요제프 블로흐는 건축 공사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하러 가서는 자신이 해고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꾼들이 모여 있는 대기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마침 오전 새참을 먹고 있던 현장감독이 그를 힐끗 올려다보는 순간 그는 그것을 해고 표시로 이해하고 공사장을 떠났다.9p블로흐는 방황을 시작한다. 여관과 술집을 전전하던 그
"[북클러버] 말할 수 없는 불안함" 내용보기
이전에 꽤 유명한 골키퍼였던 요제프 블로흐는 건축 공사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하러 가서는 자신이 해고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꾼들이 모여 있는 대기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마침 오전 새참을 먹고 있던 현장감독이 그를 힐끗 올려다보는 순간 그는 그것을 해고 표시로 이해하고 공사장을 떠났다.


9p

블로흐는 방황을 시작한다. 

여관과 술집을 전전하던 그는 극장 매표소 직원과 하룻밤을 보낸다.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에 거침없이 끼어드는 그녀에게 불쾌함을 느끼고 계속된 대화에서도 불쾌감을 느낀 블로흐는 "오늘 일하러 가지 않으세요?"라는 물음에 그녀를 살해한다. 이후의 내용은 블로흐가 도피하며 방황하는 내용이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묘사되는데, 매우 난잡하고 정신이 없다. 다양한 인물과 만나 대화를 나누지만 그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술집에서는 남자들과 주먹다짐까지 한다. 그러다 그는 축구 경기를 보러 가고, 골키퍼라는 위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소설의 내용은 매우 정신이 없고 일관성이 부족하며 독자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는 작가의 의도적인 서술로, '불안'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매표소 직원을 살해한 후 자신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지는 신문을 보며 초조함을 유발하는 것을 기반으로 다양한 죽음에 대한 묘사와 다툼들로 불안을 증폭시킨다. 그는 범죄자로서 도망치며 주변부로 밀려나지만 여자관계에서,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계속해서 어디론가 밀려난다. 배제와 소외, 부적응의 모습을 보인다. 더불어 소설에서는 대체로 단정적 표현이나 말끔한 서술이 사용되지 않는다. 해고된 순간을 묘사할 때도 매표소 여직원을 살해했을 때도 단정적 표현이 쓰이지 않아 독자에게 오해를 일으킬 정도다.

 

이런 서술의 특징 또한 작가의 의도로 볼 수 있다. 언어와 소통의 오류, 단어와 뜻의 부정확한 전달과 의미의 실패, 주인공의 무기력함과 신경과민, 정신없음. 그는 시체를 보아도 그냥 지나치거나 떨어지는 케이크 상자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등 무기력함을 드러낸다. 소통의 실패와 무기력은 현대사회의 상징으로 볼 수 있겠다.

 

말없이 그렇게 누워있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동작이자 쓸모없는 일이었다. (..) 그는 방어력 없이 저항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욕지기가 나면서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낯선 것은 아니었지만 좀 혐오스러웠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 충격으로 그는 이상해져 버렸고 일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아무런 가능성도 없이 그곳에 누워 있었다. 비교할 것도 없었다. 자기 자신에 관한 의식만은 너무 강렬해서 불안스러웠다.

75-76p


주인공은 종종 주변의 것들이 자신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가 바라보는 것들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 아이가 세상을 인식하는 듯한 묘사 같은데, 이런 면에선 주인공이 어두운 배경과 불안한 심리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안타까움이 든다. 한편 주체성을 되찾아가는 하나의 희망적인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 혹은 혼잣말로 질문을 계속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가 소통 자체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자기 뒤처리는 잘하고 다녀야지", "블로흐는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떨어뜨리는 버릇이 있다고 대답했다."(105p) 행동을 하고 그 이후를 생각하지 못하는 어떤 현대인의 초상으로 그릴 수 있지만, 동전과 단추를 자주 떨어뜨리는 행동은 이 불안함의 의식, 자기의식 혹은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후반부에 주인공은 공허함과 '구토'감, '수치심'을 느낀다. 사르트르의<구토> 떠오르는 장면이다. 사르트르의 구토가 인간 존재의 의미와 무질서에 대한 사유를 던지듯, 한트케의 작품에서는 불안함으로 요동치는 인간 존재가 보인다. 계속해서 세상에 대한 해석이 어긋나면서 인간의 근본적 소통의 한계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 소통의 대상은 세상이자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주인공 블로흐는 소통에 실패하며 불안함을 해소하지 못한다.



사실 그들 모두는,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언어 장애자들이에요.
95p

주인공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과 의미들을 생각하면, 언어를 포함한 인식론적 문제에 다다른다. 주인공 블로흐는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언어로써 다가오는 의미들이 유사한 단어들과 혼동되거나 그 자체가 이해되지 못한다. 블로호가 술집에서 한바탕 싸우고 난 뒤 피곤해지는데, 그는 피곤해질수록 모든 것이 선명하게 인식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인간 의식, 어떤 이성적 사고방식은 틀을 규정한다. 이런 세상의 규칙이 블로흐에게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길에서 모르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 처음에는 어떻게 그를 파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요. 처음엔 제대로 알 수가 없죠. 올바로 알려면, 상대를 잘 관찰하고 있어야 합니다. 상대는 그에 대항할 준비를 하고 있다가 도망을 가 버리니까요."  이 대사는 주인공이 마지막에 만나 대화한 세관의 말인데, 골키퍼의 처지와 비교되면서 어떤 계속된 준비의 의무와 긴장감이 돋보인다. 세관은 규율의 상징으로서 불안함에 대항한다. 한편으로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그들이 의미하는 것들이 블로호의 불안을 형상화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독자와의 소통을 거부하며 부정적 감정을 이끌고 가지만 긴장감이 부족해 작품성이 아쉬운 소설이다. 게다가 가독성이 좋지는 않다. 그럼에도 인간의 무기력함과 수동성을 밝히고 인간의 본질을 불안에서 찾았다는 점, 인간의 소통의 근본적 한계와 계속해서 어긋나는 현대의 소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겠다. 외부 대상이 보내는 신호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겪는 언어적 갈등, 지속된 불안함의 충동적 발산, 무기력함과 수동성은 현대인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저자는 키커가 공을 쏠 때에만 존재하는 듯한 골키퍼의 모습에서 수동성과 불안함을 포착해 블로흐라는 인물을 만들었다. 골키퍼이자 수동적 불안함을 갖고 사는 블로흐는 말한다.

 


 

공을 차기 위해 키커가 달려 나오면, 골키퍼는 무의식적으로 슈팅도 되기 전에 이미 키커가 공을 창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면 키커는 침착하게 다른 방향으로 공을 차게 됩니다. 골키퍼에게는 한 줄기 지푸라기로 문을 막으려는 것과 똑같아요

120p

YES마니아 : 로얄 d********9 2024.09.30. 신고 공감 15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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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안다는 것 [외국소설-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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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 대한 탐구는 어떤 과정을 거쳐 나를 살게 할까. 이 작가의 글을 몇 편 읽으면서 생각해 보는 물음이다. 나를 만난다는 것, 나를 안다는 것, 내가 누구인지 파악한다는 것, 답도 없는 물음의 끝을 향해 끝없이 글을 쓰는 일. 작가는 이 물음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이기만 할 뿐, 아무런 답도 힌트도 주지 않는다. 아니지, 읽는 내가 미처 알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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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 대한 탐구는 어떤 과정을 거쳐 나를 살게 할까. 이 작가의 글을 몇 편 읽으면서 생각해 보는 물음이다. 나를 만난다는 것, 나를 안다는 것, 내가 누구인지 파악한다는 것, 답도 없는 물음의 끝을 향해 끝없이 글을 쓰는 일. 작가는 이 물음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이기만 할 뿐, 아무런 답도 힌트도 주지 않는다. 아니지, 읽는 내가 미처 알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 '나는 쓰면서 나를 계속 알아보고자 하는데 너는 읽기만 하는데도 어찌 알지 못하니?' 하는 듯.

 

글쎄, 내가 나를 왜 알아야 하나. 친절하지 못한 이끌림에 작은 반항을 해 본다. 나를 모르고도 잘 살아 온 것 같은데, 저를 모르고도 잘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것 같은데, 알려는 사람들이 알려는 의지 때문에 도리어 힘들어 하는 것만 같은데. 그래서 고개를 팩 돌리고 싶은데 이게 또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나는 이미 이 물음 안으로 들어섰고 한번 들어서고 나면 모르면 몰랐지 모른 상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만큼은 알겠다. 블로흐처럼 되어 가는 것일까.  

 

글의 분량은 길지 않다. 이 작가의 글이 가진 장점이라고 본다. 이런 의식을 오랜 시간 붙잡고 있어야 한다면 읽다가 포기하기 쉬울 것 같으니까. 그나마 글이라도 짧은 편이니 몽롱한 상태로도 견딜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고. 골키퍼가 주인공인 소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이라니, 설정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다. 작가가 자신의 삶을 이렇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골키퍼, 쉬운 듯 보여도 쉽지 않은 역할이다. 축구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지만, 주요 경기가 있을 때의 페널티킥 장면에서 느낀 조바심만큼은 기억한다. 나는 이 장면을 실시간으로는 못 본다. 끝난 뒤에야 볼 수 있다. 공을 차는 선수도 공을 막는 선수도 가엽고 딱하다. 이게 무슨 게임이라는 말인지. 잔인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시 한번 글쎄, 이 또한 우리 삶의 형태일까. 강하고 약하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제 삶의 페널티킥 앞에 선 선수가 되는 일. 차든지 막든지. 부담감이나 압박감은 양측이 다르지 않을 테고 기회라는 면에서는 다르겠지만 결과값을 받아들여야 하는 몫 또한 같을 테고. 적나라한 대결의 상태, 나는 이걸 좀처럼 견디지 못하는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소설의 주인공 블로흐의 심정을 아주 조금은 헤아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렇게 자신이 없는 이유는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있는 탓이고.  

 

눈 앞의 시간이 애매하고, 장차 일어날 상황이 두렵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하고, 아무도 나를 몰라 주는 것도 누군가 나를 알아 주는 것도 동시에 불안하고, 눈을 뜨는 것도 눈을 감는 것도 어느 쪽도 편하지 않고, 참으로 날카로운 신경이다. 이래서야 하루라도 제대로 살아 있을 수 있겠나.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기라도 하면 해결책이 있을까. 알면 또 좀 나아질까.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원인을 알아내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 원인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모르면서 하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막연히 그럴 것 같다고 여기는 내 심정이 증거다.  

 

작가의 의도는 어디까지였을까. 이 글을 쓰면서,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을 어느 선까지 끌어들이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작가가 그어 놓은 선에 어느 정도 다가간 것일까. 내가 바란 대로 넘어서 들어갔을까. 살아 가는 일이 이토록 암담하고 답답하면서도 끝없어 보이는 이 느낌을 어쩌자고 함께 나누려고 한 것일까. 그도 외로웠을까. 아무리 글을 쓰고 또 써도 이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더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 그래서 읽은 나는, 이렇게 궁시렁거리고 있는 나는 이 책을 읽기 전보다 나아진 상태가 된 걸까. 더 외로워졌나? 노벨상은 왜 받아서 나를 자꾸만 궁시렁거리게 하는 것인지.

 

날이 흐리고 춥다. 2019년에도 기억에는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더 많이 남는다. 기억의 한계라느니 오류라느니 해도 어쩔 수 없다. 마음을 바꿔서 좋은 것만 기억해 보려고 하지만, 평범한 생은 평범한 대로 흐를 뿐이다. 멀리 독일에서 오래 전에 헤매고 있었을 블로흐가 요즘의 우리 주변에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짧았든 길었든 잘 나갔던 영광의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고, 그 시절을 지난 후에 만나는 나날들은 한순간도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 속 블로흐는 자수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떠도는 블로흐들은 더 이상 숨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저쪽의 블로흐가 전화를 해 올 때 이쪽의 블로흐도 마음을 여는 게 먼저일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이 방법밖에 없을 것만 같으니.  

 

YES마니아 : 로얄 j***6 2019.12.17.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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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페터 한트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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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페터 한트케의 왼손잡이 여인을 읽고 오래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이후에 소망없는 불행을 읽으며 지루했고 빔벤더스의 베를린천사의 시를 보며 울먹였던 기억이 있네요..책은 술술 읽힙니다만 사건이 날 즈음엔 뭔가 비몽사몽하더군요..책의 뒷부분을 참고하니 페터 한트케가 스물 여덟에 쓴 소설이고 이미 빔벤더스와 작업을 한 작품이네요..젊어 건방지고 그러니 영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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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페터 한트케의 왼손잡이 여인을 읽고 오래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이후에 소망없는 불행을 읽으며 지루했고 빔벤더스의 베를린천사의 시를 보며 울먹였던 기억이 있네요..책은 술술 읽힙니다만 사건이 날 즈음엔 뭔가 비몽사몽하더군요..책의 뒷부분을 참고하니 페터 한트케가 스물 여덟에 쓴 소설이고 이미 빔벤더스와 작업을 한 작품이네요..젊어 건방지고 그러니 영화로 주목받았을거란 뻔한 생각도 듭니다..소설의 처음에는 어딘지 함순의 굶주림이 떠오르다가 사건이 나니 이방인인가?싶었습니다..함순씨 까뮈씨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네요..책 페이지수가 적은게 다행인 소설입니다..여전히 팬이지만요..
a***z 2019.10.2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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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 세계문학전집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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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 작품은 자전적이거나 다소 에세이의 문체 같은 '어느 작가의 오후'나 '소망 없는 불행'을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줄거리가 있는 서사일 텐데 주인공 남성의 정신세계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 인부로 일하고 있는 그가 왜 윗사람의 눈치만으로 자신이 해고되었다고 상정하는지 등등, 은 썩 아귀가 맞는, 이치에 맞는 전통적인 룰은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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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 작품은 자전적이거나 다소 에세이의 문체 같은 '어느 작가의 오후'나 '소망 없는 불행'을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줄거리가 있는 서사일 텐데 주인공 남성의 정신세계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 인부로 일하고 있는 그가 왜 윗사람의 눈치만으로 자신이 해고되었다고 상정하는지 등등, 은 썩 아귀가 맞는, 이치에 맞는 전통적인 룰은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영화화된 빔 벤더스의 영화를 클립만 본 적이 있지만 소설을 읽으니 미묘하게 난해해 영화화가 어려웠으리란 생각이 들었어요.

g*******5 2023.05.0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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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홀로 골대를 지키는 골키퍼 - 페터 한트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우리는 홀로 골대를 지키는 골키퍼 - 페터 한트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내용보기
최근 한국 연쇄살인의 시초이자 장기 미제 사건이었던 화성연쇄살인의 범인이 드러나면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1188회 악의 정원에서」 특집으로 한국의 연쇄살인범들을 다뤘다. 그들(이춘재, 정두영, 정남규, 유영철, 강호순 등)에게는 유사한 공통점이 있었다. 이춘재(1963년 생)를 제외하면 대부분 68년~70년 출생이고 1990년대부터 2009년까지 폭발적인 살인을 저질렀다.
"우리는 홀로 골대를 지키는 골키퍼 - 페터 한트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내용보기

 

최근 한국 연쇄살인의 시초이자 장기 미제 사건이었던 화성연쇄살인의 범인이 드러나면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1188회 악의 정원에서」 특집으로 한국의 연쇄살인범들을 다뤘다. 그들(이춘재, 정두영, 정남규, 유영철, 강호순 등)에게는 유사한 공통점이 있었다. 이춘재(1963년 생)를 제외하면 대부분 68년~70년 출생이고 1990년대부터 2009년까지 폭발적인 살인을 저질렀다. 가장 최근의 연쇄살인범인 강호순은 생활고로 인한 분노가 아닌 서양의 연쇄살인범처럼 쾌락형 연쇄살인범이었다는 점이 예외로 파악되지만, 나머지 연쇄살인범들은 사회에서 배제되었다는 강한 소외감을 가졌고 생활 비관이 컸다는 게 공통적이다.

 

소설 리뷰에 앞서 뜬금없이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고? 페터 한트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의 주인공 블로흐가 그들과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전쟁 이후 궁핍한 환경에서 태어났고 청년기 때 또래들이 안정된 기반과 경제력을 갖추며 살아가는 반면, 비정규직이거나 일용직으로 사는 형편에 정서적 교류를 할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분노를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는 걸로 푼다는 점에서 그렇다.

 

첫 장면부터 블로흐의 사회 부적응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때 유명한 골키퍼였던 요제프 블로흐는 건축 공사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지각을 한다. 현장감독의 시선만 보고 지레짐작해 자신이 해고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대로 나와서 되는 대로 배회하며 사람들과 거리를 관찰하는 그의 시선과 생각도 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아내와 이혼했고 만날 친구도 없는 그는 주로 접근하기 쉬운 여자들에게 관심을 가졌는데, 극장 매표원 여자와 원 나이트를 하게 된다. 다음날 아침 “자기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에 그가 끼어드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그의 이야기에는 거침없이 끼어드는” 매표원 여자를 그는 불쾌하게 여기다 “오늘은 일하러 가지 않으세요?”라는 말에 폭발해 그녀를 살해한다. 이후부터 이 소설은 블로흐의 도주 이야기다. 남쪽 국경 지역에서 여인숙을 운영하고 있는 여자 친구를 찾아간다. 여기서도 그는 술집에서 흠씬 두들겨 맞으며 또래 남자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한다. 이 마을에서도 살인 사건이 있어서 그는 호기심을 가졌지만 자기 범죄에 대한 수사망도 좁혀오고 있다는 걸 알아서 초조함은 더욱 커진다.

 

 

*

나시마르크트로 돌아와 가게들 뒤에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텅 빈 과채 상자들을 보고 있자니 재미있는 익살을 보는 듯했다. ‘무언(無言)의 위트!’ 하고 생각했다. 블로흐는 무언 풍자극을 즐겨 보았다. 위장된 또는 과장된 행동의 인상은 ? ‘배낭 속에 심판용 호루라기를 넣어 다니는 그런 과장된 행동.’ 하고 블로흐는 생각했다. ? 희극 배우가 길을 지나가다가 고물가게에서 우연히 트럼펫 하나를 집어 들고 시험 삼아 불어 보면서 이 트럼펫과 다른 물건들을 있는 그대로 명확하게 재인식하는 영화 속 장면을 보자 비로소 사라졌다. 그는 마음이 안정되었다.

 

 

**

“이거 가치가 있는 겁니까?” 하고 물으며 윗옷 주머니에서 돌을 하나 꺼내 탁자에 놓았다. 주인은 돌에 손도 대지 않고 그런 돌은 이 지역 도처에 널렸다고 대답했다. 블로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인은 돌을 집어서 손바닥에 놓고 굴려 보다가 탁자 위에 다시 내려놓았다. 블로흐는 곧 나갈 요량으로 돌을 집어넣었다.

 

***

왜 그가 계속 그렇게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갔다가, 빈둥빈둥 서 있다가, 되돌아오고 그러는지 여주인이 물었다. 그가 그녀를 그런 식으로 조롱하는 것인지……. 블로흐는 대답 대신 사과 껍질을 모아 놓은 신문에서 재담을 하나 읽어 주었다.

                    

****

그는 자신이 갑자기 퇴화된 느낌이 들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말없이 그렇게 누워 있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동작이자 쓸모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분명하고 뚜렷하게 누워 있었기 때문에 어떤 다른 모습이 될 수는 없었다. 그의 모습은 단정치 못하고 거칠고 조화롭지 않아서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할 뿐이었다. ‘매장해야지!’ 하고 블로흐는 생각했다. ‘포기하고 멀리해야지!’ 그는 스스로를 불쾌한 존재로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의 의식이 너무 강렬해서 그것을 온몸의 촉각으로 감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의식이나 사고를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공격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방어력 없이 저항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욕지기가 나면서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낯선 것은 아니었지만 좀 혐오스러웠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 충격으로 그는 이상해져 버렸고 일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아무런 가능성도 없이 그곳에 누워 있었다. 비교할 것도 없었다. 자기 자신에 관한 의식만은 너무 강렬해서 불안스러웠다. 그는 땀이 났다. 동전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침대 밑으로 굴러갔다. 귀를 기울였다. 비유인가? 그러고는 잠이 들었다.

 

*****
블로흐는 흥분했다. 단면의 안쪽에서 그는 개별적인 것들을 점점 분명하게 보았다. 그가 본 부분들이 전체를 위해 서 있는 것 같았다. 또다시 그에게는 부분들이 문패처럼 생각되었다. ‘조명 문자 광고’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귀걸이를 한 여종업원의 귀를 모든 사람을 위한 신호로 보았다. 옆 탁자에는 어떤 여자의 핸드백이 약간 열린 채 놓여 있어서 그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물방울무늬 두건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뒤에서 커피 잔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가끔 잡지의 그림을 보면서 재빠르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아이스크림 그릇이 탑처럼 쌓여 있는 모습은 주인의 모습과 비교가 되었고, 옷걸이 아래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은 그 위에 걸어 놓은 우산에서 흘러내린 물이었다. 블로흐는 손님들의 머리를 보는 대신 손님들 머리 높이에 있는 벽의 지저분한 부분을 보았다. 그는 여종업원이 벽 조명을 끄기 위해 지금 막 잡아당긴 더러운 줄을 보고 기분이 들떠서 ㅡ 밖은 다시 더 밝아졌다. ㅡ 이 모든 벽 조명이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는 빗속을 걸어 다닌 탓에 머리도 아팠다.

부담을 주는 개별적인 것들은 그들의 외형과 그들이 속해 있는 환경을 보기 흉하게 일그러뜨렸다. 개별적인 것들을 하나씩 이름으로 불러 보고 이 명칭들을 외형에 대한 욕설로 바꿔 봄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

블로흐는 이미 아침에 신문에서 본 ‘왜 전화를 하지 않느냐?’라는 작은 광고를 곧 특별한 함정으로 생각했다.

                                       

*******

그는 모든 대상들을 잇달아 기억하고 있었다. 피뢰침이 반복해서 나타난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는 피뢰침에서 무엇을 알아채야 할까? ‘피뢰침?’ 또 다시 그냥 단순한 언어유희일까? 그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여주인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그런데 저기 나무 접시 위의 비스킷들은 왜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까? 그도 ‘물고기처럼 침묵’해야 할까? 더 이상 이야기해서는 안 된단 말인가? 나무 접시 위의 비스킷들은 그런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마치 그가 그 모든 것을 직접 보지 않고 어디선가 행동 규칙들이 적힌 벽보를 읽어서 알게 된 것 같았다.

 

 

삶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위축된 상태에다 살인 이후 그의 심리 상태는 더욱 강박적으로 흐른다. 내면 관찰에 고강도로 예민한 페터 한트케의 자기 반영적 글쓰기 성향도 고려해야 한다. 블로흐는 누구와도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뭘 해야 될지도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한줄기 지푸라기로 문을 막으려는” 골키퍼처럼 블로흐는 거기 있다. 이 이야기는 결말 뒤를 더 궁금하게 만든다. 그는 어떻게 될까. 살인범으로 잡혀 교도소에 가게 될까. 잡히지 않고 사회에 머문다 해도 이토록 불안정한 심리와 결핍 상태에서 정상적인 삶을 수 있을까. 그는 과연 누구와 소통할 수 있을까. 그는 지금 괴물과 인간 사이의 기로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간 소외’, ‘비인간화’가 전 세계적으로 사회에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우리는 정말 소통하고 있을까. 어느 범주까지 원활한 소통일까.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자본주의 시장에 발맞춰 경기에서 열심히 뛰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홀로 골대를 지키는 골키퍼다. 삽시간에 달려들 공과 키퍼들ㅡ그것들은 과연 무엇일까?ㅡ을 두려워하며 불안과 공포 속에서 ‘다음을, 다음을’ 하며 혼잣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g******i 2019.10.29.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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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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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그려진 뭉크의 '절규'는 얼마나 불안한가.제목인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는 또 얼마나 불안한 상태일까.이미 표지와 제목만으로도 불안감이 한 가득이였는데 막상 책을 읽기 시작했더니예상했던 '불안'의 느낌과는 또 다른 '불안'의 느낌이였다.정말 독특한 책을 만났다.'불안'이라는 느낌이 어떤 것이라고 단정짓기도 애매한 참 독특한 책이다.'블로흐'라는 남자는 늦게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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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그려진 뭉크의 '절규'는 얼마나 불안한가.
제목인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는 또 얼마나 불안한 상태일까.
이미 표지와 제목만으로도 불안감이 한 가득이였는데 막상 책을 읽기 시작했더니
예상했던 '불안'의 느낌과는 또 다른 '불안'의 느낌이였다.


정말 독특한 책을 만났다.
'불안'이라는 느낌이 어떤 것이라고 단정짓기도 애매한 참 독특한 책이다.


'블로흐'라는 남자는 늦게 출근한 직장에서 힐끗쳐다본 것을 해고통지로 인지하고 나와버린다.
무슨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대놓고 화가 난 표정으로 쳐다본 것도 아닌데 이 무슨 판단력일까?
그렇게 스스로 회사를 나와서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응답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전부인에게 연락하고, 무의미없이 그냥 돌아다닌다.
상황은 "블로흐"를 굉장히 불안하게 만들 것 같은데, 정작 "블로흐"는 별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
아무 감정도 없는 그냥 무채색의 사람처럼.


그리고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극장 매표원과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 매표원이 '오늘은 일하러 가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을 했는데
블로흐는 그녀를 바로 목졸라 살해한다.
'아 지금부터 무엇인가 시작되는건가'라는 잠시의 긴장감이 무색할 정도로
살인을 저지른 블로흐는 유유자적 국경선쪽으로 향한다.
이건 도망가는 것인지, 그냥 산책을 가는 것인지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 남자 뭐지? 인생을 포기한건가? 무슨 생각인거지?' 등등
평온한 그의 모습이 오히려 더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는 전체적으로 대화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냥 서술 문장이 가득할뿐이다.
살인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별다른 사건도 없는 느낌이고,
인간 관계에대한 어떤 유기적인 부분도 나타나지 않는다.
마치 "블로흐" 혼자 살아가는 것처럼, 아무런 다른 존재와의 관계가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단절된 느낌이고, 냉정한 느낌이였다.


노벨문학상 작가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철저하게 단절된 사회를 비판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살인을 저지르고도 태평한 한 사람의 의식을 비판하고 싶었을까?
전체적으로 내용에 개연성이 없소, 사건이나 시간의 흐름이 되는 추축이 없어서
읽으면서 공감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d****i 2020.05.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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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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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쪽. 옆방에는 나비들이 꽂혀 있는 목판이 걸려 있었다. 수위가 나비를 채집하느라 지저분해진 자신의 손을 펴 보였다. 많은 나비들이 핀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블로흐는 목판 밑바닥에 흩어진 가루를 보았다. 그는 좀 더 가까이 가서 아직 핀에 꽂혀 붙어 있는 나머지 나비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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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쪽. 옆방에는 나비들이 꽂혀 있는 목판이 걸려 있었다. 수위가 나비를 채집하느라 지저분해진 자신의 손을 펴 보였다. 많은 나비들이 핀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블로흐는 목판 밑바닥에 흩어진 가루를 보았다. 그는 좀 더 가까이 가서 아직 핀에 꽂혀 붙어 있는 나머지 나비들을 바라보았다.
YES마니아 : 로얄 y********0 2025.08.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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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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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들을 둘러보던 중에 뭉크의 절규를 표지로 한 이 책에 눈길이 갔다. 제목도 매우 흥미로웠고 짧은 분량의 책이라 부담 없이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주인공이 계속해서 불안을 느낀다. 사회와 주위 사람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다. 책 문장들은 짧은 편이고 그래서 그런지 매우 속도감 있게 장면이 휙휙 바뀐다. 한 번 읽어서는 내용을 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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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들을 둘러보던 중에 뭉크의 절규를 표지로 한 이 책에 눈길이 갔다. 제목도 매우 흥미로웠고 짧은 분량의 책이라 부담 없이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주인공이 계속해서 불안을 느낀다. 사회와 주위 사람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다. 책 문장들은 짧은 편이고 그래서 그런지 매우 속도감 있게 장면이 휙휙 바뀐다. 한 번 읽어서는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몇 번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은 책이다.
s******m 2025.02.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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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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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을 읽고 쓴 리뷰글입니다.프로 축구 골키퍼 출신인 블로흐는 건설 현장에서 해고를 당합니다.해고 후 목적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주인공을 보며 글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예측되지 않았습니다.그리고 그의 불안한 감정을 보며 저 역시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이 전달되었습니다. 내용이 좀 어려워서, 소설에서 말하는 바를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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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을 읽고 쓴 리뷰글입니다.
프로 축구 골키퍼 출신인 블로흐는 건설 현장에서 해고를 당합니다.
해고 후 목적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주인공을 보며 글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예측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불안한 감정을 보며 저 역시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이 전달되었습니다. 
내용이 좀 어려워서, 소설에서 말하는 바를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작가가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 부분은 정말 인상깊었던 작품이였습니다.
 
k*****6 2025.01.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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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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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매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노벨상 수상자의 작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노벨상을 받은 작가의 책을 그닥 많이 읽지 않았더라구요. 그러면서 우리나라엔 언제나 노벨문학상이 나올까 하고 생각했는데 불과 얼마 지나지도 않아 한강 작가님이 수상을 딱 해버려서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릅니다. 사실 십여년 전에 벌써 도전했다가 중간 이상을 넘기지 못하고 실패한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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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매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노벨상 수상자의 작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노벨상을 받은 작가의 책을 그닥 많이 읽지 않았더라구요. 그러면서 우리나라엔 언제나 노벨문학상이 나올까 하고 생각했는데 불과 얼마 지나지도 않아 한강 작가님이 수상을 딱 해버려서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릅니다. 사실 십여년 전에 벌써 도전했다가 중간 이상을 넘기지 못하고 실패한 전적이 있기도 합니다. 이번엔 꼭 다 읽을 수 있길. 
YES마니아 : 로얄 d****0 2024.10.21. 신고 공감 0 댓글 0